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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8강 당신은 제자입니까 1
26.01.15(목)
먼저 10가지 기적 중에 일곱 번째 여덟 번째 기적인 관리의 딸을 치유하신 기적 그리고 동시에 혈루증 여인이 치유된 기적을 같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죽음에서 벗어나 참된 생명을 주시는 주님을 만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믿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생명과 죽음을 모두 통치하고 다스리시는 주님이시고 이분께 나아가려면 우리에게는 오직 하나 믿음입니다
이제 두 맹인을 고쳐주시는 기적이 나오죠.
사력을 다하여 주님을 찾았다는 것이죠. 자 이 아래 주님을 향한 간절함 주님을 향한 믿음 우리가 느낄 수 있죠.
자 그 다음에 세 번째로 벙어리 귀신 들린 자를 치유하신 기적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걸 보고 바리새인들이 반응을 하는 것입니다.
뭐라 그러냐 바리새인들은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예수님을 오해하는 겁니다. 결국 예수님을 오해하고 불신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분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앞에 겸손하게 순종할 때 이 오해를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8장에서 9장까지 사이에서 펼치신 10가지 기적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특별히 지난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한 관리의 딸을 죽음에서 살리시고 또 12해 혈류증 앓던 여인을 고쳐주시고 또 맹인들의 눈을 뜨게 하시고 또 말 못하는 벙어리 귀신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기적을 우리가 살펴보았습니다.
자 이 모든 기적 끝에 결론 가운데 예수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느냐하면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죠.
자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 이르러서 마침내 제자들을 부르시고 이 제자들을 파송하며 추수할 것들을 추수하는 본격적인 사역에 돌입을 하십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시고
또 제자를 부르실 때 빠질 수 있는 위험성들 또 우리가 미리 알아야 될 것은 무엇인지 오늘 마태복음 10장을 중심으로 해서 함께 배워가도록 하겠습니다.
자 오늘의 포인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이유 자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셨는데 단순히 능력과 예수님이 원하시는 사역을 해라 이것만은 아닐 거라는 것이죠. 자 왜 제자를 부르셨는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서 제자로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아 제자들의 그러니까 다른 말로 하면 제자도에 요청되는 가장 중요한 부분들이 무엇인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제자로 살아간다라는 거를 이제 제가 제자도라고 표현을 했죠. 제자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제자의 도라는 말은 길 도 자죠
그래서 제자로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잘 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인가를 봐야 되겠고요.
그다음 세 번째는 제자로 살아갈 때 우리가 빠질 수 있는 함정과 오해들은 무엇인가 이것들을 우리가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먼저 오늘 말씀 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셔서 이제 선물을 주십니다.
뭐라고 하느냐하면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어떻게 했냐하면 주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 이거를 주셨다는 겁니다. 이것은 열심히 노력해서 개발되는 자질이 아니라 주님이 주셨다고 해서 이걸 뭐라고 그러냐면 선물이라고 하죠.
선물을 영어로 기프트라고 하고 이것은 성경의 다른 말로 은사라는 말로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은사 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은사를 갖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하면 천국의 현존 지금 이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드러내야 할 목적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셔서 이제 이 사역들을 제자들에게 하게 하시는데 그 다음에 등장하는 2절부터 4절은 이 사역을 감당했던 제자들의 명단이 등장합니다.
자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자 이 제자들을 사도라고 불렀죠
베드로라 하는 시몬 형제 안드레 세베데의 아들 야고보 그의 형제 요한 자 수제자들입니다.
그 다음에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페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데오 가나안인 시몬 및 가롯 유다 곧 예수를 판자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 저희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사람은 바로 이 가룟유다 이 가룟유다를 뭐라고 설명하느냐하면 마태복음에서는 곧 예수를 판 자다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우리가 중요한 것들을 좀 생각을 해봐야 됩니다. 가룟 유다가 귀신을 쫓았습니다. 병을 고쳤습니다. 예수님이 주셨던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이런 놀라운 예수님의 사역을 감당을하고 열매도 있고 놀라운 일들을 경험했던 유다가 결국 최후에는 이 예수님을 팔게 되었더라는 것이죠.
어떻게 된 것일까요? 여러분 저는 이것을 은혜와 죄의 대비 구도로 이해를 하고 싶습니다.
처음에 가룟 유다는 주님의 은혜로 시작을 했습니다.
