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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7년의 문학사
남진원
* 삼척군 화전국민학교 근무
* 사계문학회.
* <삼장시 토요동인회> 회원으로 가입하였으나 1976년 건강이 좋지 않아 활동하지 못했다.
1977년 한국아동문학회 강릉지부장
1977년 2월, 『아동문예』1회로 동시 추천완료. * 1977년 2월 아동문학 전문 잡지 [아동문예]에 동시 작품을 박경용 선생께서 1회로 천료시켜 주셨다.
1976년이 저물어가는 어느 날 밤, 고향에 가서 무를 뽑는 꿈을 꾸었다. 문래 국민 학교 뒤에는 학교 텃밭이 있었다. 나는 그 밭에서 파랗게 자란 무 4뿌리를 뽑아들었다. 고향에서 무를 뽑는 것이어서 꿈을 꾸고 나도 기분이 좋았다.
1977년 2월이다. 『아동문예』박종현 주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작품 4편으로 1회 추천으로 추천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원래 2회 추천으로 천료가 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내게만 이렇게 했던 것이다.
최도규 선생은 지난 1976년 이미 『아동문예』에서 동시 천료를 하셨다. 내게도 연락을 하였기에 나 역시 1976년 12월 경, 동시 4편을 추천 응모 작품으로 보냈던 것이다. 『교육자료』에서 추천을 해 주신 박경용 선생께 내 추천 응모작을 보내셨던 것이다. 박경용 선생님은 이미 『교육자료』에서 그 능력을 보았기에 굳이 2회로 할 필요가 없다고 하시며 1회로 천료 시켰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나는 1977년 『아동문예』2월호로 작품이 천료되었다. 작품은 4편이었다. 박종현 주간께서는 이런 일은 매우 드문 일로 내가 매우 문운이 좋다고 하셨다.
1977년 2월 『아동문예』등단 동시 작품들
아침 청소
남진원
묵은 찌끼를
털어내듯
마음을 열면
창을 열면
아!
밀려드는
산 푸른 이야기
빗자루에
한줌 씩 뿌리는
노랫소리 따라
참새들 노란 얘기가
햇살에 묻어
마구 날아든다.
등교길
남진원
하늘
비꺄 묻은
바람 속에서
이슬처럼 맑은
웃음
감아 돌리는
이야기
꽃 마차
햇살
부벼대는
초록빛 아침을 싣고
산새 노래
휘어진
숲을 달린다.
다듬이질
남진원
빨랫감을 펴 놓으시고
다듬질 하시는
엄마 손가락 새로
새들의 목청
파랗게 묻은
바람
바람을 한아름
뿌리며
뻣뻣한
표정
풀어낸다
이 세상
모든 주름살
풀어낸다.
아침 교실
남진원
이슬 머금은
햇살
굴러내리는
풀잎에 젖은
바람
밀려드는
교실
교실마다
창을 열고
그렇게
마음을 열고
곱게
곱게
접어둔 얘기들
아침을
부시게
칫솔질 한다.
1977년 들어서 일어난 가장 큰 일 중에 하나는 1977년 2월, 『아동문예』추천이고 또 하나는 1977년 4월 27일 아내를 만나 결혼을 한 일이다. 그리고 이해 8월 29일 건장한 아들을 낳았다. 모두 삼척군 황지읍 화전 국민 학교에 근무할 때 일어난 일들이었다.
1977년 4월 27일 강릉에서 아내 김정자를 만나 결혼식을 올렸다. 8월 아들 ‘淳’이 태어났다.
조규영 시인의 권유로 <삼장시>동인에도 합류하였다. 그러나 이도 흐지부지되었다. 이 해에 조규영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조가 가작 입상되고 불교신문에 이청화 시인이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1977년 5월 4일 한국아동문학회(회장: 김영일)로부터 제24차 정기총회 공문을 받았다.
1977년 5월 14일 (토) 어후 3시
사직관광공사(파라다이스)
( 서울 종로구 사직동 사직공원 내)
내용: 본회 사업 계획 내용. 기타 협의
회비: 2,000원
(당일 비가 오더라도 개최한다고 하였다. )
1977년 6월 4일자 업무연락 공문으로 <사계문학회>에서 문집용 원고청탁을 받았다. 그러나 이 일은 무위로 돌아갔다. 사무국 일을 맡은 이호광 선생께서 간암으로 타계하였기 때문이었다. 이후 추모시를 썼다.
