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했다. 사이토 고헤이의 “지속불가능 자본주의”는 인류가 처해있는 기후 위기의 다급한 현실과 당면한 과제를 잘 정리한 책이다. 마르크스 철학의 전공자답게, 그는 간결하지만 핵심적인 내용들을 잘 짚어주고 있다.
그는, 기후 위기의 원인이 갈수록 커져가는 욕망을 채우려는 인류의 생활양식에 있는데, 그 생활양식이 지구 특히 주변부 세계의 자원과 노동력을 착취하는 제국적 생활양식임을 고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제국적 생활양식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중단없는 생산과 소비를 통하여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의하여 의도된 것이기에,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적인 방향 전환이 없는 한, 기후 위기에는 어떤 해결책도 있을 수 없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린 뉴딜’이라는 말로 상징되는 산업적 전환도 자본주의적 생활양식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기후 위기에 대처하고자 하는 불가능한 시도일 뿐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성장을 포기하고 경제규모를 축소하지 않는 한, 2050년에 0에 이르러야 하는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에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고,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경제성장이 멈추지 않는 한 기후 위기의 해결은 불가능하다고 전망하고 있다.
기술적 진보도, 정책의 전환도,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서는 결국 미봉책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저자의 말은, 이미 극단적 자본주의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2023년 한국의 현실에서 의심할 수 없는 진실로 받아들여졌다. ‘이 정도로는 안 된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목표로 하는 정치적 수사들이 난무하지만, 위기는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이 뜨거운 여름을 지나며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기 마르크스의 사상에서 해결책을 찾아보려는 저자의 시도에 처음부터 동의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본주의와 같은 목표를 추구하다 뒤처져 사라져버린 현실 사회주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세상이 더욱 불평등해졌다는 ‘토마 피케티’의 말을 떠올리며, 저자가 말하는 후기 마르크스 사상에 점점 설득되어갔다.
그리고 저자가 역설하는 “탈성장 코뮤니즘”은 이미 인류의 스승들에 의해 전해져온 이야기와 닿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성서는 안식일과 안식년, 그리고 희년(50년마다 선포되는 해방의 해)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이미 생산력 지상주의를 넘어서고 있다. 아무 노동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노동을 강요할 수 없는 시간을 무조건적으로 지키라고 명하는 것은, 더 높은 생산성이 아니라 모두가 고르게 살아가는 정상형 경제(일정한 생산성을 유지하면서 구성원의 삶에 관심하는 경제체제)를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도덕경에서도 비슷한 말씀을 읽었던 것 같다.
희망이 있음을 말하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매우 중요한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희망이 가깝지 않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3.5%의 사람들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진심으로 들고 일어나 저항하면 반드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격려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이 즈음에서, 나는 구약성서의 예언자 이사야가 생각났다. 그는 백성들이 자신의 외침을 듣지 않을 것임을, 결국 자신의 외침은 메아리에 지나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예언자의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인류의 운명을 돌이키지는 못할지라도, ‘그래도 희망을 향해 살아야지’ 중얼거리며 책을 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