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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2일(화) 현지시간 23:55시
새로운 하루를 5분 앞둔 시간이다. 오늘이 동짓날이더군. 팥죽을 쑤었는지 모르겠군. 어린 시절 찹쌀수제비가든 팥죽을 먹던 생각이 난다. 동지를 지나면 한 살 더 먹는다던데. 또 덧없이 한 살 더 먹어야겠구나. 나이 수만큼 먹어야한다고 조금만 주었길레 더 먹고 싶어 엄마 눈치를 보던 일도 아련히 기억된다.
어제 오늘은 다소 고기가 잡힌다. 일본선의 맹종을 피하고 정칙(正測 : 정확한 측정)과 코스의 정확성으로 어장을 선정하고 예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국선에 비하면 제법 좋은 편이다. 바로 이러한 식으로 해나가자고 권했다. 며칠간 더 계속할런지는 모르겠지만 끝까지 분투가 있을 따름이다. 낮시간 많은 어군이 Fish Finder(어군탐기)에 나타났다. 분명히 많이 입망했으리라 기대속에 조바심을 가진다. 예망을 끝내고 양망을 한다. Cod(고기가 든 어망)가 올라오면 긴장을 한다. 그러나 기대에 어긋났을 경우 남는 것은 실망과 한탄뿐이다.
Capt.의 눈에 흥건히 고이는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신의 水運(수운)을 탓하는 것일까? 책임자로서 자신이 고용해서 이 추위 속에서 일하는 하급선원들의 대한 명분과 실정을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날이 수척해 가는 모습이 한편으로 측은한 반면에 앞으로 내 자신이 직접 감당해야할 직위이고 직책이라고 생각할 땐 좀 더 불안하고 더 많은 경험과 실력과 수운을 다져야 하겠다. 101호 정진천 선장과 교신했다. 앞으로 4-5일 후면 그냥 귀항하겠단다.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몸이나 건강하라고 위로의 말뿐- . 그도 역시 경험이 없고 이 어장을 몰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적어도 2년 이상의 이 해역에 대한 충분한 자료와 경력이 있다. 그런데 -. 역시 인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명태, 그놈들이 밖을 보고 소리칠 수 있다면 생명의 보장을 위한 절규가 처절할 것이다. 어획은 없고 Net Brocken(어망이 찢어짐)이 되었을 때는 너나없이 미친다. 더욱이 낮이면 Golden time이 아닌가. 어군이 가라앉을 시간이다. 우선 그물의 파손에 최선의 신경을 써야 한다. 귀항했던 국내 각 배들이 서서히 다시 현장에 도착을 하고 있다. 그들의 조업상황을 보면 종합적인 이 달의 통계와 더불어 원인이 판명되겠지. 오늘은 정말 좋은 날씨다. 모처럼 맑은 태양을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역시 태양은 광명과 희망을 준다. 우리들의 마음마저 맑고 밝게 해준다. 또 다시 서남쪽에서 저기압이 발생되어 이동 중이지만 이곳은 요즘 계절로서는 보기 드문 잔잔한 날씨다. 마치 폭풍전야의 고요함 같이 -.
사랑하는 영아로 부터 전보를 받다 가슴이 뭉클하다. 용당으로 이사하고 귀여운 정화도 건강하단다. 소식치고는 너무나 짧다. 오히려 애가 탄다. 좀 길게 안 해주고 -.
이사를 했다니 걱정이다. 왜 했을까? 하기야 그곳에 구태여 있어야 할 필요는 없고 그쪽으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 추운데 더욱이 아침저녁 Rush Hour에 차에 시달리느라 무척 고생이 많았으리라. 벌써 이사가 몇 번째냐 말이다. 너무나 내가 못 견디겠다. 혹시 돈 때문은 아닐까? 정착이 되지못한 생활은 마치 뿌리가 약한 나무와 같은데 -.
혼자서 어떻게 했을까? 누가 거들어 주었는지 모르겠군. 얼마나 속이 상했을까? 온갖 공상과 잡념이 꼬리를 문다. 미치겠다.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싶군. 사고 없이 잘 끝났으면 좋겠다. 아무튼 내 자신이 너무 잔인한 생각마저 든다. 지금 끝 너무나 영아에겐 따뜻한 내가 되질 못했다. 원망도 많이 하리라. 이렇게 고생시킬바엔 차라리 처음부터 놓아주었으면 좋았을런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영아는 내 것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없었다. 그만큼 내게 깊이 박혀있었고 내 속에 살아 있었다. 영아의 사랑 속에 내 꿈과 내일이 영글었고 지금도 그걸 위해 북양의 바다위에 떠 있는 것이다. 내 한 인생의 단막극이 영아와 더불어 주연이 된 체 이미 막은 올랐다. 충실하고 보람 있는 결과는 또 먼 훗날 얘기할 수 있겠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보고 얘기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어떻든 관계없다. 다만 내 의도에 맞고 연출이 되고 표현이 되고 엮어져 나가기만 하면 그걸로 만족하고 싶다. 기어코 고생의 대가는 함께 찾고 누리고 기뻐할 날을 가져야 한다. 이 밤도 조용히 정화와 나란히 누워 잠들었을 거다. 그 위에 모든 축복과 평안이 깃들기를 충심으로 빈다. 정화도 이젠 엄마, 아빠 소릴 하겠군. 보고 싶다. 그렇게 많이 해주던 뽀뽀를 잊어버릴 것만 같다. 꽤 컷을 거야. 내일 모래 글피면 겨울 방학을 하겠군. 새로 얻은 방에 불은 잘 드는지. 왜 이사했을까? 정말 돈 때문이 아닐까? 차라리 잊어버리고 싶다.