이호광 시인 추모시
추모시
남진원
진정으로 문학을 사랑한 형이여
한평생 문학과 함께
젊음을 태워오신 형이여
고뇌의 숲을 지나면서 청청한 시의 향기를 피우시고
허허로운 마음으로
생명의 밭을 경작하시던
그 빛나는 삶이여
젊은 날 사계문학의 동지로
크신 음성 울려 퍼지던 날이
어제런 듯 한데
하마 당신은 본지처로 가셨습니다
아직 새벽 같은 이 땅에
형의 시는 우리를 깨우는데
유명을 달리한 지금
너무도 아픈 슬픔의 구렁에 빠집니다
님의 맑고 투명한 시혼은
바다처럼 푸른 울림이 되어
이 땅에 퍼질 것입니다
형이여, 부디 영면하소서!
1976년 1월 1일자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새벽] 으로 당선하신 함종억 선생님! 1977년 함종억 선생은 강원아동문학회 사무국 일을 보셨다. 1977년 10월 4일자로 이분은 본인의 이름으로 업무연락 공무을 보내셨다. 작품집을 낼 의욕으로 문학회의 희망이 담긴 내용이었다.
1977년 5월 7일자로 업무 연락 제10호를 보내셨다.
화사하게 웃으며 다가오던 목련의 지취도 사라지고 다시 산야에는 공간을 불허하는 신록이 출발했나 봅니다. 또 한번 가슴이 설레이고 풍선처럼 마음이 들떠오르며 어느새 동해의 퍼런 바닷물이 유혹을 해오는 군요. 라면서 작품집 발간 등의 회무를 전달하였다.
곧이어 1977년 10월 4일 자로 또 업무 공문을 보내셨다.
강원아동문학회
바쁘신 중에도 건안하시리라고 믿습니다. 지난 여름에는 호산에서 열기 속에서 세미나를 무사하게 마친 점 다같이 기뻐해 주시고 다시금 이호성씨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때 이야기한 대로 제5집은 합동작품집으로 낼 것인즉, 희망하시는 분은 우선 서면 연락 바라고 (10월 20일 한) 작품은 11월 30일까지 우송 바랍니다. 등 회무에 관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함종억 산생은 강원아동문학회 사무국장일을 맡아 하셨다. 그리고 더욱 나를 놀라게 한 일은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당선한 일이었다. 그 제목이 「새벽」이었는데 내용이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내가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작품 중에 가장 맘에 드는 작품이었다. 그 작품은 바다의 일출을 형상화하였다. 나는 아름다운 강릉의 바다에 살고 그 선생님은 바다에 살지 않고 홍천에 기거하고 계셨다. 그런데 작품 내용은 일출의 광경이 너무나 새롭고 아름다웠다. 강릉에사는 나는 부끄러웠자. 그리고 함종억 선생님이 존경스러웠다. 역시 저력이 잇는 분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또 한 번 놀랐다. 그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비보였다. 정말 얼마나 놀랐는지 몰랐다. 한창 좋은 글을 쓰기 시작하셨는데 돌아가시다니 …. 제일 안타깝고 슬펐다.
선생님을 생각할 때마다 그 작품 ’새벽‘이 떠오른다.
새 벽
송영희( 본명: 함종억)
검푸른 수평선
하늘 끝 닿은 곳에
석류속 보다 진한
물빛이 섰다
청청히 고운 물에
밤새도록 몸을 씻고
불끈 솟는
빨간 해
나무는 잠을 털며
산을 깨우는데
새들 깃에
묻어오는 새벽
쏴아 -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쩡 - 하고
깨어나는 마음
하늘은 바다를 열고
알몸인 해를
파란 보자기로 받는다.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굉장히 아름답고 좋은 작품이다. ’동시‘라고 하여 독자가 어린이 만은 아니다. 동심이 깃든 모든 어른들도 독자가 된다.
바다의 새벽이 붉어지는 모습이 섬세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석류속 보다 진한 / 물빛이 섰다‘ 라는 데에서는 미감을 느낀다.
해가 솟는 모습도 박진감이 있고 보는 이의 마음속에서도 즐거움이 일렁인다.
‘청청히 고운 문레 / 밤새도록 몸을 씻고 / 불끈 솟는 / 빨간 해’
사람들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를 보며 새로운 하루를 준비한다. 이 작품은 바다에서 떠오르는 해의 장엄한 모습을 그렸다. 영상미로서도 손색이 없다. 하늘은 기다렸다는 듯 파란 보자기로 해를 받는다는 데에 오면 숭고함마저 든다.
새로운 생명에 대한 탄생을 해에 은유하여 신비감과 위대한 모습을 증폭시켰다. 존재의 경이로움마저 느껴진다.
나는 바닷가에 살지만 해 뜨는 모습을 생각하면 바다에 가지 않고 이 작품을 읽는다. 아름답고 힘찬 생명감을 노래한 함종억 작가님이 유명을 달리하였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위대한 작가 한 분을 잃은 슬픔이 크다.
산목련
남진원
한나절
아릿아릿
졸음 겨운
하늘 아래
맴돌다 흰구름만
흰구름만 흠뻑 배인
한그루
순백의 붕대
그리움을 엽니다.
