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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b. 16.(금) 1973
新東亞 1월호를 거의 완독 했다. 보내준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죄다 읽고 만 것이다. 무엇보다 古代 韓日關係 기사와 동서독 관계가 관심 있게 느껴졌다. 아직 이해하기에는 무척 어려운 점이 많다. 우선 용어에서부터 문맥에 이르기까지 -. 그런대로 의미의 대강 추세는 짐작이 간다. 많이 읽고 나서 읽은 뒤의 남는 것을 정리하고 하나로 체계를 세워 간직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이 한스럽다. 읽는 줄거리나마 기억할 수조차 없는 형편이 아닌가. 원 참!
이제 다시 2월호를 편다. 1월호 보다는 물렁하고 구수한 내용인 것 같다. 다음엔 3-4월호를 한꺼번에 보내 줘야 할 텐데 -.
낮이면 무더위가 찌는 듯하다. 계절부터 일정하게 북동풍이므로 우리 배의 항로로 보면 뒷바람이다. 배의 속력을 감안하면 선내에서는 바람 한 점 없는 무풍(無風)의 현상이라 더욱 그렇다. 수은주가 34도를 오른다. 전번 항차보다 3-4도의 높은 차이를 보인다. 갈수록 더욱 덥기만 할거다.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 이러한 혹서를 감당해 낸다는 것도 하나의 전쟁이라 여겨진다. 한계를 가진 인간의 신체적 조건이 아무런 고장을 일으키지 않고 이겨낼 수 있자면 그만큼 필요한 힘과 노력이 소비되어야만 하니까. 특히 태양에 약한 피부를 가진 나 같은 경우에는 세심한 주의와 힘이 든다. 강한 태양열을 복사하는 철판에는 뜨거워 손을 데지 못한다. 얼굴이 붉어지고 어슥하게 붓는다. 계속 흘리는 땀의 양만큼 수분의 공급도 해줘야 한다. 일을 마친 뒤의 목욕, 이것이 없다면 견디질 못할 것이다. 땀 젖은 옷을 빨고 왼몸을 더운 해수와 찬물로 시원히 씻은 후 간단한 차림으로 바꿔 입고 나올 때는 이미 한낮이 기운 저녁때다. 이때의 시원함이 곧 하루의 피로를 잊게 해주는 듯 하다. 그것도 오늘같이 해상이 조용하고 맑은 날의 경우에- .
금년 가을에 내 집을 가지면, 그기에 내가 비로소 뿌리를 심는 것이다. 무성한 가지와 잎과 그리고 꽃, 열매의 성숙을 위해 최선을 다하리라. 새집이 아니라도 좋다. 내 손으로 다듬고 만들고 페인트도 바르고, 아내와 정화와 정겨운 얘기도 나누면서 그들의 도움도 보다 흐믓할거다. 불필요한 것은 뜯어 없애고 없는 것은 새로 붙이고, ‘목욕탕 샤워는 있어야 할거 아니요?’ 일이 끝나면 시원히 몸을 식히고, 아내와 정화가 등을 밀어주기도 하리라. 소파에 기대 앉아 조용히 소리를 들으며, 알맞게 차워진 맥주나 음료수를 그들과 함께 드는 시간, 그리고 담소, 그것이 곧 내 가정이요 보금자리가 아닌가. 마당 한가운데는 정화, 정주의 그네와 놀이터가 있고, 철에 따른 꽃과 나무도 자랄 것이다. 좁은 영역이지만 알뜰히 쓰려고 당신의 정성으로 구석지엔 닭장도 생기고 화단구석엔 채마밭도 이뤄지리라. 정화와 정주가 맡아 기를 금붕어와 새장, 그리고 매리(?)도 모두 한 가족이다. 내가 하고 싶은 학구적인 생활을 위한 書齋도 있어야 하고 꼬마들의 방도 있어야 한다. 침실은 영원한 사랑의 밀어를 실은 채 당신과 함께만 가질 수 있는 최상의 안식처가 되게 해야지. 막연한 꿈이 아니다. 현실을 부정하거나 외면한 꿈도 아니다. 바로 내 앞에서 현재로서 존재해야 되는 가장 가까운 내 일인 것이다. 지금 내 자신이 땅을 딛지 못한 체 쉴 참도 없이 물길을 따라 오가는 떠돌이지만 이 길이 곧 그것과 직결된 것이다. 이 꿈을 위하고 쫓아서 달려가고 또 달려오는 것이다. 나 보담 더 갖고 싶어 하는 것이 바로 아내이다. 얼마나 목마름이 짙을까? 하나일 뿐인 남편인 나를 의지하기는커녕 작은 몸으로 지탱해야 하고 있지 않나. 얼렁얼렁 하다가 제 좋은 데로 하다가, 훌쩍 갔다가 훌쩍 와서는, 또 번잡스럽기만하던 남편인 나다. ‘내 한 몸 빼고 남는 것은 모두 당신이 하시오.’ 하는 식이지. 말 한마디 정겹게 해주지 못하니 더 할 말이 있을 것인가. 내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사실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도 흔한 유행 따라 멋 한번 내지 않고 알뜰히, 아니 억척스럽게 부딪치고 헤쳐나가는 아내가 아닌가? ‘똥 누기전의 급한 상황’으로 데려다 놓기만 하고 그 고생을 시키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그 보다 묵묵히 버티고 견디는 당신에게는 사랑이라기 보다 한없는 존경을 한다.
