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4개국 여행기 <남아공화국/짐바브웨/보츠와나/잠비아) <2014.6.25~7.02 8일간) 어머니를 여의고 마음이 울적하던차 집사람이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오자고 했다. 장모님도 병원에서 장기 입원가료중인데 어딜 가느냐고 했으나 은근히 나도 어디론가 바람을 쐬어야 될 것 같은 기분이다. 장소 물색에 나섰다. 영국 일주코스와 아프리카 8일짜리 단축코스 두가지를 두고 결국 아프리카를 선택했다. 15일코스를 선택하면 마라리아,풍토병 예방주사와 여행전,여행중 그리고 여행후에 도 약을 복용해야 하는 까다롭고 번거러운 절차가 있다. 케냐쪽 여행은 필수로 풍토병 예방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케냐,탄자니아 쪽을 배제한 남아공화국,짐바브웨,보츠와나,잠비아쪽은 전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확답을 주었다. 특히나 지금은 그곳이 겨울철이기 때문에 더욱 안심해도 된다고--
여행사를 골랐다. 아프리카 쪽은 KRT가 전문인 것 같다. 여행비용에 유류할증료니 가이드팊이니 추가 부 담이 많은 법인데 모든 비용을 포함시킨 가격으로 어필했다. 우리부부만 가니 수속도 간단하고 일사천리 다. 일행이 모두 19명이란다. 적당한 인원이다. 6월25일 저녁비행기다. 5시까지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수속을 밟았다. 짐을 붙이고 좌석을 받는데 홍콩까 지는 아시아나 그 다음은 남아공화국 비행기인 SA(SOUTH AFRICA)로 환승한다.홍콩까지는 3시간반, 남아 공의 요하네스버그공항까지는 무려 12시간 45분으로 예정되어 있다. 거기서 국내선으로 케이프다운까지 연속으로 비행기를 탄단다. 비행시간만 해도 18시간이 넘는다. 심히 걱정되지만 어쩔수 없는일-- 그런데 아시아나 여직원이 우리부부를 보며 아프리카에 두분이 가느냐고 은근히 걱정스러운 낯빛이다. 왜요? 했더니 그 먼곳을 ? 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이다. 아니요. 패키지로 KRT에서 19명이 갑니다. 했더니 그제사 안심하는 눈치다. 그런데 한참 시간이 걸린다. 왜 문제가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고 기다렸다.
그런데 고맙게도 비지네스로 좌석을 배정해주는 게 아닌가. 6월부터 운행하는 신형 에어버스 380A 기의 2층 비지네스 좌석인데 자리까지 설명을 해준다. 우리 부부만 두좌석이 있는 특별히 좋은 자리였다. 왜이리 선심을 쓴 걸까? 나는 내 인상이 좋아서라고 자위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보통 마일리지가 많아야 특혜가 있는 법인데 KAL은 많지만 아시아나는 별로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쨋든 현역에서 물러나온후 처 음으로 비지네스석을 타니 편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안전벨트도 어깨까지 매고--우선 마음대 로 눕고 다리를 뻗어도 좋으니--
그러나 3시간반이 지나 홍콩에서 환승하니 물경 12시간40분을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 내느냐 연구를 했다. 잠이 오면 잠자는게 최고이지만 예민한 성격이라 잠을 자도 깜빡잠을 잘 뿐이다. 영화 몇편 볼것인가-갖고간 책을 언제 볼것인가-- 비행기 안에서 스마트폰은 비행모드로 전환하면 볼수가 있 다. 스마트폰으로 시간보내기도 고려하고--그럭저럭 지루한 시간경쟁을 이기고 마침내 요하네스버그에 도 착했다.
요하네스버그를 착륙하면서 내려다 본 아프리카의 첫 인상은 어둑컴컴하다. 초록색 풀은 보이지 않고 황량 한 초겨울 날씨 때문인지 숲이 메마르고 검은 빛이다. 아프리카 하면 무조건 뜨거운 태양아래 무지 더운 것으로 생각되지만 지금이 한겨울인지라 우리나라 온도로 치면 가을날씨다. 낮은 20도가 넘고 새벽은 5- 10도까지 내려간다. 그러니 옷의 분량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가방 얘기를 안할 수 없다. 여행 스케줄에 포 함된 현지 고아원 방문이 있다. 선물을 준비하는데 먹는 과자, 아이들 옷가지,학용폼(연필,노트,볼펜 색연필 등)--가방짐을 줄이자면 자연 학용품이 최고다. 나는 학용품을 주장했지만 내 의견을 한마디로 묵살되고 쵸코파이와 쵸코렛(자유시간)로 반가방이다. 결국 가서 보니 아내 말이 맞았다. 옷가지는 아무래도 나이든 사람들이라 아이들 옷을 일부러 사지 않은 이상 없을테고 학용품 가져온 사람이 없다. 나혼자 멍청한 것인가?