* 시작여적[ 詩作 餘滴 ]
40대 무렵, 6월 즈음 버스를 타고 서울을 가기 위해 대관령을 지날 때이다. 대관령 굽이굽이 숲 사이로 하얀 산목련 꽃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마치 서울 나들이를 가는 나를 사랑하는 여인이 배웅하는 듯 말이다. 그때 시상이 떠올라서 쓴 시 작품이다. 자연스레 쓴 시였는데 써 놓고 보니 단시조 작품이 되었다. 이 작품을 읽고 있으면 대관령의 풋풋한 여름 숲과 그 사이로 피어나던 목련꽃의 향기가 지금도 전해오는 듯하여 마음이 맑아진다. ‘해맑은 순수!’ 지금 생각해 보니 꿈속에서 가끔 만나던 여인들의 정령인 듯 싶기도하다.
(2022. 8. 19)
1977년 새해가 밝았다. 류제하 선생께서 신년 축하 글을 보내주셨다. 늘 고맙고 감사하였다.
새해와 더불어
더욱
풍요로운 나날 누리시옵소서!
77년 새해 아침
류 제 하
* 아동문예에 잡지 추천을 받을 때엔 신비한 꿈을 꾸었다.
고향의 모교 뒷 운동장엔 조그만 밭을 만들어 선생님들이 채소를 심어 가꾸었다. 나는 꿈에 그 밭에 갔다. 밭에는 싱싱한 무가 자라고 있었는데 무를 네 뿌리를 뽑는 꿈이었다. [아동문예]에 추천된 작품이 4편이었다.
* 아동문예에 추천 작품을 모냈는데 심사를 교육자료에서 추천 해 주신 박경용 선생님이 맡으셨다. 그래서 초회로 추천을 완료했다. 다른 분들은 모두 2회 이상의 추천을 받아야 했는데 운이 좋았던 것이다.
그 후 박경용 선생님과의 만남은 참으로 신기하게 이루어졌다.
서울에서 열리는 한국아동문학회 송년회에 참석하려고 상경하였다. 서울의 종로구의 한 곳에서 방향을 몰라 이리저리 찾던 중 지하철에서 올라오는 한 분이 눈에 띄었다. 생긴 모습이 책에서 뵌 박경용 선생님 같아서 실례를 무릅쓰고 앞에 가서 여쭈어 보았다.
“혹시 박경용 선생님이 아니십니까?”
내가 여쭙자, 누구냐고 묻길래, “정선에 사는 남진원입니다.” 라고 하였더니 손을 잡고 반가와하셨다. 이렇게 서울 한 복판에서 우연히 박경용 선생님을 뵐 수 있었다. 선생님은 한국일보사에 가려던 길이었다고 하셨다. 나는 어디 가서 약주를 한 잔 대접하겠다고 하였더니 선생님은 어느 허름한 음식점으로 데리고 갔는데 싸구려 식당이었다.
찌게 국물을 한 대접 시키고 소주를 하였는데, 서울에 올라온 나를 생각하여 돈을 쓰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다. 참으로 소탈한 모습과 인품에 고개가 숙여졌다.
소주를 마신 후에 한일관에서 열리는 행사에 간다고 하니 그곳에 함께 가시겠다고 하였다. 원래 박경용 선생님은 이곳 저곳 문학 단체에 가입하시지 않고 자유롭게 글을 쓰시는 분이었다. 그런데 아마 내가 그곳에 간다고 하니 일부러 함께 가시려고 하였던 모양이었다. 그곳에는 김영일 회장을 비롯하여 김동리 선생, 박화목, 이영호 선생 등 많은 원로 문인들이 계셨는데 동화작가 이영호 선생 옆에 박경용 선생님이 앉게 되었다. 그 분과 입씨름이 벌어져 나는 매우 당황하였던 기억이 떠오른다.
엊그제 이야기 같은데 벌써 32년 전의 일이 되었다.
* 1977년 강원아동문학 봄호에 동시조 ‘골목길’ '마을'을 발표하였다.
골목길
남진원
군밤 호도 두둑히 넣고
동구밖을 나오면
날때리던 아이들이
손 내밀며 다가오는
그 손빛 걸러 넣으며
돌고 도는 골목길
곶감 대추 두둑히 넣고
동구밖을 나오면
날 놀리던 아이들이
찡긋대며 뛰어오는
그 눈빛 걸러넣으며
돌고도는 골목길
과자 봉지 두둑히 넣고
동구밖을 나오면
바위하고만 놀던 아이들
나 하고만 논다고
졸졸 다라 다니는
그 맘빛 걸러넣으며
돌고 도는 골목길
(강원아동문학 1977년 봄호)
마 을
남진원
앵두꽃 잠든 마을
지켜보던 해가 누워
꽃 꿈 빨아먹다
저도 누워 잠이 들면
시냇물 실어나른다
햇살에 익는 봅빛을
살구꽃 조는 마을
지켜보던 바람이 앉아
향 내음 맡아보다
저도 앉아 조을면
꾀꼬리 물어 나른다
바람에 익는 봄빛을.
