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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림: 이 시리즈는 반남박씨 족보(세보)와 씨족사(氏族史)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반남박씨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것입니다. 글의 내용과 관련하여 의문이 있으면 언제라도 아래 댓글을 이용하시기 바라며,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성심을 다해 답변할 것을 약속합니다.
반남박씨 씨족 이야기 3
반남박씨 족보 이야기 1: 프롤로그
족보(族譜)란 무엇인가?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족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족보(族譜): 한 가문의 계통과 혈통 관계(를 적어 기록한 책).
족(族)은 '겨레붙이', 즉 같은 핏줄을 이어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족보는 핏줄(혈통血統)을 기본 전제로 한다. 여기서 핏줄이라 함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모로부터 자녀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유전(遺傳)을 의미한다. 유의해야 할 문제가 있다. 즉 원칙적으로 족(族)은 남녀를 구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17세기 전반 이전에 편간(編刊)된 우리나라의 족보들을 보면 아들뿐만 아니라 딸의 후손들도 함께 등재하였다. 그러나 17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족보에서 딸의 후손(외손)은 사라지고, 남존여비(男尊女卑) 사상을 바탕으로 한 가부장제(家父長制)가 조선 사회의 근본 이념으로 확고히 자리 잡으면서 족보는 아들의 후손 위주로 작성되었고, 오늘날에도 족보 편찬은 이러한 후기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리하여 족보의 '핏줄'은 거의 전적으로 부계혈통(父系血統)을 의미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족보는 과학적(생물학적) 표현을 빌린다면 '시조(始祖)의 Y-염색체(染色體: chromosome)를 공유하는 후손들의 명부(名簿)'라고 볼 수 있겠다.
족보는 종중(宗中)을 형성하는 기본 문서의 성격을 띤다. 종중(宗中)은 같은 성관(姓貫)[동성동본同姓同本]을 공유하는 부계혈연집단(父系血緣集團)으로서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는 집단이기는 하지만 족보 없이는 해당 종중의 외연(外延)을 구체적으로 특정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족보 없이는 사실상 구체적인 종중 구성이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가령 갑(甲)이라는 사람이 반남박씨라고 했을 때,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물론 현대 과학의 발달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는 쉽게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그 확인은 족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조선 시대에 족보는 신분 증명용 문서 같은 역할을 하였다. 당시 족보는 양반 사회의 전유물처럼 인식되었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한미(寒微)한 집안에서는 족보에 이름을 올리기 위해 위보(僞譜)를 만들거나 투탁(投託)으로 다른 씨족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일을 자행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족보의 신뢰도는 현저히 떨어졌지만, 어쩄거나 기본적으로 족보는 종중을 형성하는 주요 자료임에는 틀림없다.
족보는 흔히 세보(世譜)로 불리기도 한다. 엄격한 의미에서 족보와 세보는 차이가 있지만 오늘날에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문서로 편간된 족보의 명칭에는 '세보'라는 용어를 많이 쓰고 있지만, 일반 대중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는 '족보'가 훨씬 더 널리 퍼져 있다. 책으로 편찬한 족보의 명칭으로 17세기 이전에는 '족보'를 사용한 경우가 많으나 그 이후에는 대부분 '세보'를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 반남박씨의 경우에도 17세기 전반에 편찬한 제1차 족보(임오보: 1642년)에서는 '족보'라고 썼으나, 같은 세기 후반에 편찬한 제2차 족보(계해보: 1683년)부터는 '세보'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계보(系譜)를 기록하기 시작한 시기는 대략 나말여초(羅末麗初: 신라말 고려초)로 보이지만 모두 개별적, 단편적인 것들이고, 한 씨족 전체의 계통과 혈통을 종합적으로 기록한 '족보'는 조선 시대에 들어 와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현전(現傳)하는 가장 오래된 족보는 성종 7년(1476년)에 간행된 안동권씨(安東權氏) 성화보(成化譜)와 명종 20년(1565년)에 간행된 문화류씨(文化柳氏) 가정보(嘉靖譜)로 알려져 있다. 특히 문화류씨 가정보는 그 이후 족보 편찬의 전범(典範)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다만, 이들 족보는 오늘날 우리가 대할 수 있는 족보와는 차이가 있다. 이들 족보는 내외손(內外孫)을 차별하지 않고 모두 수록하였으며, 과거 급제 사실과 관직만 간략히 표기했을 뿐 등재 인물들의 개별 인적 정보는 기록하지 않았다. 일종의 '계보표(系譜表)' 같은 수준이었다.
한편, 반남박씨의 경우는 인조 20년(1642년)에 처음으로 씨족 전체의 족보(대동보大同譜)를 간행하였다(인조 20년이 임오년이므로 이를 임오보壬午譜라고 함). 그 이후 지속적으로 수보(修譜)하여 2012년 간행한 제8차 임진보(壬辰譜)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반남박씨 대종중 웹페이지에는 임오보에서 임진보에 이르기까지 모든 족보(세보)들이 게시되어 있다. 반남박씨세보는 시간보(始刊譜)인 임오보부터 그 이후 간행된 역대 모든 세보가 보존되어 있어서 우리나라 족보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아래에 첨부한 내용은 반남박씨 대종중 웹사이트에 올라 있는 반남박씨 역대 세보 발간 연혁이다.
鶴山
첨부: 반남박씨 역대 세보 발간 연혁
-- 반남박씨 대종중 웹에 게시된 『반남박씨편람』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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