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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y 6(금) :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Agent 사무실에 가서 전화를 신청했으나 불통이다. 내일 다시 기대를 걸어보자. 서로의 심정을 너무나도 알 길이 없으니 도무지 편지도 쓰여지지 않는다. 벌써 4일째 아무 것도 못했다. 오후에 버스를 타고 Invecargil 시내를 둘러보다.
July 7(토) :
두 번째로 시도한 전화도 실패다. 다시 No.3 Warf로 이동. 월요일부터 적하를 시작한다고 했다.
July 8(일) :
밤 8시에 조리사 金在泳군이 도착. 그러나 소식은 없었다. 보낸 책들이 유일한 낙이 되겠다. 일요일은 마당의 개도 쉬는 날인가 보다.
1978 July 9(월) :
전화 통화 성공하다. 그러나 너무도 실망이 크다. 무엇인가 일이 잘못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실의에 빠져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를 향한 것인가? 편지 매듭 지워 띄우긴 했으나 개운한 기분이 아니다. 적하를 다시 시작. 기어이 Persian Gulf로 가야 하는가 보다. 갑자기 지루해진다. 샴푸, 치약, 칫솔과 비누 등을 사다.
July 13(금) :
선용금 $5,000 수령. 아울러 POB와 각종 수당을 지급하다. 대사관에 공산권 기항 허가서 우송하다. 다시 편지 쓰다. 아무래도 마음이 안정돼지 않는다. 도중에 그만 둔다는 것은 내 자신에게 패배하고 마는 것 같아 내키지 않는다. 아무튼 아내를 위로하고 따뜻하게 감싸줘야 한다. 지금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July 14(토) :
이른 새벽부터 짖궂은 비가 하루를 망쳤다. ETD가 또 늦어진다. 어서 떠나고 싶다. 내가 움직여야 세월이 따라 움직이는 느낌이다. 꼬박 4일째 삼국지를 읽다. 책 자체가 싸구려라 그런지 별로 실감은 없다만 그간 내 번민을 앗아가는 유일한 殺煩濟가 됐다.
July 15(일) :
다시 일요일. 종일 비가 오락가락한다. 우선 날씨가 지겹다. 위도에 비해 날씨가 푸근하고 얼음이 얼지 않는다. 한 겨울인데도. 매일 달력을 쳐다보는 회수가 잦아진다. 신동아의 ‘얼굴 없는 효자’ 문구가 자못 감동적이다.
July 16(월) :
기관장과 함께 Gore까지 버스로 가보다. 끝없이 펼쳐진 목장. 그리고 조그만 학교들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양, 소 그리고 사슴 떼들. 비를 맞으며 밤 9시경 귀선하다.
July 17(화) :
다시 편지를 띄운다. 사진을 넣어서-. 유상덕, 김성한 김해상 그리고 양종원 제군들에게 엽서 한 장씩을 보내고 Bluff 학교를 구경하다.
July 18(수) :
16:00 드디어 출항하다. 일본의 Sakai 출항시와 마찬가지로 심한 비바람이 더욱 기분을 울적하게 한다. 계속되는 불면증이 신체적으로 영향을 주는 듯하다. 편지나 한 장 와 있을라나?
July 19(수) :
03:00 Timaru 외항도착. 07:00 No.1 Warf에 접안. 즉시 적하 시작. Wellington 대사관에 직접 가기로 하다.
July 20(목) :
12시 출발. 버스로 Christchurch까지 가서 거기서 비행기로 N.Z의 수도 Wellington으로 가다. 대사관에서 허가서 받고 다시 Tauranga로 가서 김진영 형을 만나고 그 집에서 하룻밤을 묶었다. 많은 것을 느꼈다. 완전히 현지 사람이 됐다. 어린애가 없는 적막함이 너무나 실감적이다. 그 부인의 심정에 충분한 공감이 간다. 넷 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단다.
July 21(토) :
김 형의 만류가 심했으나 부득이 한 일. 07:15시 다시 출발. 웰링턴에 나와서 프로펠러식 경비행기로 오후 6시에 귀선하다. 웰링턴에선 한국어선 대황호와 제6칠보산을 만나다.
July 22(일) :
오후 공원 운동장에서 축구 시합을 하다. 온 전신이 휘어지듯 이 포근하고 좋은 기후와 환경이 너무 부럽다. 한국이 중복으로 한창 더운 날씨가 이어질 때지만 여긴 한 겨울이다. 전화했으나 없었다. 큰집에 갔다고 -. 못내 서운하다 $9을 날린 기분이다. 차츰 회복을 하는지?
July 24(화) :
Oil Berth로 이동. 오후 출항 예정이었으나 다시 변경. 며칠을 더 있어야 한단다. 200여톤을 더 실어야 한단다. 편지 그리고 Ocean Carriers에 6월달 보고서를 띄우다.
July 25(수) :
저녁에 3/O와 시내 Pub Bar 서너 군데를 들러가면 한 잔했다. 모처럼이다.
