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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샘바다(井海) 원문보기 글쓴이: 정해
주역의 현대적 이해
주역이란 무엇인가?
역경 즉 주역은 유가 사상의 결정판이다. 주역에는 원시유가原始儒家 사상에서 진보한 한대 유학자들의 사상이 많이 덧붙여졌다. 그러나 본바탕에는 역시 공자의 사상이 담겨 있다. '유교'라는 말은 불교가 도입된 이래 남북조 시대에 가서야 쓰이기 시작했다.
주역은 유가 사상이 유교로 정비되기 전에 이미 널리 유행했었다. 공자가 역경에 열 개의 날개를 달았다는 뜻으로 일컬어지는 십익十翼이라는 해설이 덧붙여졌고, 중국 역사를 통하여 엄청난 주석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노력이 청나라 때 사고전서에서 집대성되었다. 역의 해석에 모든 유가 사상가들의 철학적 정신력이 응집되었던 것이다. 모든 강물이 바다에 이르듯, 도덕의 완성을 위해 군자의 나아갈 바를 밝히려는 유가 철학자들의 노력이 역경이라는 거대한 바다에서 모두 모였던 것이다.
원래 '군자君子'라는 말은 유가에서 독점적으로 쓰던 말은 아니다. 노자도 썼고 장자도 썼다. 대개 이상적인 인격을 갖춘 사람을 가리킬 때 쓰는 말이었다. 물론 노장 사상에서는 '진인', '지인' 등의 말을 따로 쓰기는 한다. 그러나 '성인'이니 '군자'니 하는 낱말은 대개 중국 사상가들이 흔히 쓰던 공용 어휘였다. 유가는 유독 군자의 정신 세계를 자주 말했다. 때문에 유가의 고유한 말처럼 들리게 되었던 것이다. 주역은 군자에 대해 잘 알려주는 책이다.
주역은 주 나라(1066?-256 B.C.) 때의 역이라는 말이다. 주역과 함께 삼역三易으로 일컬어지는 하夏 나라(2000?-1562? B.C.)의 연산連山과 상商(은殷이라고도 함. 1562?-1066? B.C.) 나라의 귀장歸藏이 있었다는 주례周禮의 전설이 있으나, 그 실존 여부는 믿을 수 없다. 후대 북사北史에는 연산이 유향劉向(77?-6 B.C.)의 위작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고래古來로부터 현금에 이르기까지 수다한 학설이 있다. 역이라는 글자는 변화를 의미하는데, 일日과 월月 두 글자를 합친 것이다. 또 설문說文의 해석을 근거로 해서, 피부색을 바꾸는 카멜레온을 뜻한다는 송대 육전陸佃의 설이 있다. 때문에 주역은 '변화의 경전'이라 번역된다. 모든 현상은 변화한다. 운명도 그러하다. 이 모든 변화를 체계화 시켜놓은 책, 그것이 주역이다. 고대의 주역은 원래 점치는 책이었다. 공자의 춘추春秋를 해석한 ≪좌전左傳≫은 좌구명左丘明이 400-250 B.C. 년 사이에 저술했으리라 추정되는데, 노魯 은공隱公 원년부터 노 도공悼公 4년까지[722-453? B.C.] 260년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이 춘추 좌전에 주역으로 점을 쳤다는 기록이 16회 나온다. 주역은 이미 공자 이전 시대부터 점을 치는 책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전승도 여러 가지이지만, 한 가지를 말해보면, 태고적에 복희伏羲(전설은 2953?-2838? B.C.)가 팔괘를 만들고, 팔괘를 겹쳐 64괘로 중괘重卦했다고 한다. 각 괘에 '원元', '형亨', '이利', '정貞' 4글자를 조합해 붙여진 단사彖辭[괘사卦辭]는 주문왕(1099?-1050 B.C.) 지었고, 6개 효에 각각 붙여진 효사爻辭는 문왕의 아들 주공周公(?-1032 B.C.)의 작품이라고 한다. 이것이 주역 본경本經이다. 단彖은 단斷, 즉 괘의 의미를 단정斷定해 말한다는 뜻이다. 원형이정 4개중 하나 또는 몇 개를 조합하여 표현된 단彖 즉 괘사가 점의 길흉을 말하는 것[점사占辭]으로서, 이것을 주역에서 가장 오래된 내용이라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점사에 대해서는 이 책의 3부, 괘상 해석 편에서 설명하겠다. 이 본경에 십익十翼 즉 열 개의 날개가 달려 있다. 열거하면, 단전彖傳['단왈彖曰'로 시작하는 말] 상하, 상전象傳[상왈象曰로 시작하는 말] 상하, 계사전繫辭傳 상하, 문언文言, 설괘說卦, 서괘序卦, 잡괘雜卦 이상 십전十傳이다. 서한西漢(기원전140-기원후25) 시대에는 ≪주역≫ 본경과 10전이 따로 유통되다가 그 후대에 가서 합본 편집되었다고 한다. 문헌 전승에 따르면 공자孔子(551-479 B.C.)가 십익을 창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송대 구양수歐陽修(1007-1072), 근대 곽말약郭沫若 (1892-1972), 이경지李鏡池, 고형高亨(1900-1986) 뿐 아니라 현대 서양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수다한 반론과 이설異說이 있다. 어쨌든, ≪사기史記≫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는 공자가 주역을 너무 열심히 읽어, 죽간을 묶은 가죽끈이 세 번씩이나 끊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일화는 위편삼절韋編三絶이라는 말로 전해진다. 논어 자로子路 편에 보면, 주역 항恒 괘의 3효 효사를 인용한 구절이 있다. 이것을 증거로 공자는 실로 역을 탐구했으며, 역전을 지었다고 한다. |
