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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경전인 바이블(Bible)에는 옛날에 존재했던 도시 소돔의 이야기가 전합니다.
그에 따르면 소돔은 성적으로 문란했고 도덕이 타락했기 때문에
신의 노여움을 사서 유황불의 심판을 받아 멸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소돔의 멸망원인을 성적 문란과 도덕의 타락으로 설명하는 것은,
종교 경전이기 때문에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 위한 방편일 뿐입니다.
저는 역사학자들에게서 소돔과 관련된 사료가 전하는 좀 다른 얘기를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얘기를 좀 들려드릴까 합니다.
바이블이 전하는 이야기와 사료가 전하는 이야기 중 어느 쪽이 맞는지 어떻게 아느냐구요?
그건 바이블을 보아도 미루어 알 수 있습니다.
바이블을 보면, 적그리스도가 올 때는 모두에게 열렬히 환영받는 모습으로 온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적그리스도가 올 때는 ‘사탄’의 모습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위에 하느님 나라를 실현할 구세주의 모습으로 올 것입니다.
그와 비슷하게 당대 소돔이라는 도시는 타락과는 거리가 멀어보였습니다.
성적인 문란과 도덕적 타락은 누구나 그게 나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신의 심판을 받을 만큼
도시 전체를 타락에 빠뜨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도리어 당시 소돔은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인해 주변 여러 도시들의 찬탄대상이 되었고,
그 때문에 소돔의 시민들은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주변 도시들이 보기에 당대의 소돔은 경제기적을 이룬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 소돔은 부존자원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미래가 비관적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도 고도성장을 이뤄낸 것입니다.
주변 도시들은 그 원인을 분석한 끝에 소돔시민들이 워낙 근면하고 교육열이 높아서
고도성장을 이룬다고 했습니다.
이와 대비하여 부존자원이 많은데도 가난한 도시들은 비판대상이 되었습니다.
소돔에 대한 찬양의 목소리가 드높았습니다.
모든 낙후된 도시들은 소돔처럼 해야 한다고,
‘소돔식 경제모델’을 따라해야 한다고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오늘날 역사학자들은 전해오는 사료를 분석한 끝에
‘소돔식 경제모델’의 탁월한 비결이 무엇인지 알아내었습니다.
그것은 돌을 깎아만든 큰 제단을 상품으로 포장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소돔은 부존자원이 없기 때문에 제조업에 종사하는 업자들이 팔만한 물건을
만들어낼 만한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조업자들이 돌을 깎아만든 큰 제단을 시장에 내놓았습니다.
그리고는 큰 돌제단을 집에 들여놓으면 신의 축복을 받게 된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소돔시민들은 신앙심이 깊었는데, 이를 이용해보려 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쓸데없이 크고 무겁기만 한 돌제단은 비실용적이라고 부정적인 여론이 높았습니다.
그런데 돌연 신전의 사제들이 신의 목소리인 신탁을 전했습니다.
큰 돌제단을 신께서 기뻐하신다고 했습니다.
소돔의 정치가들도 합류했습니다.
신께서 기뻐하시는 돌제단이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돌제단은 비싼 가격에 비해 원가가 별로 들어가는게 없습니다.
그러므로 제대로 팔리기만 하면 제조업자들이 남길 수 있는 순이익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조업자들은 신전에 많은 돈을 헌금했고,
정치가들에게는 검은 봉투에 넣은 정치자금을 제공했습니다.
신탁과 정치가들이 앞장서서 마련한 제도적 지원에 힘입어 마침내
돌제단이 날개 돋힌 듯이 팔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제조업자들은 만세를 불렀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소돔의 시민들에게 돌제단은 점점 유행이 되었습니다.
그로 인해 돌제단의 가격은 계속해서 올라갔습니다.
처음엔 반신반의하던 사람들도 돌제단의 가격이 점점 올라가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눈치빠른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게 마련입니다.
돌제단의 가격이 계속 오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눈치 빠른 사람들은,
소돔의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빚을 내어 미리 여러 개의 돌제단을 사두었습니다.