July 26(목) :
애들 책을 우송하다. 책대 $6에 우송료가 $9이다. 책 자체 보다도 내 기분을 전한다. 그리고 항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주었으면 싶다. 이곳 Pionier Hall(박물관)을 구경. 별 것은 없으나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가꾸는 것을 배울만하다. 견학 겸 현장학습을 하는 고교생들이 인상적이다.
July 27(금) :
하역 시작. 내일쯤은 출항이 되겠다. 정이 들었다고 할까. 이곳 N.Z. 막상 떠나기가 서운하기도 하다. 한 번쯤 와서 살아보고 싶기도 한 곳이다. 모처럼 Disco를 이곳 묘령의 아기씨와 즐기며 얼큰하게 취했다. 금요일과 토요일을 즐기는 이곳 사람들의 풍습이 아름다워 보인다. 특히 중년이상의 부부들끼리가 정겹다. Pub Bar에서 피아노 치던 50대 주부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July 28(토) :
12시 출항. 엊저녁 마신 술에 속이 쓰리다. 역시 안 마시는 게 좋으련만-. International Seafare(국제선원회관)의 그 늙은 할머니에게 인사나 드렸으면 좋으련만 -. 갈 길이 멀다. 그리고 지루하다. 마누라 생각이 여늬 때 보다 많다. 울렁거리는 감각이 새삼스럽기까지 한다. 물길이 곱길 바랄뿐이다. 종일 멍하니 보냈다. 내일부터 다시 제 Face를 찾아야 한다.
July 29(일) :
왼통 놀아버린 7월이다. 그러나 New Zealand라는 나라에서 받은 인상은 짙다.
July 30(월) :
예상외로 평온해 준 Tasman Sea. 밤 9시경 Band Strait를 항과하다. 아직도 멍한 생각이 종일을 덮어 누른다. 내일부턴 다시 해상이 거칠어 질 것 같다.
July 31(화) :
예상보다 빨리 닥친 황천. 08:00시경 King Is.를 항과. 거센 서풍과 굵직한 남서 Swell이 뒤죽박죽으로 흔들어 댄다. 종일 누워서 보냈다. 내 한 몸뚱아리도 가누기가 힘들다. 밤 10시부터 다소 멎은 바람. 그러나 계속 높은 너울(Swell) 때문에 定針도 못한 체 서쪽 가까운 쪽으로만 밀어붙였다. 유난스레 지루하고 집 생각이 난다. 왠만한 자극이 듣질 않는다. 근 200일 가까운 금욕이 이상을 유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7월도 간다. 어서어서 가거라. 그렇게 느낄 수 있게 되는 지금이 가장 유일한 오늘뿐이다. 남은 5-6개월이 지겹기도 하고 금방 닥쳐오고 지나가 버릴 것도 같다. 내일부터 정상을 찾아야지-. 출항 후 벌써 몇 번째의 다짐인지도 모르겠다.
Aug. 3(금) :
08:00 Australia의 남서단. Leenwin P't를 항과. 북서로 방향을 잡다. 1일 아침부터 평온해진 바람. 그러나 남쪽으로부터의 길고 큰 너울이 아직도 Rolling을 심하게 한다. 이제부터 여름이 성큼 성큼 닥아 올테지-. 짧은 옷으로 바꾸고 실내 Ventilator(환풍기)도 소재를 했다. 일본 소설, 영어 동화집 등이 의외로 시간을 잘 앗아가 준다. Next Voy는 아직도 Fix 되지 않았다는 Telex를 밤늦게 받다. 아마도 다음 항차는 NYK(日本郵船)에서 맡을 모양이군. 오후 갑자기 Eng. Stop했다.
Aug. 4(토) :
밤새 이상한 악몽에 가위 눌리다. 몹시도 언짢은 하루다. 집에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닐까?.
Aug. 6(월) :
오후 4시경 Cocos섬을 지나다. 계속되는 순풍. 적도직하의 저기압이 염려스러우나 아직은 아무런 징후를 보이지 않는다. India 남단까지 1700마일(약 3,100km). 3일 반의 항정이다. 흰 파도가 꼬리를 물 만큼의 풍력이지만 약간의 橫搖(Rolling)가 있을뿐 쾌조의 Condition으로 순항이다. 먹고 자고 하루를 보내는 데도 극히 우량아적이다. 단 한가지 그것만 빼고는 -.
Aug. 8(수) :
네 번째로 적도를 넘나든다. Indian Ocean에서는 처음이다. 너무 덥다. 적도지방 특유의 무더위가 덮친다. 모처럼 그나마 겨울에서 바로 맞은 탓이기도 하다. 그저 참선하는 기분으로 Air con 밑에 앉아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땀구멍이 한꺼번에 터진 느낌이다.
Aug. 9(목) :
적도제 끝에 쬐금 마신 2급 Whisky가 질이 안 좋은가 골치를 아프게 한다. 시껄한 일본 소설들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무엇이든 시간을 잊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 5일 남았다. 오늘 밤 자정쯤은 인도대륙 끝에 접근한다. 역시 처음 가는 길. Persia灣이라 긴장을 더욱 죄인다. 무사고!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Aug. 10(금) :
강한 편서풍에 심한 로링을 겪다. 남은 3일간이 고역이겠다. 덥기 시작한다. 이제는 무더위가 잦은 소나기. 눅눅한 기분이 진득진득하게 달라 붙어 온다.
