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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th. Apr(목)
일등항해사와 2조수를 다시 병원에 가다. 싱글스러운 의사녀석이 반겨준다. 다른 데는 괜찮은데 구토가 심해서 견딜 수 없단다. 주사를 맞고 약을 받다. 더 이상 기대를 바랄 수도 없고 이젠 자신이 자신을 이겨나가는 수뿐이다. 주사를 맞은 자리가 어쩌면 곪을 듯 하면서 아프단다. 그 놈의 의사 솜씨를 보면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사기보다 더 긴 대침같이 굵은 주사바늘을 등 뒤에 감추고 있다가 마치 초여름 채전 밭에 삽 찔러 넣듯이 우악스럽게 찔러데더니-. 가뜩이나 주눅이 들어 겁을 먹고 있는 사람들한테-.
오후에 느닷없이 동방호가 본선 좌현에 계류하러 왔다. 사전 연락도 없이-. 우리 배를 경유해서 양하 한단다. 미칠 일이다. 저네들 마음대로다. 무엇이거나 본선에 요구하면 다 되는 걸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에라 모르겠다. 본선에 피해가 없는 한 저들 하는 데로 내버려두자.
낮에 허 선장과 함께 가까운 Hotel 로비 시원한 곳에서 쥬스 한잔씩 하고 얘기를 나누다. 사회를 보는 눈과 생각하는 방향이 내 자신과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더욱이 그가 착실한 종교인으로서는 이율배반적인 면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아심도 생긴다. 내 노력의 대가를 내가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대가가 독자성을 띄지 못할 때는 어느 정도의 한계성마저 그어질 수가 없고 그리되면 주위사람들로부터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 배와 본선의 본질적인 차이점을 얘기하려다 그만 두었지만 충고는 고맙다. 저녁 후 이곳에서 약 50Km되는 웨켈리라는 곳에 한국인 몇 사람이 유리공장 기사로서 일하고 있다는 대리점 Mr.우쯔구의 말에 Shipper측 차편으로 가 볼까하다가 너무 늦어 그만두고 시내를 둘러보았다. 검은 아가씨나마 옆에 앉히고 맥주한잔 마셔보자고 -.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정전이다. 흰 눈자위만 허옇게 보일뿐 깜깜하다. 호얏불, 촛불 속에 푹푹 찐다. 안내해준 그놈, 아가씨가 예쁘고 좋다고 잠시 볼 일(?)도 보란다. 과연 일이 될 수 있을까? 의심부터 간다. 살결이야 검은 만큼 거칠지는 않다고 하더래도 그 냄새에서 생김새까지가 우선 정나미 떨어진다. 아마 모르긴 해도 저 냄새가 구수해져 오고 저 검은색이 다소나마 엷어져 희끄므레 해져 보이면 뭣이 작동할라나.
정 기관장 말마따나 여기 있다 Las가서 백인아가씨를 보면 마치 꽃보듯하다는 것이 공감이 간다. 아직은 검을 숲을 헤재치고 나갈 만큼 정신적인 여유도 자신도 욕망도 없다. 동남아를 다닐 때 가져지던 한 가닥 호기심마져도 아직은 생기지 않는다.
15. Apr(금)
매일 달력을 짚어보지 않으면 날짜마져 잊어버릴 정도다. 벌써 4월의 허리를 넘는다. 접안하고부터는 차분히 책상을 마주하지 못했다. 우선 방이 너무 덥다. 11부터 오후4시까지는 진짜 너무 덥다. 방안이 35도까지 오른다. 더욱이 내방은 천장이 바로 직사광선을 받는 Top bridge(최상갑판)인데다 앞으로 창문이 없다. 거기다 찾아오는 사람은 왜 똑 그리 많은고. 심지어 장사치까지 찾아온다. 식물검역소 직원이라고 신분증을 제시하고는 채소, 쌀 창고까지 뒤져보고는 어디서 쌌고, 우리에겐 금싸라기 같은 젓갈을 보고 수케가 암케 꽁지에 대고 코를 벌름거리듯 냄새를 맡아보더니 왜 이리 썩은 고기를 버리지 않는냐고 빨리 버리라고 닥달이다. 아이구 골치야! 우리가 먹는 거라고 하면 분명히 이걸 다 먹느냐고 야만인(?) 취급할게고 -. 하기야 젓갈이 생선 썩은 것이 맞기는 맞지. 그러나 그게 없으면 우리 모두의 입맛은 죽는다. 덥고 입 맛없을 때 짭잘한 고놈이 살려주지 않는가?
C/O와 OLB-2가 약간 차도가 있어 뵌다. 역시 조금씩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까 원기를 되찾는가 보다. 정말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기동을 못한다. 양쪽 볼기짝 주사 맞은 곳들이 아파 마치 원숭이 걸음 걷듯 한다. 제발 그 자리가 곪지는 말아야 할텐데 -. 마라리아 원산지에서 진짜배기 맛을 봤으니 귀국해서 자랑할만하다고 했더니 모두를 웃는다만 역시 면역은 분명히 강해 졌으리라. 한결 마음은 놓인다. 차츰 나아져야지. 아픈 당사자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그 주위마저 애들을 많이 썼다.
Charterer(용선자)측인 Ashok Uttam이 왔다. 차항이 어찌되는냐는 물음에 Lome에서 적하한다는 것 이외는 아무 것도 모른다. 우리 배는 너희들이 용선한 선박인데 왜 Sadia에서 용선한 동방호를 먼저 하역함으로 본선에 지장을 주느냐고 따지니 “No Problem"이란다. 배라는 것은 ‘ㅂ’자도 모르는지 아니면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도대체 그 속을 알 길이 없다. 대리점 Manager인 Mr. Fadaka는 Las일거라는 얘기니 그것도 암수 가마귀를 구별못하겠고 -.
내일쯤은 집에 편지를 띄워야겠다. 부근에 우체국이 있다니-. 무척이나 걱정하고 편지를 기다릴텐데. 미안하다. 정영 마음으로부터 송구스러움을 느낀다. 내게온지 8년! 너무 애를 태우게 했고 벅찬 일들을 맡겼다. 그 말마따나 내가 그렇게 변하도록 만들었다. 내 탓이다. 이 좋은 시절을 혼자 두고 -. 처음의 꿈은 그게 아니였는데 -. 정말 아니였는데. 계약을 하고 나온 세월이 너무 아깝게만 여겨진다. 과연 이게 正道일까? 또 다른 길은 없을까? 자꾸만 회의를 느낀다.