人生의 價値基準을 어디다 둘런지는 모르지만 착실하게 가정과 사회교육을 받은 한국여성이 겪어야 하는 한국적인 생활의 방식이고 사고의 범위 속에서 생각하고 감안해 본다고 해도 내 자신이 도를 넘어서 지나치고 있음을 스스로 느낀다. 부부사이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 진심으로 죄의식을 느낀다. 단순히 그와 어느 누구의 중매나 극히 짧은 사귐으로 한에 묶어졌다면 좀 더 의미의 깊이에 차이는 있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지금까지의 결코 짧지 않은 時流속에 접어진 역사! 그렇다 내게 역사이다. 그것은 지금 이 시점의 내라는 인간을 완전히 형성시키고 성장시킨 것이다. 또 그것이 바로 내 생의 방향을 결정지은 바탕이 됐고 앞으로 남은 내 생의 목적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내 자신이 방탕했거나 실망했거나 혹은 고의적이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한마디로 맺을 수 있다면 믿음과 과욕의 소산이다. 이해할 수 없는 일방적이고 독선적인 내 혼자만의 방법이 결국 당신에게 이런 고생을 시키데 된 것이다. 그와 함께 가져야 했던 나 혼자만의 꿈을 하루아침에 이루려 했던 성급한 잘못을 스스로 시인한다. 그의 도움이 별로 없어도 내 혼자만의 힘으로도 충분히 내 꿈을 키울 수 있으리라는 자신만만했던 지난날의 패기가 결혼 후 첫해 무참히도 짓밟히고 그의 힘을 입었을 때 받은 내 자신의 충격은 그 후의 생활에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가정보다 더 성실하게 지킨 직업의식, 그것은 내가 뛴 것이라기 보다 쫒긴 것이다. 욕망이 큰 만큼 실망도 크다는 그의 말을 들어면서도 성급히 굴었다. ‘좀 더 참아라, 곧 된다.’는 나 혼자의 생각.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지 않고 훌쩍 뛰어 오르려고만 했던 생각, 그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어리석음이라는 걸 깨우쳐 주기도 했다. 그러기에 지금의 이 현재를 참고 견뎌 주는 것 일거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항상 아내에게 무엇인가 내 자신이 부족함을 느낀다. 그래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그 앞에서는 어떤 勇斷이나 蠻勇을 부리질 못한다. 어떤 때는 내 스스로 보담 더 완전하고 정당함을 느낀다. 그가 진정 내게는 다시없는 친구요 재산이요 소중히 간직해야할 사람임을 깨달은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夫婦의 의미라는 것이 보다 더 차원을 달리하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껴지는 듯하다. ‘어이구 완수야! 똑똑타!’ 스스로 自責을 해본다. 웃음이 난다. 부끄러운 일이다. 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냉장고에서 얼음을 꺼내 속을 시키는 것이 하루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과정이다. 여기에 집이 있고 가족이 있다면 곧 내 가정이다. 저무는 수평선이 한결 짓푸르다. 여늬때 보담 당신의 미소가 한결 시원스레 인다. 더욱 그리운 밤이다.