홍콩까지의 분위기가 백화점쇼핑장 같다면 요하네스버그로 가는 SA 비행기 안 풍경은 시골장터 분위기였 다. 단연 흑인이 많아서 색갈부터 차이가 났다. 비행기 안에서 남자 승무원이 허연 액체를 뿜으면서 지나간 다. 냄새가 진동한다. 모기약이란다. 참 한가지 요하네스버그 공항에서 한국기업의 위력을 보는 듯해서 마 음이 흡족했다. 엘지전자의 82인치 HD 티브이 광고판에 요하네스버그 시내 전경을 담아놓았다. 나의 전 직 직장이라선지 묘한 감동이 일었다. 현지 가이드의 계속되는 말 중에 삼성전자의 핸드폰, 현대차의 위 력,엘지전자의 에어콘은 이제 이곳 아프리카에서도 절대적인 강자라면서 자랑을 하고 있었다.
비행중에 주는 음료중에 나는 쎌레스망고(CERES MANGO)를 특히 좋아한다. 케이프타운까지는 2시간 비 행이다. 케이프타운에 내리면 첫 관광지가 "테이블마운틴"이다. 케이블카를 타고 산 정상에 오르는데 일기 가 안좋으면 케이블카 운행이 중지된다고 한다. 걱정이 되어서 자꾸 하늘만 쳐다본다. 구름이 많은 편인데 가끔씩 훤해지기도 하고--종잡을 수가 없다.
남아프리카공화국 테이블마운틴 케이프타운에서는 어디서나 테이블마운틴이 보인다. 1,086m의 마치 테이불을 편듯한 산 정상이 편편한 모양이 이름답다. 우리나라 제주도와 함께 세계7대 자연경관에 뽑혔다. 직경이 3.2km나 된다고 한다. 양 옆으로 뾰죽한 두 봉우리가 서 있다. 우측 끝 봉우리인 시그날힐 그리고 반대편의 라이언스헤드-. 테이블아운틴 근처로 가다보니 비가 뿌리다 또 맑게 햇살이 비치기도 하고--종잡을수 없이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다행히 케이블카는 운행이 되었다. 케이블카는 바닥이 원형의 판이 360도로 회전하면서 사방을 볼 수 있게 설계된 생전 처음보는 케이블카였다. 위치에 따라 한쪽만 보게되는 일반 케이블카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비안개가 자욱하여 오를수록 희미한 안개에 싸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 올라 케이블카 를 내려 평평한 정원길을 걸었다.
수많은 야생화들이 피어 있었다. 바위돌도 흰 석회를 바른 듯 얼룩얼룩한 기괴하게 생긴 돌들이 많았다. 산책로를 잘 만들어 편하게 길을 뚫어 놓았다. 테이블마운틴을 한바퀴 돌고나서 카페로 들어섰다. 갖가지 음료와 커피, 기념품을 팔고 있었다. 루이보스티를 우유를 많이 넣고 한잔 마셨다. 날이 훤해지기를 기다렸 지만 희망이 없어 보였다. 포기하고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했다. 내려오니 오르는 케이블카는 운행이 중단되어 있었다. 그나마 오를 수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아래서 올려다보는 테이블마운틴은 멀쩡해 보이는데 산 정상은 운무로 가득하다. 아위움을 뒤로 하고 오른 쪽의 항구를 향해 갔다. 우측 항구는 원양어선 배들이 많이 정박해 있다. 우리의 사조산업,동원산업의 조업배들도 있다고 한다. 워터프론트 쇼핑센터가 나왔다. 빌딩숲이다. 여기서 영화도 촬영했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남아공과 케이프타운에 대한 설명이 계속된다. 남아공은 한 국과 비슷한 인구를 가졌으면서도 땅은 남한의 11배, 남북한 크기의 6배나 된다. 인구의 80%가 흑인이고 백인이 9%,유색인이 9%,아시아계가 2%--케이프타운은 인구 6백만의 대도시로 가장 자유스런 서양화된 도시이다.
