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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의 문학 활동사
- 27세(만 25세) -
--- 1979년, 내 고향 물레방아에 돌던 문학의 향기
첫 발령지, 삼척군 화전 국민 학교에서 5년 남짓 지내다가 이동을 해야 했다. 강릉으로 내려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깊었다.
주거지가 있는 강릉으로 내려가기엔 모든 조건을 갖추었다. 당시엔 점수제로 하였는데 나는 벽지 점수 연구 점수 포상 점수 등 많은 점수를 확보하여 시내로 가는 데 별반 문제가 없었다.
내가 어느 곳이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고향의 모교에 가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었다. 그리워하던 고향에서 살 수도 있으니 얼마나 꿈 같은 일이냐! 그 생각을 하닌 밤을 이룰 수 없었다.
정선 문래 국민 학교, 모교인 그 학교의 선생님! 그야말로 가기만 하면 내 딴엔 금의환향을 실천하는 셈이었다. 과거 급제한 선비가 고향으로 내려가는 일보다 더 신나는 일이었다. 말로만 듣고 익혔던 한자 숙어를 직접 체험하는 일.
정선군 교육청에 가서 장학사님을 찾아뵙고 솔직하게 사연을 이야기했다. 문래 국민 학교 22회 졸업생이라고 했다. 모교에 가서 후배들을 돕고 싶다고 하였다. 초등계장이신 장학사님은 내 뜻을 귀하게 여겨 1979년 3얼 1일자로 정선군 문래 국교로 발령을 냈다.
나는 그야말로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갔다. 고향의 학교 관사에 짐을 풀었다. 그곳에서도 내 문학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아니 더 불타 올랐던 것이다. 그곳에서 나는 『물레방아』라는 개인 문학소식지를 만들어 전국의 문인들에게 배포하였다. 나와 같이 그런 일을 한 사람이 또 하나 있다. 배익천 동화작가였다. 그분도 동화를 개인 문학지에 써서 전국 문인들에게 돌렸던 것이다. 많은 분들이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 마을에서 문래산 밑 냇가로 나가는 중간쯤인 논 가운데에 물레방아가 있었다. 그곳을 지나다 보면 물레방아가 돌며 벼를 찧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물레방아를 문학소식지의 타이틀로 정하였던 것이다.
* 3월 1일자로 정선군 문래국민학교 근무
- 그리던 고향에 돌아오다
* 3월 1일자로 정선군 문래국민학교 근무
* 고향인 모교에 와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꿈 같은 소원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었다.
어릴 때 그 모습을 되찾기 위해 시골 마을의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감개가 무량하였다.
* 1979년 8월 25일 최도규 형의 동시집 출판기념회를 강릉에서 할 때 참석하여 작가 소개를 하였다. 여러 사람 앞에 처음 나서는 때였다. 약력을 읽는데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 1979년 4월 동시조 [마을]을 쓰고 [열매]지에 발표하다.
마을
앵두꽃 잠든 마을
지켜보던 해가 누워
꽃꿈 빨아 먹다
저도 누워 잠이 들면
시냇물 실어나른다.
햇살에 익는 봄빛을
살구꽃 조는 마을
지켜보던 바람이 앉아
향 내음 맡아보다
저도 앉아 조을면
꾀꼬리 물어 나른다.
바람에 익는 봄빛을.
*1979년 6월 17일 소년조선일보 <일요 동화마을>에 동화 ‘우체부아저씨’를 발표하였다.
○자전거 벨소리(원제:우체부 아저씨)
“태극기가 바람에… ”
정숙이와 미영이는 오늘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 노래를 부르며 신작로 왼쪽 길로 두 손을 꼭 잡고 걸어갑니다.
그들 옆에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서 반겨줍니다.
정숙이와 미영이는 올해 1학년. 둘도 없는 친구랍니다. 정숙이는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큰데다 속눈썹이 길어 다른 사람들이 볼 때마다 예쁘다고 칭찬을 합니다.
한참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고 있을 때 멀리서 “찌릉 찌릉”자전거 소리가 들려옵니다.
“야아, 우체부 아저씨다!”
