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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창세기 1장 1절에서 하늘과 땅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제일 먼저 베레쉬트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베레쉬트라고 하는 것은 크게 하나님의 시작이며, 창조의 배경을 말해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시작, 첫 열매, 머리, 왕의 통치가 시작되는 원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에 전치사 “뻬”와 합쳐서 첫 열매인 머리 안에서 시작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신약에서 머리는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안에서 통치를 시작하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영어로 “인 크라이스트”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다음시간에는 “빠라”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 단어는 창조하다는 단어인데 지금껏 우리가 알아왔던 “무에서 유의 창조를 말하는 의미가 아니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이 단어는 항상 하나님의 언약의 관계 속에서 새롭게 되어지는 새 창조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늘과 땅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엘로힘에 관해서는 “성경공부”를 통해서 자세히 하기로 하구요. 사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면 그것을 엘로힘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늘과 땅입니다. 그럼 하늘은 뭐고? 땅은 무엇입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하늘, 눈에 보이는 땅으로 자연스럽게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나 이 하늘이라 불리우는 “샴마임과 땅이라 불리우는 에레츠는 그냥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내용은 어떻게 보면 이 하늘과 땅의 개념이 전부입니다. 성경의 내용들이 이 두 개를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마치 기차가 달리기 위해서는 레일이 두 개가 있어야 하는 것처럼 성경 속에서 하늘과 땅의 의미는 상당히 광범위하고 제일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을 연결하지 못하면 성경이 이해가 안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천지, 하늘과 땅의 개념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하늘과 땅이라는 개념은 서로 상대적 개념으로 등장합니다. 하늘은 높은 것을 상징하고, 땅은 아래의 낮은 것을 상징합니다. 그렇게 하늘을 창조하고, 땅을 창조하게 되면 하늘과 땅 사이에는 뭐가 있나요? 공간이 생기게 됩니다. 이 공간을 채우면 하늘과 땅은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하늘과 땅의 공간을 채워서 하나를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장에 기록된 말씀들은 하늘과 땅을 채우는 일들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 내용들을 잘 보시면 먼저는 구별하시고 둘째는 채워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에서 창조라는 개념은 하늘과 땅이 하나로 연결되어지지 않으면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일을 행하시고 난 다음에 괄호로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로 써놓았는데 그 단어가 “플레로 = 채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면 창세기 1장에서 하늘과 땅을 채워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이 무어냐면 한글성경으로는 보기 힘든 단어인데 히브리어로는 “바요메르”라는 단어입니다. “바요메르 엘로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봐예히 켄” 그대로 되니라.. 자 그렇다고 한다면 하늘과 땅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어떤 것만 채울 수 있나요? 하나님의 “말씀만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깨달아진 말씀만 채워지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여러분 안에 채워지게 되면 그것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가시죠?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땅 와서 행하신 모든 말씀들이 하늘과 땅을 채우는 모든 사건들을 말하는것 입니다. 그럼 1장 1절에 나오는 하늘과 땅이 옛 하늘과 옛 땅이냐? 계시록에 있는 하늘은 새하늘과 새 땅이냐? 어떻게 생각되나요? 따로 따로 있나요? 아닙니다. 옛 하늘, 새 하늘이 이런 말들은 우리가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나누어서 설명해 주는 것 뿐입니다. 사실은 하나입니다. 이미 창세기 1장 1절에 하늘과 땅에는 처음과 완성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 에트를 중심- 원문으로 – 오트 표적이라는 단어에서 왔다 )) 하늘은 인식으로 땅은 수용이라는 의미
그러나 이 옛 하늘과 옛 땅은 반드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하늘과 땅을 상대적 개념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성경이 왜곡되기 시작합니다. 오류투성이, 오해투성이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 1장 1절을 통해서 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한 마디면 다 끝난 것입니다. 더 이상 뭐가 필요합니까? 하나님에게.. 그쵸? 그런데 육에 속한 인간들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릅니다. 그 한 마디 말씀 가지고는 알 수 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장 2절부터 2장 3절까지 하늘과 땅에 대한 설명을 풀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에서 또 끝내야 하쟎아요. 그래도 모르니까 2장 4절부터 말라기까지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속에는 하늘과 땅을 채우기 위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져 있는 내용입니다. 