관광객이 많이 모여드는 비교적 살기 좋은 곳이다. 언어는 11개나 되는데 아프리칸과 영어가 주이다. 희한한 것은 법상으로는 1부1처제이지만 1부다처제가 통용되는 나라이다., 대통령도 공식부인이 3명이고 비공식부인이 6명이 있다고 한다. 말하자면 법위에 부족법이 상위법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케이프타운 은 남아공의 3개의 수도중 하나이다. 요하네스버그 인근에 있는 프리토리아가 행정수도이고 블룸폰테인이 사법수도이다. 그리고 케이프타운이 입법수도인 것이다. 테이블마운틴 인근의 보캅지역을 지난다. 알록달 록한 칼라 집들이 시선을 끈다. 말레이지아 노예들의 집단촌이다. 우편판매용으로 집 칼러를 달리한 것이 란다. 시청광장을 지난다. 시계탑이 걸린 시청이 보인다. 만델라가 이곳 시청광장에서 연설을 했다.
대통령 사저와 국회의사당 그리고 노예들의 수용소였던 노예박물관을 소개하면서 차는 롱스트리트를 통 과했다. 압구정 로데오거리 같은 곳으로 먹자골목이다. 역시 땅의 주인 50%가 유태인이란다. 월드컵경기장 이 보인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기억이 새롭다. 5시반부터 한시간 가량 워터프론트에서 자유시간을 보 내며 쇼핑타임도 가졌다. 워터프론트는 일본인들이 땅을 투자개념으로 개발한 곳이다. 관광객을 유치하며 먹거리 볼거리를 제공한다. 좀 비싼편이나 안전하며 명품들이 많아 인기가 높다. 우리는 가이드와 함께 마 트에서 루이보스차와 내리는 커피 에디오피아산과 남아공산을 샀다. 마트에는 단감,귤,오렌지,세레스 등 맛 있게 보이는 풍부한 과일들이 유혹을 했다. 귤도 간식용으로 좀 샀다.
차창으로 보이는 테이블마운틴
내려다 보이는 케이프타운의 해안 도시풍경
운무에서 걷힌 테이블마운틴의 위용 둥근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다.
카페가 인기다.
케이프타운 중심가
물개섬,펭귄마을,케이프포인트,희망봉 다음날 아침 8시 버스를 타고 오늘 행선지 첫 목표인 물개섬으로 향했다. 월드컵스타디움을 지난다. 바닷가를 끼고 그린포인트로 가는 길은 죠깅하는 사람,개를 끌고 가거나 유모차를 산책하는 사람도 보인 다. 해안가 집들이 크고 고급별장들도 보인다. 가정부 숙소가 달린 고급저택이다. 메이든스쿠버(Maiden's Couv)에서 잠시 정차하여 사진을 찍었다. 캠스베이까지 가면서 멀리 테이블마운틴과 라이언스헤드도 보인 다. 12사도봉도--과연 12개 사도봉이 어느 것인지? 궁금해서 맞춰본다. 빅토리아로드로 달린다. 여기서 사이클대회도 열리고 여름철이면 해안 모래사장에 비치파라솔이 즐비하고 썬텐 인구도 수없이 많 다. 물개섬이라는 실아일랜드에 도착했다. 밀물 썰물 때 다시마밭에서 다시마를 캐고 전복을 캐는 한국인 들이 늑대처럼 나타난다는 표현이 재미있다. 전복의 크기가 하도 커서 놀란다.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고 한 다. 중국인들이 씨를 말려 법으로 채취를 금지했단다. 헤이크라는 대구도 여기서 잡히는데 수출품으로 인 기가 높다. 여기는 지진이나 쓰나미가 전혀 없는 곳이다. 나무천국으로 알려진 하우베이를 지난다.
하우베이는 케이프반도에 있는 가장 그림같이 아름다운 해안마을 중 하나이다. 하우베이(Hout Bay)에서 1시간의 자유시간을 가졌다. 배를 타고 물개섬으로 가기전 1시간의 여유가 생겼다. 목각인형을 샀다. 역시 아프리카인들의 목공예품과 석조공예품이 정교하고 예뻐서 인기가 높다. 하우베이를 바라보고 사 도 남기고 --- 실아일랜드-물개들의 천국이다. 큰 바위 위에 낮잠을 자는지 딩굴고 있는 물개들-수백마리가 누워 있다. 물개는 상어의 표적이 된다. 그래서 물개들이 빨리 달아나기 위해 앞발이 발달하여 크다고 한다. 물고기들 을 잡아먹고 사는데 숫놈이 암놈보다 크다. 생긴 게 똑 같아서 자기 식구들도 구별이 가능할까 싶다. 점심을 먹고는 펭귄마을인 볼다스 비치행이다.그곳에서 당나귀펭귄을 보게 된다. 아프리카 펭귄 2천마리 정도가 땅굴 속에서 산다. 보통 펭귄보다 크기가 작은 펭귄으로 동네 사람들의 정성으로 키운 것인데 해안 선(인도양)으로 따라 가면서 펭귄의 서식지가 있다. 아프리카 펭귄이 가장 작은 것인데 펭귄이 부부애가 높 은 동물로 유명하다. 부부사랑은 평생을 지키는데 암수중 하나가 죽어도 일생을 혼자 지낸다고 하니 인간 보다 더 지고한 사랑을 하는 모양이다. 이어서 케이프포인트로 향했다. 희망봉이라고 배운 곳. 대서양과 인 도양이 만나는 아프리카 대륙의 최남단 희망봉. 희망봉에 가기 전에 먼저 등대가 서 있는 대륙 최남단 케 이프포인트로 올랐다. 제법 경사가 있는 돌계단을 한참 올라야 했다. 정상부위의 큰 바위에는 수많은 낙서 들이 있었다. 영어 알파벳,독일어,한자,일본말 등 우리 한글도 보였다. 세계 인종 언어 전시장 같다.