정숙이와 민영이는 안 봐도 다 알아차립니다. 둘은 학교에 들어가면서 우체부 아저씨를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과 같이 학교 공부가 끝나고 미영이와 정숙이가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을 때죠. 자전거의 벨이 울리며 우체부아저씨께서 정숙이와 미영이 옆을 지나치려다 씽긋 웃으며 타라고 하였답니다.
그때부터 우체부 아저씨는 정숙이와 미영이를 자전거에 태워 주었습니다. 그래서 친한 친구와도 같았습니다.
우체부 아저씨는 꼭 자전거 벨을 두 번 씩 눌렀습니다. 자전거 벨 소리를 들으면 금방 우체부 아저씨인줄 알았습니다.
“우체부 아저씨?”
정숙이와 민영이가 손을 치켜들고 우체부 아저씨에게 달려갔습니다.
“오! 너희들이구나.”
둘은 우체부 아저씨를 바라보았습니다.
“타거라.”
여느 때와 같이 정숙이는 우체부 아저씨 앞에 타고 미영이는 뒤에 탑니다.
“아저씨 등을 꼭 잡아요. 떨어질 염려가 있어요.”
언제나 미영이에게 말씀하십니다. 미영이가 우체부 아저씨 뒤에 탔으니까요.
“정숙인 참 예쁘단 말이야.”
우체부 아저씨는 자전거를 타고 가며 칭찬을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미영이는 약이 바짝 올랐습니다.
“아저씨. 난 안 이뻐요?”
우체부 아저씨는 미영이 말에 한참 동안이나 껄껄 웃으십니다.
“이쁘지, 이쁘고 말고.”
“근데 왜 정숙이만 이쁘다고 하시죠?”
“그 말 안에는 너도 포함이 되어 있는 거란다.”
그제서야 미영이는 기쁜 웃음을 지었습니다.
자전거가 울퉁불퉁한 길을 지날 때마다 정숙이 엉덩이도 미영이 엉덩이도 같이 튑니다.
어느새 자전거는 정숙이와 미영이가 사는 동네에까지 다 왔습니다. 동네 아이들은 얼굴이 탄가루에 묻어 깜둥이 같습니다. 아이들은 부럽다는 듯이 쳐다봅니다. 누런 이가 보이는 아이도 있고 콧물을 훌쩍 들이마시는 아이도 있습니다. 정숙이와 민영이는 절로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우리 예쁜 공주님들. 자, 이제 내리실까요?”
“고맙습니다. 내일도 태워주세요.”
그 말에 아저씨는 웃으시며 손을 흔듭니다. 그 때 또 ‘찌릉 찌릉’자전거 벨 소리가 두 번 울리고 있었습니다.
(1979년 6월 17일 일요일 소년조선일보)
** 우리 아들 순이 3살이 된 때, 화전국교 앞에서…
* 서정 동시 ‘저녁 강가’를 쓰고
1979년 11월 5일 [강원교육]지에 발표하였다.
저녁 강가
조용한
강가에
노을이
지고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강둑
그
위에
혼자
흔들리고 선
송아지
울음
1973년 2월, 강릉교육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 10월 13일자 삼척군 화전 국민 학교에 초임발령을 받았다. 제일 먼저 그 소식을 알려준 분은 아버님이셨다. 강원일보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 주신 것이다. 나는 그때 양양군 현서 국민 학교에 강사로 가 있었다. 당시 아이 들과 운동회 준비를 하던 참이었다.
화전 국민 학교에 와서 1977년 4월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아들도 낳았다. 아내는 춘천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여인이었다.
세 살 아들
남진원
행여나 걱정되어 단단히 입혔구나
세 살 박이 아들 모습 귀엽고 건강해라
아내는 사랑을 찍고 좋아라- 웃는다
( 1979. 1. )
나는 햇수로는 6년 동안 화전 국민 학교애서 근무하였다. 기한 만기가 되어 어디로든 가야 했다. 처음엔 부모님이 계시고 중고등학교, 대학을 다닌 강릉으로 가려고 하였더.
그러나 내 고향인 모교에 가서 근무하고 싶었다. 그 생각을 하니 마음이 설레어 잠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마음을 결정한 후, 정선군 교육청에 찾아갔다. 장학사를 만나 사실 이야기를 하였다. 어릴 때 다닌 국민 학교에서 후배들인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하였다. 장학사는 아주 반가워하셨다. 그 후 3월 초, 나는 꿈에도 그리던 고향에 국민 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말로만 들었던 금의환향(錦衣還鄕)이었다.
