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second rabbit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어쩌다 스마트폰을 잃어버리면 망연자실이다. 그 검은 직사각형 판 안에 나의 욕망의 등락과 냄새나는 비밀, 나의 떳떳하거나 부끄러운 이동 기록, 나의 기억하고 싶은 추억이나 벗어나고 싶은 기억, 나의 흔들리는 재정 상태, 나의 인간관계의 아카이브 등이 몇 개 숫자들의 조합과 검지로 문지르는 패턴의 철통같은 수문장에 의해 단단히 지켜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검은 직사각형 액정에 전원이 켜지면 그게 나의 비서이자 안내인이자 기쁨조 역할을 충실히 해주기도 하는데, 그게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 나는 어안이 벙벙하게 되고 불안해지며 안절부절 못하게 되고, 정상적인 심리상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건 아편만큼이나 심각한 금단현상을 일으킨다. 그보다는 작은 사건이지만, 며칠 전 우리 집 인터넷 와이파이가 고장 났다. 14년 동안 책상 구석에서 깨알만한 네댓 개 초록 불빛과 노란 불빛을 번갈아 깜박거리며 뭔 일인가를 하고 있던 와이파이 공유기가 고장 난 거다. 집에서 마음껏 스마트폰을 들여다 볼 수 없으니 다소 답답한 처지가 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서 LTE(↓↑) 표시가 된 부분을 열어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하여 인터넷을 할 수 있고, 랜선으로 연결된 PC에서도 인터넷 이용이 가능하니까 와이파이 고장 난 것 정도로 심리적 안정이 흔들리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아무 때나 소파에 누워서든 침대에 누워서든 무한정 유튜브를 보거나 듣고, 네이버나 구글을 검색하기도 하고, 카톡을 하기도 하고, 송금이나 계좌조회를 하기도 하고, 쇼핑을 하기도 하는 자유를 빼앗겼으니 한시라도 빨리 와이파이를 고쳐서 자유를 되찾아야 한다. 우리 집은 이제까지 줄곧 LG유뿌라스라는 인터넷망을 사용했는데, 그쪽에 전화로 고장 신고를 했더니, 다음날 매니저라는 분이 와서 보고 우리 집에서 사용했던 안테나 한 개짜리 공유기는 이미 오래전에 단종 되어 지금은 없다고 하더니, 별 해결책을 주지 못하고 돌아갔다. 엘지 고객 센터에 전화해서 문의했더니 상담원이 역시 복잡한 말만 늘어놓을 뿐 뚜렷한 해결 방안을 제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음날 나와 나의 아내 핸드폰을 구입했던 동네 SK대광대리점에 가서 이참에 아예 인터넷 연결을 SK브로드밴드로 바꿔버렸다. 최태원씨가 요즘 가정사로 큰돈을 썼다기에 그냥반을 좀 보태줘야겠다는 생각에서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이틀 뒤에 SK매니저님이 우리 집을 방문해서 안테나 두 개짜리, 매끈한 검은 색 브랜뉴 공유기를 떡하니 설치해주고 갔다. 그래서 그날 오후 내내 소파에 누워 유튜브를 블루투스 스피커에 연결해서 남진의 “나야나” 등 다수의 유행가를 큰소리로 틀어놓고 실컷 들으면서 며칠간 참았던 인터넷 욕구를 분풀이하듯 해소했다.
첫댓글 우와~~ 공유기를 14년 쓰셨다니 LG유플러스가 존경스럽습니다. 저는 SK브로드밴드 15년째인데 공유기 총 4번 고장나서 교체했어요. 4년에 한번꼴로 고장요. ㅜㅜ
왜 저는 '강'을 장음으로 발음하는 걸까요? ㅎ
그렇죠, 행복은 경찰 아니고 강도도 아니고 그렇다고 빈대도 아니죠.
흠, 세상 부질없는 일이 재벌 걱정, 연계인 걱정, 의사 걱정이라고 합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