23. Dec.(수)
지루한 하루하루라고 생각되지만 벌써 23일. 출항한지 18일이 된다. 결코 적은 시일이 아니다. 오늘 하루도 그런대로 무사히 마치고 넘어가게 됨을 감사드린다. 영하10도 가까이 내려갔던 기온이 오늘은 0도로서 붙은 눈과 얼음덩이가 떨어지는 것이 보인다. 바람과 물만 차지 않고 눈만 적게 오면 그런대로 괜찮겠는데. 앞으로 20여일 후에라야 땅을 밟을 수 있으리라. 무엇보다 비어있는 어창(魚艙)을 보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 그게 바로 우리의 현금인 어획물이 차곡차곡 저장되는 곳인데. 어서 어서 채워지지 않으니 말이다. 원래 배에서는 미신을 많이 신봉하는 편이다. 우리의 조타실 한쪽 구석에 일본사람들이 모시던 かみさま(神樣, 신)를 모신 곳이 있다. 늘 먼지 앉은 술잔에 술이 담겨있고, 기쁜 일이나 궂은 일이 생기면 맨 먼저 밥과 술이 올라간다. 항상 유동적이고 위험성을 내포한 뱃사람들의 정신적인 위안을 위한 것이리라. 선원들 자신도 상당히 그런 것 같다. 배 위에서 휘파람을 불지 않는 다든지, 출항전날은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다든지. 그런데 그보다도 배를 타는 사람, 물론 사람은 다 같겠지만 하나의 종교를 갖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꼭 그 교리에 정통하고 밝으며 충실한 신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자기대로의 마음의 지표가 될 수 있는 믿음이 중요할 것 같다.
이런 날 짜증이 나고 비능률적일 때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냉정을 되찾으며 Again Play를 두 번 세 번 반복할 수 있는 침착성과 인내성도 각자가 가진 성격 탓도 있겠지만 정신적인 수양 정도의 차기에서도 가져볼 수 있을 것 같다.
또다시 이번 항차도 얼음 때문에 골치다 3번 어창 얼음 10여 톤을 바다에 버려야 한다. 무엇보다 지시하는 조타실 사람들도 체면 없는 일이지만 실지 움직여야하는 선원들의 입장에서도 여간한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역시 계획적인 Plan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주관이 없는 그저 ‘되는 데로’식의 일이 결국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그것이 자칫하면 선원들의 불만의 원인이 되기도 할 것 같다. 좀더 어기와 어황과 시일 관계 등을 다각도로 깊은 고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양망할 때마다 고래가 한 마리씩 따라 다닌다. 고래가 접근하면 다른 고기가 잡힌다. 아마 떼를 보고 찾아오는 모양이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몸집이 날씬한 유선형이다. 헤엄치는 모습도 잽사고 깨끗하다. 어찌보면 동물중의 왕다운 기품이 보이기도 한다. 함께 떼를 지어 추근추근히 따라 다니는 물개는 억척스럽고 시골티가 많은 편이다. 그런데 고래는 우선 모양부터가 도시의 일류신사(Gentlemen)의 모습이다.
24th Dec.(목) L.M.T(지방시간) 10시.
오늘이 X-mas Eve다. 지금쯤 육상의 거리엔 축복의 물결이 출렁일 거다. Silent Night요 Holy night일거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가족끼리, 친구끼리, 부부간에 서로 축복을 나누며 Shopping도 하리라. 영아가 무척 쓸쓸해하겠다. 우리가 하나가 되기 전의 크리스마스도 생각이 나는군.
그러나 이곳엔 축복의 물결보다. 고역의 바닷 물결이 출렁이고 넘실거린다. 준비해온 X-mas Carol을 틀어본다. 마리아 젝슨의 성가(聖歌)도, Jingle Bell도 -. 그런대로 기분을 돋아보고 싶은데 역시 Blue X-mas임에는 틀림없다. 오히려 구슬프게만 들린다. 차라리 이것이 진짜 Silent요 Holy night이다. 지난날 성탄절과 신년을 두고 애써 그린 카드를 그이와 친구와 존경하는 분들에게 보내던 일이 눈에 선하다. 모두들 올해도 이 밤도 한아름 축복이 충만하리다. 실지가 그렇듯이 마음조차 너무나 동떨어져 있어 외로운 감이 든다.
모처럼 모두 Deck에 나와 겹겹이 얼어붙고 쌓인 얼음을 깨고 바다에 버린다. 얼음의 중량이 무거워 Top Heavy(상부가 무거움)가 되면 위험하며 안전항해에도 지장이 있기 때문이다. 두꺼운 곳은 10cm가 넘는다. 썰매가 생각난다. 차운 바람도 오히려 시원스레 느껴진다. 하룻밤을 세고 나면 또 얼어붙을 것이지만 내일 다시 파 던지는 한이 있어도 오늘은 떼 내어야 한다.
해수는 염분 때문에 0도보다 훨씬 더 낮은 수온에서 얼음으로 변하지만, 한 번 얼기 시작하면 얼어붙는 속도가 민물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고 한다.