이곳에서 3년 동안 있으면서 교사로 봉직하였다.
위의 사진은 3살 때 모교인 국민 학교에서 찍은 아들의 사진이다. 수목원에서 뛰어노는 모습이 보기 좋아 사진으로 남겼다.
『아동문예』1979년 1월호에 ‘신작 특집’ <숲속 아침>을 발표하다
1976년 위장수술을 받은 후 몸이 좋지 않았다. 무리하여 계속 작품을 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침이면 맑은 숲속에서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건강을 찾기 위해 노력하였다. 학교 관사 앞 쪽은 작은 동산이기에 아침마다 숲이 우거져 새들이 날아왔다. 즐거운 새소리를 듣는 것도 재미였지만 푸른 숲에 들어서면 기분이 마냥 좋았다. 숲속의 아름다움이 글을 스는 데도 많은 도움을 주었다.
『아동문예』1979년 1월호에 ‘신작 특집’ <숲속 아침>을 발표하였다. <작품 노트>에 ‘아름다움’을 주제로 글을 덧붙였다.
‘아름답다’란 말은 우리 주위에서 흔히 듣는 말이다. “ 저 여자는 아름답다 ” , “ 저 꽃은 예쁘다” 등.
그러할 때, 나는 두 가지로 나누는데 그 하나는 ‘인공적인 아름다움’과 또 하나는 ‘자연적인 아름다움’이다.
나는 ‘아름다움’의 유형에서 후자를 택하고 싶다. 자연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은 신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의 섭리엔 가식이 없다. 인공적인 작위가 없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인간이 갈구해 가는 영원성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연을 찾아 가꾸는 일은 우리 인간의 원초적인 생명력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되어 자연 속에서, 자연의 참 모습 속에서 나를 찾아내는 일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나는 ‘숲속 아침’을 형상화하면서 숲의 생명력과 싱그러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 아동문예 신작 특집 발표 작품 -
숲속 아침(5)
남진원
멀리서보면
숲속은
커단
함지
뱅 돌아가며 함지 속엔
나무들이 키대보기 하며
자라고
구름꽃처럼 피어나는
안개들
졸졸졸 강물이
물소리를 싣고 오면
슾속마다 쌓여가는
푸른 아침
산등성이에선
한 떼의 햇살이
호미질을 해 오기 시작하자,
법석을 떨며 참새들이
함지 속마다 오골오골
쏟아져내려
숲속은 꽃불 같은 아침에
흐를 듯
출렁이는데
하늘이
파란 보자기로
꼬옥 꼭
숲을 싸맨다.
함지를 싸맨다.
숲속 아침(6)
남진원
산을 오르다 보면
안개들은 친구처럼
나를 부르고
퐁퐁 떨어지는
새들의 지저귐
일렁이는 바람따라
푸른 숲은 출렁거리고
햇빛 닿은 곳마다
잎들은 비늘을 반짝인다.
문득
눈을 들면
푸른 물이
쏟아질 듯한 하늘
하늘이
끙, 끙
태양을 산위에 붙들어놓고
나를 부르고 있다.
숲속 아침(7)
남진원
만지면 풀썩
묻어날 같은 고요
풀숲을 헤치는
아침 산길엔
나보다 먼저
아침산을 오르는
빛의 노래
빛은 이파리마다
축축한 아침의
새살로 돋아나고
산은
가난한 풀잎 풀잎마다
햇살을 소복소복 키운다.
푸드덕거리는 새들따라
산의 팔뚝 마다엔
저마다 분주히
다른 빛깔로 태어나는
노래의 방울들
퐁퐁 도그르르
퐁퐁 포르르르
밧줄처럼 팽팽히
숲속에 얽힌
새로운 빛의 무리들
수없이 흐르는
수없이 번지는
빛의 생각들
생명이 무엇인지
잘은 모르지만
생명처럼 일어서는
산의 느낌
산을 오르다 보면
아침은 언제나
새로운 생명으로
숨을 쉬고
아, 온통 빛 가득한
산의 푸른 숨결
내 마음
어디에고 녹아들
산의
아늑한 마음이네.
숲속 아침(8)
남진원
고물고물
감실감실
…… 새벽
비단결 같은 어둠을
벗겨내리고 있다.