큰 장사꺼리를 잡았음을 깨달은 고리대금업자들도 이제 신전에 거액을 헌금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제들은 집에 마련한 돌제단의 크기에 따라 하늘나라에서 등급이 정해지는 것이며,
그에 따라 지상의 신분도 소유한 돌제단의 크기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돌제단의 가격이 워낙 오르자 일찍 돌제단을 구입한 사람들은 ‘부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부러워하게 된 사람들은 점점 더 돌제단을 사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일부 의식있는 사람들은 돌제단이 피라미드 폰지 사기와 같다고 비판했지만
소돔시민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료를 보면, 소돔시민들이 처음부터 모두가 한꺼번에 휩쓸려 들어간 것은 아닙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돌제단이 너무 크고 무거워서 도리어 불편하기만 한데,
그렇게 비싼 가격에 산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돌제단 가격이 곧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돌제단의 가격은 계속 올랐습니다.
신탁과 정치가들, 고리대업자들의 조직적인 지원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던 것입니다.
일찍 돌제단을 사들여 부자가 된 사람들은 ‘돌제단 찬양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소돔은 다르다’고 주장했습니다.
돌제단이 실용적인 면에서는 불편하다는 사실,
원가가 얼마 안된다는 사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소돔사람들은 신앙심이 워낙 투철하기 때문에 돌제단을 집에 꼭 갖추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가격이 얼마가 되든지 가격에 상관없이 돌제단을 소유하길 원하므로,
돌제단 가격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주장은 소돔에서 점점 설득력이 커졌습니다.
무엇보다도 돌제단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기만 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소돔에선 행세깨나 하려면 큰 돌제단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그에 걸맞게 더 큰 돌제단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젊은 시절 소유했던 돌제단을 팔고
더 큰 돌제단을 새로 장만하는 것이 생활패턴이 되었습니다.
딸을 주십사고 청혼하는 예비신랑에게 미래의 장인은,
자네는 내 딸을 위해서 얼마나 큰 돌제단을 마련할 수 있느냐, 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우린 돌제단 언제 사느냐고 묻기 시작했습니다.
‘능력있는 아빠, 무능한 아빠’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습니다.
돌제단이 없는 사람들은, 이 나이 되도록 돌제단 하나 마련하지 못했느냐고
조롱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처음에 비판적이던 사람들이 뒤늦게 허둥대며 돌제단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돌제단 가격은 천정부지로 뛰어올랐습니다.
치솟는 가격을 보며 사람들은 이제라도 돌제단을 장만한 것이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이제 소돔의 신혼부부들의 장래 계획은 곧 돌제단 마련계획이 되었습니다.
신혼부부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종자돈을 마련하려고 기를 썼습니다.
인상깊은 사료 한 가지 전합니다.
그 사료를 보면,천신만고 끝에 종자돈을 마련하고 나서,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빚을 잔뜩 지고 돌제단을 집에 들여놓은 날,
아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남편에게 말합니다.
“여보, 너무 행복해요. 이제는 고리대를 갚느라 앞으로 밥을 굶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행복해요. 이제 아이들이 학교에서 기죽지 않아도 돼요.”
돌제단의 가격이 너무 천정부지로 솟고 나니 곤란해진 것은 소돔의 젊은세대들이었습니다.
이제 소돔의 젊은세대들은 돌제단을 마련할 수 없어서 결혼을 미루어야 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도 돌제단을 마련하기 위해 밥을 굶어야 했고,
자녀교육도 제대로 시킬 수 없었습니다.
참다 못한 소돔의 젊은세대들은 기성세대들에게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돔의 도시 한복판에는 아고라라 불리는 광장이 있었습니다.
어느날 아고라에,
왜 우리에게 돌제단을 고가에 구입하라고 강요하느냐, 따지는 대자보가 나붙었습니다.
앞으로 소돔의 젊은세대들은 합심해서 돌제단을 사지 않을 것이라는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소돔의 기성세대들은 당황했습니다.
정치가들과 사제들도 당황했습니다.
정치가와 사제들은 시위대가 불순한 의도를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소돔의 체제를 전복하기 위해 원수인 북쪽 도시에서 보낸 간첩들의 소행이라고 단정했습니다.