배 인수 당시 이게 어디에 쓰일까 하고 이상하게 여겨졌던 커다란 떡메 같은 것이 바로 얼음을 깨는 도구임을 알았다. 운동화가 다됐군. 신을 신이 없는데-. 스립퍼는 안되고-. 장화도 약간 적고-. 한 켤레 더 사는 건데 -.
25th. Dec(금)
영아한테서 다시 전보가 왔다. ‘아빠 새해 축복 방학 안녕’이란다. 10자밖에 안되지만 그 속에는 무한히 많은 대화와 밝은 마음이 읽혀져 한결 기분이 좋다. 방학했단다. 이번 방학엔 뭘 하려나? 내일까지는 경산가야지, 대구가서 며칠 쉬면-. 묵호 올려나? 사실 그것도 무척 고생일테지. 무엇보다 그간 피로한 몸이나 푹 쉬고 자신을 위한 일에 시간을 소비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서 만선 귀항했으면 좋겠는데 고기 잡히는 걸 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계속 타선의 맹종과 무질서한 투•양망을 계속하고 있으니 Capt.에 대한 미움도 생긴다. 어떤 때엔 그의 정신상태까지 의심해 보고 싶을 정도이다. 고기들도 크리스마스와 년말 휴가를 갔나보다. 계속 이러면 만선이 아니라도 유류관계로 앞으로 15일 이상을 더 채류하지 못할 것 같다. 하루 24시간이 어떻게 생겼고 자나갔는지도 구분 못할 만큼 빠른 시간인데도 하루 이틀은 무척도 지루하다.
12월 26일(토)
찬란한 아침이요 광명의 아침이다. 수없이 맞고 보내는 아침이고 낮이지만 이렇게 아침이 맑고 찬란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싶다. 이 지역, 이 시기에서는 년중 한두 번 보기 힘든 날씨다. 해가 뜨는 수평선이 황금색으로 변했고 구름이 없는 하늘가도 자색으로 물들었다. 상쾌한 아침이다. 뛰어나가 힘끗 팔을 뻗고 체조라도 하고 싶다. 바람도 멎었다. 잔잔한 수평선 위에 점점이 수많은 갈매기가 앉았다. 그 사이로 물개들도 유유히 유람하는 듯이 따라온다. 남태평양의 무풍지대에서 가끔 볼 수 있는 고요한 날씨다. 곳곳에 달렸던 고드름 끝에 물방울이 맺혀 햇살을 안고 떨어진다. 30mile 넘어 보이는 백설의 섬 또한 이채롭다. 쌓인 눈이 눈부실 정도이다. 어쩌면 햇살을 되받아 반짝일 것만 같다. 잔잔한 호수 같은 기분마져 든다. 그 위를 물살을 쪼개며 배가 달린다. 어망을 차고 밑에서 노니는 고기떼를 찾아서 -. 조금 어획이 좋아진다. 기분이 나고 입가에 웃음들이 뜬다. 잘 뜨면 2-3이내에 船首를 남쪽 고국 땅으로 돌릴 수 있을 거다. 2-3일만 더 좋아 주었으면, 이놈의 날씨가 -.
내가 잠자는 시간은 매일 새벽 2시부터 아침까지다. 몇 시간 이지만 계속 푹 잘 수 있음으로 종일 견딜 수 있다. 잘 먹고 잘 자는데 왜 살이 좀 안찔까?
어망의 파손이 잦다. 수심이 얕고 어군이 많은 반면에 저질(低質)이 거센 모양이다. 그저께도 어망파손으로 선원들이 그 센 눈바람 속에서 5-6시간씩 바닷물을 뒤집어 쓰면서 마쳤다. 어망을 교체했다. 아무래도 새것보다 헌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선장의 의향은 그렇지 않은 가 보다. 물론 고기 잡자면 그물을 파손시키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선원들의 노고와 시간낭비를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1번 3번 어창(Fish Hold)가 다 찼다. 2번의 빙장만 마치면 된다. 어군을 잘 만나면 1-2일이면 충분할텐데. 조바심이 나고 더욱 땅이 그립다. 주로 아침부터 낮 시간은 귀중한 시간이다. 밤에는 그냥 좋은 자리에서 계속 예망하는 것으로 그친다. 해뜨는 시간부터 오후2시까지가 그날의 승부를 좌우하는 거다. 하기야 오후 4시면 완전히 어둠에 잠기는 곳이니까. 오늘도 선상(船上)의 얼음을 깨고 버리다.
12월 27일. (일)
오늘은 참 재수가 좋으면서도 나쁘다. 어제 오늘 꽤 많은 어획을 올렸다. 헌데 2번째는 Otter Board(전개판)가 넘어져 실패했고 3번째는 역시 어망파손으로 실패했다. 특히 두 번째는 그야말로 대 실수다. 그 숱한 어군을 고스란이 놓쳣다. 모두 실망하기 짝이 없었다. 그 놈만 완전했더라면 지금쯤 귀항 길에 올랐을 거다. 그 원인이 어딨나? 너무 성급히 굴었다. 그게 1-2분만에 되는 게 아닌데-. 갑판장의 경험부족이다. Warp(예인줄)주는 속도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는데 그 한도를 벗어나면서까지 빨리 준 까닭이다. 좋은 반성의 자료가 된다. 급할수록 침착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정확한 판단과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습관화 시켜야겠다. 그래도 오늘은 18톤에 가까운 어획을 건졌다. 그리 큰 것은 못 돼지만 요즘 이곳의 흉어기(凶漁期)로 보선 큰 편이다. 내일 하루면 만선할 수 있겠다. 같이 조업 중인 한국선박들의 실적도 영 좋지 않다. 반면 우리가 꽤 좋은 편이다. 특히 용길형의 102 행복호는 상당히 부진하다 어서 어서 만선시켰으면 좋겠는데-.
