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이루심
2025. 1. 19(주일낮예배) 말라기 1:1-5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Metropolitan Opera House)는 미국을 대표하는 오페라하우스이다. 1967년에 링컨센타 플라자의 중앙에 신축하게 된 오페라하우스는 3천 8백석의 지상최대 좌석수를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 들어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많은 것 중에 하나가 샹들리에라고 한다. <사진>
물방울이 퍼지는 것같은 모양의 이 샹들리에는 원래 이런 디자인이 아니었다. 디자이너가 샹들리에 스케치를 거의 완성할 때즈음 흰색 페인트를 잘못 떨어뜨려 여기저기에 얼룩이 졌다. 그때 디자이너는 다 망쳤다고 좌절하고 있었는데, 흰색 페인트가 튀어서 얼룩진 디자인을 록펠러가 본 것이다. 그리고 록펠러는 무엇인가 폭발하는 듯한 힘이 보인다고 이 디자인으로 샹들리에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였다. 그래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에는 원래 디자이너가 계획한 것과 다른 모양의 샹들리에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 샹들리에가 오페라 하우스에 상징적인 작품이 되어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조앤 롤링을 통하여서도 설명할 수 있다.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조앤 롤링은 회사에서 해고당하였고, 남편과도 이혼을 하였다. 그래서 4개월 된 딸과 함께 정부에서 주는 생활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다. 조앤 롤링의 인생은 자기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내던 조앤 롤링은 딸을 위하여 동화를 쓰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책이 해리포터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책이 해리포터이다. 조앤 롤링의 삶은 자기 계획대로 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러한 시간을 통하여 해리포터의 작가가 되는 새로운 삶을 열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삶에 계획이 무너질 때 꼭 화를 내거나 낙심해야 하겠는가? 말라기는 학개와 스가랴 선지자의 예언이 있은 지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을 재건하면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강성하고 부요한 나라가 될 것이다고 믿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실 복을 사모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성전을 건축한 것이다. 그런데 10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유대백성은 여전히 약하고, 가난하였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보내는 유대백성에게 하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말 1:2)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하나님이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다는 말에 유대백성은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유대백성에게 하나님은 유대백성을 어떻게 사랑하였는지를 증명한다. 그 증명하는 말씀이 말라기 1장 3-4절이다.
(말 1:3-4)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4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야곱은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는 것처럼 에서는 에돔 족속의 조상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였기에 에돔족속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고, 그들의 산업을 무너뜨리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에돔은 자신들의 힘으로 다시 회복하려 몸부림치고 있지만, 그들은 회복될 수 없었다.
이 내용을 잘 설명하는 성경이 오바댜 1장이다. 오바댜 1장에서 에돔은 절대적 요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에돔이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고 말씀하였는데, 그 하나님의 끌어내림이 얼마나 처참하였는지 옵1:5-9에 기록을 하고 있는데, 그 내용 중에 도둑이 밤중에 이르면 자기가 만족할 만큼 가지고 가는데, 도둑이 들어와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버렸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에돔은 자기와 동맹을 맺은 자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화목하던 자들에게 속임을 당하여 멸망하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유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짓고, 하나님 앞에 예배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 사랑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다는 연약하고 부요하지 않는 자신들의 형편을 보면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이 유다백성의 이 불평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킴벌리 커버거가 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라는 시가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내 가슴이 말하는 것에 더 자주 귀 기울였으리라.
더 즐겁게 살고, 덜 고민했으리라..(중략)
사랑에 더 열중하고 그 결말에 대해선 덜 걱정했으리라.
설령 그것이 실패로 끝난다 해도
더 좋은 어떤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믿었으리라….