Apr. 16(토) 1977
정말 오랜만에 집에 편지를 띄우다. 80kobo 인데 우표가 딱 맞아 떨어지지 않으니 18kob짜리 5장 90kobo 내란다. 내야지 별수 있나. 우표 쥔 놈이 오야 아닌가. 그래도 동남아의 인도네시아 보담 낫다. 그기는 우표값 보다 담배값이 더 들었는데-. 제대로 잘 가기만 해라. 와타나베 통신장과 Kingsway Store에 가다. 이 부근에서 유일하게 백인들이 이용하는 Market랬다. 별 것은 없다. 쥬스만 몇 개 쌌는데 그나마 어린애용이다. 그러나 천연당이라 그런지 맛은 괜찮다.
오후 2시경 동방호가 작업을 마치고 출항하다. 20여일 후 다시 올 예정이란다. 우리가 Lome-Wari를 한 항차 더한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동한 함께 있으면 위안이 됐고 피차 도움도 되었기에 서운하기도 하다. 安航을 기원한다.
영국인 2명이 와서 냉동선 1000ton class를 용선하고 싶다면서 Owner의 내역을 얻어갔다. 영미의 발음이 분명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저녁엔 선주, 대아 등 모든 보고서류를 Typing하다. 접안 후 다소 생활의 Rhythm이 흐트러졌다. 너무 덥고, 찾는 사람이 많고 C/O의 발병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내 자신이 스스로 정신적 여유를 30분 정도라도 갖도록 해야 하는데-. C/O가 차츰 회복되는 데로 될 수 있을 거다.
집을 하나 갖고 싶다. 크고 좋은 집이 아니고 서양인들의 생활 방식 같이 서로 독립적인 방 구조를 가진 것으로 -. 애들은 애들데로 우리는 우리대로- . 그 속에서 마음대로 하며 살 수 있는 여건을 갖춘 집이다. 근간 벗고 살아보니 더욱 그러하다. 얼마나 편리할까? 더우면 벗고 목욕하고 그대로 잘 수 있고-. 그것이 또한 애들이다. 남들이 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타의에 의해서 자의가 침해당하고 마는 것은 그만큼 내 자신을 빼앗기는 결과라고도 볼 수 있다. 사람이 자신의 욕망을 완전히 채우고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거다. 인간욕망이라는 것 자체가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욕망은 충족하며 살아야 되지 않을까? 결국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하나하나 욕망의 충족을 위한 움직임이다. 심지어 새끼 손가락으로 콧구멍을 수시는 동작마져도 -. 그러나 이것이 시공적인 차이를 두고 이뤄질 수 있는 성질일 수도 있다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지금 내 처지는 누구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것일까? 내 자신, 아내, 아니면 애들? 그도 아니면 우리 모두의 것을 위해서? 언제 어느 때를 위한 것인가? 결국 인생은 하나의 흐름이다. 큰 강이 작은 시냇물의 흐름에서 비롯되어 이룩되듯이 인간의 삶도 그러하다. 그 흐름을 역류할 수도, 또 그 흐름 속에서 유별스레 빨리 흘러갈 수도 없다. 넓은 강의 폭을 두고 볼 때 한 가운데와 가장 변두리의 사정은 다르다. 변두리는 뭍이나 기타 장애물에 걸리는 수도 있고 또 굽이치는 곳에서 그 흐름의 속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반면에 가운데는 그저 같은 속도로 변화 없이 담담히 흐를 뿐이다. 그 가운데서 얼마만큼의 자신의 위치를 찾아 가느냐가 문제이겠지. 그 위치까지 갈 수 있고 또 가더래도 다른 곳으로 흘러나오지 않도록 스스로 지키는 것이 곧 개개인의 생활이 될 것이다. 그 과정이 별도로 정해진 것이 아니다. 과정도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진다. 내 자신이 여기있건 집에 있건 時流는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제에 이은 오늘과 다시 이어질 내일도 내겐 분명히 하나의 과정이며 생의 흐름이다. 결코 짧은 시간이나마 무심코 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이곳은 한밤의 정적이 고요히 깔리는 시간이지만 그곳엔 하루의 삶이 시작되는 아침이다. 비록 8시간의 시차를 두고 있지만 이곳과 그곳은 분명히 연결되어 있고 연결된 체로 돌아가고 흘러간다.
17. Apr. (일)
위켈리에 있는 유리공장에 있다는 한국인 3명이 놀러왔다. 우선 반가웠다. 낯선 이국땅에서-. 물론 자신들을 위해서 나오긴 했지만 -. 10명이 공장장을 모시고 있단다. 여기서도 한국인의 기술이 인정을 받는단다. 대우고 좋고 시설도 괜찮으나 음식이 맞질 않아 고생이란다. 거기서 영화보러 45km떨어진 이곳까지 온다니 그곳 사정도 알만하다. 저녁때라 밥과 김치를 팟죽 같은 땀을 흘리며 두 그릇씩 먹고 간다. 쌀도 말은 California산이지 맛이 없단다. 젖갈 만들어 둔 것이 익었으면 좀 주려했드니 아직 덜 익었단다. 기름이 풍부하게 나는 이 나라에 휘발유가 품귀라서 배급제라니 기가 찰일이다. ‘밥 팔아 똥 사먹는’ 식이다. 마침 그네들의 귀사시간이 급해 갔지만 후일 다시 서로 찾기로 하다.
C/O와 OLB-2가 거의 회복단계에 접어들었는가 싶더니 갑자기 3/E(3등기관사)가 춥고 열이 난단다. 급히 주사를 했지만 또 얼마나 걸리려는가. 멋대로 낮잠들을 자고 말 안 듣는 친구들 한 번씩 당해봐야 알지. 적응이라는 것을 그리 쉽게 보면 되는가. 1년을 이곳에서 견디고 습관이 된 사람들이 말을 듣고 주의하지 않고 낮잠자다 걸린다. 내일 안 되면 일찌감치 병원에서 주사 맞춰야 겠다만 이곳 병원 맛, 주사맛 보면 아찔한 텐데 -. 내 자신 저녁때면 미열이 조금씩 있고 왠지 그저께부터 찬물을 많이 먹는 셈이다. 아마 잠이 부족한 것 같다. 밤에 쉬이 잠이 오지 않는다. 아내 생각이 난다. 포근하고 그러면서도 마음속 같은 충만감을 채워주던 그 품속이 그리워온다. 그렇다고 낮잠을 무턱대고 잘 수도 없고 -. 잠이 부족한 때문이다. 체중이 2.5키로나 줄었다.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가? 아니면 근 20일간 계속 줄넘기와 가벼운 운동을 한 때문인가? 아무튼 규칙적인 생활에 정한 식사, 정한 운동을 계속하며 최선을 다해 나가야 한다.