우리가 오른 등대는 구등대이고 신등대는 또 좀더 떨어져 있었다. 대부분은 구등대를 배경으로 한 사진을 남기고 --다시 멀리 내려다 보이는 소위 희망봉이라는 곳으로 갔다. 사실은 봉이 아니라 곶이었다. 영어와 독일어로 된 표지판이 나란히 서 있고 여기서 현장 인증샷을 찍느랴 줄을 섰다. 겨우 우리부부도 남들처럼 인증샷을 남겼다.인도양과 대서양이 갈라지는 지점이라서인지 물빛도 다른 것 같다. 망망한 대해-그중에서도 태평양,대서양 그리고 인도양-망망대해도 이렇게 만나는 지점도 있구나 싶다. 주변에는 희귀한 나무들과 꽃이 많았다. 버스기사는 천천히 차를 몰면서 야생동물을 만나 구경시킬 작정인 모양이다. 야생사슴인 스프링복스,타조 그리고 야생 원숭이 목표 3개를 모두 보고서야 제 속력을 내면서 달린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집사람은 옆자리의 아줌마와 셰계여행지에 관한 서로의 정보와 추억담 에 시간 가는줄도 모르고 얘기 삼매경에 빠져있다. 나는 다 잊어버린 세세한 기억까지 --참으로 신통하다. 어찌 그런 기억들을 다 한단 말인가? 실버타운인 타운하우스를 지난다. 지금 필자가 살고있는 아파트를 타 운하우스라고 한국에서는 얘기하는데 이곳 타운하우스 개념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우리집 은 테라스하우스라고 하는게 맞는성 싶다. 나폴레옹이 즐겨 먹었던 와인농장이 이 지역에 있다고 한다. 어머어마한 농장의 주인은 헬기도 소유하고 자가용 차량도 7-8대를 보유한 대부호란다. 연세대 캠프스처 럼 보이는 대학이 보였다. UCT(케이프타운대학)의 의과대학의 위용이 보인다.
물개섬을 향해
너른 바위 위에서 오수를 즐기는 물개들
아프리카 펭귄마을 볼다스비치마을이다
작은 펭귄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펭귄의 부부사랑
동네 주민들의 노력으로 관광객이 쇄도한다.
희망봉이 보인다.
걸어 오르는데 30분이 걸린다. 케이블카도 있다.