Aug. 12(토) :
연 3일째 흔들리고 보니 눈알이 뱅뱅돌고 몸이 저절로 흔들흔들한다. 왠 세상이 모두 흔들거려 보인다. 모두 제정신들이 아니다. 후끈한 더위가 더욱 사람을 미치게 한다. 자정 경에 겨우 예맨 동단의 육지를 Radar로 contact하다.
Aug. 13(월) :
오후 3시 Oman Gulf의 골목을 들어서다. 마치 호수 같은 해면. 그러나 외기는 뜨끈하다. 부연 황사현상이 안개 같이 깔렸다. 앞이 흐리다. 이 더위에 익숙해지려나. 그저 바깥은 나가지도 말아야겠지!
Aug. 14(화) :
12:30시 Shattal Arab 외항에 닻을 던졌다. 60여척의 선박들이 대기중이다. 작년의 Lagos 외항을 연상시킨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꼬? 바깥은 34도의 폭서가 사람을 꼼짝 못하게 한다. ‘아파프라스호’ 역시 한국선원들이 승선. 운반선인 모양이다. C/O가 통화를 했다. 17일간을 Waiting하고 있다는군. 출항 후 처음으로 전원 집합 입항에 따른 주의사항은 전달하다.
Aug. 15(수) :
광복절. 이발하다. 좀 더 Short Cut로 했다. 한결 시원한 감이 없지 않다. 청수 절약을 Order하다. 아무래도 오래 있으면 물이 필수적인 짐이 된다.
Aug. 16(목) :
부연 황사가 왼통 범벅이다. 이제 이틀짼데-. 큰일이다. 대아에 타전. 집에서 묻더래도 알고는 있어야지. 시간을 잊을 만큼 바삐 돌아가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실내와 실외 기온의 차이에서 오는 탓인가 몸이 이상하다. 더운 곳에서 지나친 냉방이 해로운 것이리라. 집안 소식이 궁금하다. 넷째 녀석이 이제쯤은 싱글 벙글 웃을텐데-.
Aug. 22(수) :
희멀건 황사 속에 지고 세는 날들이었다. 금주내로 Berthing 할거라는 Cold Reefer와 Maragent의 짧은 cable이 있었을 뿐이다. 정말 아까운 세월들이다. 시원스레 항해라도 했으면-. 싫은 파도가 있드래도 활기가 있는데-. 기관이 죽은 배는 마치 끈 터진 뭐 같이 맥이 없다. 9월 10월이 고비다. 방학도 다 돼 갈건데-. 별고들이 없는지? 자꾸만 더해가는 마누라 생각. 그리곤 M! 깊은 심연! 아니면 저 무한한 공간 속으로 아주 깊숙히 빠져들어 가고만 있는 것 같다. 허황한 꿈들이 깊은 잠을 설치게 하고 찌부득한 눈꺼풀로 날을 밝히는 나날들이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가? 다음 항차라도 정해졌으면 벌써 마음과 시간은 거기까지 가 있을 터인데-. 씨팔놈들!
Aug 25(토) :
OLB-2 김종을에게 온 개인 전보. 마누라가 가출했다는 것이다. 남의 일 같지만 않다. 그 내용을 깊이 알 수는 없지만 맡겨두고 온 Wife의 역할이 다시금 Seaman들에게는 얼마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며 귀중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느끼게 한다. 중간 귀국을 내게 종용해운 아내의 심정이 곧 그것일 것이다.
Aug. 27(월) :
입항한지 2주째다. ‘금주내’ 하던 것이 이렇게 왔다. 기약 없는 기다림이련가? 기운차게 달리던 배. 거센 파도를 타고 넘는 것은 곧 세월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하루가 무섭게 지나가면서도 시간을 의식해야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마음 자체가 멈춰서 있다는 것이 아닐까? 또 몇 척이 입항하고 출항을 한다. 어서 움직이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지금이다. 설치는 잠. 예고 없는 다음 예정 등이 더욱 심란함을 북돋운다. 편지라도 받고 싶다. 한동안 연락이 없어 걱정들을 할 것이다.
Aug. 28(수) :
‘Lilac'과 교신하다. 이광표 선장에 박흥국 기관장 Team이다. 역시 Anglo를 통해 나온 八馬汽船(하치우마)인 모양이다.
Aug. 31(금) :
오늘이 네째 은영이의 100일이다. 이 심정을 누구에게 풀 수 있을까? 모두가 내 탓인 것을-. ‘Lilac’ 본선 부근에 Shifting 해오다. 그리고 Capt. 와 C/E가 방선. 간단히 한 잔 했다. 이 선장의 얘기 속에서 많은 것을 느낀다. 사람이 살아가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것은 그 개인만이 갖는 독특한 개성에 따르는 것일 것이다.