그 뜻을 예수그리스도가 와서 성취하기 때문에 신약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눅 24: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그래서 구약과 신약으로 나뉘게 되니까 구약은 폐하여지고, 신약만 세워지는 것이냐? 그렇치 않습니다. 구약 속에 신약이 들어있고, 신약 속에 구약이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언약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하나를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 하나를 왜곡시켜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왜곡시키나요? 둘로 왜곡시켜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전체는 무슨 이야기입니까? 창세기 1장 1절 하늘과 땅을 하나로 채워가는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어떤 성경은 역사로, 어떤 성경은 시로, 어떤 성경은 묵시로 기록해 놓았지만 거기에 나타난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 천지를 창조했다는 것이 우리 모두의 신앙고백이 되어야 하고, 우리가 이루어야 할 것이고, 육신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전부라는 것을 이 한 구절에 다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 1절이 성경에 전부입니다. 그렇게 해서 7곱째 날의 하나님이 안식에 들어가면 끝나는 거잖아요? 더 이상 뭐가 더 필요하겠어요. 하나님이 안식하면 그것으로 성경은 끝나야 되잖아요? 그쵸? 그런데 그 안식을 또 2장 4절부터 풀어서 노아까지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을 모르니까.. 그들이 생각하는 구약의 안식의 의미는 “일 안하면 된다, 아무일도 하지 마라, 땀 흘리면 안 된다. 집에서 쉬어라. 2km이상을 걸어 가지마라” 이렇게 지키고 있으니까 그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안식이 아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4장에 안식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 제 석사 논문 )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 등장하는 하늘과 땅이라는 것부터 둘이라는 상대적인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둘이라는 개념은 상대적이지만 짝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좋은 의미입니다. 그러면 이 둘이라는 개념이 왜 등장했는가? 하나라는 것을 잘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손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면 잘 모르니까 손바닥을 이야기하고, 손 등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을 듣고 손, 손바닥, 손등 이렇게 셋으로 나뉘어버리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왜 그러죠? 이것이 언어의 특징입니다. 아 다르고, 어다르는 것이 언어의 특징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조심해야 할 것이 눈에 보이는 글자, 언어에 매이면 안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하늘과 땅이라는 글자에 속아 넘어가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늘과 땅은 하나로 보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어떤 곳인가요? 하늘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고, 땅은 누가 있나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이렇게 구분되어집니다. 그런데 이것을 글자 그대로 보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 다르고, 인간이 거하는 곳이 다른가요? 이렇게 해석하면 큰일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에 오니까 하늘에 거하시던 그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나요?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디에 거하나요? 하나님 안에 거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늘과 땅이 하나된 것 맞죠? 그래서 하늘과 땅은 나뉘어지면 안됩니다.
구약은 나누는 거라면 신약은 하나로 모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준이 낮은 종교일수록 신과 인간을 분리시킵니다. 그리고 신은 거룩하고 찬양 받으시고, 우리는 죄인이고, 평생 죄인이고, 끊임없어 거리를 만들어 놉니다. 그러면 신은 더 거룩해지는 것이고, 인간은 더 작아지고 둘의 사이가 갈수록 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항상 신을 의지해야 하는 대상이 되어 버리는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고요!
그런데 성경은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그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는 그런 사랑 아닙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사랑 아닙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나올 때 함께 나오는 것이 하늘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우리는 땅에 있고 그러니까 하나님과 사람이 만날 수 있나요? 없습니다. 그러니까 솔로몬이 성전을 지어놓고도 뭐라고 말하나요?
대하 6:17 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는 주의 종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 6:18 하나님이 참으로 사람과 함께 땅에 계시리이까 보소서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이오리이까
하나님이 어떻게 이 땅에 계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통해서 보면 우리와 하나되게 하옵소서가 예수님의 기도 제목입니다. 우리가 만사형통하고, 복받고, 돈 많이 벌고, 잘살고 이런거 기도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내가 하나되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하늘과 땅이 하나로 이어져야 됩니다. 그럼 성경 어디에서 하늘과 땅이 이어지나요? 구약에서는 창세기 28장에 야곱의 꿈속에서 등장하고 신약에서는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만날 때 등장합니다. 구약에서는 사닥다리 위에 천사가 오르락 내리락으로 등장하고 요한복음에서는 인자로 등장합니다. 인자는 누구인가요? 에수님은 다 알죠!