근데 이 은혜로 시작했던 것이 나중에는 은혜가 그의 삶을 지배하고 있었죠. 그러나 나중에는 죄가 가룟 유다다의 삶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 귀신 병 고치고 가르치는 것 이게 일종의 은사입니다. 은사 하늘이 주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성령이주시는 기프트죠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있을 때도 풍성하게 나타나지만 때로는 은혜가 떨어질 때에도 나타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런 것들이 은사라면 선물이라면 자 예를 들면 옷을 선물했단 말이죠. 또 별로 기뻐하는 것 같지도 않고 내가 6개월 전에 줬는데 요즘 별로 안 입으니까 그 옷 다시 줘라 내가 백화점 가서 환불할래 아니면 저 중고 시장 가서 팔래 자 이러면 뭐라고 반응하시겠습니까?
여러 가지 반응이 있겠죠.
이렇게 하면 이게 그럴려면 선물을 왜 줬어라고 얘기를 합니다. 선물은 한 번 주면 쉽게 빼앗아가는 게 아니죠. 선물은 은혜로 호의로 준 겁니다.
그러면 그에게 그냥 맡기는 거죠.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은사를 주실 때 우리에게 기쁨으로 은혜 가운데 우리에게 맡겨주십니다.
그럼 우리가 있을 때 은혜 가운데 이 은사를 잘 사용해야 되는데 문제는 우리가 은혜 가운데 있을 때는 은사를 잘 사용하지만 죄 가운데 빠지고 또 하나님의 은혜의 지배 가운데 있지 않고 엉뚱한 곳으로 가다 보면 이 은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곳으로 잘못 사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의 지배가 떨어지고 죄가 우리를 점점 지배할 때조차도 은사는 나타날 수 있다라는 것이죠.
자 로마서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사도 주시고 소명도 주셨는데 절대 후회하심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 은혜로 이걸 우리에게 주셨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느냐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죠.
예를 들면 많은 분들이 기도를 하면서 방언이라는 선물을 받습니다.
선물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좋아도 방언 기도가 잘 되고 또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도 기도하면 방언으로 기도가 됩니다.
자 내가 상태가 나쁜데도 방언이 잘 되네 그럼 내 상태가 좋은가 그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가 은사가 나타나도 교만할 게 아닙니다.
우리는 겸손하고 사실 우리가 늘 주님의 은사와 능력을 통해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은사는 나타나지만 은사 가운데 역사하시는 은혜는 점점 약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 있죠.
자 마태복음 7장 22절 23절입니다.
자 마지막 심판의 날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말합니다.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자 예언의 은사가 나타난 모양이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예수님이 하셨던 사역입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했고 자 귀신 쫓고 병 고치는 권능을 제자들에게 주셨다고 그랬죠 자 이런 것들이 이들에게 나타났다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뭐라고하느냐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말씀하십니다.
물론 이때 여기서 나타나는 많은 사람들은 누구냐 바로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물론 이들이 처음부터 거짓 선지자일 수도 있었고 처음에는 은혜 가운데 있다가 나중에 거짓 선지자로 변질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주님과 상관없이 사용할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제자로 부르실 때 제자로 부르신 가장 중요한 목적 그리고 제자도에 있어서 가장 지켜야 될 우선순위가 무엇인가를 잘 간직하고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마가복음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가복음 3장 14절에서 15절 말씀입니다.
여기 보며는 예수님께서 제자를 부르신 목적을 분명히 설명합니다.
자 이에 12을 세우셨으니 이는
첫 번째로,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복음을 가르치는 역사죠
또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십니다. 치유 이적의 은사들입니다. 자 이런 것도 나타내려 합이라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냐 바로 주님과 함께 있는 것 그러니까 제자는 은사와 능력을 행하기 이전에 그분과 얼마나 함께 있느냐 그리고 얼마나 함께 그분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느냐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자 그래서 제자들의 첫 번째 조건은 주님과 함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그분을 따라가며 순종하는 것 이것이 최 우선 순위라는 것입니다.
자 그래야 우리가 이것이 우선순위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이제 제자들이 앞으로 감당해야 될 십자가 자기 십자가 고난 박해를 이겨낼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제자들이 주님을 따라가며 이런 기적을 나타낼 때 우리 앞에 아주 탄탄대로 많이 놓인 것이 아닙니다.
자 예수님도 기적을 베푸시니까 귀신의 왕을 힘입어 쫓아낸다고 오해하죠.