주역 탐구로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우리 나라 국기는 태극기다. 왜 송대 이학理學의 창시자 주돈이周敦?(1017-1073)가 만든 태극도太極圖가 국기가 되었을까. '태극도'는 천지인 삼라만상의 이치를 담은 상징이 아닌가. 참 기묘한 일이다. 그렇다면 태극기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알아볼 만도 하지 않은가. '태극도'는 역경易經의 음양 사상을 담고 있다.
역경은 유가 철학의 집대성이라고 한다. 역경에 유가 사상의 '모든' 체계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니다. 역경 말고도 다른 경전들이 있다. 그러나 철학적인 면에서는 역경이 유가 사상의 핵심을 말하고 있다고 보더라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이전의 유학자들이 했던 말이지만, 역에 관해 '주역심전周易心箋'을 저술한 다산 자하도인紫霞道人 정약용(1762-1836) 선생은 역경이 우주의 진리를 담고 있으므로 모두 외워야 한다고 다짐해 썼다.
인간성 향상의 영원한 이정표라는 것이다. 주역을 읽으면 미래가 보인다. 이 말은 천안통天眼通의 천리안을 얻어 눈앞에 영상을 본다는 뜻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현상의 본질을 직관으로 지각한다는 말이다. 그 직관을 시각화하면 심상이 떠오른다. 때문에 본다고 말한 것이다. 철학적으로 말하면, 격물치지格物致知의 깊은 뜻이 여기에 있다.
인도철학에서 말하는 요가에 통달한 수행자의 직관直觀의 경지와 같은 것이다. 누구든 주역 공부가 깊어지면, 괘상을 눈 앞에 보듯이 미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맹인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선견지명이 없어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사람은 어둠 속의 인생을 살게 된다. 그러나 눈을 뜨고 앞을 본다 해도 정도의 차이가 있다. 난시, 근시, 원시, 색맹, 선천성 약시, 백내장 걸린 눈, 녹내장 걸린 눈, 황달 걸린 눈 등등 안질도 많다.
이처럼 미래를 보는 것에도 시야의 넓고 좁음이 있고, 시력의 선명함과 희미함의 차별이 있다. 뚜렷하고 선명하게 보이느냐,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하느냐, 그것은 공부가 얼마나 깊은가에 달려 있다. 마음을 열고 미래를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널리 지식을 쌓음과 동시에 깊은 수양이 있어야 한다. 주역은 삶과 죽음의 이치를 탐구한 책이다. 해서, 주역에는 수천년간 쌓여온 수다한 주석서들이 있다. 사고전서四庫全書의 관계 문헌과 현대 서양 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쏟아져 나온 연구 자료로 도서관을 만들 정도다.
모두 높은 선비들의 깨달음이 녹아 있는 '정신의 정화精華'라 할 수 있다. 평생을 바쳐도 그 작은 일부나마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어려운 일이다. 그 유가 사상의 실천적 방법론이 담긴 것이 주역이다. 삶을 지혜롭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주역은 유가의 경전이라고 못박아 말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극동 문화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던 유교 경전이면서, 유교뿐 아니라 도교, 중국 불교, 한방 의학, 수학, 지리학, 군사학 등 여러 분야의 학문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주역을 읽으면 삶과 죽음이 보인다
우리 마음속에는 많은 의문이 있다. 많지만 무한하지는 않다. 일생토록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해야 몇 십년 밖에 되지 않는다. 대개 사람들은 의문을 품되 해답을 찾는 정성이 부족하다. 인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애써 몇 가지 의문을 품자마자 그 해답을 알기 전에 곧 죽기 일반이다. 그러므로 짧은 수명만큼이나 인간은 전지전능하지 못하다. 주역의 근본 원리는 괘상과 천지자연을 1:1 대응시키는 것이다. 이런 해석 방법이 주역의 기원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우주 삼라만상과 모든 현상에 빠짐 없이 숫자로 고유명사를 붙여 부르는 것과 같다. 그렇게 해서 수백 억, 아니 수천 조 개의 괘를 만들어내려면 못 만들어낼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은 유한하다. 해낼 수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상고시대의 성인들이 극심히 탐구해서 원리 해석이 가능한 6효 64괘 체계로 주역을 구성했다.