희망봉(곶)앞에서
요하네스버그 다음날 아침 8시에 호텔을 나섰다. 오늘은 공항으로 가서 요하네스버그로 간다. 요하네스버그공항은 그 이름이 오알탐보국제공항이다. 백인과의 인권운동에서 싸운 올리브 탐보의 이름을 따서 2006년도에 개명한 이름이다. 요하네스버그는 현지에서는 죠하네스버그 또는 줄여서 애칭으로 죠벅 이라 부른다. 요하네스버그는 남아공화국에서 가장 큰 산업도시이다. 인구가 천만에 육박하며 다운타운에만 도 400만명이 운집한 밀도가 높은 도시이다. 인근에 행정수도인 프레토리아가 있다. 해발 1750m에 위치한 요하네스버그는 지대가 높아 비교적 기온이 낮은 편이어서 재작년의 경우 겨울에 눈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여름에 에어컨이 없듯 겨울에도 보일러를 때지 않는다. 사계절이 뚜렷하여 살기 좋은 곳이다. 약 80%가 흑인이다. 요하네스버그에 도착하자 남서쪽에 위치한 소웨토로 바로 향했다. 소웨토도 역사가 100년이 넘었다. 소웨토는 금을 발견하고부터 광산에 밀집해살던 광부들 밀집촌이었다. 100만의 인구가 살았다. 광부들인 흑인의 빈민촌,판자촌이 시내를 구성한다. 흑인들이 사는 양철판자집이 줄지어 서 있다. 도로에는 봉고 차 량이 많았다. 이것이 빈민촌의 대중교통인 개인운영의 택시란다. 합승택시이고 마을버스인 셈이다. 안쪽은 위험하다며 외곽으로 차를 몰며 구경시킨다. 도심할렘가이다. 버스로 가는 도중에 높은 토담산이 보인다. 광산에서 나온 흙을 모아둔 것이 산이 되었다. 소웨토에 월드컵 경기장이 있다. 만델라가 작년에 서거한후 여기서 장례식을 치루었다. 8만명이 수용되는 스타디움-외곽에서 보니 구멍이 난 모양이 예쁘다. 구멍은 창문이란다. 만델라 추도식의 일화가 재미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연설을 하였는데 현지의 수화가 엉터리였다는 것이다. 국제적 망신이었음에도 추도 식후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고 하니 만일 우리나라였다면? 소웨토는 흑인동네로 만델라 생가가 있다. 정확히는 만델라가 20살이 넘어 결혼후 여기서 살았으며 감옥에 들어 있는 동안 아내와 아들이 27년간 이집에서 그를 기다리며 살았다.건물에는 총알 자국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집안과 밖을 구경하며 설명도 들었다. 건물에는 참피언벨트가 있어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는 대통령 이 되기전 평소 권투를 좋아했단다. 챔피언 자리는 얻지 못했지만 실제 유명했던 슈가레이라는 참피언이 만델라에게 그의 참피언벨트를 선물로 주어 여기에 전시되고 있었다.
흑인 세계최초의 성당인 문지성당을 구경하려 했으나 마침 그날은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어서 구경치 못하 고 바로 센톤(Sandton)으로 향했다. 소웨토에서 20-30km 정도 떨어진 곳으로 서울의 강남같은 도심지이다. 소웨토의 빈민촌을 보다가 또 강남같은 비싼 동네를 보면서 극심한 빈부차를 보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여기는 모기가 없단다 2010년 이전에는 여기도 마라라리아존이었으나 지금은 모기걱정은 전혀 필요없단 다. 더구나 지금은 겨울철이니-센턴의 중심 쇼핑센터에는 만델라 동상이 서 있고 분수가 있어서 관광지 분 위기를 나타내었다. 신도시로 형성되어 토지값은 비싸지만 비교적 안전이 보장된 곳이라 관광객이 많이 몰 리는 곳이다. 40분간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쇼핑센터를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만델라 동상 앞에서 사진을 남 겼다. 여기는 한국기업의 파견자들이 모여 산다고 한다. 그만큼 살만한 곳이다. 프레토리아나 샌턴에는 9-10월에 보라색꽃이 피는 쟈카란다나무가 일품이란다. 가로수가 모두 쟈카란다 꽃 으로 뒤덮이는데 멋있는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고-지금은 계절이 다르니 인터넷으로 찾아보기로 하고-- 차는 프레토리아로 달린다. 석양이 멋있다. 일몰시간이어서 경치를 놓칠 수 없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유 니온빌딩에 도착했다. 유니온 빌딩은 101년이나 된 건물로 만델라가 취임식을 한 곳이다. 우리로 치면 청와 대 대통령집무실인 셈이다. 동상은 높이가 9m에 이른다. 원래 전 백인 대통령 동상이 있던 곳인데 만델라 이후 만델라 동상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프레토리아 인근 호텔에서 숙박했다. 내일은 짐바브웨로 가서 그 유명한 빅토리아 폭포를 구경하는 날이다. 생각만 해도 흥분된다.
