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분단과 교회 분열
우리 민족은 8·15해방과 함께 남북 분단의 비극을 맞았다. 38선 이북에 있던 교인들은 1946년 서부연회를 재건하였으나 공산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극심한 수난을 받았다.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공산정권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투옥되었고, 철원에서는 장흥교회 청년들이 애국청년단을 조직하여 반공투쟁을 벌이다가 투옥되었다. 결국 북한에 있던 많은 교인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월남하였고, 이후 북한 교회는 ‘침묵의 교회’가 되었다.
6·25 전쟁으로 많은 예배당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전쟁을 겪은 후 남과 북사이에 정치·문화·종교적 갈등과 대립 구조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런 민족의 분단상황에서 교회는 내적 갈등과 분열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 감리교회도 해방 직후 재건파·복흥파 분열을 시작으로 1954년, 1970년, 1974년에 각각 교회 분열의 아픔을 겪었으나 오래지 않아 다시 합동함으로 ‘하나된 감리교회’ 전통을 이어 나갔다.
교회 성장과 해외 선교
전쟁 후 감리교회는 미연합감리회 선교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재건과 복구 작업을 신속하게 전개하였다. 그리고 1968년 온양에서 개최된 한·미 선교정책협의회를 계기로 한·미 감리교회는 선교의 동반자 관계를 정립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감리교회는 교회 부흥과 민족 구원의 선교적 사명에 충실하고자 노력했다. 1964년 김활란, 홍현설의 발의로 시작된 민족복음화운동은 초교파적 대중부흥운동으로 연결되었고, 1974년 시작된 ‘5천 교회 1백만 신도운동’과 1987년 시작된 ‘7천 교회 2백만 신도운동’은 교회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 결과 해방 당시 5만 명 수준이던 교세가 1984년에 90만 명, 1996년 현재 7개 연회, 국외선교연회, 서부연회, 183개 지방, 4,700교회, 135만 명 교인을 넘게 되었다. 이처럼 교회 성장을 이룩한 한국 교회는 해외 선교를 통한 세계복음화에 적극 참여하였다.
1958년 볼리비아 선교를 시작하였고, 1965년 ‘감리교 선교 80주년 기념사업’으로 사라왁 선교가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 태평양 동아시아 지역, 1980년대 동남아시아 중동 지역과 아프리카 지역, 그리고 1990년대 러시아와 동유럽, 중국 등 옛 공산권 지역으로 선교가 확산되었다.
교회 일치운동과 사회 참여
‘하나된 교회’를 지향하는 한국 감리교회는 해방 후에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대한성서공회, 대한기독교서회, 한국찬송가위원회, 기독교방송, 대한기독교교육협회, 기독교청년회, 여자기독교청년회를 통한 초교파 연합사업에 적극 참여하였다.
그리고 아시아교회협의회, 세계교회협의회, 세계감리교협의회 등 국제적 교회일치운동 기구에 참여하면서 아시아와 세계 교회 신학과의 교류를 통해 감리교회의 선교 및 신학적 과제를 확인하였다. 1960년대 이후 감리교 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토착화 신학’은 기독교 신학 전통에서 한민족의 종교·문화 전통을 재해석함으로 동·서 신학의 교류와 대화의 길을 열었다.
그리고 신앙인의 적극적인 사회 현실참여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선교’ 신학 입장에서 1961년부터 산업선교가 시작되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의 인권 회복과 노동 환경의 구조적인 개선을 위한 노력으로 발전된 산업 선교는 1970년대 들어서 사회정의 구현운동, 민주화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1980년대 노동운동, 농민운동, 도시빈민운동, 환경운동, 통일운동으로 이어졌다.
선교 100주년과 자치 60주년
한국 감리교회는 ‘선교 1백주년’을 맞아 1984년 6월 24일 ‘기독교대한감리회 1백주년 기념 연합예배’를 드렸고 “기독교대한감리회 1백주년 신앙선언”을 발표하였으며 1985년 4월 5일에 개최된 ‘기독교대한감리회 1백주년 기념대회’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1백주년 기념대회 선언문”을 채택하여 선교 1세기를 정리하고 선교 2세기를 전망하는 신앙과 신학적 결의를 밝혔다.
그리고 1990년 10월 29일 ‘기독교대한감리회 자치 60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하고 “기독교대한감리회 자치 60주년 선언문”을 통해 한국 감리교인들은, ‘역사적 전환점에 서 있는 교회와 민족 앞에서 그리고 나아가서 세계의 참된 평화를 위하여 우리의 선교적 사명을 마음 속에 되새기면서’ ‘새로운 각성과 결단을 가지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할 것’을 다짐하였다.
한국 감리교회는 한 세기 역사를 통해
1) 성서, 전통, 이성, 체험을 바탕으로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웨슬리 복음주의 신앙 전통
2) 한말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민족이 처한 사회·국가적 상황과 현실에 적극 참여하여 민족의 구원을 구현하는 민족주의 신앙 전통
3) 기독교 복음을 한민족의 역사·문화적 전통에서 주체적으로 수용·해석하는 토착적 신학전통
4) ‘하나의 복음’, ‘하나의 교회’를 지향하는 교회 일치운동 정신에 입각하여 다른 교파 교회와 대화와 협력을 추구하는 에큐메니칼 신앙 전통을 수립하였다.
이러한 역사 및 신앙 전통을 계승한 오늘의 한국 감리교회는 민족과 세계 복음화, 민족의 평화 통일 그리고 세계 인류의 평화공동체 구현을 위한 선교 사명이 있음을 확인한다.
21세기 감리교회의 위상
21세기에 들어오면서 한국감리교회는 새로운 도약을 위해 노력했다. 위대한 감리교회 선언을 통해 감리교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WMC 대회를 유치하는 등 세계화가 시작되었으며, 이어 감리교회의 미래를 위해 300만 총력전도운동을 전개하여 감리교회 배가 운동에 앞장섰으며, ‘정직합시다.’라는 사회운동을 전개하여 큰 호응을 받았다. 특히 2003년 호남선교대회를 광주에서 개최함으로써 감리교회의 역동적인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제26회 총회에서 피선된 신경하감독회장과 감독들은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선언하고 영적대각성운동을 전개해 우선 감독회의에서 금식기도회와 자기반성의 영적대각성 선언식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제주선교대회를 통해 열악한 제주지역에 선교열기를 일으켰다. 제19차 세계감리교 대회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한국감리교회 위상을 드높였으며 세계의 감리교회들이 우리와 선교협약을 요청하였다. 뿐만 아니라 신실한 감리교인이란 주제로 희망 프로젝트를 세워 감리교인의 성화를 향한 삶을 강조하였으며, 부산에서 영남선교대회를 개최하여 영남지역의 선교역량을 강화시킴으로써 든든히 서가는 감리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자료출처: 기독교대한감리회 누리집 (https://kmc.or.kr/about-kmc/history-of-km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