Bridge(선교)의 분위기도 시시각각 다르다. Fish finder(漁探器)에 나타나는 어군의 상태에 따라 다르고, 양망시 Cod End의 크기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그런대로 오늘 하루는 조용히 저문다. 내일 하루 더 해서 남은 어창을 채우고 남하하자는 우리의 제안이 묵살된 체 현재 코스 220도로 남하중이다. 어장이동이다. 위도 북위 48도 선상으로 간다. 그곳은 우리가 확실히 파악하지 못한 낯선 어장이다. 다소 저질이 거칠다는 것만 알고 있다. 다행이 그곳에서 좋은 어장을 찾을 수 있어야 할텐데 -.
출항한지 23일! 조업을 시작한지 16일이 지났다. 차츰 선원들도 지치는 모양이다. 일하는 동작들이 느려진다. 더욱이 고기가 들지 않은 어망을 올릴 땐 더없이 맥이 빠진다. 거기다 눈바람만 없어도 괜찮겠는데. 수은주가 자꾸 내려간다. 조원술 형이 몸살져 누었다. 무척 마음이 아프다. 약을 주고 쉬라고 했지만 내가 좀 더 힘이 돼 줄 수 있는 길이 여기선 말뿐인 것이 안타깝다.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모두가 더 잡아서 만선으로 귀항하지고 하지만 마음들은 벌써부터 저쪽으로 달리고들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늦어도 모래까지는 현장을 출발해야 한다. Fuel Oil(연료) 사정이 급박해져 간다.
31st. Dec. 1970 (목)
대망의 70년대 첫해인 70년도 오늘로서 마지막이다. 조용히 흘러간다. 바다도 잠든 모양이다. 바람 한 점 없이 잔잔한 수면 위를 조용히, 정말 조용히 흘러간다. 고향으로 달리는 배와 함께! 28일 29일 이틀 동안은 운이 좋은 날이었다. 의외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유독 눈이 많이 내렸지만 조업을 마치자고 해도 한 번 더 하자고 선원들이 소리칠 정도로 재미있는 조업이었다. 고기만 들면 추위도 잊을 수 있고 부서진 그물도 고치는데 괴로운 줄을 모른다. 기분이 들뜨고 흡족한 마음이 앞선다. 신난다. 총 18일 104회 약 200톤 가까운 어획을 올렸다. 이 어장에서 결코 좋은 결과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지금의 어기(漁期)로서는 타선에 비해서 좋은 성과라 할 수 있다. 29일 오후3시 마지막 양망을 마치고 뱃머리를 돌리기로 합의했다. 지루하고 벅찬 조업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만은 모두 진정으로 기쁜 표정들이었고 감격적인 시간이었다. 만선의 기쁨이리라.
이 순간에야말로 지난 20여일 간의 피로와 노고와 모든 고난을 잊을 수 있는 순수한 기쁨이 될 수 있다. 사람의 욕심이란 한정이 없나보다. 잡힐수록 더 잡고 싶어지는 것은 너나없이 같은 마음인 모양이다. 못내 더 올리지 못하고 돌아서는 것을 서운해 하는 선원들에게 어망파손과 어장이동의 장시간을 이유로 하고 6일간의 항해준비를 했다.
내일이면 새해 71년 1월1일이다. 예상외로 날씨가 좋다. 맑은 날씨는 아니지만 바람 없이 잔잔한 바다다. 고마울 뿐이다. ‘계속 며칠만 더 이런 날씨였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가끔 흰 눈발이 조용히 지나간다. 제야의 이 순간을 흐느끼기라도 하듯이-. 이틀간에 그간 밀렸던 몇 가지 일을 마쳤다. 전번 항차부터 밀렸던 작업복과 내의 세탁도 마쳤다. 속이 후련하다. ‘시작이 반’이라더니 시작하기가 어렵지 시작만하면 쉬이 되는 것이다. Note정리도 그런대로 해나간다. 날씨 덕분이다.
아직 어디로 입항할런지는 회사의 지시가 없다. 부산으로 갔으면 좋으련만-. 사실 영아를 묵호까지 오라고 했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다. 정화 데리고 16시간이나 기차에 시달려야 하니까. 차운 날씨에-. 아마 지금쯤 경산이나 대구에 있을거다. 어제 섣달 초사흘이 엄마 제삿날이었으니. 아버지께 전보는 했지만 몹시 생각이 난다. 모두들 대청에서 제사를 모시는 시간에 마침 당직시간이라 잠시나마 묵념을 드리며 엄마의 명복을 빌 수 있었다. 엄마가 가신지 벌써 10여년의 세월이 흘렀군. 그날 조용히 가시던 날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린 동생들을 곁에 두고 누나와 함께 몸부림치며 슬퍼했던 그날이었다. 조용한 말씀한마디 남기시지 못한 체 가신 당신의 넋에 원망이 앞서 기도했다.