성경에서 말하는 인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를 “인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인자는 하늘에서 내려 온 분이기 때문에 하늘로 올라갈 수 도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예쑤님이 하늘과 땅의 중보자입니다. 그러면 예쑤님만 그런가요? 그러면 예쑤님이 한 번 와서 그렇게 하고 갔으면 끝나야 되는데 사명을 주고, 자기의 짐을 지라 그러고, 배우라 그러잖아요! 인자라고 하는 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열매가 되어진 자들을 의미합니다. 그런 인자들이 오르락 내리락 합니다.
구약에서는 사닥다리에 누가 오르라 내리락 하나요? 천사들이!! 구약의 천사들은 신약에서 누구를 의미하나요? 말씀을 전하는 자들을 천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들을 곧 인자라고 이야기하는 것이구요. 그러니까 지금 이 시대에서 여러분들이 인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오르락 내리락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창조의 완성이고,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되지 못하고, 분리되어 확고한 상태로 있는 것을 뭐라고 말할까요? 이것을 땅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땅은 강팍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육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땅은 하늘하고 분리되어 혼자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원문으로 하늘은 물이있는 곳이고, 땅은 물이 없어서 확고한 상태로 있따.
그래서 하늘과 땅이 떨어져 있는 이 공간을 성경에서 뭐라고 말하는가 보니
눅 16:26 그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늘에 부자는 음부에 있는 상태죠? 아브라함이 부자에게 물 한 방울을 주고 싶어도 줄고가 없어요? 왜죠? 하늘과 땅 사이에 건너갈수도, 건너올 수도 없는 영원한 공간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시 73:9 그들의 입은 하늘에 두고 그들의 혀는 땅에 두루 다니도다
입은 하늘에 있고, 혀는 땅에 두루 돌아다니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73편의 주제는 악인의 형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악인들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입과 혀가 서로 다른 말을 일삼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로 있지 못하니까 입 따로, 혀 따로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에서 세상사는 이야기해도 좋아요! 아무렇치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다른 교회목사님들이 하는 말에 궁금해서 물어보고 질문하는 것은 좋은데 마치 그 말씀이 맞는 것처럼 저에게 이야기 하지 마세요! 교회에서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뭐 때문에 힘드나요? 사람들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에 서로 싸우잖아요! 내 말 안 들어주면 섭섭하고, 섭섭하니까 흉보고 흉보면서 거짓말섞어서 말하고.. 은혜를 말하는 교회에서 왜 싸움이 일어나나요?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입니다.
또한 하늘에는 뭐가 있나요? 해 달 별이 있습니다. 이것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만군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만군의 여호와라고 말하죠? 이때 이 만군이라는 단어가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을 이야기 할 때 이 한 단어로 이야기합니다.