Feb. 17(토).
정월 대보름이다. 오늘따라 활짝 갠 하늘에 밝은 달이 화사하게 빛난다. 의외로 속력이 상승한다. 20일 오후에는 Pilot Station(도선구역)에 정박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저 달이 다른 한 군데서도 저렇게 밝게 비치는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차가운 겨울 빛이 떠나지 않았으리라. 토요일인데 정화, 정주와 함께 보름차림을 했을라나? 오후에 간단한 나물무침과 맥주로 기억은 하게 했다. 저녁 식사 후 계속 두어 시간 선미에서 잡담을 나누었다. 세계 제2차대전에서부터 지금의 국제정세까지, 그리고 개개인이 다 다른 군대 얘기랑 -. 역시 책을 많이 읽는 다는 것이 그만큼 그 사람의 속을 살찌게 하고 무게 있게 한다. 지식수준이나 생활환경 등 외적 환경에서부터 내적 조건이 고르지 못하고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으나 한 가지 공통점, 승선경험이 있어 외국을 둘러보았다는 것이 재미있다. 같은 외국의 항구라도 언어소통이 불완전한 상태에서 그도 각각 다른 시기에 밟아 보았기에 그런지 서로가 보고 느낀 점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그러나 좁은 한 국토의 일부분이고 단편적인 조각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그 나라의 국력을 가늠한다던가, 생활수준을 짐작하는 데는 거의 틀림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견문이 넓어진다고들 하는 모양이다. 무엇보다도 일치하는 것은 ‘술과 여자’ 이야기다. 가장 가까운 필요욕을 해결하기 위한 사고의 소산이다. 흘려 내버리는 잡담 속에서도 玉을 주울 수가 있다. 계속 읽는 신동아 이외는 다른 책을 멀리하고 있다 다시 서서히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면서도 선뜻 달려들질 못하겠다. 자신을 갖지 못한 때문인 것 같다. 일단 시작을 하면 그런대로 지탱해 나갈 것 같기는 한데 -. 수일내 결단을 내야겠다.
새로온 3/Q(조타수) 양 씨가 귀가 몹시 어두운 모양이다. 내 자신도 그렇지만 나보다 훨씬 심하다. 내 평소의 음성이 큰 원인이 내 스스로의 청력이 약해서 그렇다고 보는데. 나보다 더하니 그도 큰일이다. 일을 시키자니 여간 큰소리가 아니면 안 되고, 당직 중 심심찮이 얘기라고 나누자니 10여분만 해도 배가 푹 꺼진다. 조타실에서 하는 얘기가 선수에까지 들린단다. 어쩌자고 이런 사람이 이런 곳에 취업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이런 생각을 갖는 내 자신도 정상은 아니지만 좀 심하다. 조타수로서 본래의 임무인 ORDER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면 처음부터 위험한 일이다. 2-3일 서툰 것을 바로잡아 주다보니 목이 따갑다. 보낸 사람들이 모두 엉터리다. 이러고 서도 선원의 자질향상이니 국위선양이니 어쩌니 허울좋게 ‘소양교육’이랍시고 행해지고, 신체검사는 또 별도로 기천원씩을 받고 -.그게 뭔가? 형식을 갖추기 위해서인가? 알멩이가 빠진 껍질, 여기도 한국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이 뻗히고 있다.