그 후 벌써 10년. 많은 시륜이 쌓였고 그에 따라 많은 변화도 있었다. 살아계셨드라면 숱하게 기뻐하실 일도, 극히 마음 아파하실 일도 많았다. 그러나 모두가 운명인 것을-. 다만 저 세상에서 나마 우리들을 보살펴 주시고 평소의 가르침을 잊지 않게 인도해 주실 것을 빌 따름이다. 남들 같이 땅위에 살면서 일년에 하루만이라도 영전에 조용히 무릎 꿇고 술 한 잔 올리지 못하고 이역만리 그나마 물위에 뜬체 부질없는 옛 생각에 젖은 불효의 내 자신이 부끄럽다.
지금 Radio에선 매년 있었던 년말 특집 프로그램인 남녀 가수 가요 청백전이 한창이다. 宋 해씨의 구수한 유모어가 들을수록 멋이 있다. 친한 벗과 함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왼 가족들과 함께 송구영신의 축배를 들고 싶은 밤이기도 하다.
1971년 1월 1일 00:30(금)
새해도 이미 30분이 지났다. 지금 배는 북위 42도 34분 동경 142도 46분되는 지점이다. 이곳 선상에서 새로운 해를 맞았다. 지난 70년 한해는 대과 없이 보낸 것은 다행한 일이나 무척 고역이 따른 해였다. 한일호에서의 고생의 보람도 찾지 못한 채 내렸고 일년내 분명한 수입도 없는 채 놀기만 했다. 참 아깝고 안타까운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얻은 것도 있었다. 우선 내 사랑하는 귀여운 딸 정화를 순산했다. 영아도 금년엔 재수 없는 해였다. 어처구니 없는 일에 휘말려 용당으로 날렸다. 아직도 햇병아리 교사인데 뭘 알까. 이사도 벌써 두 번이나 했다. 심은지 얼마되지 않은 나무가 채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테 다시 옮겨지기도 했고 또 비바람에 착근를 못하고 있다. 어쩌면 두고두고 기억하면서 반성하고 참고로 삼을 수 있는 해이기도 했다. 그런 속에 에누리 없는 365일은 이미 끝이 났고 새로운 365일이 시작되었다. 금년은 어떻게 해서라도 내 집부터 하나 마련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다. 이 넓은 땅위에 간신히 뿌리는 박아야 흡수도 할 수 있고 완전한 착근도 되는 것이 아닌가. 내가 생각해온 것보다 늦은 감이 있으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최대한의 노력을 최대의 성과를 거두어야 한다. 좀 미친 지랄 같은 행동은 삼가고 절약과 검소로 더욱 다져지는 생활풍토를 이뤄보자.
영아도 힘써 협조해 주리라. 마음 같아선 이 배가 계속 일년간 아무런 대과없이 계속 바쁘게 항차 수를 늘여 주었으면 싶다. 결국 나라는 인간은 어떤 구속이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땅위에서 절제가 없을 때 다시 ‘미친 지랄’이 나오는 것이다. 발바닥에 흙이 묻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런 세상사를 염두에 두지 않고 일년간만 바다 위에서 살아보련다. 그래서 다음해에 잡아야할 더 큰 임무와 책임을 위한 착실한 진전을 이룩해야 하는 것이다. 정확한 판단, 신중한 고려, 과감하면서도 분명한 행동, 반복이 없는 결정, 충분한 이해, 풍부한 경험 등 이것이 내가 가져야 할 정신적 자세다. 올바르게 새겨두고 의식적으로 습관화시켜나가야 한다. 물론 타고난 천성을 뜯어고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가능하리라 그리고 몸도 좀 더 건강해야겠다. 우선 정력이 필요하다. 쉬 피로하지 않는 힘과 신체, 여기에서 굳은 정신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배를 타니 우선 건강에 무척 신경이 쓰인다. 충분한 영양을 섭취해야한다. 상육시에는 가끔 보신도 하고-. 필요하면 약도 늘 상용(常用)하고 싶다. 뭐니 뭐니 해도 첫째 Moto는 하루세끼 밥을 잘 먹고 배설하는 것이고-. 술도 끊었으면 좋겠는데-. 될까? 이것은 자신 있는 소리는 아니다. 절제를 해야지. 어떤 일에 마음이 약한 것이 내가 알고 있는 내 자신의 결점임을 알고 있는 이상 의지로서 대결해 보리라.
아내 영아에게는 또 다시 쓴 한해가 되리라만 이 한해도 계속 가정살림을 맡고 이끌어 주리라 믿는다. 미운 아빠, 능청맞은 아빠, 엉큼한 당신이라고 하리라. 이 어둠이 가고 날이 새면 온 세상 모두가 새해의 충만한 축복 속에 싸여지리라. 그 속에서 나를 알고 아껴주는 모든 친지, 부모형제, 가족, 친구들에게 진심으로 한아름 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당직 시, 특히 항해 중 야간에는 너무 심심하다. 어둠 속에서 모두의 표정은 읽을 수 없으나 각가지 공상 속에서 깨어나게 하기 위해서 구수한 옛날 얘기를 시켜본다. 여기는 언제나 입으로 한몫을 하는 Mr.장이 있다. 많은 책도 보았던 것 같으나 체계가 없군. 역시 얘기는 사실 그 자체보다 하는 방식, 과정, 그 속에 숨어있는 참뜻 그것이 중요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내가 좋아하는 고담(古談)은 누구에게나 즐겨 들을 수 있는 구수한 맛이 있다.