스르 …
스르륵 …
골짜기들이 깨어나고 있다.
나무들이 깨어나고 있다.
풀잎들이 깨어나고 있다.
모두가 깨어나는 시간
아침을 벗겨내리기 시작한다.
계란 껍데기 같은 안개들이
엉금엉금
산등성이를 돌아간다.
하늘이
뚫
어
진
다
안개 속
와그르르
장미 빛
장밋빛 아침이
굴러내린다. 흐른다.
바람은
늘어진 잎사귀들을
퍼들퍼들 튕겨 세우며
도란도란 도란댄다.
눈뜨는 꽃잎
꽃잎들의
노랑 빨강
분홍 파랑
이야기, 이야기가
끝이 없는
꽃밭에서
새들은 부산한 아침을
물어나르기에 바쁘다
오골오골
새소리에 갇힌 숲속
미루나무 마을에선
길 가득히
어린 잎사귀들이
뽀얀 햇살가루를
함빡 뒤집어쓴 채
찬란한 행진이 시작된다
길이 부시다
개울 건너 토끼네 마을에선
늦잠깬 토끼들이
새소리에 묻혀 바글대는
장밋빛 아침 한보자기 씩
모올래 떼어 내어 가지고
부지런히 토끼 마을로
향해 가고 있다.
다람쥐 마을에서도
다람쥐들이 달려와
아침을 한 귀퉁이 씩
떼어내고 있다.
그것도 모르고 여전히
미루나무 마을에선
잎사귀들의 행진이
한창이다.
길이 부시다.
1979년 1월 6일자, 소년한국일보에
내 고장의 노래 – 산과 물로 이어진 정선 그 노래 발표
1976년 『 교육자료 』와 1977년『 아동문예 』에서 추천을 해 주신 박경용 선생님의 배려로 「 소년한국일보 」에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다.
산과 물로 이어진 정선 그 노래
남 진 원
1. 조양강
산이란 산마다
하늘에 맞닿아
조양강 맑은 물은
마치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것과 같다
비단폭처럼
휘어져내리는
저 은은한 모습은
잠이 든 것 같이 보이지만
그 속에
아이들아
아는가?
송죽처럼 푸른
절개를 지킨
우리 옛 조상의 얼이
흐르고 있다네
잠속에 빠진 것 같은
저 속에
지금도 끊어진 왕조를 생각하는
고려 충신들의 맥박이
묵묵히 흐르고 있다네
그러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을
그러기에 더욱 은은한 것을
보아라
잠자듯
조용한 조양강을
오늘도 우리들 모습을 지켜보며
오늘을 흐르고 있는 것을
2. 무릉도원
지금 들에선
우리들 옛 어른들의 굵은 손마디로
쓰다듬어놓은
옥수수가 자라고
연일 감자밭 너머에서
종다리처럼 노곤한
바람이 묻어든다
저쪽 옹기종기 모인 집
가장자리엔
새소리로 늙은 미루나무 한 그루가
대궐처럼 우뚝 서서
조용히 마을을 살피고
어린 나무들마다
봄볕 같은 아늑함을
줄줄이 잎으로 드리우는
그 곁에 서면
항상 꿈을 꾸듯
고요히 감도는
정선의 아침
온깆 새소리들이
산속마다 꼭꼭 숨었다가
사시사철 무른 노래로
서리처럼 고운
노래의 옷을 입히는 고장
산 좋고 물 맑아
인심도 좋아
김삿갓 시인은
이곳 정선에서
떠날 줄 몰랐다네
그래서 옛날에는
이름도 무릉도원이라고 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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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양강: 강원도 정선군을 거쳐 흐르는 남한강의 지류
* 무릉도원: 산수가 빼어남 곳을 일컫는 말. 정선은 산수가 아름다워 무릉도원이라 일컬어진다.
*김삿갓: 조선 말기의 시인. 본명은 김병연(1807 – 1863)
(1978. 1. 6. 소년한국일보)
나는 어릴 때 뛰어 놀던 그 모습을 되찾기 위해 시골 마을의 이곳저곳을 다녔다. 감개가 무량하였다.
내가 모교에 와서 먼저 어린이 신문을 발간하였다. [문래어린이]였다.