그는 나이도 왠만큼 든 사람이다. 부산에서 자그만 어선 사업을 하다 털어 먹고, 여기 저기 적당히 돈으로 매꾸고, 도망치다 싶이 나온 사람이다. 좀 모자라는 듯 하기는 해도 인성은 좋은 편이다.
정주가 왠지 몹시 보고 싶다. 아직 끝 아빠로서 첫 인사를 못해서 그런지 정화보담 정(情)의 비중이 약간은 덜한 것 같기도 하고. 그놈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는 속에 진정한 사랑과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다. 자꾸만 정화의 어릴 때 모습이 떠오른다. 정주도 그렇게 자랄텐가? 묵호에서 정화를 처음 대했을 때 선뜻 아빠 손에 오기를 꺼려했던 일이 비록 순간적이긴 했어도 마음에 부딪치는 커다란 진통이 오래토록 남았었다. 정주도 그럴테지. 사실 정주는 머슴애 이길 바라지 않았다. 예전 어른들이 하시던 얘기를 들은 데로라면 정화가 아들이어야 했고 꼭 그러리라 믿었다. 그걸 보면 예전 어른들의 얘기도 신빙성이 일단 제동을 걸어야 했는데 -. 어쩐지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정주는 분명히 딸일거라는 예감이 있었다. 스스로 얘기하면 서운해 할 것 같아 참긴했지만 -. 그래서 그런지 정주가 머슴애가 아니어서 서운하거나 걱정되이 여겨보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분명히 정화보다 정주가 클 것이다. 체격이. 그리고 성격도 날카롭지 않고 무던할 것 같다. 아마 덕이 있는 그런 얘가 될게다. 우선 정화보다 더 크다는 내 생각은 적중했다. 그러기에 더욱 산고(産苦)를 염려해 왔었다. 아무턴 정화마냥 잔병없이 무럭무럭 자라주기만 바란다. 아내의 손길이 분명히 그렇게 탈없이 잘 자라게 할거다. 당신이 꼭 하나 더 갖고 싶다고 했다. 그것도 아들을 -. 가져 보리다. 나도 다음이 아들이면 둘을 가져야 겠고, 딸이면 하나만 더 해야겠다. 아내보다 욕심이 많다고 하겠지. 남자는 혼자면 너무 약해지기 쉽다. 도 어른스러워지기 힘들 것 같다. 외동아들의 보편적인 결함이나 그 과정, 결과를 내가 자랄 때 겪은 것을 봐서도 결코 좋은 현상을 보지 못했다. 물론 지금이나 앞으로의 사회적 제반 여건이 그때와도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많지만 성장과정에 있어서 형성되는 인성의 유형은 아직은 큰 차이가 없어 뵌다. 낳아지기만 해라. 내 뼈가 부러져도 남 못지않게 가르치고 먹이고 입혀 나갈테니까.
정화만 보고 싶다 한다고 시샘을 한 당신이 생각난다. 내가 정화 정주를 위한 사랑과 당신을 향한 사랑에는 그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한쪽은 내가 가진 모든 정을 주어야만 할 뿐이지만 한쪽은 주는 만큼 함께 가질 수 있고 또 받을 수가 있다. 아니 꼭 받아야만 되는 것이다. 사랑의 본질은 받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라고들 하지만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 같다. 그것에 대한 뚜렷하고 분명한 하나의 이론을 전개해나가지 못하는 내 스스로의 무능이 안타깝다. 여하튼 내가 베풀 수 있는 만큼 받을 수 있는 애정이 곧 당신과 나 사이의 사랑일 것만 같다. 복합성이나 현실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언젠가 홀어미를 뫼신 아들이 장갈가서 아내와 애들이 생기자 한정된 자신의 정을 골고루 나누다 보니 그 분량이 너무 적어져 간다는 탄식의 소릴 했다는 것을 새집 할매한테 들었을 때 그럴 것 같은 생각을 가졌었다. 헌데 내 경우라면 그 정의 분량이 적어 졌다기 보다도 그 정을 나누어 줄 기회가 줄었다고 보겠다. 내가 줄 수 있는 정의 분량이 부족함을 느낄 땐 그 원천적인 것을 곧 아내에게로부터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만큼 바삐 움직이고 오히려 기회를 늘여간다면 조금도 그 양적 부족함이나 질적 농도의 변화를 막을 수 있을 것도 같다. 그것이 곧 나의 의무이고 책임일 것이다. 또 내 생의 과정 전부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저러나 내가 필요한 것은 당신이다. 당장 있어야 하고, 또 영영 함께 있어야 한다.