71년 1월 3일(일) 01시 10분
또 며칠이 흘렀다. 아니 겨우 어제 하루를 걸렀을 뿐이다. 그러나 누가 가라고 시킨 것도 아니고 가는 것도 모르지만 그저 묵묵히 제 갈 길을 어김없이 가는 것이 시간이다. 정초 1. 2일은 잔잔한 날씨를 보였다. 바람도 설을 쉬는 양-. 2일 오후 6시경 코스를 북해도 Tugaru(津經)해협으로 꺾었다. 선내에서 가장 나이 많은 문 씨의 말처럼 ‘왜놈설’이라서 그런지 많이 다니는 배들이 적어서 해협통과가 수월하다. 가끔 북해도와 혼슈 사이를 왕래하는 정기여객선인 듯한 큼직한 객선들이 찬란한 네온불빛을 발하면서 지나다닌다. 약 5-6마일 떨어진 육상에선 일열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가로등 불빛이 멋있도록 늘어섰고 ‘설’의 축제기분에 젖어서 그런지 더한층 불빛이 밝게 명멸하는 가 싶다. 가족, 친지, 친구들만의 오붓한 분위기와 그 속에서 벌어지는 재미있는 오락, 간간히 먹는 맛있는 과자, 낯선 이국의 먼 빛 풍경이자만 우리의 것과 함께 떠오르다 사라진다. 새해인데도 우리 선내에서는 아무런 변화도 반응도 없다. 그저 평일이 있을 뿐이다. 다소 날씨가 푸근하고 해수온도가 높다. 갑판에 붙은 얼음이 죄다 녹는다. 선원들이 갑판에서 그물 손질에 여념이 없는 낮이었다. 마치 봄날이 오는 기분이기도 하다. 내 마음 같아선 쓴 소주나마 한 잔씩 나누어 주고 금년한해의 건투를 약속 받으며 웃음을 나누고 싶건만 -.
Tugaru해협의 마지막 관문인 Omia등대를 지나 일로 부산으로 뱃머리를 돌렸다고 생각되자 갑자기 심한 풍파가 닥친다. 국장이 급히 기상도를 갖고 올라온다. 바로 우리가 있는 지점을 저기압이 통과중이다. 전선(前線)이 겹쳐 눈이 심하다. 여름 같으면 심한 비가 되겠지. 아침 바람의 방향이 WNW(서북서) 우리 코스에는 바로 횡파(橫波)다. 도저히 더 나아갈 수 가 없다. Rolling 이 너무 심해 위험하다. 또 새로운 하루를 맞는 0시 20분 다시 선수를 돌려 가까운 일본 항내로 들어가서 잠시 피항하기로 합의를 하다. Hukushima라는 북해도 서안 끝의 자그마한 항구의 초록빛 등대를 보며 서서히 접근. 1.5마일까지 들어가서 Heaving To*를 시작하다. 어둠이 짙은데다 눈 마져 심해 지척인 항구도 아득해 보인다. 가끔 눈보라가 뜸한 사이로 뵈는 항구의 불빛이 유난히도 빛나 뵈고 무척 향수에 젖게 한다. 당직에 임하는 선원들도 24시간 아무런 얘기도 없이 묵묵한 채 밖을 응시할 뿐이다.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호화로운 내일의 꿈일까? 아니면 지난날의 각가지 추억들일까. 아니면 차라리 절박한 현재일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 보면 배 위에선 미래보다 과거가 앞서고 현재가 중요한 것이 대부분인 것 같다. 우선 움직이고 흔들리는 배 위에서 조그마한 몸뚱아리 하나를 바로 세워 유지하려는 안간힘이 모든 과거와 번민과 후회와 갈등 같은 번잡스러운 것들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당장 몸의 한군데가 어디엔가 부딛치거나 넘어지게 되는 것이다. 더욱이 바람이 심한 갑판 위에서는 70Kg짜리 한 몸의 중량을 조정치 못하면 그대로 바닷물 속에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뱃놈들을 무식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Heaving To : 선박의 방향을 파도와 15도 정도의 각도로 저속 유지하여 선체가 파곡에 빠지지 않도록 하여 피항하는 방법
어장으로 갈 때와 달리 귀항중이라 몹시 지루한데 여기 또 하루, 정말 아무런 보람 없이 아까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다. 바람이 계속 분다. 나무랄 수도, 나무래도 소용없는 일임에도 입에서는 욕들이 튄다. 짜증과 불만과 자기불만족이 한마디 욕으로 뭉쳐 튀어 오르는 것이다.
날이 샜는데도 바람이 자는 기세가 안 보인다. 날이 밝음과 동시에 전개되는 바깥 풍경에는 또 하나의 호기심과 감탄이 어울린다. 같은 이름의 산이고 강이지만 가는 곳마다 그 형태와 질이 다른데 뱃놈들의 구미를 돋군다. 하물며 인간과 인정(人情)에 있어서랴. 눈 덮힌 산들이 제법 멋이 있다. 한국 산 같이 둥글지 않고 날카로움이 있다. 형성의 연대가 오래지 않는 모양인가. 산허리 위로는 잎을 잃은 앙상한 가지의 나무들이 마치 억센 털 모양 서있고 아래쪽으로는 아직도 푸른 기운과 검은 기운이 겹쳐 뵈는 침엽수가 우거져 있다 확실히 일본은 나무가 많다. 민둥산의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이 아닐 수 없다. 해마다 여름이면 겪어야 하고 당하는 홍수와 가뭄의 상처가 눈앞에 선해 뵌다. 얄팍한 애국심인가? 과거의 일본이란 비정상적인 감정이 어린 눈으로 본 일본땅이라서 그런지?