제자들이 가는 길에도 이런 오해와 박해가 많이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박해 가운데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되느냐 얼마나 함께 주님과 인격적 교제를 나누느냐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연습이 계속되어야 어려움과 괴로움 가운데도 끝까지 이겨내며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강 당신은 제자입니까 2
자 그러면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하면서 지켜야 될 마음의 중심들은 무엇일까요? 몇 가지를 저희들이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는 8절 말씀입니다.
여기 보면 병든 자를 고치며 그 다음에 죽은 자를 살리며 이 제자들이 예수님이 하셨던 것과 같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부여받네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장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8절에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 그러죠 자 이 권세를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권세를 갖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고 또 여러 가지 나병 환자 피부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하고 제의적으로 부정한 자들을 정결케 하고 그다음에 귀신의 권능을 쫓아내고 그런데 뭐라고 그러느냐하면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뭐라고 그럽니까 거저 자 이게 제자들이 가질 수 있는 큰 유혹입니다. 거저받은 것을 거저 주어야 되는데 거저 받았는데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니까 거저 주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대가를 요구하는 거예요. 당시에 이 초대 교회 때도 이 거짓 선지자들이 돌아다니면서 많은 교회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주며 돈을 받았습니다.
자 바울은 이들과 구별되기 위해서 때로는 장막을 만들며 오해를 풀기 위해서 거저 아무 대가없이 사역을 했었죠.
자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그대로 흘러줄 때 다른 말로 하면 이렇게 돼야 우리가 뭐가 되느냐 주님의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욕심과 이기심과 여러가지 얻고자 하는 것들 때문에 이 축복이 막히게 되는 거죠.
제자는 뭐냐 하늘의 축복을 땅으로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
흘려보내는 사람 자 이 은사와 권세를 내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으로 인정할 때 가능한 것이죠. 자 그 다음에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합니다.
9절에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자 너희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챙겨두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베낭이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그러면서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그러죠
이건 오직 모든 공급자가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봐라 그리고 내게 주신 것을 주님의 것으로 인정하라는 것이죠.
자 여행을 위하여 베낭 두 벌옷 지팡이 신 가져가지 말아라 오직 주님만을 신뢰하며 가라 이거는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가 전제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5절 6절 말씀인데요.
여기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에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자 여기 사마리아인의 고을이 나오죠.
이방인 이방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주 싫어하고 구원에서 배제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누구냐?
사마리아인들은 북이스라엘의 후예인데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점령했을 때 이주 정책을 시키면서 이방 민족들과 피가 섞였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을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주 무시했죠. 이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이 열둘은 오직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이거 보면 좀 이상합니다.
아니 예수님께서 이방에 백부장의 하인도 고쳐주시고 이방인에게 복음의 문을 열어주시는 것 같았는데 또 가다라 지방에 가서도 귀신 들린 두 사람 무덤 사이에 숨어있던 사람들도 고쳐주셨는데 왜 갑자기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하시느냐 라는 것이죠.
자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복음선포에 우선성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의 자손 메시아의 후손으로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메시아로 오셔서 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시고 그 다음에 이들에게 먼저 전하신 다음에 후에 온 세상으로 온 세상으로 나가시는 걸 볼 수가 있습니다.
복음 선포의 우선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셨다고해서 이스라엘의 복음 전파만 하고 이방 지역 사마리아인은 배제시켰느냐 이건 아닙니다.
나중에 제자들에게도 이스라엘에서의 사명이 끝난 다음에는 모든 나라로 나가라고 그러죠
그래서 마태복음 28장 1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여러분 보십시오.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려면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모든 나라로 모든 민족과 열방에게로 열방에게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로 가서 이 모든 곳으로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그랬죠
그래서 예수님께서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열방에 대한 관심을 갖지만 그러나 지금은 뭐 할 때다 바로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할 때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그럼 우리가 모든 나라 모든 민족 모든 열방을 품고 복음을 전해야 되지만 그러나 동시에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됩니다.
이러면서 복음을 전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스라엘부터 시작해서 온 열방으로 나아가죠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언제 있을지 어떻게 있을지는 모릅니다만 그분을 신뢰함으로 내 주변에 있는 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를 쓰는 우리 모두가 됐습니다. 참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또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 17절 보겠습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 이 공회는 산헤드린 공회를 말합니다.