8월이 간다. 하루하루를 무사히 넘기는 것, 그리고 하루가 가는 것을 느끼는 것이 유일한 낙이기도 하다. 새로 갈아 단 달력의 그림들의 크다란 변화와 분위기를 달리해주는 것이다. 10월까지 두 달을 쉬이 넘기면 나머지 석 달은 절로 갈 것만 같은 기분이다. 차츰 지루해져 간다. 작년 겨울 장염이라든 증세가 요즘 재발하는 느낌이다. 살금살금 아파 오는 아랫배가 신경을 건드린다. 먹든 약도 다 되간다. 한 통쯤 더 받았으면 -.
Sep. 1(토) 1979 :
‘Lilac' 방선. 모처럼의 해상 외출이다. 덥다. 그것뿐이다.
Sep. 6(목) :
12일을 기한으로 DO/FW(연료유/청수) 수배를 타전하다. 그들의 cable에 의하면 아직도 일정이 확정되지 않고 있다. 무엇인가 이상한 느낌도 있다. 送貨人과 受貨人 사이에 뭔가 있는가? 꽉 막힌 이 벽을 시원스레 뚫어줄 게 없을까? 고독을 맛본다. 너무 잦으리 만큼 떠오르는 마누라 생각. 집 생각. 그리고 그놈의 짖까지-. 영 죽을 맛이다. 세월이 그냥 가는 것이 아니라 썩어 가고 있는 느낌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그 의미를 이해 할 것만 같다. 불면의 밤이 차츰 늘어간다. 아랫배 그리고 왼쪽 어께의 통증이 심해지는 것 같다.
Sep. 8(토) :
C/K 김 군과 G/B 장 군사이의 싸움이 몹시 기분을 상한다. 차츰 선원들에게도 스트레스가 차 올라 온다는 증거일 것이다.
Sep. 10(화) :
죽을 맛이다. 왠놈의 Agent가 답신이 없나. Agent Bost와 연락하여 급수, 급유를 의뢰하다. 이놈은 사회주의라 개인이 아닌 국가 경영체제임을 일깨워 준다. 바짝바짝 줄어드는 MDO와 청수. 언제쯤 여길 벗어나려나. 미치고 환장한다. 작년초 Lagos의 재탕이다. 개새끼들! Waiting 한다고만 했어도 이렇진 않았을 터인데-. 먹고 지내야 할 식료품이 가장 큰 문제다. 여기서 어쩐다?
Sep. 11(화) :
Lilac 방선. 쌀이 나마 약간 구하다. Bunkering MDO 35톤을 청구하다. Agent의 Order 없이 해준다는 것이 이상하다 면 제들 끼리야 무슨 약속이 있겠지. 우선 한시름 잊었다만. 장・김 두 명에 대한 선내 징계위원회 개최 및 이번 항차를 마칠 때까지 협조와 긴장을 풀지 말 것을 주의하다.
Sep. 13(목) :
계속되는 불면증세로 머리가 무겁다. 낮에는 의외로 깊은 잠에 떨어졌다가 아내의 강열한 입맞춤에 가위가 눌리다. 무슨 일이나 없는지? 무척 궁금해 할 것인데-. 대아에도 내일쯤 전보라도 쳐두어야겠다.
Sep. 14(금) :
FAO Control과 교신 3일만에 FW(청수) 150톤을 받다. 다행이다. 먹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바싹바싹 간장을 말린다. Owner로 부터도 염려 담긴 전보를 받다. 아무 것도 안 되는 요즘이다. 그간 그래도 쉬지 않고 영어책을 뒤진 것이 한결 VHF로 통화하기가 수월함을 느낀다. 여기 열사(熱砂)의 바다 한가운데 닻을 내린지 한 달이 된다.
Sep. 15(토) :
오후 2시경 S. A Pilot에서 부르는 소리가 그처럼 반가울 수가 없다. 하늘의 복음이 이처럼 반가울까? 오후 4-5시 사이의 예정이 결국 8시가 되어서 Pilot 승선. 밤을 세워 강을 타고 오르다. 메소포타미아 평야를 가로지르는 두 개의 유명한 강, 티그리스와 유우프라테스강이 합류되어 페르시아만으로 흘러들어 오는 강인 사틀 알 아랍강이다.
Sep 16(일) :
10시 접안. 즉시 양하를 시작했으나 No.4 Hatch의 Cargo Damage는 눈앞을 캄캄하게 했다. C/O의 상식 이하의 잘못 탓이다. Hatch Coaming에 꽉 차도록 실었으니 윗부분은 상할 수밖에 -. 그 뜨거운 일광을 근 한 달이나 받는 곳인데-. 그러나 우선은 뚫고 나가야 한다. 썩은 것을 골라 본선 냉장고에다 긴급 처치했다만 앞일이 걱정이다. 편지 찾다. 그러나 너무 바보스럽고 고맙고 미안스럽다. 딸을 낳은 데 대해 그토록 타격이 크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Sep. 17(월) :
C/E와 Port Office에 가다. Sea Protest를 만들기 위해서다. 우선은 부딛치고 볼일이다. 설상가상으로 Cholera Vaccination(콜레라접종)을 했더니 온몸이 열로 펄펄 끓는다. 밤새 열병을 앓은 셈이다. 계속 검사 수배하다.