먼 옛날 소돔과 북쪽 도시는 전쟁을 벌인 적이 있기 때문에 서로 원수지간이었습니다.
전투경찰이 투입되어 시위대가 해산되고 주동자들이 체포되기 바로 전날
아고라에 붙었던 대자보 한 장이 지금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제발 저희들을 모른 척 하지 말아주세요.
저희들은 아버지, 어머니의 아들들이요, 딸들입니다.
지금 저희들은 돌제단 때문에 너무 고통받고 있습니다.
저희의 미래가 송두리째 돌제단에 발목잡혔습니다.
제발 저희들의 고통을 모른 척 하지 말아주세요.
기성세대들은 모른척했습니다.
가슴 한 구석이 찔리기도 했지만, 이미 자신들은 고리대금업자들에게
거액의 빚을 내고 너무 큰 돌제단을 구입해둔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행여 불순한 사상에 물든 젊은세대들 때문에
돌제단의 가격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큰 일 나기 때문입니다.
불순분자들은 체포돼야 했고, 소돔의 젊은세대들은 계속해서 기성세대들로부터
돌제단을 더 비싼 가격에 사주어야만 했습니다.
기성세대들은 젊은세대를 비난했습니다.
요새 소돔의 젊은 것들은 게을러 터졌다, 패기가 없다,
우리 때는 안 그랬다, 우리는 먹을 것 제대로 못 먹고, 입을 것 제대로 못 입고,
죽도록 일해서 오늘날의 부를 일궜다.
요즘 젊은이들은 뭐가 부족한가?
잘 먹고 잘 입고 교육도 제대로 시켜줬다.
노력할 생각은 안하고 죽는 소리만 한다.
자기들은 훨씬 예전에 돌제단을 싼 가격에 사들였다는 사실은,
어른들의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이 일궜다는 부富는, 싸게 사들인 돌제단을
젊은세대들에게 비싸게 강매해서 생긴 것이라는 생각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사료를 보면 젊은세대들의 시위사태로 인해 한바탕 시끄러웠지만,
그리고 나서도 한동안 소돔은 별탈없이 지낼 수 있었습니다.
돌제단을 찍어내기에 바빴으므로 소돔의 경제는 계속 고성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소돔의 경제가 계속 고성장을 하면서 칭찬 대상이 되자,
젊은세대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잊혀갔습니다.
오히려 이웃도시들이 소돔식 경제모델을 따라하기 시작했습니다.
소돔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들판에 울려퍼졌습니다.
여기까지 사료를 계속 보아도 소돔이 왜 유황불의 심판을 받게 되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소돔의 경제는 고속성장하고 이웃 도시들의 부러움의 대상인데, 왜 심판을 받아야했을까요?
쉽게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오늘날 신학자들은, 전해오는 소돔의 기록을 볼 때
그들은 돌제단 자체를 ‘우상’으로 숭배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하기도 합니다.
소돔사람들은 ‘돌제단 우상’을 숭배함으로써,
스스로 자신들의 도시를 땅 위의 지옥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얘기합니다.
그 때문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바이블에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그런데 경제학자들은 또 다른 분석을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료에서 당시 돌제단 제조업자들로부터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소돔에서 돌밭 가격이 너무 많이 올랐기 때문입니다.
돌제단을 계속 만들기 위해서 제조업자들은 돌밭에서 돌을 캐야 했습니다.
그런데 ‘돌제단 찬양자들’ 중 눈치빠른 사람들이 돌밭을 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문에 돌밭 가격이 너무 올라서 돌제단 제조업자들이 사들이기에도 부담되었고,
그래서는 돌제단을 파는 비즈니스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지 못했습니다.
소돔에서 돌제단을 사들일 사람은 왠 만큼 다 사들여서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에,
비싸게 팔기가 어려워지고 있는데, 제조원가가 급등해버린 것입니다.
돌제단 장사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사제들의 신탁을 통해 길러낸
‘돌제단 찬양자들’이 이제는 제조업자들에게 방해물이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약삭빠른 ‘돌제단 찬양자들’ 중에는 심지어 돌밭 정가운데의 큰 돌 하나만을 사들여서
‘알박기’를 해놓음으로써 제조업자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도 자주 벌어졌습니다.
