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기와 「맨발의 순례자」 ― 고통과 실천의 문학적 교차점
문학평론: 이삭빛 시인(본명 이미영, 문학박사) 문학평론가, 동양문인협회 회장
국립 NwSSU대학교 문예창작 겸임교수
들어가기: 문학과 삶의 경계에서
문학은 단순한 언어의 예술을 넘어, 시대와 인간을 증언하는 실천적 행위로 확장되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노벨재단 사무총장으로서 언론과 문학을 하나로 엮어낸 유재기 박사를 마주하게 된다. 그는 기록과 실천을 통해 한국 문학을 세계로 이끌어온 증언자였다. 그의 삶과 철학은 「맨발의 순례자」라는 시와 깊은 연관성을 지닌다. 시 속 순례자가 고통을 감내하며 존재를 확인하듯, 그는 고난과 실천을 통해 문학의 본질을 증명해 왔다.
분수처럼 쏟아진다/
작열하는 태양의 조각들이/
방향도 없이/
이름 지어진/
낙토나 폐허 위에/
쓰러진 갈대사이로/
맨발 순례자는 멈춰서/
살아가는 그 두터운/
생존을 확인 하지만/
어디메서/
살결 태울 것 같은/
빛의 충돌이/
순례의 몸을 갚아 돈다.//
― 유재기의 「맨발의 순례자」 전문
세계로 향하는 한국 문학의 교두보
그는 문학을 책 속 언어에 한정하지 않았다. 일상과 구술, 기록을 모두 문학으로 포섭하며 ‘문학의 민주화’를 추동했다. 이는 각주)밥 딜런이나 알렉시예비치가 보여준 문학관과 맞닿아 있다. 고통과 사랑, 시대와 노래를 기록하는 행위가 곧 문학이라는 인식은 「맨발의 순례자」가 보여주는 실존적 고통의 확인과도 연결된다.
창간한 『문학신문』에서 기자를 ‘보도 작가’로 정의하며 언론을 문학의 일부로 재구성한 시도는, 언어의 사회적 실천성을 강조한 독창적 비전이었다. 시에서 빛이 고통을 상징하면서도 존재를 확인하는 매개가 되듯, 그의 언론 활동은 사회적 고통과 희망을 기록하는 문학적 행위였다.
노벨문학상과 한국 문학의 세계화
1997년 한국노벨재단 창립을 주도하며 그는 노벨문학상을 단순한 영예가 아닌 국가적 문화역량의 지표로 해석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한강 작가가 대한민국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역사적 순간이 찾아왔다. 이는 단순히 한 개인의 영예가 아니라, 한국 문학 전체가 세계 문학의 중심에 서는 사건이었다.
한강의 수상은 바로 그가 닦아온 토대 위에서 가능했다. 「맨발의 순례자」에서 순례자가 태양의 작열을 감내하며 길을 걷는 모습은, 세계 문학의 길을 닦아온 그의 과정과 겹쳐진다. 고통의 길 끝에서 빛을 발견하는 순례자의 모습은, 한국 문학이 세계와 마주한 순간을 상징한다. 유재기의 실천은 씨앗이었고, 한강의 노벨문학상은 그 씨앗이 맺은 결실이었다.
문학은 삶이다 ― 윤리와 철학의 실천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문학이었다. 병든 어머니를 10년간 모신 효심, 일상 속 선행, 그리고 ‘선업선과, 악업악과’라는 좌우명은 문학을 윤리와 인간성으로 환원시킨 실천이었다. 이는 「맨발의 순례자」가 보여주는 고통의 긍정과도 맞닿아 있다. 순례자가 고통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듯, 그는 삶의 고난을 실천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헌신은 마치 등대와 같았다. 어두운 바다 위에서 길을 잃은 배들이 빛을 따라 항로를 찾듯, 그는 한국 문학이 세계로 나아가는 길을 밝혀주었다. 동시에 그의 열정은 불씨와 같았다. 꺼져가는 공동체의 목소리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 불씨가 되어, 문학을 사회적 실존으로 확장시켰다.
“고통은 인간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증명하는 것이다.” ― 알베르 카뮈
여기서 우리는 한자성어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떠올릴 수 있다. 고통을 끝내고 나면 달콤한 결실이 온다는 뜻처럼, 그의 삶과 「맨발의 순례자」는 고난을 긍정하며 끝내 문학의 빛을 완성했다.