근간 C/E를 비롯한 몇몇이 외출이 잦고 늦다. 제 돈들여서 하는 것은 상관없지만 자중을 해야 할텐데 -. 꼬리가 길면 밟히는 식으로 무슨 사고라도 나면 결국 골치는 내가 썩혀야 한다. 믿음직한 바윗돌처럼 듬직한 데가 없다.
내 스스로가 계속 배에서만 있을게 아니라 좀 시내도 알고 이곳 사정도 알겸 나 다니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으면서도 도저히 기분이 나지 않는다. 낮엔 덥기 짝이 없고 저녁엔 그런대로 내 사간을 가지려니 그렇다. 아직은 좀 더 책을 벗하고 어느 정도 말이 통할 때까지는 부지런히 해야 한다. 그게 무엇보다 급선무다. Lagos의 Kishnani란 용선자를 만났을 때 적어도 우리의 입장과 사정을 밝히고 요구할 수 있도록 돼야 한다. 마음같이 쉬이 되지 않을 때 고갤쳐드는 실망감이 일찍 뒤따르지 않을까? 또한 권태로움도 하나의 적이 된다. 그저 작심하고 행할 따름이다. 되고 안 되고는 그 후의 결과일테니까.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일광욕을 한다. 옥상에서 벗고 앞뒤로 뒤집어가면서 굽기로 하다. 살결이 다소 구리빛을 닮아가고 왼쪽 허벅지부터 한 겹 벗기 시작한다. 찬물이 땡기는 것도 땀을 많이 흘리는 탓이리라. 그냥 뚝뚝 떨어진다. 땀을 흘린 후 냉장고에서 잘 익은 맥주 한 잔의 맛이 아주 멋이 있다. 약간은 씁슬하면서도 목구멍을 꽉 메우며 넘어갈 때의 그 시원함이 일품이다. 이걸 그냥 붕어 물먹듯이 하고 몸이 파적이 되도록 마셔대니 확실히 그것은 한국적인 비극의 하나다. 이곳 검둥이들도 맥주는 술이 아니고 물이란다. 음료수로 보겠지. 요 며칠은 하루 2캔씩을 먹는다. 갈증이 심할 때는 즉효도, 특효도 있으니까.
조용히 깊어가는 밤이다. 조금 전까지 뱃전에 와서 소리치며 놀던 원주민 애들의 카누도 가벼렸나 보다. 밤11시, 부산은 아침 7시. 막 새아침의 시작이 이루어지고 있으리라. 내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 헤메일 시간이다. 내게는 -.
18th. Apr(월)
오늘부터 다소 마음이 안정돼 간다. 이제 어느 정도 찾아오는 놈들도 어지간이 다녀간 모양이고 C/O와 OLB-2도 회복을 했다. 완전히 원상복구를 하려면 아직도 아득하겠지만. 많이들 축났다. 3/E는 시작과 동시에 주사를 놨더니 오늘 다소 진전이 있다. 처음이 중요하다는 말이 맞나보다. 이상 더하지도 말고 새로운 환자도 없어야 할텐데 -. 예정한대로 책도 든다. 별일 없으면 시내 나갈 일도 없다. 선원들 보기엔 다소 미안스러움도 있다. 특히 Deck part와 Saloon 보기가 그렇다. 저녁 9시부터 시작하는 영화구경이라도 갈까하다 그만두다. 내일쯤 가보자.
대리점에서 역시 다음 항차에 대한 연락이 없다. 청수도 거의 다돼 간다. 만약 Las라고 간다면 주부식도 여기서 준비해야 한다. 소모품 청구한 것. 서류복사 의뢰한 것도 아직 가져오지 않는다. 이러다 출항이 임박해지면 내 자신만 골탕을 먹을 뿐이다. 야간엔 Stevedore(인부)가 없어 1 gang(조)만 한다. 하기야 낮에도 일하는 놈들보다 옆에서 구경하고 입만 가지고 하는 놈이 더 많은데도 그렇단다. 아직 전체의 1/3도 못 풀었다.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 10일은 더 꼽아야 하지 않을까. 역시 내일의 예정을 모르고 지난다는 것은 불안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곧 현재의 무질서를 뜻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맞지 않아도 좋다, 아니 꼭 맞을 수도 없지만 스케쥴은 일단 나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신한국문학전집 한 권을 끝내고 두 권 째를 들었다. 단편 중편 모음이나 어쩐지 어렵다. 읽은 다음 무엇인가 남는 것이, 하다못해 무슨 뜻을 담고 있었는지는 알아야 할텐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많다. 확실히 내겐 독파력이 부족한 것이다. 많이 읽질 않은 탓이겠지만 그 동안 승선하면서 나름대로 읽은 것이 제법은 될텐데 매양 마찬가지다. 좀 더 감수성이 둔해지기 전에 책을 너무 읽지 않은 탓일 게다. 남들이 유명하다고 하는 세계명작들은 책조차 구경 못했으니 그럴 수밖에-. 늘 느끼는 일이지만 조금이라도 내게 글을 쓰는 능력이 있다면 좋은 소재들이 많이 있을 터인데-. 그저 많이 읽으면 알게 될라나. 小野田(오노다)의 ‘30년 전쟁..’도 절반을 읽었다. 음독이 불완전하지만 뜻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의 군인정신과 강인한 삶의 의욕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일본민족의 전형적인 한 단면을 느낄 수 있는 듯 도하다. 우리가 직접 겪어보지 못했던 과거의 전쟁이나 그 시절의 상황들을 조금은 이해할 것도 같다.