Sep. 18(화) :
식욕도 없고 어질어질하다. 새벽엔 설사까지 했다. 심한 갈증마져 든다. 정작 코레라가 바로 걸린 것 같기도 하다. 오후 다시 Cargo 검사. 한 줄을 더 걷어서 No.3 Hold Doctor Room에 보관하다. 일단 내일부터 N0.4 Hold을 양하하기로 교섭에 성공하다. 한결 마음이 놓인다. 다만 이 Damage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문제다. N/R ship이(본선 책임없음) 우선적이다. Mr. 三井와 小池 사장의 아꾸랑한 눈과 새초롬한 눈빛이 떠오른다. 제기랄.
Sep 19(수) :
더운 날씨에 심한 황사 바람이 분다. 각 Hatch마다 뜨거운 바람이 그래도 들어간다. 특히 1. 2. 4번을 Hatch Cover가 마치 돛을 달아 바람을 유도하는 것과 같다. 오후부터 No.4 Hold부터 양고기가 녹기 시작한다. Doctor란 녀석의 얄팍한 속셈이 뵈는 듯 하다.
Sep. 20(목) :
어제보다 더 심한 바람에 앞이 안 보인다. 11시 No.1과 2번의 녹은 것 때문에 말썽. 수취거부해오다. 이것은 불가항력이다. 설명이 통하지 않는다. 죽을 지경이다. 본선측에서 작업을 Stop 시켰다. Surveyer가 인정을 한다. 고맙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이 되질 않는다. 일본에 전화하기 위해서 우체국엘 갔으나 이미 집무시간이 넘었다. 오늘이 여긴 토요일이란다. 그렇지 금요일이 아랍권에서는 일요일이니까? 오랜 시간 Consigner측과 싱강이를 벌였으나 차츰 그들의 무지(無知)라기 보다 국가체재에 대한 이해가 떠오른다. 국가의 화물, 책임회피, 그리고 검사관과의 감정까지 곁들여 더욱 악화된다. 일찍 No. 4에서 약간 녹은 것을 C/O가 미리 들어낸 것이 더욱 부채질을 한 모양이다.
Sep 21(금) :
다시 우체국에 가서 타전하다. 온도 점검 결과 19일과 20일 오후에 바람의 영향이 너무 컸다. 거기다 Fan까지 돌린 것이 역효과를 낸 것 같다. 아무래도 순조롭지 않을 것만 같다.
Sep. 22(토) :
오후 11시 다시 수화주 측에 상태가 양호함을 통지. 그러나 Cancel당하다. Head Office의 지시를 기다린단다. Doctor(수의사)란 녀석의 짓인가 보이기도 한다.
민도가 낮은 국가에서의 그 알랑한 자존심 그리고 우월감이 여실히 보인다. Doctor와 Surveyor와의 관계가 더욱 본선에 악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Doctor는 국가기관이며, Surveyor는 국가기관에서 인정하는 사설로서 외국과의 무역관계상 형식적 필요에의 해서 만든 것이므로 그 성질상 사회주의에서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Agent가다.
Sep. 23(일) :
Governer Director가 다시 내선. 점검. 그들 자신이 계약서를 모르는 모양이다. 엉뚱한 소리를 한다. 본선으로서는 그 이상의 답변할 사항이 아니다. 운송온도 -18도C 그리고 적하 전 온도 -4도C 인 것. All Cargo를 Cancel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다.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지 않는 곳이다. 저들만의 지꺼림이 몹시도 신경이 쓰인다.
Sep 24(월) :
08:00 C/E와 함께 Receiver측의 Basrah Office를 찾아서 수취거부의 확실한 이유를 문서로 해줄 것을 요구하다. 너무나 일방적인 처사에 영문을 모르겠다. 아무도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 Agent를 들러 귀선.
11:00 Doctor가 와서 Basrah 법원의 재검사 있다는 서신을 주고 간다. 아마도 법원에 제소를 한 모양이다. 날벼락이 아닌가?
13:30시 검사 받다. 아무래도 큰일임에 분명하다. 그들의 일방적인 설명하에 실시된 검사. 믿어주지 않은 우리들의 설명. 내일 결과가 통지된단다. 냉장선 운운. 운송온도 부적당 운운 등이 모두 그들 자신의 무지에서 초래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다만 아무래도 칼자루는 저들이 쥐고 있는 것이다. 불가항력이다. 이 더운 날씨에 조금도 녹지 않게 한다는 것은. 하나의 구실임이 분명하다.
Sep 25(수) :
Loading 전부터 시원찮은 기미가 결국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 아닐까? 도착 이후에도 계속 Waiting 한 것도 무언가 의심이 간다. 08:30 Agent 가다.
10:00 Doctor가 그들의 글씨로 된 결과서를 가져왔다. ‘Unfit for Humen Consumtion’(식용에는 부적합)이랬다. 일종의 사형선고인 셈이다. 이 화물에 대해서는-. P & I Club에서는 비교적 친절히 해준다만 어디까지나 피안의 불구경이다.
내일 아침 Shifting하란다. Bank Gurantee가 $3,000,000이란다. (CIF$1,850). Baghdad의 우리측 변호사 Mr. Sadiq에게 Telex하다. 도대체 Shipper측에서는 무얼하고 있는가?