18일(일) Feb. 17:05시.
월남의 정치범 수용소가 있었다는 POULO CONDORE 군도(群島)를 항과하다. 수도 Saigon(사이공)에서 남쪽 약150마일의 거리에 있는 셈이다. 내일 모래 20일 오전 중으로 정박이 이루어지겠다. 의외로 속력이 좋다. 날씨가 좋은 탓이다.
20일(화) Feb.
10:00시경 Pilot Station에 Anchoring(묘박)하다. 전보다 배들이 훨씬 적다. 오후 2시40분 도선사가 승선. Bangkok 입항이 18:00시가 되다. 곧 하역이 시작된다. 아내의 편지가 있었다. 두툼한 무게가 한결 믿음직스럽다. 몇 장 안 되는 가운데 내 것이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자랑스러울 수도 있었다. 꼭 4일만에 왔다. 도착 즉시 배달된 것 같다. 정화가 제법 엄마를 귀찮게 하는가 보다. 성격이 제 엄마 마냥 깐깐하고 뽀족한 것 같더니. 아빠를 무척 보고 싶단다. ‘등외 아빠’의 자책이 가슴에 스민다. 무엇보다 산후 조리가 여의치 못하다니 걱정이다. 소복이라도 좀 하지 않고- .
‘북치고 장구치고 나팔까지 불면서도 잘 맞추어가는 숙련된 약장수’를 연상하리만큼 빽빽하게 하루하루를 맞고 보낸단다. 어쩌면 그것이 좋은 현상일런지도 모른다. 한 가지라도 늘이고 이루어 가는데 보람을 찾고 그리움을 달랠 수 있으리라. 집 관계, 범일동 건, 전화관계, 전근관계에다 경산 집과 친척들을 맞으랴, 그러다 보니 가계부는 울고 -. 할 수 없지, 용케 견디어 내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여겨야지. 좀 더 건강한 몸을 찾아야 할텐데-. 무리겠다. 다음 일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다. Indonesia에서도 찾을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
21st.(수) Feb. 1973
밤새 계속 작업. 새벽 6시에 끝내다. 오후에 Menam강 하류의 Paknam으로 Shifting(이전)하다. 강 한가운데 닻을 내렸다. 내일 부터 여기서 Cement 적하가 시작된단다.
22ND. FEB.(목)
통선으로 내왕을 한다. 3발 자전거가 이 시내의 명물이다. 그놈과 우체국과의 얘기는 좋은 교훈이렸다. 주방장와 함께 시장엘 가다. NO. 4와 5 그리고 대구 처가에 편지를 띄우다. 잘 갈는지. 상철이의 편지도 받았다. 여러 가지 좋은 얘기들이 고맙다. 다시 대연(大淵)으로 Come Back했다니 다행이다. 일본 출항 전 형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을걸- . 또 하나의 기회를 놓친 듯 해 못내 서운한 감을 버리지 못한다. Hanna라는 외팔이 아가씨를 알다. 3/Q와 DECK BOY의 심야 추태가 얼굴을 붉게 한다.
23일:
신동아에 ‘넌 픽션’ 투고하다. 기대는 안 갖지만, 계속 해볼 작정이다.
24일(토):
강변 방갈로에서 맥주한잔 마시다. Mrs. Hanna의 정체를 알다. ‘병신육갑’한다더니 -. 고등창녀라고 할까. 잠시나마 엉뚱한 생각을 갖었던 게 불쾌하다.