19. Apr.(화)
기어이 어제밤 도난 사고가 생겼다. Poop Deck(후부갑판)의 mooring rope(계선색)하나를 걷어갔다. 기가막힌다. 69년도 한일호에서 당한 기억이 새롭다. 충무동에서 정박 중 어처구니 없이 당했던 것이 -. 누굴 나무랄 수 있나. 본선의 실책이다. 계류색을 걷어가게 두었다는 것은 바로 치부를 드러내는 것과 같다. 집으로 치면 기둥을 빼가는 것과 같다. 만약 그래서 배가 밀리거나 떠내려 갈 땐 어쩌자는 것인가. 이놈의 곳도 알만하다. 생각보다 지독한 곳이다.
대리점에 갔다. 다음 항차는 역시 감감. Mr. Fadaka가 왔지만 경찰에 신고하다는 소리뿐이다. 앞으로가 큰일이다. Tally(양하하는 화물의 개수를 확인하는 일)만 본선에서 안 해도 좀 낫겠는데-. 당직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 떠들어 봐야 잃은 놈이 오히려 바보취급을 당하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다. 일단은 출항할 때를 기다려보자. 내가 원하는 sign을 않으면 나도 않을 테니까.
벌써 우기에 접어드는가 오후부터 계속 비다. Mr. Mold의 말에 의하면 일주일에 3일은 비 땜에 작업을 못한단다. 그렇다면 5월에야 끝난단 소린가. 이제 겨우 3분의 1을 양하했다. 청수, 부식 가스 기타 출항을 위한 제반준비가 걱정이다. 차항이 결정되면 계획이 따르겠는데 -. 2-3일 더 기다려보고 하역사정을 감안해서 안 되면 여기서라도 준비를 시작해야겠다.
어떤 놈이 찾는다. 누구냐니까 이곳 Habour Master Office(항만청)에 있단다. 왜그러냐? 당신머리가 아주 까맣고 좋은데 무얼 쓰느냐? 희안한 놈이다. 보통비누를 쓰지. 보여줄 수 있나? Lome에서 산 Lux비누 쓰든 것을 보였다. 이게 무슨 비누냐고 물어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만져보고 손으로 문질러 보고 별 지랄을 다하곤 고개를 갸웃한다. 네 머리한번 만져볼까? 쑥 내민다.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어진다. 머리카락을 당겨본다. 꽤나 길다. 그런데 그게 어찌 그리 말랐는가. 오뉴월 땡볕에 국수가락 말리듯이 탱탱 말렸다. 이것을 뻗쳐 땋자면 얼마나 힘이 들고 정성이 들까 싶은 생각이 든다. 낮에 대리점 아가씨의 머리가 마치 성게처럼 묶어둔 것이 새삼 떠오른다. 만약 그 비누 때문에 머리가 그러니 한번 써보라고 했으면 하루 열두번도 더 감을성 싶다. 아무래도 비누 하나 얻으러 왔나싶어 하나 줄까 했더니 괜찮다며 고맙다고 인사하고 간다. 별놈 다 있다. 아니다. 아마도 그가 돌지 않았으면 내가 잠시 바보가 된 게 틀림없을 상 싶다.
검역 3명 실시, 나머지 4명은 다음에 하도록 하다. 검역 당시에 기일이 지나지 않으면 입항 중에는 Over해도 괜찮댔다. Mr. 우쭈구 그 큰 덩치에 아침부터 Mr. Fadaka한데 한 바가지 덮어쓰더니 종일 트리하다. 생긴 덩치값을 못했으니 그렇지. C/O보고 잘 구슬러 펴주라고 하다. C/O가 살살 움직인다. 다행이다. 축이야 많이 났지만 채워서 가야지. 무리하지는 말아야 한다. 종일 밥 굶은 시어미 상이고 기분이다. 이놈의 것을 어떻게 복수해주고 갈 것인가.
20. Apr.(수)
새벽에 몹시 꿈자리가 사나웠다. 내 자신이 몸에 상처를 입는 꿈이었다. 종일을 꿈쩍않고 방에만 있었다. 집에 무슨 일은 없는가? 몹시도 염려스럽다. 당신이 왠만큼 알아서 잘 처리하는 줄은 안다. 나보담 낫다는 것도 인정한다. 그러나 사고란 항상 엉뚱하게 터지기 마련이다. 작년 정현이의 화상은 의외로 컸다. 남은 자국도 자국이려니와 마음의 충격과 그만큼이나마 치료를 해낸 아내의 노고와 정성을 정말 잠자코 듣기가 어려울 만큼 처절했었다. 자식이라는 그 인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지성이라는 것을 느꼈다. 현이의 지금 상처 자체도 앞으로 어려운 고비들이 남았을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앞으로의 일이고, 또 현이가 아직은 어리니까 어떤 방법이 있을 것으로 믿자. 불행 중 다행이라고 자위하자. 내가 있어서 그랬다면 과연 그만큼 해낼 수 있었을까? 자신이 서지 않는다. 아내의 성화에 쫒겨 했으면 했을지 몰라도 내 스스로는 못했을 거다. 금년이라고 내 가족 중에 그러한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내가 있다고 해서 괜찮고 없다고 해서 생긴다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마음에 거리끼고 불안해 온다. 거리의 애들을 봐도, 책을 봐도 -.