고통과 실존의 교차점
「맨발의 순례자」는 고통을 존재의 증거로 제시한다. 태양의 작열은 순례자의 살결을 태우지만, 그는 그 고통을 통해 생존을 확인한다. 그의 삶 또한 고난을 통해 문학의 의미를 확장했다. 언론과 문학, 사회와 공동체를 연결하며 고통을 기록하고, 그 기록을 세계로 확장했다. 쓰러진 갈대 사이에서 생존을 확인하는 순례자의 모습처럼, 그의 문학관은 공동체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고통이 개인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임을 증명했다.
고통의 긍정을 넘어선 순례의 완성
「맨발의 순례자」는 고통을 직시하며 묵묵히 길을 걷는 인간의 의지를 노래한다. 그의 삶 또한 고통을 긍정하며, 그 끝에서 문학의 완성을 이루었다. 고통은 끝내 순례자의 몸을 감싸는 빛이 되듯, 그의 실천은 한국 문학을 세계와 연결하는 빛이 되었다. 남긴 것은 단순한 문장이 아니라, 존재의 결로 빚어진 문학의 품격과 실천의 울림이었다. 이는 시가 보여주는 실존적 성찰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문학의 위도와 시대적 울림
그의 삶은 한국 문학의 위도였다. 실천은 한국 문학을 세계로 이끌었고, 그 위도 위에서 문학은 인간을 품었다. 오늘 한국 문학이 세계와 품격의 언어로 마주 설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심어온 언어의 씨앗과 뿌리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2026년 동양문인협회 30주년 기념 발행인으로서의 헌신은 한국 문학의 뿌리를 지키며 동시에 세계와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했다. 그의 발행은 단순한 출판 행위가 아니라, 한국 문학의 품격과 공동체적 실존을 세계에 증언하는 또 하나의 순례였다. 협회의 역사적 순간을 책임지는 발행인으로서, 문학을 단순한 기록이 아닌 시대적 울림으로 확장시켰다. 이는 곧 한국 문학이 세계와 품격의 언어로 마주 설 수 있는 토대가 되었으며, 그의 열정과 헌신은 오늘날 문학 공동체가 기억해야 할 귀중한 유산이다.
맺음말: 한국 문학의 미래와 국가 전략
오늘날 한국 문학은 세계와 당당히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 없다. 2024년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시작일 뿐이며, 앞으로 더 많은 인재들이 세계적 성취를 이루기 위해서는 국가적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필요하다. 일본이 체계적 지원을 통해 수십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미래 인재들을 세계적 무대로 이끌어야 한다.
따라서 『노벨상지원수석실』의 신설은 필수적이다. 이 조직은 후보 발굴과 육성, 국제 협력 네트워크 구축, 교육·연구·문화예술 분야의 전략적 지원, 국가 브랜드 가치와 소프트파워 강화를 담당하는 국가적 자산이 될 것이다. 초대 수석으로 유재기 박사를 추천하는 것은 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이 국가 전략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특히 그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부터 노벨상 관련 정책 연구에 참여하며, 한국이 세계적 문화·지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왔다. 김대중 대통령이 평화와 민주주의의 가치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였듯, 유재기 박사는 문학과 언론을 통해 한국의 문화적 저력을 세계에 알리는 데 헌신했다. 이러한 노력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이어졌고, 이제는 국가적 제도와 전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그의 고난은 결국 한국 문학의 달콤한 결실로 이어졌다. 그 결실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꽃피었으며, 이제는 『노벨상지원수석실』이라는 국가 전략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문학·과학·평화·인류애를 아우르는 세계적 도전 속에서 더욱 빛날 것이다. 그 길 위에서 유재기의 이름은 단순한 개인의 기록을 넘어, 한국의 정신과 함께 국가적 품격과 시대적 울림을 증명하는 상징으로 남게 될 것이다.
각주)
밥 딜런(Bob Dylan) 미국의 싱어송라이터로,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소설이나 시집이 아닌 노래 가사를 통해 시대와 인간의 경험을 증언했다. 그의 작품은 민권운동, 반전운동 등 사회적 맥락 속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며, 문학이 반드시 책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Svetlana Alexievich) 벨라루스 출신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2015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소설적 형식 대신 구술 기록과 증언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 같은 작품은 개인들의 목소리를 모아 시대의 고통과 진실을 드러내며, 문학을 사회적 증언의 장으로 확장했다.
따라서 '밥 딜런이나 알렉시예비치”'라는 표현은, 문학을 전통적인 서사나 시 형식에 한정하지 않고 노래와 기록, 증언을 통해 시대와 인간을 드러내는 문학적 실천을 상징하는 예시로 쓰인다. 이는 유재기의 「맨발의 순례자」와 연결되어, 고통과 실존을 증언하는 문학의 본질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등장한 것이다.
출처: 이삭빛의 유재기를 말하다에서 – 내용 정리에 시평 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