당시 소돔의 아고라에 내걸렸던 대자보 중에는,
이처럼 ‘돌제단 찬양자들’이 제조업자들에게 걸림돌이 되기 시작한 이상,
이제 '돌제단 시스템'도 끝이라는 글이 내걸리기도 했지만,
큰 주목을 끌지는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했던 영화 ‘매트릭스’가 상영되었던 것이 1999년이니 벌써 12년전 일입니다.
매트릭스를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신선한 충격의 감각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년 전이라니 참 시간의 흐름이 빠르기도 합니다.
12년 전이면 요즘 젊은이들 중에는 매트릭스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으려나요?
아니면 워낙 화제가 되었던 영화이므로 아는 사람들이 더 많으려나요?
저는 영화 매트릭스를 소재로 해서 ‘매트릭스에 갇힌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오늘날 우리들이 매트릭스에 갇힌다는 것은 어떤 형태인가 하면,
그 매트릭스의 교묘한 논리에 넘어가서 스스로 포섭당하는 것입니다.
사회 내의 권력 집단은 여러 가지 다양한 전략들을 동원합니다.
대다수 피지배 집단이 자신들의 삶에서 부당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게 만들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매트릭스 체제입니다.
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니지만 성경 말씀 중에, 적그리스도가 올 때는
모두에게 열렬히 환영받는 모습으로 온다, 는 취지의 설명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헤게모니의 개념, 매트릭스의 구조에 대한, 간결하면서도 탁월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매트릭스에 갇힌다고 하는 것은,
그 논리에 포섭당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는 자신의 처지를 자각하지 못하고
무지한 상태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열연한 주인공 네오가,
매트릭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가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것, 이었습니다.
영화 매트릭스는 다양한 상징으로 가득찬 영화입니다.
키아누 리브스가 열연한 주인공은, 토머스 앤더슨에서 네오(Neo)로 이름이 바뀝니다.
Neo는 New 입니다.
이는 주인공이 ‘깨달음’을 통하여 이제 ‘새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나타냅니다.
매트릭스에 갇혀 사육당하던 ‘유기체’에서,
이제 자유의지를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매트릭스에서 벗어나려면 ‘자각’이 제일 중요한 것입니다.
매트릭스의 교묘한 전략, 교묘한 논리에 속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피지배 집단이 자신들의 처지를 제대로 ‘자각’하는 것만큼
권력집단에게 위협적인 것은 없습니다.
‘자각’을 위해서는, 매트릭스가 상투적으로 쓰는 수법을 알아둘 필요가 있겠습니다.
그것은 ‘접합’이라고 부르는 수법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 네오는 ‘자각’을 통해 매트릭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영화 후반부에 네오의 동료 싸이퍼는 결정적인 순간에 동료들을 배반함으로써
네오를 위기에 처하게 만듭니다. 그 때 네오가 싸이퍼에게 묻습니다.
무엇 때문에 동료들을 배반하는가?
싸이퍼가 대답합니다.
그들이 나를 매트릭스에 다시 넣어주기로 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 네오에게 싸이퍼는 계속 말합니다.
‘자각’이라고? 이 현실을 봐라.
‘자각’을 통해 매트릭스를 벗어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현실이 고작 이런 것이냐?
매트릭스를 벗어나 ‘자유’라는 것을 얻은 게 뭐가 좋으냐?
‘진짜’ 음식이라고? 맛대가리 하나 없는 진짜 음식 먹는데 이제는 질렸다.
반면 이 스테이크는 어떤가?
이게 매트릭스 시스템이 만들어내서 우리 뇌 속에 심어준 환상에 불과하다는 점은 알지만
무슨 상관인가? 맛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쾌락을 준다. 난 그거면 충분하다.
이렇게 해서 싸이퍼는 ‘자각’을 통해 겨우 탈출했던 매트릭스에
다시 넣어주는 것 하나를 조건으로 동료들을 배반합니다.