( 강원아동문학 1977년 봄호 )
*1977년 4월 27일 강릉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이후 8월 29일 아들 [대순]을 낳았다.
*샘터 시조상을 받은 걸 보고 1977년 시조시인인 류제하 선생께서 격려 편지와 함께 <시조문학> 전문지를 보내주셨다.
* 시작 여적 詩作 餘滴
고향의 자연 풍경을 쓴 글이 앞의 동시조 [마을]이고 고향의 아이들과 생활하던 한 부분을 동시조로 나타낸 것이 [골목길]이다. 문학의 소재 90%가 어릴 때 고향의 자연과 풍정이다. 글을 써 놓고 보니, 시에서 장소성이 매우 긴밀함을 알겠다. 시의 형식도 시조 형식이 단연 많음은 왜일까? 나 자신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1976년의 샘터시조상 [늦겨울 아침]은 시조로 입상하였지만 동시조로 볼 수 있다. 1980년 월간문학 신인작품상인 [가을 산조]도 시조로 당선되었다. 1983년 계몽아동문학상 역시 5편이 모두 동시조였던 것이다.
또한 그 배경이 대부분 고향에서 얻은 것들이다. 봄이면 앵두꽃 피고 살구꽃 피는 아름다운 고향 마을이 내 그리움의 일부였는지도 모르겠다.
『강원아동문학』 4집은 1977년에 발간되었다. 여기에는 21명의 회원이 참가하였다. 고유환 김성기 김종영 김학선 남진원 박봄심 박유석 방원조 심우천 안상명 오인숙 이관수 이연승 이호성 임교순 유화자 조규영 조영주 전상기 최도규 함종억 등이다.
1977년 글을 쓰다가 조선의 선비 한 분을 만났다. 조선의 학자이며 대 선비인 그 사람을 꼭 기억하고 싶었다. ‘세상을 벤 언어의 검, 임백호!’
세상을 벤 언어의 검
남진원
삶이 생명활동을 이어나가는 과정이듯이 죽음은 저 세상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리고 생명을 가진 자는 누구나 겪어야 하는 과정이다. 죽음에는 예로써 마감한다. 그것이 장례이다. 죽음에 대한 의식을 장례라는 풍습으로 행하여 왔다. 장례 풍습은 지역과 종교에 따라 각각 다르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죽은 사람의 영혼이 다시 육신으로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집트 인들은 미이라를 만드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또 화장이 시작된 것은 시체 속에 악귀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고대 그리스 인들은 시체를 태우는 것이 영혼을 해방시킨다고 생각하여 모든 시체를 화장하였다. 이외에도 비와 바람을 맞게 하여 풍화시키는 풍장이 있는 가 하면 새들의 먹이가 되게 하는 天葬도 있다. 또 친지들이 시신을 나누어 먹는 人腹葬이란 것도 있었다. 그리고 절벽 끝에 시신을 두는 崖葬도 있다. 관을 수면에서 높이 떨어진 벼랑 위에 얹어놓는다고 한다. 일명 縣棺葬이라고도 한다. 중국 동남 연해 지방과 長江 유역에서 행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장례문화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요즘은 화장을 넘어 수목장이나 자연장의 추세이다. 수목장은 마무 밑에 유골을 묻는 방법이다. 영국에서는 유골을 묻은 흙 위에 장미꽃을 심는 장미 묘원도 인기라고 한다. 자연장은 흙속에 유골을 섞어 평토를 하는 것이다. 이외에 아예 유골을 물이나 허공에 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자신이 죽으면 장례를 지내지 말라고 한 분이 있었으니 그가 조선의 대문사, 임백호라고도 불리는 임제이다.
조선의 참다운 선비, 임백호! 1549년 전남 나주에서 태어났다. 1587년, 돌아가기까지 많은 일화와 기행을 남긴 분이다. 임백호는 죽음을 앞에 두고도 초연하였다. 자식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곡하지 말라고 하였다. 즉 장례를 지내지 말라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 자식들은 그가 돌아갈 것을 알고 슬피 울었다. 임제는 자식들에게 시를 써서 일렀다.