그것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가지를 치고 펴져 나갈 때면 정말 지겹고 괴롭기까지 한다. 애들도 애들이지만 아내도 그렇다. 그나마 남들처럼 평안히 집에서 현모양처의 婦道(부도)를 닦게하지 못하고 각박한 사회의 한쪽에서 시달려야 하니까 더욱 그렇다. 육체적인 고달픔보다 정신적인 시달림인들 얼마나 많을까. 어떤 놈인가 의식적으로 대한다는 얘기에는 정말 속이 뒤집혀질 것만 같았다. 어느 놈이건 실지로 내 아내에게 허튼 수작을 해봐라. 내 전부와 바꿀 것이다. 당신도 결코 얘기하지 않을 부분이 있을 것인가. 그렇다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의 어려움이 분명 있을 것이다. 말은 안 해도 나도 이해는 한다. 원죄는 내게 있으니까. 지금이라도 그만두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사실상 애들은 커가고 집안 형편도 또한 그렇다. 점점 자라는 얘들을 미야에게 맡겨 둘 수는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왜 서로가 선뜻 단안을 내리고 실행치 못할까. 역시 내 자신의 뿌리가 너무 얕고 약한 탓일 것이다. ‘根固枝榮(근고지영)’이란 말이 있듯이 약한 뿌리에 무성한 가지와 잎이 달릴 수 없다. 내 아직 끗 이렇게 지구의 한쪽 귀퉁이까지 쫒겨와서 허둥대고 있으니 어찌 그인들 안심을 할 것인가. 진정 아내에게 미안하다. 별일 없어야 할텐데 -. 종일 방에서 소설책만 읽었다. 李炳注씨의 ‘알렉상드리아’ 역시 어렵다. 깊은 뜻은 알 수 없으나 그 풍부한 표현력에 감탄을 보낸다. 저녁 무렵엔 눈알이 침침하고 허리가 뻐근하다. 옥상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한참동안 휴식을 취했다. 오늘은 어제의 비 탓인가 실내의 온도계가 33도였지만 한낮의 더위를 제하고는 제법 선선했다. 극장에서는 옛날 천막 극장보다 못한 창고 같은 곳에서 홍콩의 무술영화가 한참 인기를 끌고 있다던데 그만 두었다. 새벽의 염려 때문이다. 아무래도 양하작업이 이 달을 예서 넘길 것 같다. 내일은 청수도 가스도 청구해야겠다. 어제에 이어 오늘 날씨같이 잔뜩흐린 기분이었다.
이곳 Nigeria에 주재한다는 일본인 2명이 왔다. 선미의 日章旗(일장기)와 船名(선명)을 보고 일본배이기에 왔단다. 같은 민족은 아니지만 동양인만 봐도 반갑다는 그들의 말소리에 공감과 아울러 생활을 짐작한다. 그만큼 이곳이 오지다. 그리고 멀리 떨어져 있다. 아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같은 색깔의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조금씩 쌓여 가는 지고 모른다.
앞의 Greece선 ‘MIMOZA'호의 늙은 선장이 페인트와 고기 두 상자를 바꾸잔다. 이등항해사를 시켜 메모를 보냈다. 그의 심정은 이해가 간다. 그만한 나이 같으면 세계의 숱한 항구를 견디고 겪어 왔지만 여기서는 안 되는 모양이다. 어쩌면 18세기 해적들이 판을 치던 그 시절의 뱃 생활을 그리워하는 지도 모른다.
「난 여자가 좋으니까 바다로 간다. 일시적인 단절을 위한거다. 상상속의 여자, 이담에 만나면 여자에게 어떻게 해 줄가 하는 구상, 위험속의 기대, 높이뛰기 위해서 助走(조주)란 것이 필요하지. 여체를 만끽하기 위한 조주로선 바다가 제일이야. 망망한 바다의 에네르기를 폐장 깊숙이 담아오는 거거던. 거침없이 내려쬐는 바다의 태양이 발산하는 에네르기를 함뻑 근육속에 흡수에 오거던. 바다를 거치지 않고 Sex하는 사나이들은 나는 불쌍하다고 생각해. 그건 생명의 앙양으로서가 아니라 생명의 파멸로서의 섹스니까 말이야. 그리고 선원들은 세계 각국의 항구마다 인종이 다른 애인, 빛깔이 다른 여체를 소유할 수 있거던. 나는 나의 Sex로서 세계의 여자를 구슬꿰메듯 꿰는 거야. 세계의 가지각색의 여체가 한 가닥의 줄에 꿰매인 구슬이 돼지’」 책속에 나온 프랑스 선원 말셀의 말이다. 과연 그럴런지도 모른다.
위험 속에서 구상하고 그리던 호화찬란한 무지개 같은 꿈. 그것이 어이없이 무너져 올 땐 그 속에서 또 다른 기대와 희망이 고개를 쳐들 때가 있다. 허지만 산더미처럼 큰 파도위에 날려가는 물거품처럼 그 꿈이 한아름 가득하도록 가슴 뿌듯이 안겨 질 수가 있을까?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그는 거기가 곧 종착역이 될거다. 그렇지 않는 한 그는 방황을 계속하고 또 다른 내일과 다음의 항구에 기대를 걸고 지금의 슬픈 항로를 따라갈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또한 바뀌었다. 벌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시대는 갔다. 이제는 꽃을 벌 곁에 옮겨 놓거나 아니면 꽃 자체가 움직이는 시대다. 옛날 기운차게 날아다니던 벌이 맥을 못 쓰게 됐다. 그야 말로 한 마리의 봉이 되고 말았다. 먼저 본 놈이 임자다. 오죽했으면 먹을 것을 제데로 먹지 못하고 이웃 배에 구차스레 동정을 구할까. 이 달을 넘길 경우 내 자신이 저 늙은 선장의 꼴이 될지도 모른다. 식용유 한 병에 8000원꼴이니 다른 것은 짐작이 간다. 여기서 부식을 구입할 경우 가져올 손실이 막대할 뿐이다.
21st. Apr.(목)
아침 후 Agent에 갔다. 일본 德丸(도쿠마루)에는 통신장에게 의뢰, 타선에 탁송키로하고 Mavacasa, Trans-Continental에는 대리점에 의뢰 직접 Telex했다.
문제는 Next Voy.(다음항차)이다. 긴급한 연락을 요청했다. Shipper측 Shipping Manager란 흑인이 자기차를 태워주면서 나갈 일 있으면 언제라도 얘기하란다. 고마운 얘기다만 Shipper라면 그 정도는 기본이 아닌가. 이 놈들아!
