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일으키는 믿음♡
성경: 누가복음 18장 35~43절
찬송: 212, 213, 249, 293, 314
설교: 이 경준 목사님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앞서가는 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누가복음18: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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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과 같이 확신하게 되고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마음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인생의 장을 바꾼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 사람의 이름을 ‘바디메오’라고 했습니다.
‘바디메오’의 이야기는 오늘 읽은 성경 누가복음뿐만 아니라 마가복음에도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는 소경의 이름을 ‘바디매오’라고 했습니다. ‘바디메오’ 라고 하는 ‘바(בַּר)’의 뜻은 히브리말로 ‘아들’을 뜻하는 말이고 ‘디매오’는 소경을 낳아준 아버지의 이름입니다. 그래서 ‘바디메오’란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뜻인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고유한 이름이 있습니다.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평생 동안 자신을 대신하는 호칭이 됩니다. 그러나 바디메오에게는 그런 이름조차도 붙여지지 않았던 것을 보면 아주 어려운 상황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디메오’는 여리고 성에서 오가는 행인에게 구걸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날도 평상시와 같이 길곁에 앉아서 구걸하고 있을 때, 그 앞으로 많은 사람에 둘러싸인 예수님이 지나가시게 된 것입니다. ‘바디메오’도 예수님께서 자기가 앉아 있는 앞을 지나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전부터 ‘바디메오’에게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도 볼 수 있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문으로 들리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 그분을 만난 병자들은 다 고침을 받았고 죽은 자도 살아났다는 말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 그 시간에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시게 되자 온 힘을 다하여 소리쳐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그 외침은 예수님을 만나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부르는 소리에 발길을 멈추신 예수님은 ‘바디메오’의 눈을 고쳐주셨다는 이야기가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읽은 성경 중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소경 ‘바디메오’의 눈을 고치시면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소경 ‘바디메오’가 볼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바디메오’가 볼 수 있게 된 것은 ‘바디메오’ 믿음 때문이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바디메오’가 가진 믿음의 결과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디메오’에게는 아무도 알아보지 못하던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만한 믿음이었고, 소경이었던 그가 보게 되는 기적을 일으킨 믿음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과연 ‘바디메오’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성경에는 병자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았다 거나, 기적이 일어났다는 내용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을 쓴 저자들은 단순히 놀라운 기적의 이야기만 전해 주려고 글을 썼던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 사건에 내포되어 있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단순하게만 읽을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2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말씀입니다. ‘바디메오’는 소경이었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여리고는 1년 내내 예루살렘을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는 곳입니다. 아마 ‘바디메오’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통해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들려온 소문은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바디메오’에게는 성령의 음성이었던 것입니다.
이때부터 ‘바디메오’는 예수님을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고, 만날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마침 예수님께서는 여리고를 지나가시게 되었던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디메오’는 비록 자신이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이었었지만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난 후부터는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소경인 자신도 앞을 보게 될 것이라는 믿음의 눈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서도 여러 방법으로 성령의 음성은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들을 수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라보는 믿음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바디메오’와 같이 말입니다.
바디메오는 예수님께서 그의 앞을 지나실 때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가까이 할 수 없는 환경적 제약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부르짖음에는 간절한 소원과 믿음이 실려있었던 것입니다. 그 부르짖음으로 말미암아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이렇게 간절함이 실려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실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그런 기도를 목숨을 건 기도라고 합니다. 마치 엘리야가 3년 6개월 동안 비가 한 방울도 내리지 않던 이스라엘 땅에 비가 내리게 해달라고 자기의 머리를 무릎 사이에 두고 일곱 번이나 하늘을 확인하며 하나님께 드렸던 그 간절한 기도 말입니다.
‘바디메오’는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요. 그의 말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시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어두움에 휩싸인 저를 구원하여 주소서’라고 하는 믿음의 기도였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불쌍히 여김을 받는 것이 응답의 지름길입니다. 간절함을 동반한 이런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자기가 죄인인 것을 고백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지금 도와주시지 않으시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디메오’는 자기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분명히 눈을 뜨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하시니까 그는 지체하지 않고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는 눈을 뜬 자기의 미래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에게는 눈뜬다는 것보다 더 급한 것은 배고픔을 면할 수 있는 물질을 얻는 것이었습니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것을 구하는 것보다 예수님께 물질을 구하는 것이 현실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음에 소원을 예수님께 믿음으로 내어 놓았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무엇을 얻을 기회가 생기면 상대가 무엇을 자기에게 해줄 수 있을 것인가를 먼저 가늠해 볼 것입니다. 그리고 받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메오’는 예수님께서 눈을 뜨게 해주실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의심 없이 믿었기 때문에 “주여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눈을 뜨게 될 것은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시면 어떤 불가능한 것도 가능하게 된다는 믿음이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되시고 또 목자가 되시는 전능하신분이시라는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날마다 걱정 속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렇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바디메오’의 삶은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암담함 그 자체였습니다. 신체적으로 소경이었고 직업으로는 걸인이었습니다. 아무도 사람같이 대해주지 않았던 거지소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예수님을 만나게 됨으로 인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또 문제를 만나서,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십니까? 포기하지 마십시오. 아직 꿈은 꿀 수는 있지 않습니까? 그 꿈을 믿음위에 올려 놓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기적은 일어날 것입니다.
누구든지 꿈은 가질 수 있습니다. 허황된 꿈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꿈이라면 그 꿈을 가지고 하나님께 부르짖읍시다. ‘바디메오’와 같이 전심으로 말입니다. 그리하면 2023년에 믿음 위에 올려진 꿈이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과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말씀에서 날 때부터 소경이었기에 자신의 이름조차 가지지 못하고 디메오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디메오’로 불리던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예수께서 여리고에 가까이 오시자 자신을 불쌍히 여겨 주시라고 소리치자 예수님께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누가복음 18:41~43)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앞날을 알 수 없는 캄캄한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소경 거지 바디메오가 믿음으로 간절하게, 주실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인내로, 목숨걸고 예수님께 자신의
눈이 보일 것을 구하였을 때 다시 보게 된 것 같이 믿음으로 간절히 구하여 응답받고 승리하는 기적을 체험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올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