언뜻 보기에 64괘만으로 해석을 하려 하면 천지자연은 고사하고 인간사에만 1:1 대응시켜 맞추어 봐도 턱없이 모자라 보인다. 메뚜기 종류도 2,000종이 넘는다. 그러나 역의 변화는 무궁무진하다. 64괘는 기본적인 변화를 표상한 것일 뿐이다. 단지 인간 목숨이 유한하므로 64가지로 분열시켜 볼뿐이다. 그 64 괘상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 역은 거울과 같다고 한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인다.
천지를 비추면 천지가, 인간을 비추면 인간이, 역사를 비추면 역사가, 사물을 비추면 사물이 비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역으로 세상을 비추어 보려면, 여러 분야의 학문에 통달해야만 한다. 당연한 말이다. 주역을 알면 삼라만상의 현상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학문에 통달해야 주역에 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주역을 이해하는 데 대단히 중요한 관점이다.
그러나 여러 학문이 아니라 한 가지 학문에 통달하는 것도 일생을 바쳐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저 주역을 해독하는 일 조차도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설명하면, 주역의 괘상을 현상에 대응시켜 보려면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들의 분류학에 통달해야만 한다.
예를 들어, 주역으로 경제 현상을 파악하려 하면 경제학에 통달해야만 할 것이다. 어려운 일이다. 마치 철학자 카납 R. Carnap (1891-1970) 이 명저≪세계의 논리적 구조 Der logische Aufbau der Welt (1928)≫에서 모든 과학 지식을 논리철학 체계로 구성하려던 작업이 이론적 가능성을 확인한 것으로만 그친 것과 비슷하다. 경제 현상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고 또 경제학에 정통하다면, 주역을 공부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주역을 탐구하는 목적은 하나다. 지혜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짧은 인생사에 삶의 의미를 이해하고 성명性命을 바로 하며 살려는 것이다. 주역으로 공부할 것은 삼라만상이 생멸하고 변화해가는 '원리'다. 주역이 64괘로 깍고 다듬어진 이유가 이것이었다. 안심입명安心立命-마음의 평화를 찾음이 주역을 공부하는 목적이다.
주역의 의의
부대인자夫大人者는 여천지합기덕與天地合其德하며
대인은 천지의 덕과 일치하며 《출전: 주역, 건괘 문언전》 |
공자의 사상에서 '하늘'은 중의적으로 표현된다. 자연으로서의 하늘과 주재主宰로서의 하늘이다. 공자의 사상은 비종교적이다. 그러나 맹자는 하늘을 주재자로 생각한다. 유심주의적인 하늘이다. 순자는 하늘을 자연의 하늘로 생각할 뿐이다. 유물주의적인 하늘이다.
나중에 인도에서 불교가 도입된 이후로 남북조 시대가 되어서 유가 사상은 유교로 불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도교와 더불어 중국의 유불선 삼교 시대가 열리게 된다. 이후로 유불선儒佛仙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갈등과 화합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게 된다. 주역 계사전에는 한대 사상가들의 생각이 어우러져 있다. 고대 관념, 유가 사상, 도가 무위無爲 사상이 녹아 있다.
인간을 초월하려는 열망이 대인의 경지를 설명하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어떤 추상적인 개념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천지자연의 질서와 이치에 부합하는 인간. 이상적이지만, 관념적이지 않다. 구체적이며 자연적이다. 대인의 인격의 경지는 굳이 서양식으로 말하면 지고한 선-숨뭄 보눔 summum bonum이다.
상식은 센수스 꼼무니스sensus communis, 영어로는 카먼 센스common sense 이다. 상식은 관찰로 얻어진다. 지식이며, 깨달음이다. 상식은 '그대'와 '나'사이에 의사소통을 이룬다. 상식은 문화를 만든다. 상식은 문명의 본질이다. 천지자연을 관찰하라. 문화를 관찰하고 탐구해 보라. 거기에 상식이 있다.
상식이 있다면, 주역을 읽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주역은 말한다 : 천지는 속임 없이 있는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나타난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라. 그러면 천지의 도를 있는 그대로, 여여如如하게 터득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