다음의 시는 1979년 4월 10일, 내가 <문래어린이> 창간호에 발표한 시이다.
. 학교 신문 < 문래어린이>에 시 <고향 언덕>을 발표하다
고향 언덕
남진원
양지바른 언덕바지
고향 언덕에
소식처럼 파랗게 봄이 돋았다
언덕에 내가 앉아
하늘을 보면
구름이 흐르는지
내가 흐르는지
그 숲속 그 언덕에
혼자 앉아서
그 옛날 그때처럼
풀피리 분다
삘리리 삘리리
옛날을 분다.
(1979. 4. 10. <문래어린이>신문 창간호).
고향의 모교였지만 첫 해는 매우 힘들었다. 먼저 들어온 김동X 동기가 텃세를 심하게 부리고 꼴값을 떨었다. 교감에게 잘 보일려고 아양질을 떨다가도 최교감이 강릉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 달리는 버스 뒤에 서서 팔뚝질을 해댔다. 우리를 보라는 듯 꼴불견의 행동이었다. 학교 다닐 때에는 그런 인간인 줄을 몰랐는데 교직에 들어와서 인간이 팍싹망가진 것을 보았다. 그러니 고향 아이들 교육이 어찌 될 것인가.
류제하 선생 댁을 방문한 이후,
1977년, 겨울방학을 맞아 최도규 형과 함께 서울 화곡동에 기거하시는 중진 시조 작가이신 류제하 선생 댁을 방문하였다. 그분은 당시 시조 작가로 명성을 드날리며 금성출판사에 근무하고 계셨다. 현대시학에도 월평의 글을 연재하고 계셨다. 우리가 가니 반가이 맞아주셨다. 문학에 대한 많은 이야기와 세상에 대한 비판의 이야기도 해 주셨다. 그러나 교직에 있던 우리로서는 그분의 뜻을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분노는 알 수 있었다.
그해 겨울 서울 선생의 아파트에도 눈이 내렸다. 우리는 밖에 나와 선생과 사모님과 함께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나는 열심히 시조를 써서 선생께 보내드렸다.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였다. 도규 형님도 시조문학에 추천작품을 보고서야 작품을 보낸 걸 나중에 알았다.
아래의 편지글은 1979년 4월 23일 류제하 시백께서 보낸 서한이다. 월하 선생과의 이야기도 이미 오고 간 것을 이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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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원 님께
죄송합니다.
워낙이나 일에 쫓기다보니 금방 회신드리지를 못했습니다. 주신 작품 2편 그리고 어린이 신문 다 잘 받았습니다.
작품은 매우 좋았습니다. 그걸 추천 의뢰 했더니 작품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한 번 더 기대해 보자고 월하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리 아시고 더욱 열심히 쓰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이번 여름호엔 최도규님의 작품이 1회 천에 오릅니다. 작품이 매우 신선하여 권했습니다.
모두들 좋은 작품, 그리고 열심히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대가 큽니다.
너무 너무 바쁘기에 …… 다음 기회로 미룹니다.
강녕하시길 - .
79. 4. 23.
류제하
( * 최도규남껜 따로 글월 못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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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하 선생께서 이 글을 4월에 보낸 것을 보니 1978년 시조문학 초회추천을 해 주신 후 거듭 시조를 써서 선생께 보낸 모양이었다. 작품이 서툴러도 좋게 위무를 해 주시는 모습에 진한 감사가 느껴진다. 금성 출판사 일과 글에 대한 평을 쓰시기에 정말 누코 뜰 새 없이 바쁘신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자상히 글을 주셨다. 잔잔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몰려드는 분이시다. 고마운 스승이시다.
시조 [마을]을 발표하다
* 1979년 4월 시조 [마을]을 쓰고 <열매>誌에 발표하다.
봄의 정경이 마음에 닿는 날, 시 한수가 떠올라 적었다. 앵두꽃 피고 살구꽃 피는 봄날은 그리움처럼 다가왔다. 또 봇도랑 물소리는 얼마나 정겨운 것이던가.
마을
남진원
앵두꽃 잠든 마을
지켜보던 해가 누워
꽃꿈 빨아 먹다
저도 누워 잠이 들면
시냇물 실어나른다.
햇살에 익는 봄빛을
살구꽃 조는 마을
지켜보던 바람이 앉아
향 내음 맡아보다
저도 앉아 조을면
꾀꼬리 물어 나른다.
