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교문 앞 구멍가게와 학교 뒤 구멍가게
- 태백의 매봉산
- 최도규 형과의 축하주
1975년대 겨울은 시린 입과 손을 데울 장소가 필요했다. 학교에서 퇴근을 하면 몇몇 직원들은 교문 입구의 구멍가게에 들렀다. 나 역시 그중의 한 명이었다. 가게 안에는 조개탄으로 불을 피우는 난로가 있었다. 그 위에다 노가리를 올려놓았다.
막걸리 한 잔을 들이키고는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노가리를 씹었다. 어디 노가리 뿐이랴. 학교에서 못살게 구는 박교감도 고소하게 함께 씹었다. 술이 얼큰해지자, 서로들 한마디씩 하는 말이 점점 늘어났다.
“ 여기 남선생, 멀지 않았어요. 글 잘 써요.”
도규 형은 갑자기 묻지도 않은 말을 사람들에게 하였다. 그 말을 들은 사람 중에 제일 거북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그간 아무리 써 봐도 도무지 늘지는 않고 글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쓰다가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멀지 않았다니 …’ 내 딴에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도규 형은 이곳 화전학교에 와서 벌써 몇 번이나 『교육자료』‘교사문원’란과 『새교실』‘지우문예’ 란에 작품이 추천되었다. 그 작품들을 읽으면 나는 단번에 용기가 나는 것이 아니라 단번에 기가 죽었다. 너무도 멋지고 훌륭한 작품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데도 내가 ‘멀지 않았다니!’ 일부러 하는 말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런 말들을 선생님들과 함게 술 먹을 때면 꼭 꺼내 들었다. 나는 절망적인 상태에서 마지 못해 글을 끄적거리기로 하였다. 얼마간 용기를 주는 도규 형에게 보답을 하는 차원이었을 뿐이었다.
이런 와중에 도규 형의 작품이 추천되면 나는 서슴없이 도규 형과 학교 뒤쪽의 구멍가게 집을 찾았다. 도규 형이 추천되었을 때 찾는 구멍가게 집은 학교 바로 뒤 광부들의 사택 사이에 있는 구멍가게였다. 그 집은 현관에서 술을 먹는 게 아니라 방에서 먹었다. 정화 어머니가 가게를 운영하였다. 정화 어머니는 우리가 들어서면 편하게 대해 주었다. 우리 또한 학부형 집이었기에 부담이 별로 없었다. 추천을 받는 축하를 할 때면 비 오는 날이 많았다. 나는 막걸리를 앞에 놓고 비를 바라보며 도규 형에게 축하 잔을 따라 올렸다. .
“ 형님, 축하드려요! ”
우리는 즐겁게 잔을 부딪치며 맛나게 술을 들이켰다. 그 당시 먹게 된 술 중에는 앞의 글 ‘옹달샘’이 추천되었을 때도 그랬다.
“ 형님은 어떻게 그런 멋진 글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부럽네요.”
그런 말을 푸념처럼 늘어놓으면 도규 형은 말했다.
“ 이 봐, 자네도 멀지 않았어. 시가 좋아!”
히면서 또 희망의 말을 쏟아내었다. 도규 형의 글이 추천되는 것을 볼 때 절망감도 있었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희망도 싹이 텄던 모양이었다. 그건 순전히 도규 형의 격려 덕분이었다.
이처럼 문학 공부를 할 때 옆에서 응원과 격려를 해 준 분은 도규 형님이었던 것이다. 용기를 주는 그 말에 희망을 잃지 않고 다시 또 붓을 들고 끄적거리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글 쓰는 데 또 하나 희망의 산이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운동장 조회를 하다 보면 햇빛에 비치는 매봉산은 싱그럽고 활기찬 모습이었다. 늘 그 기상에 덮인 매봉산을 보면서 나는 어느 틈에 산의 정기를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산봉우리의 형상이 매의 모습을 닮았기에 붙여진 이름, 매봉산이었다. 그래서 시 쓰기에는 무딘 붓이지만 결코 붓을 놓지 않았던 것 같았다.
늘 이처럼 힘들 때 나를 격려해주고 용기를 준 태백의 매봉산과 최도규 형님! 진정한 나의 스승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