25일:
방콕의 야경을 구경하러 갔으나 헛탕. 다리만 아프다. 밤에 이사하는 꿈을 꾸었다. 혹시 집을 결정짓고 샀는가? 몹시 궁금타.
26일(월):
제6항차를 마치다. 반바지에 스립퍼 차림으로 방콕까지 갔다. 후회가 된다. 그 모습은 나 혼자 뿐이었으니까-. 극장구경, 국왕과 애국가 연주가 볼만하다. 장엄한 분위기 속에서 국왕의 사진이 뜨는 가운데 애국가가 연주될 때는 누구도 꼼짝할 수 없게 된 것도 모르고 자리를 찾는다고 허둥댔으니-. 결국 경비원에게 망신을 당하다. 교통질서와 교통순경이 우리와는 너무 대조적이다.
MAR. 1.(목) 1973
새벽 5시 Paknam을 떠나 인도네시아로 향하다. 정박기간이 너무 길었다. 한곳에 3-4일이면 가정 적합하다. 항해는 10-15일이 좋겠다. 사설무역(밀수) 관계상 선원들간의 얘기가 어쩌면 측은하기도 하다. 그 노력, 그 비굴함, 그 수모를 참아야 한다는 것은 곧 생활전쟁의 한 국면인지도 모른다. 내 것 아껴 쓰고 욕심을 억누른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가벼운 일인가. 새삼 느낀다.
밤낮의 실내기온 차이에서 오는 원인인지 아침에 기상하면 영 몸의 컨디션이 이상하다.
3월 4일(일)
오후3시. 다시 적도를 통과하면서 Neptune Level(적도제)을 올리다. 간단한 파티도 곁들인다. 6일 새벽 2시반, Jakarta(쟈카르타) 외항에 닻을 내리다. 불이 꺼진 여책(漁柵) 관계상 고역을 치렀다. 다음부터는 입항 코스를 달리 잡아야겠다. 오후 3시경 부두에 계류. 양하를 시작하다. 역시 도난사고가 생긴다. 스스로들 단속하는 길뿐이다.
8일.(목)
결혼 4주년이 되는 날이다. 갑판장과 선원들의 권유로 기어이 땅을 밟았다. 고쟈의 利明酒家에서 맥주 한 잔 나누고 액자 하나 사서 귀선하다. ENES란 28세의 바짝 마른 과부(?)와 얘기를 즐기다. 제법 일본어가 통한다.
아내도 무척 오늘을 서글프게 보내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4년 동안 한 번도 이날을 함께 보내지 못했다. 고의는 아니더라도 내 자신이 함께 해 보고 싶은 강열한 욕망을 가진다. 아무런 일을 하지 않아도 그냥 함께만 있기라도 했으면 좋겠다. 더욱 ‘옹해야 잘도 논다’라는 장편 소설이 더욱 그러한 욕심을 부채질한다.
4년!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 완전한 뿌리가 박히진 않았지만 가지를 뻗고 잎은 자란다. 더욱 힘차게 뛰고 달려야 한다. 정화가 벌써 집을 보고 제 엄마한테 전화를 건다니 대견스럽다. 정화가 앞으로 무척 큰일을 할 것 같다. 어쩌면 아들이상의 역할을 할런지도 모른다. 왠지 기대를 갖게 한다. 그 총명함 때문은 아닌 것 같다. 맏이라는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63년 12월 15일 그가 내 것이 되던 날의 생생한 기억으로부터 시작된 그와 나의 사랑과 번민과, 그러면서도 자꾸만 밀착되어질 수밖에 없었던 그간의 세월! 그로부터 확고한 하나의 자신을 얻었을 때 나의 탈출, 그리고 결합을 위한 피차간의 어려웠던 점. 백난을 무릅쓰고 초라하게 시작됐던 바로 4년전의 오늘! 죽전과 지천의 생활, 내 자신의 불운. 그가 부산으로 옮길 수 있었다는 것은 당시 무엇보다도 다행이었고 내겐 희망찬 즐거움을 주었었다. 정화의 탄생과 그의 직장의 사고, 그리고 용당으로 가기까지의 심적 고충. 70년 10월 내가 출항함과 동시에 함께 있지 못하는 서글픔을 안은 체 정착을 못한 오늘까지 무던히도 참았고, 애썼고, 힘써왔다. 빈손에서 다만 젊음만을 믿고 일어서긴 했지만 주위의 염려와 보살핌에 보답할 수 있고 또 도움을 받기보다 도움을 줄 수 있는 날이 된 것도 모두 그러한 우리들의 노력의 결정이라 볼 수 있다. 이것은 앞으로 더욱 그 질과 양을 더해 가면서 이어지리라 믿는다. 그가 말했듯이 ‘두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새로운 용기와 희망과 보람을 충족시켜 줄 것이다.