올 때는 시가지를 구경삼아 걸었다. 쨍쨍한 햇볕이 뜨겁다 못해 아프다. 땀이 쏘아진다. 헌 보리짚 모자를 푹 눌러쓴 체 부지런히 걷는데 싱거운 놈들이 보고 태권도 흉내를 낸다. 아마도 홍콩 영화탓이리라. 내가 중국인 같이 뵈고 중국인이면 누구나 태권도가 전문인줄 아는가 보다. 씩 웃고 만다. 몇 군데 상점을 둘러보았다. 엄청스레 비싸다. 전기제품은 더러 일본산이 있으나 거의 배도 넘는 가격이다. 우선 카셋트라도 하나 있었으면 해서다. Wari Club의 테니스장엔 눈같이 흰 옷을 걸친 백인 아가씨와 아이들이 테니스를 한다. 푸른 잔디위에 그나마 주위에 욱어진 짙은 녹음 속에서 마치 나비가 나는 느낌이다. 열대지방에서 무엇보다 탐나는 것은 푸르름이다. 싱싱한 잎새, 윤기나는 이름 모를 거목의 자태. 그 가운데도 생명을 마친 말라죽은 거목들의 나체가 더한층 이채를 띄운다. 집 주위에 낮게 담장을 이룬 푸른 대. 그 속에 가끔씩 피어 있는 붉은 꽃잎의 청초스럼도 인상이 깊다. 넓은 마당에 깔린 잡초를 잘 손질해 둔 것도 좋다. 그러나 수목이 우거지고 무성한 만큼 더 많은 종류의 벌레들이 살고 기어 다닌다. 환경의 탓도 있겠지만 돈 많은 백인들의 사는 집을 보면 언제다 탐이 난다. 저토록 아담한 그 뒤에는 검은 사람들의 땀방울이 서려 있을 것이다. 그 언제부터 시작된 백인우월 의식. 이 해안의 이름에도 그 역사의 한 단면이 남아있듯이 노예를 팔고 사갔던 그 바탕 위에 구축된 그 富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세계의 지도마다 남아있는 ‘노예해안’의 명칭을 볼 때 과연 이 검둥이들은 아무것도 생각키우는 것이 없을까?
저녁 후 이곳 날씨처럼 텁텁한 기분을 달래자고 C/E와 통신장을 데리고 걸어서 Wari Club까지 가다. 시원한 Air-con바람에 소름이 쫙 끼친다. 뒷뜰에 마련된 맑음 물의 풀장, 앞뜰 입구에 즐비한 고급 자가용 차들, 독일산 벤즈가 많다. Membership제라 그런지 검은 놈들은 적다. 들어올 수는 있으나 이용자는 없는 듯. 비싼 편도 아니다. 간이극장, 음식점, Bar, 테니스장. 어린이 놀이터, 풀장을 갖추고 회원이 아닌자는 입장료만 1 naila를 받는다. 입장시엔 주소와 이름을 기재해야만한다. 오늘 저녁은 제비뽑기 같은 도박이 있단다. 시원한 음료수 한잔으로 끝내고 극장을 가본다. 바깥의 둔탁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무더위와 함께 눌러 덮친다. 극장! 창고 같기도 하고, 객석에서 화면을 보면 화면이 있는 쪽은 그냥 훤히 틔여 있다. 같은 극장인데도 화면 바로 밑은 50코보, 중간은 1나이라. 맨뒷쪽 그러니까 이층의 아랫쪽 선풍기를 단 밑쪽은 1N 20k. 이층은 1.5나이라 이다.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 북적거리는 곳은 50 코보짜리고, 1 나이라쪽은 거의 비어있고 1.2 나이라 이상의 자리는 제법 점잖고 근엄한 편이며 그나마 3분의 2는 찼다. 시작 전의 선전영화는 한국에서와 같다. 비누 가루비누 옷감 등의 선전이 있고 본 영화는 그냥 시작한다. 뉴스도 애국가 한다고 서라 앉으라 말도 없어 좋다. 화면은 마치 시골천막 시절의 소낙비가 오는 바로 그것이었고. 주로 홍콩무술영화가 제격이다. 간혹 내용과는 관련이 없으면서도 크로즈업시키는 여체의 부분들! 그럴때마다 오랫동안 계속되는 함성과 휘파람. 마칠 때까지 3번 정도 영사가 끊어지는 것을 보면 영사기는 1대뿐임이 분명하다. 그럴 때마다 화면에 비춰지는 손전등의 불빛, 불투명한 토키, 그나마 잡담과 환성 속에 묻혀버린다. 일일 1회 상영뿐이다. 낮에는 자연조명(?)에 의해 상영불가. 극장자체가 그렇게 지어졌으니 도리가 없단다. 가끔은 한국홍콩합작영화가 오기도 하는데 토요일은 대만원. 여기서 마치면 11시. 다음부턴 각 Bar들이 붐비기 시작한단다. 새벽4시까지. 부근에 LIDO BAR가 가장 고급이란다. 개점이 밤10시란다. C/E의 눈치가 있었으나 눈이 피로하고 통신장 영감의 표정도 신통찮아 그냥 귀선하다. 하루가 또 어김없이 이렇게 갔다.
22nd. Apr.(금)
德丸에서 어제 보낸 Cable의 회신이 왔다. 5월 15-25일 사이에 Las의 Asalakan Dock에서 입거(入渠), 수검토록 Mavacasa에게 연락했단다. 결과는 오는 데로 연락한다고-. 그래도 답답한 건 선박의 임자이고 또 그만한 회신이라도 해주는 것도 Owner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5-6일은 더 걸리겠다.
Capt. Vasilis Deligiannis. 앞에 있는 Greece선 ‘MIMIZA'의 老선장이다. 금년 58세. 300여톤의 화물을 남겨두고 다시 Bennet Island로 Shifting 이적해주고 3-4일후 Togo로 출항예정이란다. 2일전 고기와 페인트롤 바꾸자고 하고난 뒤 연락이 없더니 다시 직접 찾아왔다. 페인트를 이야기 해보니 우리가 필요한 것이 없다. 그냥 2상자 주기로 했다. 대신 무전실용 증류수를 얻기로 하고. 그는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가보았다. 그의 넓은 사무실에는 허전하리만큼 비어있다. 벽쪽에 걸린 그림은 자작 ‘고향마을’이란다. 그리고 또 한쪽엔 켄버스에 화지를 올려두었다. 바닷가의 푸른 하늘을 등지고 얕은 언덕에 자리잡은 그의 고향. 푸른색 위주의 옆 동네는 마치 장난감 같은 붉은 벽돌집이 촘촘히 서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 세워둔 흰색의 화면과 대조를 이룬다. 油畵다. 8년 전에 시작하여 틈틈이 그린단다. 정신건강상 좋다고 -. 좋지. 공감이 간다. 내 자신도 자신을 잊기 위해 붓을 잡고 글씨를 쓰야하는데 -. 그러나 역시 서예보다는 그림이 보다 세계적인 폭넓은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다. 한국 울산에 3번 갔으며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에 쓰는 한자는 너무 어렵다고. 나도 한땐 교단에 선 경험이 있으며 그땐 애들과 그림그리기를 무척 좋아했고 잘했다고 했더니 반갑다며 지금부터라도 시작하란다. 그런 뜻에서 작은 붓 5 자루과 물감 5개(삼원색과 흑백) 그리고 자신이 손수 만든 작은 액자(그림 그리기 위해 만든 것이란다.)를 기념을 준다. 그려놓은 그림이 있으면 당신 Sign하나 넣어서 달랬더니 마침 없단다. 어떤 땐 100여점까지 모았다가 주기도하고 팔기도 했단다. 머리카락의 절반이상은 빠져 머리도 없는 그의 노안에 그간 겪은 수많은 풍상의 그늘과 또한 그 뒤에 숨은 예술적인 심미안이 엇갈려 보인다. 12,000톤에 선령 20년의 배. 선원은 모두 29명이나 인도, 그리스 시리아 등 4개국의 혼성이란다. 세계를 다녀봐도 이런 곳은 없었단다. 오죽했으면 고기 몇 상자를 얻거나 바꾸자고 했을까? 그 속에 숨겨진 꾸겨진 자존심이 얼마나 구차스러울 것인가 짐작이 간다. 내일 아침 7시 간다며 나의 젊음이 부럽다고. 다시 볼 기회를 기다린다는 것은 어렵지만 같은 Seamen으로서 어디가던 안전항해를 빈다고 했다.