신 4:19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
그러면 하늘에 있는 해와 달과 별을 왜 거기에다가 만들어놓았을까요? 땅에 비추라고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다른 거 없습니다. 땅을 비쳐야 합니다. 이것들은 광명들입니다. 자기에게 있는 빛을 비추는가를 설명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해 달 별을 중심으로 이것을 섬기는 우상숭배자들이 나오게 되는 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우상의 개념을 크게 두 가지로 이야기한다면 첫째는 눈에 보이는 것 그 자체를 섬겨버리는 것을 우상이라고 말하고, 두 번째는 인간의 한계를 넘는 초월적인 것을 섬기는 것을 성경은 우상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그 볼 수 없는 그 진리를 깨달으면 우상숭배를 끝내는 것입니다. 지금 교회들은 이 둘을 다 섬기고 있죠? 인간의 한계의 넘어에 있는 그 분을 잘 섬기기 위해 눈에 보이는 것으로 열심히 섬기는 상태잖아요!! 틀리나요? 이것을 성경에서는 일월성신을 섬겼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일월성신이 어디에서 나오나요? 바벨론에서 등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벨론을 그렇게 싫어합니다. 왜요? 점성술을 믿으니까요!! 그들은 하나님의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입니다. 근데 이것보다 더 하쟎은 우상숭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것을 열심히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는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반면 땅에는 육적 인 존재들인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하늘속한 자와 땅에 속한자가 등장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디에 속했나요? 가운데? 우리의 신분은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하지만 육은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은 너희들이 비록 땅에 살고 있지만 하늘의 속한자의 형상으로 살라고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롬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그래서 이렇게 살다가 우리의 육신의 삶이 끝나면 하늘에서 내려온 그대로 우리도 올라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다가 올라가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늘로 올라가는 길이 막혀있기 때문에 예수가 와가지고 그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예수는 그 길을 어떻게 올라가는지를 샘플로 보여 준 것이고, 그럼 우리도 이제 그 예수가 올라 가신것 처럼 올라 가야 하는 것이구요!!! 그래서 예수를 인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서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는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말씀만이 하늘과 땅을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 28: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하늘에 보고가 있습니다. 보물창고입니다. 이것을 털어야 하는데.. 그쵸? 저것을 털어야 근심 걱정없이 잘 살수 있을 텐데... 거기에 뭐가 있나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있는것이 아니라 그 내용물을 보니까 비가 있구요. 이슬이 있구요. 복이 있구요. 불이 있구요. 천둥이 있구요, 번개가 있구요. 뇌성이 있고 이 모든것들이 하늘에 있는것들입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 사람들이 하늘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 한 것입니다. 진짜 그런게 있지 않쟎아요!! 그래서 노아의 홍수사건 때 보면 하늘에 창을 열었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진짜 하늘에 창문이 있나요? 아니잖아요.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뭐죠? 말씀입니다. 이슬도 말씀입니다. 불도 말씀이구요. 번개, 천둥 이 모든 것들이 말씀을 의미하는 것들입니다. 뭐 다른게 있는 것이 아니구요!
그런데 똑같이 하늘에서 내리는 비라고 할지라도 땅에 있는 사람에 따라 달라 진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홍수사건을 통해서 보면 노아에게는 물이 구원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비가 되는 것입니다. 물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바닷물인데.. 여러분 바다에서 아무리 목마르다고 바닷물 먹으면 어떻게 되나요? 죽습니다. 지금도 인터넷에 보면 설교의 홍수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갈입니다. 그래서 그 물이 어떻게 하나요? 코로 기식하는 모든 존재는 다 죽여버립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 비를 받아들이는 땅이 좋은 땅이면 거기에서는 열매가 나옵니다. 열매는 어디에 넣나요? 하나님의 창고에 들어갑니다. 하나님의 창고가 어디에서 나오나요? 그래서 말라기에서는 하나님의 창고에 양식이 있다고 그러죠? 그 양식이 곧 십일조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늘에서 내린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린 것중에 그때만 좋은것 이 있습니다. 뭐죠? 만나입니다. 이것은 그때만 좋습니다. 근데 이것만 먹으면 죽습니다. 광야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습니다. 만나를 누가 주셨나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근데 이것 먹고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분들이 성경구절 보내고, 말씀구절 문자로 보내고 액자하고 그러는데 그런게 다 광야에 만나와 똑같은 모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이 친히 축사하고 물고기과 떡을 나누어먹었어요. 그런데 그거 먹고 다 죽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하늘에서 뭐가 내리나요? 불이 내려옵니다. 그 불에 의해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이구요! 반면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공의를 내립니다.
호 10:12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의를 비처럼 내리리라. 소돔과 고모라는 비가 불처럼 내린 것이고, 호세아에서는 공의의 비로 내리는 것입니다. 진짜 하늘에서 그렇게 불과 비로 나누어서 내렸을까요? 아닙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동일한 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땅이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불이 되기도 하고, 물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것을 받아들이는 땅, 사람에 따라서 누구는 심판으로 받고, 누구는 구원으로 받는 것입니다. 무엇을요? 하나님의 말씀을요!! 노아에게는 구원의 비지만,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비가 된 것처럼!!
땅은 반드시 하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