Sep 26(수) :
06:00 전묘하다. 강 한가운데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고 분하다. 너무나 일방적이다. 얼마를 끌 것인가? 죽을 맛이다. 아득하기만 하다. 오직 바란다면 Owner측과 Shipper측의 즉각적인 행동과 대응조치 뿐이다. 결국 쫒겨난 셈이다.
Sep 27(목) :
조수에 따른 강물의 흐름이 바뀜에 따라 두 번이나 선저가 땅에 닿았다. (Bottom Touch) 설상가상이고 엎친데 덮친격이다. 미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
다시 Agent가다. Pilot를 수배 다시 옮겨줄 것을 요청하고 귀선하니 또 얹혀 있다. 그저 울고 싶을 뿐이다. 15:40 Pilot Najim이 승선. Tug의 도움을 받아 shfiting했다. 좀 나으려나?
Sep 28(금) :
다시 Bottom Touch. 문제다. 하루 이틀이 아닐텐데-. 해상강도도 있단다. Southern Crass가 몽탕 털렸단다. 이게 무슨 지랄이람. 눈이 따갑고 입맛이 쓰다. 쓴물밖에 안 나온다. 과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속 시원히 알기나 했으면 좋겠다. 내가 쫒겨 하선하는 한이 있어도 -. 아무도 이 심정, 이 상황을 모를 것이다.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도 없다. N.Z와 AS에서 세 사람이 온다는 연락이 왔다. 기대를 걸어보자. 애들 그리고 마누라의 모습이 떠오른다. 과연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Sep 29(토) :
다시 Agent. 그리고 Sea Protest를 제출했으나 계원이 없어 그냥 두고 오다. 과연 될는지? 정문 출입이 금지. Ocean Fresh와 전화 교신. Atlantic Albatros (Western Shipping사 소속))와도 교신 했다. 내 생각이 맞다. 녹는 것은 당연한 일. 저들도 인정하고 Receive하는 곳도 많다. 반면에 그걸 미끼로 수취거부하는 배도 있단다.
또 한가지. 접안했던 부두가 정식 Berth가 아니라 작업능률이 저조함으로 더 많은 양이 녹았던 것이다. 17:00 Lawyer Umam 그리고 Surv. Ramzi가 와서 측정하다.
Sep 30(일) :
11:40 AS. NZ에서 3명. 그리고 Consigner측의 검사관들이 와서 다시 Check하고 Sample을 채취해갔다. 무엇인가 자신이 있어 보이는 그들의 태도에서 다소 안도감을 얻는다. 15:00 변호사 Sadiq Jaafar 및 Surv. Ramzi 다녀가다. 뭣이 잘 되가려나? 물어봐도 자신들도 잘 모르겠다고 할 뿐이다. 답답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이 없다고 밖에 볼 수 없다. 더운 날씨. 뜨거운 일사하에 한 달이라는 장기 정박. 낙후한 시설로 인한 늦은 하역. 거기다 재수없이 불어닥친 19일 날의 열풍 등이 원인이다. 아니 Loading 전부터 있었던 말썽도 중요한 원인이 된 것은 아닐까? 희멀건 중달이 더욱 서글퍼게 보인다. 과연 300만불이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 배를 그만두어야 할 때가 된 것일까? Japan Reefer와 Ocean Carriers. 대아와의 관계. 용선자와 화주측의 치열한 책임전가에 대한 싸움이 있을 것이다. 지금쯤 Owner와 대아에서는 야단이 났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여기서 양하를 못하는 경우는 처참한 패배를 안고 떠나야만 한다. 불명예 제대를 의미한다. 오! 하나님 이 일을 어찌 하오리까?
Oct. 1(월) :
벌써 10월이다. 어떻게 세월이 갔는지? 그냥 뛰어넘어 가고 만 느낌이다. Agent 들리다. 한 장의 Telex라도 받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안과 초조. 썩어가는 식품냉동고에 있는 Damaged Lamb. 줄어가는 식량, 담배. 어느 하나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 없다. 저녁마다 도전해오는 해상강도 떼설이. 일우해운의 최 선장 일행을 Agent에서 만나다. 그저 運이다. 그 배는 내 배와 비교할 수는 없을 정도로 낡았고 시설이 부족하다. 그런데도 지금 그 배는 내가 처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상이다. 그게 이상한 것이다. 항만청에서 Sea Protest 내일 다시 오란다. 엿장수 마음데로다.
Oct. 2(화) :
일찍 다시 Agent로 가다. 우체국에서 Japan Reefer의 Mr. Mitsui와 통화. 자기도 자세히는 모른단다. 그래도 속이 다소 트인다. Port Office의 해난보고서 또 툇자. 3번째다. 계원이 없다나.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서 분전했으나 헛사. 누굴 믿고 누굴 상대로 일을 해야 한담. 청구한 L.O와 R-22 Freon Gas 현지에서는 어렵다는 Telex를 받다. 원래가 이런 곳인걸. 그럼 우린 어쩌란 말이냐. 현대건설의 조명호 대리를 우체국에서 만나다. Atlantic Albatros와도 접촉을 가진 모양. 다소 얼마라도 주부식을 구할 수 있었으면-. Lilac 입항. New Berth에 접안했단다. 왜 하필 나만 이 더러운 Fishing Jetty에 붙어서 이꼴을 당하는 고-.