넬슨 만델라 하우스
만델라 생가 내부
2010년 월드컵 최종 결선이 있었던 곳이다. 또 만델라가 서거한뒤 여기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만델라 스퀘아 동상
짐바브웨 빅토리아 폭포 아침 일찍 호텔을 출발했다. 공항행이다. 아침 햇살이 싱그럽다 좀 쌀쌀한 편이다. 짐바브웨는 남한 크기의 4배, 남북한의 1.8배나 되는 면적에 인구는 1,300만이다. 우리나라와 수교한지도 20년이나 된다. 대통령 우바베는 34년의 장기집권으로 7선에 성공했다. 영국 식민지에서 독립 건국의 아버 지로 존경을 받는다. 백인을 축출하고 흑인이 정권을 잡았으나 경제가 엉망진창이다. 화폐단위가 워낙 커서 기념 주화를 관광상품으로 팔고 있다. 요하네스버그의 가이드가 아침 공항까지 나와 주었다. 젊고 잘 생긴 가이드로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총각 가이드로 고생한다 싶었던지 몰래몰래 봉투를 건넨다. 자식같 고 손자 같기도 하고 짠한 마음의 발동이다. 김,고추장이나 남은 음식물도 그의 차지다. 빅토리아공항까지는 한시간30분이다. 벌써 큰 가방이 꽉찼다. 돌조각이 의심스러웄던지 짐체크에서 가방 을 열어보란다. 돌로 만든 하마가 나오자 할말이 없는지 "굿"한다. 어이없다. 공항면세점에서 쎄라믹 주전자 와 폿트를 구입했다. 여행시 사고싶은 것 안사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이 생각난다. 호텔 숙소에 짐을 내리고 점심을 한후 빅토리아폭포로 향했다. 지금이 건기라 물이 적을까 걱정했는데 지금 이 물도 적지 않고 제대로 폭포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시기란다. 우기에는 비가 오면 잘 보이지 않고 수량이 너무 많아도 별로란다. 정말 가관이다. 너무나 시끄러운 폭포소리에 귀가 멍하다. 계곡을 따라 가면서 곳곳 에 폭포의 경치가 전개된다. 명칭이 따로 있었다. 가장 큰 폭포경관지역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찍었다. 쌍무지개가 계속 떠 있다. 너무 멋진 광경이다. 앞뒤로 가이드가 붙어서 흩어진 일행을 모았다. 오가며 물벼 락이나 물안개로 비옷도 젖고 신발도 젖는다. 너무 황홀하여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세계3대폭포의 하나인 빅 토리아폭포는 1855년 영국의 데이비드 리빙스턴이 발견하여 당시 영국여왕인 빅토리아여왕에게 헌정하는 의미로 빅토리아폭포라 이름을 붙였다. 잠비아와 짐바브웨의 국경을 가르며 인도양으로 흘러가는 잠베지강 중류에 폭 1,676m,낙차 108m로 세계최고의 낙차를 자랑하는 폭포이다. 곳곳에 멧돼지가 어슬렁거린다. 겁이 났지만 별 해칠 의향이 없이 그냥 지나간다.
빅토리아 폭포/낙차크기가 108m로 세계 제일이다.
잠베이지 크루즈 출구로 나와 다음 행선지인 잠베지강 선상 크루즈를 타러 갔다. 마침 노을이 지는 아름다운 잠베지강의 상류에서 즐기는 선상크루즈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이 될 것이다. 입구에 도착하니 원주민들이 춤을 추며 환영해 주었다. 배 하나에 우리 일행이 타고 흑인 선장과 선원이 반 긴다. 배에는 여러 음료와 맥주,와인이 있어 안주와 함께 마음껏 먹으면서 경치를 구경하는 클루즈이다. 노래와 춤이 필수- 선장과 가이드에게 노래를 시켰더니 신나는 노래와 춤으로 흥겨움을 보탠다. 우리 일행 중에도 신나게 놀 주 아는 아줌마들이 있어 분위기를 맞춘다. 가끔씩 숨박꼭질로 보이는 하마(?)의 모습에 카메라를 들이대느라 정신없다. 일몰시간이 되니 멀리 붉게 물든 해가 강으로 떨어지기전에 온 정열을 다하 며 붉은 빛을 토해낸다. 가관이다.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여념이 없다. 아프리카 잠베지강의 낙조를 보다니- 내일은 육지 사파리와 배를 타고 가면서 강 사파리를 하는 날이다. 이 또한 아프리카여행의 엣센스다. 호텔 레인보 빅토리아호텔에서 쉬고 내일을 기약한다.