09:00 더 지체할 수 없어 다시 항해를 계속하기로 하다. Set Co.(정침)하다. 횡파가 생긴다. 아직 귀항지를 모른다. 기형적인 항해다. 목적지 없는 여로는 일종의 방황이 아닌가. 귀항지가 부산인지 묵호항인지 본사로부터 연락이 없다. 우선은 괫심하지만 일면 무식하다는 생각도 든다. 배를 띄워놓고 목적지를 연락도 않으니. 그 전보를 받기 위해 이틀이나 밤을 세웠다는 통신장의 투털거리는 소리가 높아간다. 지금은 240도 부산과 묵호의 중간지점을 뚫는 코스다.
차츰 바람이 잔다. 한밤중이라서 그럴까? 이 바다는 아무런 육지적인 장애가 없으니 좋다. 지나다니는 배도 거의 없다. 다만 바람과 함께 파도가 센 것이다. 그런대로 배는 안전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하늘에 별빛이 총총하다. 적어도 6일이 되어야 입항하겠다. 어서 가고 싶다.
집에서 장사한다는 Mr.장의 장사술 얘기가 재미있다. 그 속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있어 더욱 좋다. 얘기로 봐선 그리 큰 것은 아니다. 거제섬, 아마 내가 잊을 수 없는 수륜면만한 것 같다. 잡화를 취급하면서-. 꽤 수입은 괜찮은 모양인데 왜 배를 탔느냐면 작년도 강 선장과 그가 친구여서 한일호를 보고 너무 좋아서 한 번 타보고 싶어 했는데 이렇게 고생인줄은 몰랐다며 다시 땅을 딛고 살겠다고 한다. 처녀를 데리고 온 젊은 총각에게 씌우는 바가지요금, 노름꾼들에게 후하게 위로 하는 척 하면서 그들의 생리를 교묘히 이용하여 늘려가는 이자놀이와 술값 바가지. 술 한 병에 300원 바가지 씌우면서 10원짜리 검 한 통으로 손님에게 인사까지 들으며 판다는 기막힌 상술이다. 기막힐 것까지야 없지만 역시 소비자로선 품질, 상표확인이 무엇보다 앞서고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면 서도 소홀히 하는 사람의 심리를 최대한 이용하여 이윤을 얻는 것이 장사의 기본적 기술인 것 같다. 역시 고기는 물에서 살고 범은 산에서 살아야 제 길을 갈 수 있나 보다. 그제 정도(正道)겠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은 과연 내가 가야하는 정도일까?
4th. Jan. 71(월) 02:30시
날카롭고 악명(?) 높은 동해라 기상상황을 여러모로 검토하면서 조심스럽게 안전항해를 하고 있다. 기상도에는 금방이라도 강풍이 불고 파도가 거셀 것 같이 저기압들이 위험신호인양 붉게 그려져 있다. 아직은 큰 영향은 없다. 최대한의 속력으로 진행 중이다. 한 발자국이라도 어서 앞당기기 위함이다. 이러한 항해보다 짧은 길을 택하기 위해서 Loran*으로 정확한 Position을 자주 낸다. 일본 북해도를 벗어난지 하루 반인데 왜 이리 지루한지 모르겠다.
낮에 묵호로 입항하라는 전문을 받고 각자 집으로 전보를 치게 했다. 영아한테도 전보를 보냈다. 지금쯤 대구나 경산 있을지도 모르겠다. 부산 있어도 올 수 있을는지. 그냥 입항이라고만 썼다. 굳이 오라는 말을 하니 않았다. 국장이 꼭 오도록 ‘상경 망’을 넣겠다고 우격다짐 하던데-. 물론 온다면 그 위에 더 반가운 것이 없겠다. 할 얘기가 너무도 많은 것 같고, 듣고 싶은 얘기도, 의논할 일도 무한정인 것 같다. 함께 얼굴도, 정화도 보고 싶고 안고 싶다. 그러나 이 추위와 먼 길에 정화와 함께 온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다는 것을 또 너무 잘 안다. 그렇게까지 해서 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안 오면 오입이라도 마음데로 할 수 있어 좋다’는 농담 삼아 얘기들 하지만 실은 마음이 아프다. 왔으면 좋겠다. 입항할 때 웃으며 손을 들어주었으면-. 온데도 5일까진 못 올 것이다. 현재 예정은 5일 아침 입항이다. 도중에 기상이 악화되면 도리없이 몇 시간이고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을 지체해야 한다. ‘오지 않을 것이다’ ‘못 온다’ ‘올 수 있다’는 긍•부정의 소리가 마음 한 가운데서 서로 이긴다고 우긴다. 못 올 줄을 알면서도 더욱 기다려지는 것은 그만큼 실망을 안겨다 주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려는지.
지난밤에는 잠을 못 잤다. 왠지 이상스럽게 잠이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 덕분에 책을 몇 페이지 읽긴 했다. 너무 잡념이 많아서 그런지? 뒤체다 올라온 지금이다.