四夷八蠻 皆呼稱帝
唯獨朝鮮 入主中國
我生何爲 我死何爲 勿哭
중국 사방의 오랑캐와 남쪽의 여덟 야만족들이
제각기 황제라고 일컫고 있다
유독 조선은 중국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니
내 이런 나라에서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느냐
내 죽거든 절대 곡하며 눈물을 흘리지 말아라
이 얼마나 호쾌하고 당당한 말이더냐. 몇 마디 언어의 검이 아니고 무엇이랴. 자주적이지 못한 조선의 임금과 관리릐 무능을 한 칼에 베어버렸으니 말이다.
나는 시조로 그의 위용에 답하고자 한다.
청사에 빛나는 검
남진원
자리에 연연하여 눈치보던 썩은 선비들
황진이 무덤 앞에 술잔을 올렸다고
입 모아 상소를 하더니 참 선비를 죽였구나
스스로 굴신하며 중국을 섬긴 조선
오랑캐보다 못한 짓거리에 ‘곡하지 말아라!’
청사에 빛나고 남을, 언어의 칼 저 閃光
『교육자료』사, 받은 원고청탁에 의해 시 발표
- 참새 소리」
1977년 3월초, 교육자료사에서 원고 청탁이 왔다. <시작 노트>까지 써 보내 달라고 하였다. 보낸 작품은 ‘참새 소리’였다. 이 작품은 교육자료 1977년 5월호에 <시작 노트>와 함께 실렸다.
-시와 시 노우트 -
참새소리
남진원
손바닥
마주 잡고
눌러
대면
쪼록
쪼록
새어
나올듯한
이 새벽
하늘 속에서
눌러대는
소리,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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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가루 새카만 이 화전골에 그래도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아침이면 찾아오는 친구!
내 조그만 지붕 앞에 와서 노오랗게 때로는 파랗게 색색의 빛깔을 떨구어놓고 가는 그 참새들을 대할 때면 나는 국민 학교 다닐 때의 그 어린 소년이 됩니다.
산골짜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소리 같은 그런 싱싱한 노래로 활활 푸름을 빗질해 주는 ……
어렸을 때의 순이 돌이 철희가 갑자기 어디서 웃고 있는 듯한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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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작품을 쓸 때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내가 사는 관사 앞은 검은 빛이지만 숲이 있었다. 나는 날마다 일찍 일어나면 그 숲속을 거니는 습관이 있었다. 그날도 아픈 몸을 이끌고 아침 숲으로 들어갔다. 하늘은 유난히 파랗고 맑았다. 그런 가운데 새들은 보이지 않고 새소리가 맑게 맑게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파란 하늘이 전부였다. 분명히 들리는 새소리! 그것은 마치 하늘이 손바닥을 마주 잡고 눌러대면서 내는 소리였다. 얼마나 놀랍고 신기한 일인가. 하늘이 소리를 내다니 …. 이렇게 하여 이 작품이 탄생된 것이다. 지금도 이 작품을 읽으면 그때 파란 하늘의 소리를 다시 듣는 것 같이 상쾌한 즐거움이 샘솟는다.
『아동문학평론』에 동시, 「김매기」 발표
이재철 박사가 운영하던 아동문학 평론 전문지인 『아동문학평론』1977년 5호에도 작품을 발표했다. 작품을 보냈더니 이재철 박사로부터 전화 연락이 왔다. 이 작품을 <아동문학 평론 신인> 추천 작품으로 낼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아동문예』에 동시가 천료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그래서 그냥 발표가 되었던 것이다.
김 매 기
남진원
초록
물바람이
흘러가는
이
랑
이
랑
뿌려논 거름 속에
묻힌 봄 뒤적이며
볕조각
담는 할머니
봄을 송송
맵
니
다
( 아동문학평론 1977년 5호)
『교육평론』에도 동시, 「봄날 아침에」 발표
1977년 5월, 『교육평론』에도 동시를 발표하였다.
봄날 아침에
남진원
광맥에서
뽑아내는
그런 황금빛과
새
잎속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풀빛의
흔들림
흔들림이
마을을 파랗게 일으켜세울
바람을
후후
햇살 속으로
불어내고 있었다
저기쯤인가?
무엇이 간간이
무너져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
( 교육평론 1977. 5. )
이 작품을 쓸 당시 내 마음은 연한 봄빛으로 가득차 오르는 느낌이었다. 「늦겨울 아침」에서 이미 봄의 기다림을 그리고 있었음을 알았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빛 속에서 울랑이는 아침과 봄의 환희로움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게 눈부시고 신나는 시간들이었다.
싱싱함과 싱그러움은 아침과 봄이 갖는 매력이었다. 그런 것들을 모두 시로 그려내기에 바빴다. 『아동문예』 1977년 8월호에 발표한 ‘아침 교실 2’, 1977년 10월 『소년』에 발표한 ‘소풍길’, 1977년 11월 5일 경향신문에 발표한 ‘화전리의 아침’, 1977년 12월 20일 소년조선일보에 발표한 ‘아침’, 1977년 12월 한국현대동시선집 『우리도 하늘 만큼』에 발표한 동시 ‘아침’ 등의 작품이 이런 시간 속에서 쓰여진 작품들이다.