9일(금) Mar. 73
부식 구입 차 선식집 주인과 시장을 둘러보았다. 콩나물, 두부 등 대부분이 다 있다. 선도가 얼마나 좋은지는 모르나 그리 비싼 편도 아니다. 선식주인의 호의로 NO.7과 경산으로 편지 띄우다.
선장과 싸롱보이 사이의 일이 직접적으로 터졌다. 선장실의 돈이 두 번이나 없어졌다고 했다. 그 원인은 선원들 가운데서 아마 싸롱보이를 지목한 모양이다. 그 원인과 결과야 어쨌던 그 방법상에 있어서 좀 더 피차간에 신중을 기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Capt.가 다소 경솔했다고 생각된다. 전원이 보는 자리에서 -. 어디가나 인간관계의 원만함이 절실히 느껴진다. 불신이 다시 불신을 낳고 보복은 다음의 보복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동기가 된다. 지도자로서의 배짱과 포옹력과 표면적이지만 냉혹하리만큼 침착한 태도, 그리고 설득력, 위엄 그것이 쉽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권위라는 것은 스스로 세울 때 많은 반작용을 일으킨다.
ENES와의 극장 약속을 2시간 어겼더니 화가난 모양이다. 그가 잘 생겼거나 다른 매력이 있어서가 아니다. 누굴 닮았다. 분명히 닮았다. 그래서 범하고 싶은 생각이 났다. 너무 야위었다. 나와 그의 생각은 동상이몽이 분명하지만 -. 결코 유쾌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크게 후회되지도 않는다. 다만 그 닮은 그 상(像)을 느낀 것 뿐이다.
11일(일) Mar.
연일 오후에는 비가 온다. 시멘트가 죽이 되는데도 강행군이다. 저네들 거니까 관계할 바는 아니라 좋았다. 역시 많은 오점을 남긴 체 아침 일찍 내항을 벗어나 외항에 다시 닻을 내렸다. Gaspar 해엽을 명일 아침에 통과하기 위해서 저녁에 출항하기로 한 것이다.
13일(화) Mar. 73
01시경 Padang 강 어구에 닻을 내린다. 그 전 항차의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5번 닻을 올렸다 내렸다 하다. 그저께 전원 집합한 자리에서 발표된 선장의 주의사항에도 많은 반작용이 보인다. 선내 전체가 술렁인다. 5-6명이 교체될 것이다. 이미 일은 서서히 시작되는 가 보다. 언행에 주의해야 할 것 같다. 좋은 참고가 되기도 하지만-. 오후부터 적재가 시작되다. 이번에는 작업조가 다른 회사인 모양인데 애들이 무척 젊고 선량하다. 일도 잘하고 담배 하나도 스스로 권하고 싶은 애들이다. 4일 마칠 예정이란다. 다행이다. 어서 어서 부지런히 뛰는 게 상책이다. 한곳에 오래 머무려면 사고가 난다. 돈 쓸 일도 생기고 엉뚱한 생각에 소행까지 생겨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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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이구 이제 그만 하소 지난일 들먹여봐야 가부시기 망신이오.
잚은날 그 멀리서 자기집 생각안히고 제세끼 안 보고싶은놈 아무도 없소/
그것외에 생각나는게 뭐 있겠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