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나홀로 연습 시작
(2003/04/06 일요일)
오늘은 식목일 다음날인 연휴 일요일.
집에서는 사무실에 할 일이 있다고 뻥까고, 일단 사무실로 나왔다.
일요일에는 근처 배달해주는 식당들이 놀기 때문에 막내아이의 보온 도시락에 점심까지 챙겨서 나왔기에 양심은 좀 찔렸다.
컴과 잠시 놀다가 오후가 되어서 도시락을 까먹고, 난 또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을 할 각오로 필라로 향했다.
바깥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어두컴컴한 지하 연습실에 들어가기가 조금은 억울한 생각도 들었지만, 그건 잠시였다.
안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는 상태였다. 입구에서 돈을 받는 주인도 자리에 없었다. 안에서 연습을 하던 어떤 분이 대신에 돈을 받아 주었다. 그분은 그곳에서 강습을 하는 선생님 같아 보였다.
이제 제법 익숙해진 분위기여서 가장 안쪽 구석의 발끝이 보이는 거울이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아 신발을 갈아 신었다.
머리에서 맴돌던 자이브 베이직부터 밟아 보았다. 역시 머릿속에서 구상했던 대로 몸이 따라주질 않았다.
체중 조절이 가장 안되었다. [라]에서 뒷발에 체중이 옮겨지고 상체는 반듯하게 히프로 돌아가도록, [겐]에서 반대로...
그 다음에 [퀵]으로 넘어갈때 오른쪽 다리로 밀어주는 식으로...
그렇게 하면 고수들처럼 될 줄 알았는데, 제대로 안 되었다.
그래도 천천히...
계속 느리게...
천천히 해보았다.
원리를 약간 깨달은 것 같기는 한데도 다른 사람들처럼 멋있게 예쁘게 안 되었다.
느리게 하니까 오히려 더 어려운 것 같았다.
그래서 빠른 음악이 나올때 음악에 맞추려고 해보고, 루틴을 밟아 보았다. 그럴 때는 오히려 잘 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베이직만 일부러 하면 제대로 된 동작이 안 나왔다.
약 1시간 정도 자이브와 싸우다가, 왈츠 연습으로 넘어갔다.
자이브 보다 왈츠가 내 취향에 더 맞는 것 같고, 재미도 더 있는 것 같았다.
왈츠는 먼저 자세를 만드는데 중점을 두기로 했다.
모던 선생님께서도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셨다.
왈츠나 탱고 같은 모던 댄스류는 자세가 거의 90%라고...
그리고 나에게는 특별히 주문한 게 있었다. (사실 난 단체반에서 좀 덜 헤매려고 탱고를 개인레슨 받고 있는 중이다.)
스텝이니, 루틴이니,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몸부터 만들자고...
그래서 레슨시간에도 선생님이 강제로 아이들 벌주듯이 양팔을 벌리고 10분 이상씩 서 있게 하는 훈련을 시킨다.
시간 날 때마다, 화장실 변기에 앉아서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기회만 되면 양팔을 벌리고 올바른 홀딩 자세가 고정되도록 연습하라고 당부하셨다.
혼자서 개울가에서 먹이감을 노려보는 황새처럼 나는 외롭게(?)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몇몇 강사인 듯한 분들이 입구에서 앉아 있으면서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나는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예체능 관련 학습은 자기 몸의 운동신경 숙달이니까, 내 스스로 몸에 입력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누가 비웃든지 욕을 하든지 (사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상관 않기로 하고, 나는 자신과의 싸움을 전개했다.
처음에는 10분 정도만 되어도 팔이 끊어지는 듯 아팠지만, 이젠 30분 정도 홀딩자세로 고정한 채 서있어도 끄떡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뒷 발꿈치를 든 채, 앞발 볼로 서있는 상태로도 견딜 수 있었다.
견디는 것하고 힘든 것 하고는 별개인 것 같다.
속으론 무척 힘이 들어서 얼굴이 일그러졌고, 머리와 얼굴에는 땀범벅이 되었지만 목표로 정한 시간을 다 채우고 나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아, 나도 하면 되려나 보구나... 라는 희망이 들어서.
그러다가 한편으론 이까짓 것 팔 벌리고 있다고 무슨 왈츠나 탱고가 되려나... 하는 변덕도 들었다. 스텝을 자유스럽게 밟을 수 있고, 루틴이 머릿속과 몸에 배어서 자동적으로 홀딩 했을 때, 척척 나와야지... 하는 생각.
그러다가도 선생님의 말씀이 귓가에 맴돌았다.
모던은 자세가 가장 중요하고, 스텝과 루틴은 자세가 만들어진 다음에 하면 금방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약 두어 시간 혼자서 로보트 흉내를 내다가 (사실은 며칠 전부터 연습해오고 있었다.) 왈츠 베이직 박스를 밟아보고, 단체 기초반에서 윤곽만 잡은 루틴을 프린트물을 들고서 해보니까, 거짓말처럼 단체반에서 하던 것과는 판이한 차이가 나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진행 워크며, 박자 감각이며... 나 자신이 며칠 사이에 이렇게 변하고 있을 줄 스스로도 놀라왔다.
그렇다고 아직 홀딩하고 할 용기는 나지 않았지만, 엄청난 자신감이 붙었다.
이제 내 계획대로 한번만 더 단체반에서 기초를 다지고, 또 개인레슨만 받는다면 제대로 된 왈츠를 출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생각이 드니까 재미도 붙었다. 그래서 계속 서 있기 자세훈련과 베이직을 밟았다.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한참 있으니까 6신가 7신가, 신디님이 오셨고, 그 후로 이소라님과 모나리자님이 들어왔다.
나는 철수할 시간이 다 된것 같았는데, 음악이 나오니까 나올 수 없었다. 무언가 보이지 않는 위력이 나를 자꾸만 붙잡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7시30분에야 필라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