1979 Oct. 3(수) :
P & I Surveyor Mr. J.H Parkhonse가 방선. All Cargo를 재검사하다. Cargo는 아무런 이상이 없단다. 오직 그 한 사람 담당 Doctor가 반대를 했기 때문이란다. Government Cargo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역시 그것이 사회주의 방식인가? 실상은 잘 알지 못하지만 권력의 구조, 보이지 않는 비밀경찰, 책임회피 그러면서도 비참한 서민들의 생활상들은 직접 보며 느끼는 것이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잘못 걸린 게 끝까지 풀리지 않는 모양이다. 차라리 P & I에서 물고 나머지 Cargo는 그들이 처치해 주면 좋겠다. 내 자신이 희생되는 것은 각오할 수 있다. 불가항력이라지만 그것이 내 水運인 이상 할 수 없다. Owner와 대아 그리고 전체 선원들에게 피해가 크지 말아야 할텐데-.
Oct. 4(목) :
Agent. 그리고 Notary Public(Port Office) 들러 4번 째만에 Sea Protest찾다. 변호사 Mr. Humam 만났으나 기대와는 다른 대답. Basrah(이라크의 수도)에서 양하 여부를 아직 정하지 못했단다. P & I에서 Bank Guarantee를 언제 지불할 지도 미정이랬다. Agent 담당자인 Mr. Abudali는 오직 한 길뿐이란다. 즉 수화주가 거절한 것은 확고부동한 일. 누가 물던 B.G를 빨리 물고 나가는 것이란다. 과연 누가 이 사실을 정확히 알고 애쓰고 있는지? 오늘 오후 London에서 Shipper측과 P & I 사이에 협의가 있다고 했다. Damaged Limb 처리가 문제로 부상한다. 여기서 양육하여 소각시키는 방법이 있단다. 개새끼들 죽어도 여기서는 안 된다더니 -. Atlantic Albatros를 방선하다. 해사 5기 출신의 선장과 해대 5기 황영택 기관장이다. 그 배도 우리와 같이 억류된 상태다. 먹고 살기가 쉬운 일이 아님을 절감한다. R-22 Freon Gas Owner의 Approval이 있어야 한다고 Telex하다.
Oct. 5(금) :
추석이다. 목 메이며 넘긴 아침과 점심이다. 둥그런 달이 왜 그렇게도 밝고 크게 보이나. 아내 아이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겹치고 떠오르고 사라진다.
Damaged Cargo에 대한 본선의 논의가 있었다. 정작 처리하기도, 그냥 두기도 곤란하다. Best는 어서 여길 벗어나는 것이다만. 며칠만 더 기다려보기로 결론. 개인에 앞서 공인으로서 책임감과 직책이 갖는 의미를 잊는 다는 것은 다소 고려해 보아야 한다. C/O의 경솔함이 자주 보인다. 좀 더 자중이 요구된다.
Oct. 6(토) :
9시경 Agent 들리다. Telex하나가 있다. 한결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결국 P & I에서 Charterer에게 B. G를 물라고 독촉하고 있단다. 그렇다면 본선의 책임을 벗어난다는 결론이다. 나의 협조에 감사한다는 Japan Reefer의 전보내용에서도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감지한다. 그렇게 되면 내 노고의 성과는 보답되어 지는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다음주까지는 결말. 그리고 떠날 수 있어야 할텐데-.
바그닷의 변호사 Sadiq에게도 연락하다. Ocean Fresh호가 마치고 내일 출항 한단다. 그 배는 Opening Survey도 없었단다. 참 신기한 일이다.
Oct. 7(일) :
시간이 무섭다. 어서 가라고도 또 머물러 있으라고 할 수도 없는 지경이다. 아무것도 안 된다. 그저 허망한 공허뿐이다. 아침 O/Fresh 출항. A/Albatros도 떠난 모양. 새끼들 먹을 거나 좀 팔고 가잖고-. 살번제로 읽는 묵은 잡지 속의 몇몇 소설과 ‘사형수의 미소’가 특징적이었다. 마치 지금의 내 처지가 꼭 감옥 같은 느낌이 든다. 과연 신을 믿는 것은 그 신 자체가 아닌 것인지도 모른다. 곧 자신의 마음인 것을-.
