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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품은 포근한 숲길 서울둘레길 3코스 불암산은 노원구에 터를 잡고 있다. 불암산은 거대한 화강암 봉우리로 치솟은 정상의 풍모가 돋보이는 산이다. 위풍당당한 기세 덕분에 규모가 큰 북한산, 도봉산, 수락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 주 힘겹게 2코스 덕릉고개 종료지점으로 만났던 상계동 나들이 철쭉동산, 오늘은 2코스 불암산 코스 시작지점으로 마중 나온다.
상계동 나들이 철쭉동산은 불법경작지 정비를 시작으로 백철쭉. 자산홍.등 3만주를 식재하며 봄철이면 하얗고 붉게 물든 철쭉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2021년 철쭉동산 사이로 산책로를 내고 전망대. 데크쉼터. 의자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설치하고 생계3 .4동 주민공모를 통해 '나들이 철쭉동산'이라 명명하였다고 한다. 4월과 5월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는 곳이다.
스탬프를 찍고 오룩스맴, 트랭글에 손목닥터9988까지 걸어놓고 출발한다. 다리를 건너 숲길로 들어서니 언저리에는 그림 같은 산책로가 뻗어있다.
절기상 이슬이 내리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지만 늦더위가 이어진다. 넓은마당이다. 넓은마당은 불암산 자락에 조성된 공원으로 상계3,4동에서 불암폭포, 불암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 100인 원정대와 몇 차례 점심을 먹곤 했던 낯익은 장소다.
서울둘레길은 넓은마당을 뒤로 하늘을 가린 숲길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2018년 서울 둘레길 길동무 팀과 역방향과 순방향으로 완주 후 오랜만에 완주를 목표로 시작하면서 첫 날 호된 신고식을 치른 덕분인지 한결 오르내림이 편하다.
예전에 보았던 ‘설화길’ 안내판이 보이지 않는다. 넓은마당에서 학도암까지 이어지는 설화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명성황후가 치성을 드렸다는 670년 된 은행나무를 시작으로 중간쯤에는 임진왜란 당시 양주목사 고언백과 사명대사가 대승을 거두었던 노원평전투 이야기와 동네 처녀들은 얼씬도 못하게 했다는 여근석 이야기 등을 만날 수 있고, 끝 부분에서는 학도암에 얽힌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학도암 이야기는 ‘학이 찾아드는 곳에 있는 암자’라는 이름에 걸맞게 주변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 다울 뿐만 아니라, 명성황후의 발원으로 암자 뒤쪽 커다란 바위 면에 새겨진 마애불은 섬세한 수법 덕분에 부처가 살아있는 듯하다.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이었다는 설화가 전해온다. 금강산, 하면 빼어나기로 아름다운 산이다 그런 곳에 있던 불암산은 아무리 생각해도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나 같으면 가라고 등 떠밀어도 그냥 눌러 있겠구만. 조선왕조가 들어서 도읍을 정하는데 한양에 남산이 없어서 못 정한다는 소문을 듣고는 자기가 한양의 남산이 되고 싶어진 것이다.
사람이나 산이나 출세를 하려면 서울(한양)으로 가야해, 하면서 금강산을 떠나 한양으로 온 불암산. 그런데 이런, 한 발 늦었다. 한양에는 이미 남산이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확실히 소문이란 믿을 게 못 되는 법, 하면서 돌아가면 좋았으련만 불암산은 그냥 한양 언저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아무래도 출세를 하겠다고 떠나온 고향에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싫었나 보다. 불암산은 헛소문을 퍼뜨린 한양이 영 못마땅해 돌아앉은 형국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물이 끊긴 개울을 건너 포장도로를 건너서서 조금 올라서니 남근석이 우뚝하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남근석이라고 부르는데, 남근석은 토템신앙의 일종으로 잉태와 다산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내일이 기대되는 문화도시 노원구의 불암산 힐링타운 순환산책로 안내판이 서 있다. 1.8㎞에 이르는 산책로는 장애인 등 보행 약자도 전동휠체어와 유모차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지난번 걸을 때는 멀게만 느꼈던 거리였는데 금세 최불암시비다.
불암산 엘리베이터 전망대에 오른다. 경관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수락산, 도봉산, 북한산 등 서울 명산들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전망대 디자인은 주변 숲과 자연스럽다. 예전에 만났던 전망대보다 2m 이상 높인 꼭대기 전망 층은 날갯짓하는 나비 모습으로 꾸며졌다.
고개를 들자 불암산의 육중한 바위 봉우리 세 개가 눈앞에 펼쳐진다. 초록색 숲에 덮인 화강암의 하얀 속살이 푸른 하늘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북한산은 인수봉과 칼바위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봉우리와 우람한 산세를 가져 남성다움을 자랑하고 있다면, 불암산은 완만한 산자락에 육중한 바위가 부드럽게 앉아있어 여성다움이 느껴진다고 한다.
마치 북한산이 엄한 아버지 같다면 불암산은 너그러운 어머니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