더 많은 용기를 가졌으리라.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그들과 함께 나눴으리라.(중략)
킴벌리 커버거는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내 가슴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결말에 대한 걱정이 앞서서 긴장하며 용기있게 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내가 그렇게 안살았을 텐데.. 하는 후회와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는가?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을 낸다. 이렇게 인생의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열심을 다하는 우리는 내 계획대로 되면 내가 잘 살고 있는 것같고, 내 계획이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아닌가? 저는 1986년 대학교 1학년 2학기부터 교회 사역을 시작하였다. 그래서 교회에서 사례로 30만원을 주었는데, 그때 대학등록금이 50만원이었으니 적지 않은 사례였다. 그런데 저는 그 돈으로 점심시간이면 친구들과 학교 앞 식당에서 한상가득 차려서 먹었고, 광안리 바닷가에 있는 멋진 카페를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꼭 갔었다. 그렇게 돈을 쓰니 항상 돈이 모자랐다. 그래서 저는 제 삶을 점검하는 카렌다를 만들었다. 그래서 매일 성경을 몇장 읽었는지? 그리고 기도는 했는지? 그리고 돈을 어떻게 썼는지?를 매일 기록하였다. 그렇게 한달을 기록한 후 저는 깜짝 놀랬다. 왜냐하면 그 많은 돈을 쓰면서 책을 한 권도 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 년 정도를 매일 내 삶을 점검하는 카렌다를 작성하였다. 그리고 난 후 저는 성경읽기, 기도하기, 돈쓰기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삶을 살게 되었다.
이것이 제 삶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겠는가? 저는 계획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저는 계획을 하고, 그 계획을 이루기 위하여 살아갈 때 가장 안정적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빨간머리앤은 이런 저에게 충격적인 말을 한다.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 참 멋진 일이예요. 생각지도 않은 일이 벌어지니까요
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내가 생각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면 내가 생각한 일밖에 경험하지 못하고 살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내가 생각지도 못한 일을 경험하는 모험의 세계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은 그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지 않는가? 성경에서 자기 계획대로 살지 못한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요셉이다. 아버지의 극진한 사랑을 받은 요셉은 하늘의 해와 달과 열한별이 절하는 꿈을 꾸게 된다. 그런데 요셉의 삶은 꿈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왜냐하면 요셉은 형님들의 시기로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되어야 했고, 또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친 댓가로 시위대 뜰에 갇힌 자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요셉의 꿈은 해와 달과 열한별이 절하는 존귀한 자가 되는 것이었는데, 그의 삶은 추락하는 삶이 되었던 것이다. 그랬던 요셉은 시위대 뜰에서 술맡은 관원장과 떡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준다. 그래서 요셉이 꿈을 해몽해 준 대로 술맡은 관원장은 복직하였고, 요셉은 술맡은 관원장이 자신을 감옥에서 꺼내줄 날만을 기다니다. 그런데 성경은 술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창 40:23)고 기록한다.
이것이 요셉의 삶이었다. 요셉은 존귀한 자가 될 것이다는 꿈을 꾸고 있었지만, 그는 추락하는 삶을 살아야 했고, 또 술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해 주었으니 자신을 시위대 뜰에서 풀어줄 것을 꿈꾸고 기대하였지만, 그 기대도 다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형님들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고 말한다. 요셉은 자기의 계획과 꿈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인생을 험악한 인생이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이 먼저 보내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요셉이 이런 고백을 할 수 있었겠는가?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할 때와 시위대 뜰에 갇혔을 때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요셉은 자기의 계획은 무너지고 또 무너졌지만, 그때마다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그의 삶은 험악한 세월이 아니라, 먼저 보낸 자의 삶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모습을 말라기의 유다백성과 비교해 보기 바란다. 말라기의 유대백성은 성전을 재건하고, 그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함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로 나아가지 않고, 자기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과 원망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고난 가운데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알았기에 자신이 생각지 못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내 꿈과 계획이 무너질 때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는가? 잠언 16장 9절을 읽기 바란다.
(잠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기자는 사람이 자기의 인생을 계획한다고 하여도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아무리 사람이 자기 인생을 계획한다 할지라도 그 계획의 걸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심으로 지혜자는 자기의 계획을 붙잡지 말고, 내 인생을 계획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따르며 살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지금 지혜자의 삶을 살고 있는가? 지혜자는 자기 인생의 꿈과 계획을 이루며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이루심을 믿고 사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이루심을 따라 살면서 꿈꾸지 못한 날들을 경험하며 사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그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내 인생의 꿈과 계획이 무너진다고 해도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 있어서 낙심하지 않고,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