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 날, 남장사 조실 만옹(滿翁) 스님께서 공양실에 오시더니,
“니가 요새는 밥을 참 잘하는구나. 돌도 안 들어가고 되지도 않고 질지도 않고 잘하네."
그리고 귀한 새 양말을 한 켤레 주셨습니다.
"내가 특별히 주니 신어라. 그래, 너 새벽에 쌀 일 때 안 추우냐?”
“예. 추운 줄을 모릅니다.”
“내가 보니 관세음보살님이 치마 같은 옷을 가지고 너를 감싸주더라. 그러니까 안 추운가 보지? 너는 요새 밥 하면서 하는 게 있느냐?"
“예. 관세음보살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 관세음보살을 하니 어떠냐?"
"관세음보살을 하니까 내가 도를 통했는가, 환히 다 보이고 아는 게 나왔습니다.”
"뭐? 아는 게 나와? 뭘 알았는데?"
"신도가 며칠 전에 몇이 오는 게 보이고, 스님들한테 편지 오는 게 다 보이고, 기피자들 잡으러 순경이 오는 게 미리 보이고……, 다 보입니다. 그리고 저 사람은 심리가 어떻고 하는 게 다 보입니다.”
"아! 그렇게 알아졌어?”
"예. 그게 견성한 건 아니겠지요?"
"견성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절 집안에 아주 삿된 고약한 무당이 하나 나오겠어. 이거 큰일 났네!"
"그게 잘못됐습니까?"
"잘못된 게 아니라 무당이 나와. 무당은 업을 지어서 무간지옥을 가는 거야. 좀 있다가 점심 먹고 내 방으로 내려와!”
그래서 설거지를 해놓고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환히 알아져서 아는 게 보여?"
"예. 아는 게 보입니다."
그러자 조실스님께서 주장자를 탕! 탕! 탕! 세 번 치시더니
“방금 이걸 봤어? 이 소리 들었어? 방금 이게 무슨 법문을 했느냐?"
다른 거는 환히 아는 게 나타났는데 그것은 캄캄하고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 조실스님이 대번 어깨를 주장자로 몇 대 내리치시면서
“잘 안다더니 이거는 왜 모르느냐? 대답을 해!"
몇 대 맞으니 환히 보이고 아는 게 싹 없어졌습니다.
"내가 그게 삿된 사도라고 했지 않았느냐. 다시 올라가서 내가 묻는 걸 알아 가지고 와!"
그리고 나왔는데 밥하고 일하면서도 오직 ‘이게 무슨 법문인가?’ 하는 생각이 일사천리로 들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엌 아궁이에 불을 때는데, 어느 순간 부엌도 없고 집도 없어지고 활활 타는 불이 우주에 꽉 차고, 밥물 끓는 소리가 ‘푸르르 푸시시’ 하는데, 불이 고무신에 붙는 바람에 따끔해서 정신을 차리니, 천근만근 짊어졌던 짐이 없어진 듯 아주 시원하고 가볍기가 허공에 나는 것 같았습니다. 그 순간 홀연히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총무스님을 찾아가서 간청을 하였습니다.
“제가 이상한 경계가 있는데 이게 뭔지 한문을 모르니까 좀 적어주셨으면 합니다."
“행자가 말이 많아. 일이나 해."
이튿날 다시 간청했습니다.
“스님. 이상한 게 있습니다."
“뭐가 나타났는데?"
“불이 환히 타는 순간 불이 고무신에 붙어서 따끔해서 정신을 차리는데, 천근만근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이 시원한 속에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 내가 한문으로 적을 테니 이야기를 해 봐."
부엌 안에 한 무더기 불빛 천지를 덮고
솥 안에 끓는 한 소리 옛과 이제를 벗어났음이라.
주장자 세 번 치면서 무슨 법이냐 하니
눈 앞에 역력해서 다만 이것이로다.
竈內火光蓋天地 (조내화광개천지)
鼎中湯聲脫古今 (정중탕성탈고금)
拄杖三下是何法 (주장삼하시하법)
目前歷歷只底是 (목전역역지저시)
총무스님이 이렇게 한문으로 옮겨 적어주고 나서
“나는 모르겠으니 조실스님께 가 보아라."
조실스님을 찾아가 절을 하고 오도송을 보여 드리니,
“어허! 절 집안에 들어와서 수십 년을 절밥을 처먹어도 밥만 썩히지, 이런 말 한마디 하는 놈이 없었는데, 행자 니가 밥값을 했네! 참 좋은 일이로다!”
“그래, 니가 깨달았다니 다른 것도 통과하는지 물어보자. 두 스님이 길을 가는데, 앞에 가는 스님이 칼을 차고 가는데 걸어가다 보니 철거렁 철거렁 소리가 나니까 뒤에 가는 스님이 “야! 칼소리 난다." 하니 앞에 가는 스님이 말없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품 안의 손수건을 꺼내서 뒤의 스님에게 주었다. 칼 소리 난다 했는데 왜 손수건을 주었는가?”
“아이고 아이고.”
“뭣 땜에 곡을 해?”
"동쪽에서 초상이 나니 서쪽 사람이 조문을 합니다."
"네가 참으로 한 소식을 했구나! 앞으로 많은 사람을 제도하겠구나. 더 열심히 공부를 하거라.”
만옹(滿翁) 조실스님이 칭찬을 하시며 ‘한암(閒庵)’이라는 호를 내리셨습니다.
행자시절 나를 혹독하게 다룸으로써 오도(悟道)의 기연을 만나게 한 주지스님인 은사 월호 혜선 스님이 환속을 하심에 따라, 이후, 고암 스님을 새로운 은사 스님으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어릴 때 절에 들어와서 주지스님이 갖은 구박을 하고 모질게 경책을 했지만, 아무리 그렇게 해도 ‘저분은 도인이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만약에 ‘저 스님이 가짜 땡초 아닌가?’ 이런 생각이 있었다면 거기서 견디며 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남장사에 행자로 들어왔다가 못 견디고 도망간 사람이 수백 명이 넘었으니 그 어려움이 가히 짐작될 것입니다.
나는 그때 5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는 속에 중생심이 몰록 녹아 없어짐으로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지, 그런 어려움이 없었더라면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혹독한 경책으로 숨은 진면목을 밖으로 드러나게 이끌어주신 과거의 은사 월호 스님의 은혜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