* Loran: 지구 전체를 뒤덮는 전파를 이용하여 선박의 위치를 찾는 항해계기
작업장 보담 푸근하고 덜 찬 바람이지만 바깥은 춥다. 오줌누러 가기 싫어 문을 열고 그 놈(?)만 내놓고 볼일을 본다. 오래 참던 물줄기와 함께 더운 김이 무럭무럭 난다. 저것이 내 체온이란걸 생각하니 훈훈함을 빼앗기는 기분이라 아깝다.
일본 소설책 하나를 얻어서 읽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한자에 음이 달려있어 실력향상에 무척 도움이 될 것 같다. 몇 줄 보니 보아질 것도 같다. 이만큼이나 볼 수 있게 된 것은 순전히 내 힘이다. 스스로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계속 밀고 나가보련다. 머지않아 아무거나 잘 읽을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나올 땐 잡지라도 두어 권 사야겠다. 빌린 ‘신동아’와 ‘중앙’이 있지만 주로 시간성을 띤 성질이라 소설이외엔 별 흥미가 없다. 읽던 안 읽던 머리맡에 있으니 결국 한 장 두 장 읽혀지고 마는가 보다. 신동아 9월호의 넌픽션 ‘仙遊里(선유리)’를 읽다. 무심코 내 이 선상(船上)의 일기도 한번 활자화 시켜 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원래 문학에는 취미 소질이 없는터라 넌픽션이 뭔지도 모르지만 지나친 욕심인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이것도 내 자신의 생각을 완전히 적어내지 못하고 망설이다 어째 써놓고 보면 본말이 전도되는 수가 많아 스스로도 웃을 때가 있다. 그러나 남을 위한 것이 아니고 내 자신과 성실성만 가지고 꾸준히 적어볼 뿐이다. 그리고 틈나는 데로 많은 책을 가까이 할 것도 염두에 새겨두자.
신던 운동화를 또다시 바닷물에 던져버리다. 저번에 내의에 이어 두 번째다. 물론 이용가치가 없어 버리는 것이지만 왠지 내 몸의 일부분으로 붙어있던 거라 그런지 서운한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 새것을 위한 시원한 감도 있다.
4th. Jan. 71(월) 14:00
항해 중에는 이렇게 시간이 남을 수 있어 좋다. 오히려 잠도 덜 온다. 아침 10시경부터 갑자기 악화된 일기다. 부득이 저속으로 슬슬 독도(獨島)부근을 간다. 이러면 예정보다 또 늦어지는데. 모두 속이 타는가 보다. 조타실 주전자의 찬물 소모량이 늘어가는 걸 보니. 상당히 파도가 높다. 몸을 가누고 설 수 없을 정도로 배가 흔들린다. 2번 어창의 빙장고기가 상했을 거다. 약 1000상자는 넘는데. 아까운 일이다. 어서 가야하는데. 짜증을 내고 안달이 나도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자그마한 일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만큼 신경과민 상태가 돼있다.
가끔 담배가 품절되는 선원이 생긴다. Bridge(선교)에 오면 재떨이 꽁초부터 찾는다. 평소에도 그렇지만 이럴 때마다 담배를 배우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느낀다. 헌데 술은 왜 배웠을까. 비상용 담배 파고다 두 갑으로 선심을 썼다. 2항사가 좋다고들 한다. 모두들 사람이 좋단다. 나보고-. 그러나 그 좋음 속에서 내 권위만은 잃지 않아야 하고 또 잃어서도 안 되고 잃을 만큼 ‘좋은 사람’이 아직 안 되어 있다. 둥근 안락의자에 앉은 사람이 부질없이 의자를 삐걱그릴 때 한 방 쏘아줄 수 있는 날카로운 침은 속에다 늘 갈아 둘 작정이다. 기관부 Mr. 신은 내가 배탈사람이 아니라고 한다. 어째서 그렇게 보일까? 다른 사람에게 비친 내 인간상와 상(狀)을 좀 알고 싶군.
느닷없이 이제 와서 Life jacket(구명조끼)을 개개인에게 나누어 주란다. 갑판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하필 이럴 때 그런 걸 시키나. 정신상태기 이상하군. 원래부터 Life Jacket은 개개인의 침대에 가장 손이 잘 닿는 곳에 두고 초비상시에 그것만 들고 나간다. 무엇보다 생명만은 보존해야 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처음부터 분배하던지 아니면 그냥 두었다. 뭍에 가서 하던지 않고 하필이면 파도가 세고 바람이 센 항해중에 그럴까? 선원들 특히 무식한 그들의 심리상태가 어쩔까?를 생각했는지 모르겠군. 역시 신경과민들이다. 나 역시 기분이 이상해지니 나도 분명히 노이로제 환자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배가 더 흔들이는 것 같군. 좀 있다 올라가 보자.
늘 변비증세가 있어 변을 볼 때마다 고역이더니 기어이 탈을 내나 보다. 뒤를 볼 때 조금씩 있던 혈액보다 통증이 있어 견딜 수 없다. 부득이 약을 먹었다. 또 목구멍에 무엇인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의 증세 때문에 기분이 항상 개운치 못하다. 뭣 때문일까? 회충 때문인가?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그렇다고 밥을 못 먹거나 맛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이 먹는다. 그제부터 몇 끼 김치에 좀 비벼 먹었더니 체했는지 답답하다. 소화제를 좀 과분하게 먹긴 했지만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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