보츠와나 쵸베국립공원 사파리 이번 여행의 핫 이벤트 사파리 날이다. 버스로 짐바브웨를 출국 보츠와나로 입국해야 한다. 보츠와나는 남한크기의 6배로 인구는 145만이다. 수도는 가블로.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 보츠와나에는 한국인 슈바이츠로 유명한 김정 박사가 의술을 펼쳤던 곳이다. 보츠와나에는 아프리카 육상 사파리로 유명한 쵸베국립공원이 있다. 쵸베강을 따라 하는 배를 타고 가면서 하마,악어 등 강 동물을 보는 강 사파리와 쵸베국립공원 안의 육지에 사는 코끼리,사슴,멧돼지 등 육상사파 리가 오전 오후로 계획되어 있다. 오전에는 먼저 강 사파리가 있었다. 잠베지강의 지류인 쵸베강을 따라 가 면서 강에 사는 동물들을 보게 된다. 쵸베강은 앙골라에서 발원하여 잠베이지강에 합류한다. 잠베이지강은 잠비아에서 모잠비크까지 이어진다. 배를 타고 가면서 강에 사는 물 동물이 있는 곳이면 그쪽으로 배를 몰고 가서 한참을 보여준다. 강 가운데 섬이 있었다. 파란섬으로 탐나는 지역이다. 나미비아와 보츠와나가 국제 분쟁 끝에 보츠와나 땅으로 판정난 곳이다. 하마가 보이고 악어도 있다. 버팔로도 무리지어 다닌다. 강가로 내려온 육지동물도 보인다. 임팔라도 보이고 뿔달린 사슴 푸두도 보인다. 하얀 연꽃밭도 지난다. 강에는 각 가지 새들도 산다. 강둑에 구멍이 뻥뻥 뚫여있어서 무언가 했더니 새집이란다. 새도 이름 모르는 종류가 많 다. 점심시간이 되어 건너평 방가로호텔에 내렸다. 식사를 마치고 휴식시간을 가졌다. 많은 관광객이 여유 를 즐긴다. 오후에는 사파이아 차를 타고 랜드사파이어를 한다. 한차에 6-10명씩 나누어 탔다. 먼지가 많이 날 것으로 생각하여 마스크를 하고 왔으나 별 필요가 없었다. 코끼리떼가 나타났다. 보통 10-15마리씩 떼지어 다닌다. 15마리가 모두 한 가족이라는데 암놈 중심이다. 숫놈은 암놈에 딸린 가 이다. 수명이 60년이라는데 가족중에 가장 어린 새끼를 가운데 넣고 다니며 보호한다. 숫놈은 10년이상 되 면 별 사용이 없어 혼자 떠난다고 하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죽을 때는 별도로 쓸쓸히 죽는 장소가 있는 모 양이다. 죽은 후 뼈가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가장 귀여운 것이 임팔라이다. 20년 수명의 임팔라는 사슴의 일종으로 엉덩이에 검은 M자 테를 두르고 있다. 기린이 가끔씩 보인다. 무리지어 다니는데 오늘은 몇마리 밖에 보지 못했다. 보츠와나의 대표동물인 얼룩말은 보지 못했다. 봄철에 많은데 겨울이라 귀한 존재가 되 었다. 검은 영양 세이브도 보인다.S자 뿔을 자랑하는 가젤도 멋스럽게 지나간다. 등과 배사이를 세로줄로 그 은 갈색의 쿠두도 시선을 끈다. 강가에는 오리들이 줄지어 간다. 초베공원의 야생 동물 사파리에는 사자나 누떼를 보지 못한다. 2-3월 건기에서 우기로 바뀔때 동물들의 대이동이 있다. 탄자니아나 케냐의 셀렝게티 투어에서 볼수있는 누떼들의 대이동 광경은 역시 불가능하다. 그리고 사자는 어디서나 좀처럼 보기 힘든 희 귀 목표이다. 그러나 사자,누 두가지를 제외하고는 운좋게 많은 야생동물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저녁시간은 우리가 그간 벼르고 기다리던 고아원 방문시간이다. 사전에 어린이에게 줄 헌 옷가지,빵이나 케이크,과자, 연필 볼펜 노트 등 문구류를 갖고 오라고 했다. 우리 는 쵸코파이와 쵸코렛을 가득 사서 가방에 넣고 다니다 보니 빨리 가방도 비우고 어린 아이들에게 선물을 전하고 싶었다. 마침내 고아원에 도착했다. 환영하는 아프리카의 검은 아이들이 환영노래를 부른다. 춤도 추고 --이 고아원에는 15명의 집없는 아이들이 숙식을 하고 밥때가 되면 70명의 원아들이 먹을 것 을 찾아 여길 온다고 한다. 그럼 15명 이외의 어린이는 어디서 자느냐고 물으니 일정한 장소 없이 떠돌다 아무 곳에서나 잔단다. 잠잘 곳도 없는 천애 고아들이 부지기수이다. 우리처럼 여행객들이 도움을 주면 이 들에게 천사와도 같은 것이다. 우리가 얼른 가야 배고픔을 면할 것 같다. 불쌍하여 호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가장 작은 꼬마에게 주었더니 쟁탈전이 벌어진다. 아하~ 개인적으로 줘서는 안되는 이유가 있구나 싶었다. 눈물이 핑 돈다. 마음이 너무 짠해서 얼른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식사장에 가기 전에 노천 목각시장에 들렀다. 이미 여러군데서 보아오던 노천 목각이나 석조물들의 야외 판 매장으로 규모가 컸다. 모두들 보따리가 커진다. 우리도 정원에 놓을 석조물과 방 장식물 목각류들이 제법 모였다. 이날 우리들 저녁은 아프리카 원주민들의 춤 향연을 구경하면서 아프리카의 야생동물을 요리한 전 통 바베큐 보마식으로 식사를 한다. 직접 생고기를 굽는데 줄이 길다. 전채요리는 악어고기였고 멧돼지고기 바베큐인 와숲이 맛있다하여 먹었더니 역시 괜찮았다. 서양사람들은 같이 어울려 춤도 추며 즐기는데 우리 한국인 부인들은 여기 와서도 물건사는데 정신없다. 주로 목각이다. 춤공연장 구석장에 물건을 놓고 파는 원주민들 상인이 한국여자들 상대로 떨이판매를 한다. 억척같은 사람들이다. 원주민 공연을 끝까지 못보고 물러났다. 내일은 마지막 잠비아로 가서 다시 폭포를 보는 날이다.