아침교실. 2
남진원
풀냄새 나는 순이 이야기가
꽃냄새 나는 영이 이야기가
햇살에 범벅이 되어
소란할 때,
몸 헹구던 바람이
얼굴부비며, 얼굴부비며
말갛게 씻은 몸
드러내고 웃는
아침교실
새 소리 떼가
귀를 붙잡고 창가에
촤르르 - 촤르르 -
거꾸로 쏟아져 박힌다.
( 『아동문예』 1977년 8월호 )
소풍길
남진원
꽃들도 웃음을 문
소풍길 길속으로
밤새도록 엮어내던
무지개 꿈 지고 간다
부신 꿈 노래 떼들을
신이나게 깔면서.
일렁이는 함성들이
메아리로 번져날 때
꽃사슴도 몰래 숨어
엿듣다 가고
풀잎에 기댄 바람들
고개짓을 해댄다.
새소리 바람소리
푸른 목청 속에서
개울물은 뭉게뭉게
구름을 싣고 가고
구름은 젖은 아이테
거꾸로 태우고 즐겁다.
( 1977년 10월호 『소년』)
화전리의 아침
남진원
종지기가 종줄을 당기는 새로
화전리의 아침이 깨어나고 있다
- 날개처럼 부서져 내리는 울창한 햇살의 그물 -
그 위로 뚝뚝 떨어지는 하늘이
잎 푸른 가지에 달려
햇살을 훑어내리고
그림자차럼 청청한
바람의 목소리들이 나뒹굴며
휘파람을 분다
「여기는 바람과 하늘이 질척이는햇살의 늪」이라고
그때쯤 새들의 지저귐속에
나와 너의 흰빛 인사의 속살
우리 모두는
가방속에 햇살을 꾸려넣으며
출근을 한다.
( 1977년 11월 5일 경향신문)
아 침
남진원
새벽이
모여와서
어둠을
쓸어간 뒤
뚫어지는
창문으로
홰를 치며
고여드는
봄빛 아!
따슨 햇살들
펴놓기에
바쁘다.
( 한국현대동요동시 선집, 『우리도 하늘 만큼』)
아 침
남진원
새들이 달려나갑니다
바람이 따라갑니다
그 뒤를
앞 뒷산 골짜기에서 달려온
물소리가
출렁거리는 아침
그 아침을 온통
달구지가 싣고 지나면
분이네 옥이네
순이네 붓들이네 …
“밥 많이 잡수셨능교?
허허 허허허…”
황토 같은 웃음이
볏단처럼 묶여
부산히
동구 밖을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저 멀리 순갑이네 굴뚝 위엔
아직도 된장찌개 냄새가
동동
금빛 연기 속에 떠다니고.
( 1977. 12. 20. 소년조선일보 「동시 마을」)
젊을 때 보이던 시간과 계절은 온통 아침이고 봄이었다. 그러나 나이 80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은 오히려 저녁이 좋고 봄보다는 겨울이 안온하다. 작품들을 보면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느날 6월 저녁
남진원
저녁 무렵 갑자기 마당이 환해졌다
‘이 무슨 난리고?’
외갓집 찾았을 때 맨발로 달려 나오시던 이모 마냥
놀라고 들떠서 문 열고 보니
흐린 하늘 비집고 저녁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집 주위가 석가모니 배광 같이 아름다운 저녁
해가 이처럼 귀한
선물을 하였구나
마당을 서성이기도 하고
보물찾기를 하듯 집 둘레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일생에 몇 번 안 되는
평화가 마음에 기대는 시간이었다.
저녁 강
남진원
조용한
강가엔
노을이
지고
보일 듯
말 듯
아늑한
강둑
그
위에
혼자
흔들리고 선
송아지
울음
저녁나절
남진원
라디오도 잠그고 TV도 끄고 앉았다
어슴프레한 저녁
연한 노을이 물들었다
소음 대신
몰려오는
개구리
울음
작은 바람결에 날아드는
깃털 같은 새소리
앞에는
막걸리 한 잔
가만히 앉아 있는
촌부(村夫)가
문득 신선이 된 듯한 저녁이다.
저녁답
남진원
문 열고 나와 발자국을 세며 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귀가 부드러워진다
집 앞 도랑에서 도란도란 길 여는 물의 말들
나도 덩달아 가벼워지는 저녁답
저녁 들길에 서면
남진원
아늑한
들길에 서면
하루 동안
법석대던 것들이
가라앉아
조용히
삭아내리고
살며시 피어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꽃봉오리 같은
내일의 기다림
평화로운 저녁 햇살이
아늑한 들길에
같이 기대 선다.