자유를 얻은 뒤 당면해야 하는 냉엄한 현실보다 노예상태에서 받아먹을 수 있는
달콤한 음식이 더 낫다고 생각한 싸이퍼는,
진짜 있는 그대로의 현실에 대해 도로 눈을 질끈 감기로 선택합니다.
눈을 감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자기 자신을 속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일은 영화에서 만이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도 꽤 자주 일어납니다.
요새 아파트 가격이 조금 꿈틀대는 조짐이 보이니 예의 대한민국 아파트 불패론이 다시 나옵니다.
대한민국 아파트 가격이 너무 높다,
이렇게 계속 오르는 것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누가 모르나?
알지만 계속 오를 것이니 지금이라도 사는 것이 낫다.
투기꾼들 배 좀 불리면 어떤가.
경제가 나빠지는 것보다는 더 낫다. 부동산 버블을 계속 조장하는 것이 모두를 위해서도 더 낫다.
정부에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지금이라도 아파트를 사야겠다.
이런 분들은 싸이퍼와 같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은 대한민국에서만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도 아니고
역사적으로 다른 나라에서도 항상 나타나곤 했습니다.
금융史에서 항상 언급되는 고전적인 버블 사례인 남대서양 주식회사 버블의 경우를 보면,
어느 보수적인 은행 지점장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전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모두가 미쳤다면 어느 정도는 우리도 그들을 흉내 내야 한다.”
이 은행 지점장은 애써 눈을 질끈 감고 스스로 매트릭스에 들어가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 은행 지점장이나 싸이퍼나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본인들은 자기가 똑똑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가장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제 곧 버려질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을 일러 ‘막차’를 탔다고 말합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싸이퍼는 막차를 탄 것입니다.
싸이퍼는 매트릭스 시스템에 다시 들어감으로써 가상의 것이긴 하지만
다시 쾌락의 느낌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라는 것을 얻어보니 좋은 것 하나 없더라, 동료들을 배신하고 지금이라도 다시
매트릭스 시스템에 들어가는 것이 더 똑똑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싸이퍼는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몰랐던 것입니다.
매트릭스는 인간 ‘유기체’를 원료로 삼아
기계 시스템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 가동하는 시스템입니다.
인간 유기체들에게서 에너지를 짜내는 동안 그들을 ‘사육’합니다.
‘사육’이란 고기를 얻기 위해 먹이를 주는 것입니다.
매트릭스가 인간 유기체들에게 주는 먹이는 ‘환상’과 ‘쾌락’입니다.
인간들이 노예상태로 얌전히 있도록 하기 위해
가짜 ‘환상’과 ‘쾌락’을 만들어내서 뇌 속에 심어줍니다.
그런데 이처럼 개개 인간 유기체들에게 환상과 쾌락을 심어주기 위해서는
꽤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도 합니다. 즉 에너지를 짜내기 위한 시스템이지만,
그 시스템을 계속 돌리는 것 자체에 상당한 에너지가 소요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스템을 돌려 짜낼 수 있는 에너지와
시스템을 돌리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를 서로 비교해야 합니다.
얻을 수 있는 수익과 들어가는 비용을 비교해야 하는 것입니다.
수익보다 비용이 더 커지면,
그때는 당연하게도 매트릭스 시스템을 폐기하는 것입니다.
매트릭스 시스템이 사육하던 인간 유기체들은,
다 방전되어 이제는 쓸모 없어진 건전지를 버리듯이 모두 버려지는 것입니다.
은행지점장이나 싸이퍼는 버려지기 직전 상태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막차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제 곧 버려질 상태라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 고 묻는 분이 계실 지 모르겠습니다.
그건 이 상태에서 아파트 매트릭스 시스템이 계속 돌아가면
누구에게 이익인가,를 따져보면 알 수 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전체 가계의 자산 구성 중 76.8%가 부동산입니다.
이 상태에서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면 대한민국에서는 가계들이 부자가 되고
기업들은 가난해지는 결과가 나옵니다.
덧붙여 얼마 전에, 대한민국 최고의 아파트 건설사인 S물산은
용산의 주상복합 아파트 개발사업권을 포기해버렸습니다.
현 정부 들어 큰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L그룹은 분당에 있는 백화점을 매각해 버렸습니다.