잠베이지 크루즈/건너편 나미니아의 방가로들
크루즈에서
악어가 인사하러~
육상 사파리
기린
코끼리
임팔라 가 젤
하 마
선물잔치
잠비아 빅토리아 폭포 호텔 조식후 국경을 넘어 잠비아로 이동했다. 짐바브웨에서 출국 수속을 밟고 잠비아 입국수속을 밟는다. 비자수속이다. 잠비아는 오로지 빅토리아 폭포를 보기위한 입국이다. 잠비아에서는 빅토리아 폭포란 이름 대신에 발견자 이름을 따서 리빙스톤 폭포라고도 한다. 리빙스톤 공항도 있다. 짐바브웨에서 본 폭포를 이곳 잠비아에서 보게 된다. 짐바브웨에서는 집에서 가져온 우의를 입었었는데 여 기서는 짐 꺼내기도 귀찮고 하여 여행사에서 주는 비옷을 입었다. 반팔이라 옷이 완전히 젖고 신발도 운동 화가 다 젖어버렸다. 폭포의 소리가 더 웅장한 것 같다. 물줄기도 가까워서인지 폭우를 만난듯 신발과 옷이 폭삭 젖었다. 역시 제일 크게 보이는 곳에서 동영상 사진도 찍었다. 평생 잊지 못할 풍경이다. 근처에 보여줄 것이 있다하여 안내했다. 1,000~1,500년이나 된 바오밥나무이다. 바오밥나무는 텔리비젼에 서 신기하게 보았지만 이렇게 수명이 긴줄은 몰랐다. 짐바브웨의 빅토리아 공항으로 이동했다. 요하네스버그로 이동하여 여기서 홍콩으로 날라간다.
대단한 위력의 리빙스톤 폭포
빅토리아공항에서 국내선을 통해 홍콩 경유 아시아나비행기로 짐은 실린다고 한다. 8일간의 여행이 마무리 지어지는 순간이다. 긴 비행기 여행시간만 남았다. 1시간 45분이 걸려 요하네스버 그에 도착하자 불과 한시간 만에 홍콩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바쁘다. 홍콩까지 무려 13시간 이상을 비행기 안에서 견뎌야 한다. 가능하면 많이 자고 적게 먹어야--배탈이 나서 잘 먹지 못하면서 다니느라 이제 마지 막인데 하고는 먹고 싶은 걸 골라서 먹었다. 와인도 마시고 루이보스차도 많이 마시고. 홍콩에 도착하여 아시아나로 갈아 탔다. 이제 한국에 다온 느낌이다. 그래도 3시간 반이 걸린다. 검은색의 아줌마와 남자 승무원만 보다가 예쁜 젊은 한국 아가씨가 써비스하는 아시아나 비행기는 전혀 딴 세상 같은 느낌이다. 여 승무원들 참 고역의 중노동인데도 표정이 밝게 서비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인천에 도착하니 내 짐이 없다. 결국 세사람의 짐이 홍콩에서 실리지 못했단다. 아시아나 직원이 책임지고 내일까지는 집으로 배달해 줄 거란다. 믿고 아내 짐만 챙겨서 집으로 왔다. 멀고도 긴 아프리카 여행이 모두 끝났다. 과연 갈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무사히 다녀와서 기쁘다. 피로하지만 가슴과 머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 멋진 여행이었다. 아줌마들 얘기- 여행만큼 좋은 것은 없다. 마음을 힐링하는 최상의 방법이 여행이란다. 집사람이 용기가 나는 모양이다. 여태껏 겁을 내고 포기했던 남미여행이 전개되려나? 벌써 가슴이 떨린다. 누군가 말했다. 아직 가슴이 떨릴 때 여행은 가능한 것이다. 다리가 떨리면 여행인생은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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