그 역시 영어가 그리 능통하지는 안지만 이런 때 좀 더 불편없이 의사 소통이 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얘기들이 오갈 수 있을 것 같다. 2개월 후면 고향으로 돌아간다며 자작의 그림을 물끄럼이 바라보며 미소 짖는다. 나는 아직도 1년이 남았다고 하니 가족들이 어딧냐고 묻고 1년간 한 번도 가족들을 볼 수 없다는 우리들의 처지가 무척 마음에 걸린다는 표정이다. 충분히 이해가 가겠지, 며칠간 찌부듯한 기분이 노(老)선장을 만나고 얘기함으로 다소 누그러지기는 했으나 역시 쉬이 풀려나오지 않는 영어 때문에 영 미칠지경이다. 왜 이리 안 되나? 한 장을 보면 한 줄은 기억에 남아야 할 것 아닌가. 열 번보나 한 번 보나 머리속이 텅비는 것은 마찬가지니 짜증뿐이다. 다시 들고 싶지 않고 의욕이 안 난다. 그렇다고 영 포기해버릴 수는 없지 않는가. 여기 와서 느끼는 것은 역시 세계는 넓다는 것이다. 그 속의 한 점에 미치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또한 너무나 약하다는 것도 그렇다. 결과는 뒤에 두고 우선은 뛰어보자. 설사 내 자신의 건망증이 완전히 병적이라고 해도 별도리 없지 않는가.
Mr.우쯔구 그리고 Shipper측 주재원이 그의 차로 드라이브하잔다. 짧은 바지에 스립퍼 차림. 바람 쏘이던 그대로 갔다. 그놈들 저네들 볼일 다 본 뒤 길가의 3류 선술집으로 간다. 좋다 오히려 그런데가 좋다. 밤의 거리는 낮의 것과 또 다른 변모가 있다. 이래서 밤이 좋다고들 하는가. 밤이 갖는 이질성. 분명한 낮의 모든 것을 깡그리 빨아드려 불명하게 만들어 버리는 밤이 있어 그만큼 사람들의 행동이, 마음이 넓어지고 자유로워지는 지도 모른다. 낮에 보는 각색의 얼굴모양이나 빛깔이 밤엔 오직 한가지색으로 밖에 안 뵌다. 연립주택같이 늘어선 집 앞에는 백열전등이 있고 호얏불도 있다. 길가에서 그냥 자는 사람, 아랫도리만 가리고 앉아 노는 사람들, 간혹 어떤 곳엔 라디오에서 음악 소리가 나고 그 주위에는 아이나 어른들이 팔과 허리를 흔들며 장단을 맞춘다. 길 한복판엔 웅덩이 같이 물이 고였고 그 건너편엔 백인이 사는가 경영하는가 깨끗한 약방의 간판이 보이며 희고 긴 형광등이 밝게 비친다. 우중충한 백열등 그나마 두 가지 붉고 푸른 전구를 낀 홀안에는 너댓개의 테이불이 있고 구석 카운터에는 3-4개의 긴 의자가 놓였다. 시끄러운 소음이나 다름없는 음악. 그러나 그것이 곧 이 집 전체의 분위기를 살리고 죽이는 듯하다. 술 마시는 모습이 우리완 다르다. 서로가 한패, 같이 왔으면서도 술만 마실 뿐 말이 없다. 누가 권하지도 조르지도 않는다. 자의다. 술자리에 들었다하면 지껄이고 떠들며 주거니 권커니 하는 우리와는 별세계인듯하다. 음악이 흐르면 그냥 흔든다. 누가 뭐라고 하지 않고 봐주건 안 봐주건 그게 문제가 아닌 듯 하다. 그저 자신의 흥만 돋구면 되는 가보다. 일정한 룰도 없다. 팔 허리 그리고 다리를 박자에 맞추기만 하면 된다. 저쪽 창살넘어 골목에서도 검은 밤의 꽃들이 역시 어울려 춤을 춘다. 하나의 물결이다. 더나드는 사람마다 이상한 물건이 앉아 있는듯 쳐다보며 간다. 그러나 대부분은 손을 흔들거나 턱으로 혹은 눈으로 인사를 나누고 간다. 네거리 하나를 지나는데 20분이 걸린다. 교통순경도 없다. 저네들끼리 끼이고 끼어서 요지부동의 상태가 되자 다시 운전자들이 내려서 스스로 정리를 해나간다. 아마도 욕일 것만 같은 고함을 질러가면서 -. 처음부터 끼어들지를 말지. 11시경 귀선.