Oct. 8(월) :
연일 바람이 분다. 너무 큰 기대가 더 큰 절망을 안겨준다. 이제는 아무런 희소식도 슬픈 소식도 없다. 무엇이 잘 돼가는지,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가는지 알 수도 없다. 나이드신 C/E의 주름잡힌 얼굴에 한층 더 깊은 골이 져 보인다. 내 얼굴은 어떻게 달라졌고 또 어떻게 보이고 있을까? 답신을 한다던 날이 4일이 지났건만 묵묵이다. 그저 막연하기만 하다. 이 역사 깊은 강을 벗어나는 자체가 내게는 역사적이 될 것만 같다. 샤마니즘이나 종교가 이래서 시작되는 것일 게다. 온갖 허망하고 미움 뿐이다. Shipper와 Charterer가 B.G(보증금)를 거절했을지도 모를 일.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장기전이 되겠지. 원인을 더 깊이 생각하기가 싫다. 최선의 노력이 결여했다기보다 너무나 재수 없게 얽혀진 것이 많다는 생각이 왠지 더 많이 든다. 작은 애씀이나마 그 흔적을 남길 수 없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하루하루가 무섭고 너무 길다. 내일은 Agent 사무실을 이사하는 날이란다. 부식 몇 가지를 더 싣다. 날로 식탁이 허전해 간다.
Oct. 9(화) :
내 전신이 정신이나 마음 심지어 불알 두 쪽도 썩어 가는 느낌이다. 어느 하나 제구실을 하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이 없다. 모두가 냄새를 풍기고 있다. 혼란된 정신 상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상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는 것 뿐이다. 세상사는 데 고뇌는 항상 따르기 마련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다. ‘한창 풍성할 때’라고 상기시키는 C/E의 숨은 뜻이 깊다. 하지만 어쩔것인가? 마음 끝 움치고 뛰지도 못하는 지금인 것을-. 얘들도 마누라도 무척이나 보고 싶다. 두어 달 동안이나 연락이 없으니 궁금도 할텐데-. 나올 때 사진 한 장을 갖고 오지 못했던가!
Oct. 10(수) :
다시 Agent. 하루걸러 출근하다 싶이 한다. 없다고 하던 Telex가 그의 책상 위에 있다. Mr. Bagawanna(Shipper측)이 다시 Baghdad에 가서 Consigner측에 수취할 것을 설득, 만약 실패할 경우 다른 항에서 양하하겠다고 한다. 또 변호사 Sadiq과 절충해보라고 해서 전화했으나 부재중이다. Telex로 남기다. 대리점의 늙은 구렁이 같은 Mr. Abud Alri의 엉큼한 속셈이 결국은 ‘위스키 1병’으로 나타난다. 애매한 내 대답에 표정이 싹 달라지는 것은 그의 경륜을 나타내는 것인가? 다소 일의 진척과 상황을 알고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8일이면 그저께가 아닌가. 아직도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여기서 양하하고 가긴 틀렸는가 보다. 어서 벗어나고 싶은 간절함 뿐이다. Freon Gas R-22 겨우 받다. Agent에서 여러 조건으로 뜯어내고 있음을 알겠다. 개놈의 자식들! 그러니 맨날 이꼬락서니 아닌가?
Oct. 11(목) :
혹시나? 하는 한 가닥 기다림과 기적 같은 일을 기다리며 보낸다. 차츰 기온도 낮아진다. 맹렬한 무더위가 물러간다. 볕이 뜨거운지는 대신 따갑게 느껴진다. 벌써 10월 중순이 아닌가? 너무나 조용한 주위가 바깥 세상을 잊게 하고 있다.
하루 두 번씩 바뀌는 강물의 흐름을 따라 움직이는 배가 가엾다. 아직 첫돌을 마지하지 못한 체 썩는다. 항상 넓디넓은 오대양을 힘차게 누벼야 하는 것이 제 일인 것을-. 내가 내 자신을 봐도 너무나 비참하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음의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뜻하는 것인가? 낡은 잡지에 왠 정신을 빼앗길 만큼 마음의 안정을 잃고 있는가 보다. 이 세계가, 시간이 어떻게 되어버리지나 않았는지? 마치 현실을 떠나 있는 것도 같다. “Pilot 가 왔다‘는 한마디의 기적이 과연 일어나지 않으려는가?
Oct. 12(금) :
으슬으슬한 한기에 미열까지 있다. 이러다가 쓰러져 버리는 것은 아닌가? 처음으로 얕은 구름 속에 해가 가리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계절은 깊어가고 있다. 아침부터 심한 설사가 난다. 장염이 재발하는가 보다. 조금만 찬 것을 먹어도, 배가 차워도 설사와 함께 심한 복통을 갖는다. 시원한 곳이라면 병원에라도 가볼걸.
저녁 8시 유일한 낙. 한국 방송을 잠시 듣는 것이다. 전국체전이 시작됐단다. 이제부터 정말 한창 좋은 계절인 것을-. 이게 뭐람. 창살없는 감옥이라더니 -. 내일 또 나가봐야지. C/K와 2/Q가 장기두다 싸웠단다. C/K가 뭔가 결점이 있는 게 아닌가?
Oct. 13(토) :
JRC에서는 Basrh에서 양하키로 결정했다고 연락을 받다. 가장 반가운 소식. 그리고 P & I에서는 그렇지가 않다. 아무래도 Re-Survey가 붙을 모양. 울지도 웃지도 못할 일이다. 날짜로 봐서 P & I쪽이 훨씬 현실적이다. 시장가면서 현대의 한상규씨 만나고 Advice를 얻었다. 15일 다시 만나 몇 가지 부식구입을 도움 받기로 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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