판교신도시가 추가로 입주했고, 용인이 경전철로 이어졌습니다.
광교신도시가 더 들어설 예정입니다.
분당신도시의 미래를 밝게 볼 법도 한데, 매우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에서 아파트 가격이 계속 오르고,
분당신도시가 계속 번영한다면 위 두 대기업은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어떻게 진행될까요?
‘자본주의’가 아파트 가격을 계속 오르게 만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는 분들을
상당히 많이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 얘기는, 매트릭스 시스템을 돌려서 짜낼 수 있는 에너지보다 돌리는 데에 들어가는
소요 에너지가 더 큰데도 계속 시스템을 돌려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얻을 수 있는 ‘수익’보다 ‘비용’이 더 큰데도
자본주의가 이 시스템을 계속 돌려줄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는 자본주의 논리에 맞지 않는 얘기입니다.
어려운 얘기가 아닙니다. 아주 쉬운 얘기지요.
그런데도 인간 유기체들의 귀에 이 쉬운 얘기가 잘 안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아파트 매트릭스 시스템이 아주 영악하기 때문입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겠다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 논리입니다.
아파트 매트릭스 시스템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할 때도 인간 유기체들의 탐욕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합니다.
그 때문에 그동안 아파트 매트릭스가 해온 거짓말들은
인간 유기체들의 뇌 속에 철저하게 뿌리박혀 버렸습니다.
그결과 아파트 매트릭스 시스템의 전원스위치가 이미 내려졌는데도 인간 유기체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게 최면을 걸면서 가짜 ‘환상’과 ‘쾌락’을 최대한 유지시켜 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싸이퍼 같이 막차를 타는 유기체들도 나타납니다.
하지만, 시스템을 계속 돌리는데 들어가는 에너지가 더 커지면,
이제는 시스템 자체를 폐기처분하는 것이 자본주의에 맞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를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폐기처분을 받아들여야겠지요.
후일 역사학자들은 소돔의 사제들이 전하던 신탁의 목소리가
언제 바뀌었는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합니다.
한동안 신탁의 목소리가 엇갈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공교롭게도 제조업자들이 쌓아두고 있던 돌제단 재고가 모두 소진되고 난 뒤에는
더 이상 신께서 돌제단을 기뻐하신다는 신탁이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사제들은 이제 신께서 보다 환경친화적인 나무제단을 기뻐하신다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제조업자들은 어느새 돌제단 생산라인을 나무제단 생산라인으로 바꾸어놓은 상태였습니다.
‘돌제단 찬양자들’은 공포에 질렸습니다.
돌제단의 가격이 바닥을 모르고 계속 떨어졌습니다.
‘돌제단 찬양자들’이 보유하고 있던 제단의 가격은
고리대금업자들에게 빌린 금액 이하로 떨어져버렸습니다.
이제 ‘돌제단 찬양자들’은 지옥이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땅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돌제단 찬양자들’에게 하늘은 노란 색이었고 주변 환경이 지옥과 같이 느껴졌습니다.
머리 위로 유황불이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역사가들은 바이블에 전하는 유황불의 심판은 바로 이와 같은 상황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분석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께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주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기독교 경전인 바이블은 소돔의 역사를 상징으로 간략하게 전하지만,
사료는 이상에서 전해드린 바와 같이 좀 더 자세한 얘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사료가 전하는 소돔의 역사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세상을 빚어만든 조물주의 의도라는 것은,
겨우 순간을 살다가는 우리 인간의 짧은 안목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소돔의 탐욕을 멸한 것은, 선한 동기가 아니라 또 다른 탐욕이었습니다.
조물주는 아마도 탐욕으로 하여금 또 다른 탐욕을 잡아먹도록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소돔은 유황불에 타서 멸망했습니다.
정확히는 소돔의 탐욕이 유황불에 모두 타버린 것입니다.
지옥의 유황불이 소돔의 탐욕을 모두 태워 없애버린 뒤로도
소돔 사람들의 삶은 계속 이어졌습니다.
사료가 여기서 그치기 때문에, 그 뒤로 소돔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지옥불이 모든 것을 태운 뒤 소돔 시민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에 따라 달라졌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