저녁 마을
남진원
노을이 밀려드는
저녁 마을은
노을이 고와서
너무 고와서
마을이 노을처럼
흐르는 마을
노을이 마을처럼
흐르는 마을
교단 작가 작품집
1977년 6월에는 김사림 작가께서 [교단작가 작품집]을 엮었다. 거기에 내 작품 ‘뻐꾸기’와 ‘썰매’ 두 작품이 게재되었다. 김사림 선생은 작품마다 <감상>란을 두어 작품마다 시 읽기에 도움글을 쓰셨다. 그 노력도 얼마나 힘든지를 안다. 그 열정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한평생 김사림 선생은 문학에 열정을 바친 작가였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뻐꾸기
남진원
푸른 잎이 되어
오늘, 숲에 서니
모두 싱그러운
초록빛 친구들
그 속에 뻐꾸기 소리
아직도 먼가
천리 타향에 계신
부모님이 오신 것처럼
그렇게 무심 중
찾아온 뻐꾸기 소리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내 옛 친구 같은 이여
{감상}
산중이다. 시인은 이런 산중의 푸른 빛을 좋아한다.
< 모두 싱그러운 / 초록빛 친구들 >
이것은 시인을 둘러싼 숲이다.
그 숲에서 나는 뻐꾸기 소리가 그럴 수 없이 정답다.
그 반가운 것을 <부모님>과 <옛 친구>에다 비유했다.
썰 매
남진원
야호 -
엎어진다
자빠진다
웃음이
데
굴
데
굴
구른다.
{감상}
시의 표현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것은 시인의 수단에 따라 여러 방법이 될 수도 있고 시의 소재에 따라서도 다르다.
이 시는 시가 짜여진 행과 연 그리고 글자의 모양에서 시를 더 잘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데굴데굴>의 흉내말이 정말 구르는 모양으로 놓여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시가 훨씬 살아 보이지 않는가.
시, 꽁치 이야기
늘 ‘고향’은 내게 원시의 냄새가 나는 원형이다. ‘고향집’ 연작시를 쓰면서 ‘꽁치’라는 해산물도 소재로 썼다. 옛 어른들은 시골에서는 콩 팔고 보리쌀 팔아 30리길 장에 가서 해물을 사 온다.
꽁 치
남진원
삼십리 장에 가서야
콩 팔고 삼베 팔아
벼르고 별러 사 오셨다
숯불 석쇠 위에 올려놓으면
기름이 뚝뚝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그러면 온 마을로 고기 냄새가 헤엄치듯
돌아다녔다
모처럼 맛난 저녁상
식구들의 이야기도
꽁치 두름처럼 이어졌다
엄마는 남은 도막 아껴두었다가
다음 날
보리밥 한 술에 고기 한 저름 씩
떠 넣어주셨다
꼭꼭 씹어 먹어라
할머니 훈훈한 말씀도 함께
꿀떡꿀떡 삼켰다
생선도 사람처럼
귀하기만 하던 시절이었지.
어렸을 때 농촌에서는 생선이 매우 귀한 때였다. 농촌에서 ‘꽁치’ 같은 생선 맛 보기는 힘들었다. 생선 맛을 보려면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장날 30리길을 걸어서 임계장에 갔다.
1977년, 『강원아동문학』 4집 – 골목길 발표
귀한 것이 어디 생선 뿐이었으랴.
나무에서 열리는 과일이나 열매도 귀하였다. 어쩌다가 그런 것이 생기면 주머니에 넣고 나와 아이들 앞에서 먹었다. 친하지 않던 아이들도 친한 것처럼 옆으로 다가와 웃으며 친한 듯이 굴었다. 돈 앞에 고개 숙이지 않는 사람이 있던가? 예나 이제나 한치도 다를 바가 없다. 옛날에는 먹을 것만 많으면 부자 소리까지 들었다.
강원아동문학에 발표한 동시 <골목길>은 이런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려 쓴 작품이다.