바람에 익는 봄빛을.
1979년의 어느 저녁 황지역 부근을 지났다. 텅 빈 대합실을 보니 쓸쓸함이 몰려들었다. 내 마음이 외로움의 늪에 젖어든 것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가로등 불빛만 외로워 보인다고 여겼다. 내가 외로우니, 모든 사물이 다 외로워보이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전에도 그랬다. 대합실에 모였다가는 모두 각자 흩어져 가는 것을 보고 더욱 쓸쓸한 원초적 적막감을 느꼈다. 그래서 쓴 작품이 [밤 정거장 대합실]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읽히기가 좀 어려웠지만 <아동문예>에 보냈더니 박종현 주간께서 실어주셨다. 내 문학 인생에서 늘 고마운 분이셨다.
새교육신문에 시조 ‘봄숲’ 발표. 1979년 5월 14일
1979년 초 몇 편의 작품을 썼다. 그 중에 ‘봄숲’이란 시가 있었다. [새교육신문]에 보넸더니 ‘교단시’라는 표시를 하여 게재하였다. 발표 일자는 1979년 5월 14일이었다.
봄이 되자, 마음 역시 봄처럼 출렁였다. 자연의 여러 음색을 모아 시로 엮었다. ‘봄 숲’이었다. 시조를 쓰고 그 작품이 신문에 발표되는 그런 일들은 솔직히 즐겁고 신명나는 일이었다.
봄 숲
남진원
푸르른 잎이 되어
오늘 숲에 서서 보니
잎들은 모두둘 다
싱그러운 내 친구들
저 초록 풀빛과 같은
뻐꾸기도 들리고
바람도 노오랗게
익어가는 푸른 숲속
잎 잎마다 한 무더기
물소리가 자라고
가지에 팽팽히 얽힌
밧줄 같은 새소리 떼.
( 1979. 5. 14. <새교육신문> )
1979년 『소년』 5월호에 동시 「숲속에 서면」을 발표히였다.
숲속에 서면
남진원
숲속에 서면
누군가의 생각들이
질 고운 바람소리로 몰려들고
쉬임없이 오고 가는
저 귀여운 속삭임
바로 그건
숲의 설레이는 마음이래요
봐요
나무는 나무끼리
손을 붙들고
풀잎은 풀잎끼리
손을 붙들고
새들을 날려보내는
나무들의 모습을
풀잎들의 모습을
포롱포롱 포르르릉
하늘로 하늘로
햇살인냥
마냥 번져가는
싯푸른 저 새소리 떼
오, 그건
푸른 새들의 소원
하늘 가득히 쌓이는
새의 마음이래요.
나도
여기 숲속에 서면
한 마리 새처럼
한 그루 나무처럼
이 숲속에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이름 모를 바람의 목소리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 1979. 5. 『소년』)
첫 시집 (동시집), 『싸리울』, 1982. 12. 10. 아동믄에사)
( 1988. 8. 30. 제4시집<동시집>, 『풀잎과 코스모스에게 』)
심신 안정, 맑은 산소 제공으로 건강 개선 등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숲, 지구의 하파라고도 할 수 있다. 이런 숲속에 있으면 행복해진다. 시간이 나면 숲을 거닐며 바람과 나무와 아울려 살고 싶은 마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1979년 6월 2일 김완기 원로 동시 작가의 친필 서신을 받다
문힉회 입회 권유에 대한 내용과 함께 안부의 글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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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원 선생님께
선생님의 글월 반깁게 잘 읽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서 생활하시니 더욱 정감이 깃든 나날이 될 줄 믿습니다.
교육청 최염규 장학사님은 소인의 사돈인 동시에 선배입니다. 만나시면 안부나 전하여 주십시오.
( 이하 생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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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홍 작가 서신. 1979년 8월 23일
부산에서 소설을 쓰며 작가 생활을 하는 김문홍 사백의 편지를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내가 1979년 고향인 문래 국민 학교에 근무할 때, 개인 회보 <물레방아>를 만들어 전국의 문인들게 배포하였다. 김눈홍 선생께도 보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분의 담신 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작가로는 김문홍 선생과 최영희 시인의 작품이 유독 눈에 띄었다. 최영희 선생은 그 후 얼마 안 있어 작고 하셨다. 귀한 시인 한 분을 잃게 되어 슬픈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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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진원 선생님께
그동안 안녕하신지요?