다시 나가기로 했다. 혼자다. 이왕 오늘 나선 김에 이곳 최고라는 Lido Night Club를 구경하자. 같은 차림이다. 입장료 1나이라. 벌써 4인조 악단의 연주가 횡폭스러울 만큼 큰소리로 울려덴다. 가운데 hall, 춤을 추는 곳에는 우산모양의 짚을 덮은 곳 이외는 하늘이 뵌다. 역시 어둠의 편리함이 이곳에도 있다. 차라리 횐놈들이 이상하게 보인다. 대부분 뱃사람들일 것만 같은 백인이 몇몇 있다. 요란한 Rock음악에 맞추어 춤이 시작된다. 가지각색이다. 허리를 굽혀 땅에 떨어진 돈이라도 줍듯이 허둥데는 놈. 높이가 세치는 더 돼보이는 두꺼운 굽의 구두를 신은 남녀의 그 구두 부딪는 소리하며, 옛날 어릴 때 본 문둥이들이 쓰던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정신없이 다리를 흔들어 데는 젊은 친구. 조끼 같은 것만 걸치고 그 굵고 우람한 팔뚝에 해마의 문신을 그렸고 솥뚜껑만한 발바닥, 그나마 맨발로 궁둥이를 지탱하며 흔드는 백인. 어느 선박의 선원이 분명하다. 바로 광란의 물결이다. 오직 하나의 질서가 있다면 어떻게 움직이던 한 박자에 한 번씩만 움직인다는 것이다. 유독스레 튀어나온 이곳 여인들의 엉덩이, 그것이 마치 제 몸의 살이 아닌양 따로 움직인다. 볼수록 신기하다. 늘씬한 키에 아마 가발을 쓴 듯한 검은 아가씨의 허리가 선정적일 만큼 잘 움직인다. 밤의 덕분으로 아름답게 뵈는 것일까. 담뱃불을 빌리는 척하고 닥아가서 본 얼굴에서는 현기증을 일으킬 정도다. 좀 전에 마신 맥주가 슬슬 신진대사를 일으키는가 보다. W.C에 가다. 어이구 이건 또 뭔가. 오줌누기가 민망타. 옆에서 쏴! 하기에 슬쩍보니 예의 그 우람한 체구의 팔에 문신한 백인이다. 그 물건(?)도 가당찮게 크다. 오줌이 철철 넘쳐 흐르는데도 맨발로 떡 버티고 서서 마치 소방차가 물 뿜어내듯 기운차게 쏟아낸다. 옆에 서 있는 내 것은 마치 어린애 고추 같다. 기 쥑이네! 300여명은 족히 될 것 같다. 그 중에 짧은 바지를 입은 놈은 나하고 그놈 둘뿐이다. 조끼단추도 열린체로다. 가슴과 배에 텁수룩하고 붉그스름한 털은 마치 성난 불독처럼 무성하다. 이상하게 이 더운 지방에서 짧은 바지를 입지 않을까? 대개가 통바지, 판타롱이다. 남자들이 -. 아니면 아예 입지 낳고 천 같을 것을 둘렀거나, Short Panty만 입은 내 자신이 쑥스러워지기도 한다. 몇몇 아가씨들이 저희 집에 가잔다. 하하 이런 것도 있었구나. 바야흐로 하늘의 별마져 잠든 시간, 2시경이다. 그러나 여긴 별마져 눈을 뜨고 내려 다보는 듯하다. 아예 조용한 리듬은 없다. 런닝샤쓰에 맨발로 신나게 쳐대는 드람어가 악단의 리더인가보다. 그들도 미쳐있다. 악기만 메었고 자리만 다를 뿐 흔들고 뛰는 것은 마찬가지다. 정문의 수위도 카운터의 맴버도 마찬가지다. 맥주를 날라 주면서도 발과 궁둥이는 쉬질 않고 실락거린다. 오직 부동의 인간은 하나, 금전등록기 앞에 앉은 뚱뚱한 검둥이. 그만은 이 물결에 휩싸이지 않고 꼭꼭 돈만을 받아 챙기고 계산을 한다. 두 아가씨의 신청을 거절하고 혼자 있으니 Waiter가 저쪽 테이불에서 누가 찾는단다. 돌아본다. 어라! 점잖은 아가씨다, 연초록색의 긴 드레스에다 가발까지 둘렀다. 목걸이도, 귀걸이도 하고, 혼자란다. 내가 필요하면 이쪽으로 오랬더니 왔다. 역시 자기 집에 가진다. 5$면 된단다. 애라 한번 가보자. 밖에는 부산에서도 몇 대 없다는 독일산 Benz가 기다린다. 자가용 운전수들이 야간에 주인 몰래 아르바이트 하는 모양이다. 그리 멀지 않는 곳, 연립주택중의 어느 중간쯤에 선다. 자기집이랬다. 문을 노크하니 안에서 문을 따준다. 어어? 두 아이가 누워 자다 일어난다. 방금 문을 연 놈은 여나믄살은 됨직하다. 단간방이다. 구석에 침대가 있고 냉장고 하나 전축하나 응접의자 두어 개, 바닥에 애들이 그냥 잔다. 작은 놈은 파우다 인듯한 하얀 가루를 칠했으니 더욱 이상하게 뵌다. 벽에는 사진 혹은 아름다운 백인여자의 나체들이 꽉 차게 결려있다. 역시 어둠이기에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어딘가 역겨움이 오른다. 가발를 벗고 옷을 갈아입는 그녀의 뒷모습과 얘들의 눈동자. 얘들에게 그냥 자라고 한다. 큰 녀석이 심술궂게 힐끗 쳐다본다. 공자님의 노한 모습이 그런지는 몰라도 그런 것이 확 떠오른다. 마신 술이 올라온다. 얼른 5$를 주고 문을 나썼다. 길거리 밤 공기가 한결 시원하게 속을 식혀준다. “왜 가는냐고, 돈을 주고 그냥가면 되느냐?” 다. 우거지 상이다. 막무가네다. 기어이 뿌리치고 큰길까지 나오는데 족히 10분은 걸렸다. 술이 나빴는가 골치가 팅하고 아파온다. 곧 날이 새려나 보다. 한참 걸어 겨우 택시를 잡았다. 여기서도 생의 치열한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입안이 쓰고 목이 메케하다. 목이 말라도 어쩔 수가 없다. 귀선! 역시 내가 이 길을 걷는 한 그것은 곧 귀향과 같은 아늑한 보금자리임을 확인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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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왜 가는냐고, 돈을 주고 그냥가면 되느냐?”
야 등신아 올라 타보지도 못하고 ...
하기야 믿어 보자 , 다 아 지나간 이야기다.
좀 더 자세히 보시면 알건데. "공자님의 노한 모습....". 그런데 우째 하겠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