골 목 길
남진원
군밤 호도 두둑히 넣고
동구 밖을 나오면
날 때리던 아이들이
손 내밀며 다가오는
그 손빛 걸러넣으며
돌고 도는 골목길
곶감 대추 두둑히 넣고
동구 밖을 나오면
날 놀리던 아이들이
찡긋대며 뛰어오는
그 눈빛 걸러넣으며
돌고 도는 골목길
과자 봉지 두둑히 넣고
동구 밖을 나오면
바위하고만 놀던 아이들
나하고만 논다고 졸졸 따라다니는
그 맘 빛 걸러 넣으며
돌고 도는 골목길
( 『강원아동문학』, 1977년 봄호 )
『조약돌』 7집 작품 「나비」 발표
1977년 『조약돌』 7집에 발표한 작품은 『새교실』에서 추천 완료를 받은 동시 ‘나비’이다. 『조약돌』은 엄성기 시인 혼자 만든 동인지 성격을 띤 작품집이다. 강원도에 아동문학 단체가 영동 영서로 각각 하나 씩 조직되었다. 강원도에는 춘천에서 임교순, 박유석, 심우천을 중심으로 한 <강원아동문학회>였다. 또 하나는 강릉을 중심으로 김원기, 엄기원, 엄성기를 중심으로하는 <조약돌 아동문학회>였다. <강원아동문학회>는 당초부터 정관을 만들어 회장 임기를 명시하였고 직제도 있었다. 그러나 <조약돌 아동문학회>는 회장 없이 그냥 일하는 사람 한 사람이 중심이 되게 하였다. 처음에는 청탑 다방에 모여 모임을 갖은 후 김원기가 회장이 된 영동지역 아동문학 단체였다. 그 연락이나 일은 엄성기가 맡았다. <강원아동문학회>는 지금까지도 존속되고 있다. 그러나 <조약돌 아동문학회>는 김원기, 엄성기가 세상을 뜨자 그만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 비
남진원
꽃망울 가득한
꽃밭에
나비 한 마리 날아와
재
깍
재
깍
돌아가는
숨소리
들어보고
아직
멀었나?
살그머니
오늘도
돌아갑니다.
이오덕 선생
1977년 7월, 문단에서 진보적 성향을 띤 이오덕 선생께서 편지를 보내셨다. 『새교실』 지에서 뽑힌 작품 ‘공원’이 마음에 드셨다고 하였다. 『소년』지에도 아이들 작품을 투고하였는 데 보신 모양이었다. ‘주룩비’라는 아이의 작품이 좋았다고 하시며 칭찬의 말을 주셨다. 감사하였다.
1977년 8월 10일날 받은 편지에는 창작과 비평사에 작품을 보낸다는 고마운 소식을 담아 보냈다. 비록 창작과 비평에는 작품이 게재되지 않았어도 선생님의 고마운 마음은 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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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선생님
아침 저녁 가을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방학도 며칠 안 남은 느낌입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다른 작품들과 함께 창작과 비평사(여기가 동시집을 출판하려고 하는 곳입니다) 의 편집부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그 편집부에서 다시 작품을 엄선한답니디ㅏ. 저도 그렇게 해 달라고 부택했지요. 이것은 일반 시인과 평론가들이 동시를 어떻게 보는 가를 알아보는 기회도 될 듯 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를 지금 봐서 예측을 못하겠고 아무튼 기다려 뵈 주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더욱 훌륭한 작품을 쓰시고 더욱 건승하시기 빌면서 이만 몇 자 연락 그립니다.
8월 10일
이 오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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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8월 29일 ‘득남’하다
1989년 8월 29일 아들이 태어났다. 방학 중이었다. 최도규 선생님께서 직접 편지를 보내셨다. 당시는 황지읍에서 한 고개 너머에 있는 창죽분교장에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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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생
축하하네. 득남 만세!
이제 몇 개월이 지나면 고 꼬마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봇물 터지듯 생긴다네. 그래서 글의 소재도 꼬마한테서 많이 생기게 되는 거지. 아무튼 순산을 하였다니 내일처럼 흐뭇하군.
소년지 고료 3000원이 왔드군. 돈을 벌려고 글을 쓰지 않았지만 돈을 쓸려고 글을 쓴 것 또한 아니니 청탁이나 고료가 있는 곳에 투고할 생각이야. 기독교교육에도 청탁이 왔는데 3천원이드군. 광주에서 또깨비장난하는 것엔 신경쓰지 말고 소년중앙 신춘문예 창주문학 기독교교육 현상에 도전 준비나 열심히 하게나.
그럼 안녕. 77. 9. 7. 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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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문예』 창간호에 시조 「꽃밭」 발표
1977년 12월 15일 『 태백문예 』창간호를 냈다. 거기에 시조 「꽃밭」을 발표하였다.
꽃 밭
남진원
꽃밭에 나비들이
나풀나풀 날아와 서
꽃 피우듯 꽃 피우듯
고운 맘 피워놓으면
무성한 마음의 씨눈
하하 호호 클거야
아름다워라 아름다워라
사랑스런 꽃잎들이
벌 친구 나비 친구
죄다 불러 모아놓고
단비도 나눠 마시고
햇살도 나눠 마시고
기대인 꽃과 나비
바람에 일렁이는
꽃밭은 색동 숲
넘쳐나는 노래 들
꽃 씨알 같은 웃음이
피고 지고 또 피고.
( ⯭. 1977. 12. 『태백문예』 창간호. ⯭ 1981. 여름호 『시조문학』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