보내주신 <물레방아>는 기쁘고 씁쓸한 마음으로 잘 받았습니다.
<씁쓸하다>는 기묘한 표현을 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다음의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아동문학에 대한 선생님의 끈질긴 집념과, 아직도 푸대접을 받고 있고 발표 지면도 제대로 제공 받고 있지 못하다는 우리 아동문학의 슬픈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동시조에 대한
선생님의 깊은 천착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집니다.
종종 발표되는 선생님의 작품들을 읽고 내 딴엔 제법 신선한 충격과 여운을 느꺄오던 터이라,
이번의 이 작품도 무척 반가웠습니다.
남선생님,
자연 속에 묻혀 작품을 스시는 분들을 볼 때마다 나는 늘 부러워하던 터였습니다. 남선생님은 그런 사람들 중의 한 사람입니다.
지난 7월 30일과 31일,
전남 백양사에 있은 하계아동문학세미나에는 최도규 선생님을 만나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남선생님의 문학에 대한 끈질긴 집념에 대해서도 얘기가 오고 갔습니다.
부디 열심히 하시길 바랍니다.
할 말은 강물이오나,
선생님의 건승, 건필을 빌며
오늘은 이만 줄이옵니다.
종종 글월 주십시오.
1979. 8. 23 밤
부산에서, 문우 김문홍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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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읽어보니 정겹고 무척이나 자상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부산에서 소설을 쓰는 김문홍 작가님의 건강과 건승을 아울러 기원해 본다.
1979년 8월 25일 횡성의 이연승 선생의 서한
남진원 선생님
매호 보내주시는 [물레방아] 기쁘게 받고 있습니다.
아동문학 발전과 아동문학가들에게 청량제가 되는 값진 “물레방아”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일에도 바쁘실텐데 끈질긴 선생님의 노력이 아동문학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학교 일 가정 일에 바쁘다가도 또 글 쓰는 데 손을 떼고 있다가도
선생님의 [물레방아]를 보면 나도 또 붓을 들고 싶어지는 하나의 약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일 하십니다. 그리고 더욱 좋은 [물레방아]가 되기를 바라면서 선생님의 안녕을 빕니다.
1979. 8. 25.
이 연승
1979년 10월 2일 소년한국일보에 동시 [가을 한낮] 발표
1979년 10월 2일자 소년한국일보에 동시 [가을 한낮]이 소개되었다.
가을 한낮
남진원
풀밭 바람이
언덕바지에서
신난다며
단풍빛 바람을 휘몰아오면
“이때다!”
과수원에 있던
사과빛 바람이
쏟아져 나오고
미루나무 속 떠다니던
참새빛 바람도 달려와
코스모스 잎새를
하나 둘 셋 넷 …
엎어보고 젖혀보고 뒤적이다가
한잎
두 잎
어느새
꽃잎이 되나 나뒹구는
가을
한낮
( 1979. 10. 2. 소년한국일보 )
1979년 10월 6일, 유경환 선생 서한문
남진원 선생께
보내주신 글월 잘 받았습니다.
추석의 시골이 눈 앞에 선합니다.
작품 생활에 몰두 하실 수 있는 분위기가 부럽기도 합니다.
훌륭한 결과가 결실 되기를 바랍니다.
유경환
1979. 10. 6
조선일보사에서
1979년 강원문학 제7집에 시, ‘휴지통’을 발표하다
휴지통
남진원
쓰다가 버려진 것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려진 것 끼리
모여 사는 동네
만나는 것마저
버려진 것들이
버려진 것 끼리 만나 만남을 알고
정마저 잊어버린 것들이
버려진 것 끼리 만나
정을 나누고
쓰다가 버려진 것들 모두 모여서
세상에 버려진 것끼리
모여 사는 동네
1979년 11월 5일 [강원교육]에 시, ‘저녁 강’을 발표하다
(시 ‘저녁 강가’를 ‘저녁 강’으로 바꾸었다.)
저녁 강
조용한
강 위로(가에)
노을이
지고
보일 듯
말 듯
아련한
강둑
그
위에
혼자
흔들리고 선
송아지
울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