유대인 최고의 의결 기구죠 나중에 이 공회에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을 결의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줄 때가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여러분 이거 보십시오. 공회회당 다 공통점이 있는데, 뭐냐 다 유대교라는 겁니다.
자 제자들은 나중에 유대인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유대교로부터 오해를 받고 또 유대교로부터 채찍질도 당하고 이런 일들이 일어날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누구의 고난 우리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나아간다고 한다면 이 고난 앞에 제자들은 능히 이 고난을 이기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제자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뭐냐 은사와 능력으로 나타나기 이전에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과의 관계 인격적인 친밀감 그분과 동행하는 마음 또 시간 그리고 그분께 순종하는 자세가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고난과 이 채찍질 가운데 이겨낼 수 있는 힘 인격적인 교제에서 나온다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잘 보십시오. 인격적 교재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요.
그럼 그분의 음성을 어떻게 듣느냐?
그 다음 19절 20절 말씀에 이게 나옵니다.
자 보면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아라 그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라
자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음성을 들려주시는데 무엇을 말할까 알려주신다는 거예요. 자 이거는 평소에 인격적인 교제가 전제되지 않고는 도저히 그 말을 들을 수가 없죠
한 번도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나타나서 베드로야 그러면 베드로가 예 주님 이렇게 말 못합니다. 베드로야 그러면 누구세요. 이렇게 얘기를 하지 베드로야 네 어떻게 얘기를 하겠습니까?
평소에 듣던 말을 듣는다는 거죠.
늘 인격적인 교제 가운데 있을 때 그 말씀을 따라 순간순간 동행하며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고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아 제자는 무엇을 따라 산다 성령을 따라 살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제자라는 겁니다.
그래서 은사는요 능력은 주님을 따라 그분의 사명을 감당할 때 주님이 선물로 주셔서 나타나는 것이고. 이거는 단지 선물이기 때문에 절대 자랑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이 주신 걸 그대로 나타내 보일 뿐이고 더 중요한 건 내 안에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 그분이 내게 주시는 말씀 그분과의 인격적인 교제 이것이 바로 제자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최우선 순위가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는 무엇입니까? 그러니까 한마디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신뢰하고 따라가는 신자 바로 제자인 것입니다.
자 오늘의 적용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우선순위를 두자 여기에 한마디 더 쓰면 우선순위를 두자라는 겁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그분을 알아가는 것이 바로 제자의 힘이 되는 것이죠.
자 두 번째로 내게 주신 은사와 주님과의 거리를 구별하자 그랬습니다.
내게 이런 은사 저런 은사 많이 있는데 은사가 많다고 주님과 내가 지금 가까운가 그건 아니라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되느냐 주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는 은사대로 나타내지만 이 은사를 통해 더욱 주님과 가까이 가기 위해 힘써야 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주님을 신뢰함으로 제자의 십자가를 기쁘게 지자 자 제자라면 마땅히 주님 가신 길을 딱 따라가는 겁니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제자도라는 것이죠.
주님 가신 그 길을 나도 따라가야 되는데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해 십자가를 우리가 져야 될 상황 가운데 그분의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 기쁘게 져야 한다.
여러분 십자가가 기쁘게 질 수 있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거 무거워지기 시작하면요 빨리 뿌리치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듭니다.
이게 기뻐져야 되는데 이게 내가 아무리 기뻐야지 기뻐야지 한다고 기뻐지는 게 아닙니다.
주님과의 관계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가까이 가고 그분의 음성을 듣다 보면 나도 기꺼이 그분의 십자가를 지고 싶은 마음 자원하는 마음 십자가를 지는 감격이 우리 가운데 성령의 감동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제자입니까?
주님을 더욱 가까이 따라가는 제자입니까?
주님을 닮았고 갈 수 있는 우리 모두 그분의 신실한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시간에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13장의 천국 비유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비유에 대해서 참 오해가 많죠 비유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 말씀하신 천국 비유와 그 오해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태복음 9강 비유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나라 1
제자들을 부르시고 이 제자들을 파송하며 추수할 것들을 추수하는 본격적인 사역에 돌입을 하십니다.
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은사를 갖고 무엇을 해야 되느냐하면 지금 이곳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드러내야 할 목적으로 주셨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첫 번째 조건은 주님과 함께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그분을 따라가며 순종하는 것 이것이 최 우선순위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사명을 감당하면서 지켜야 될 마음의 중심들은 무엇일까요? 하늘의 축복을 땅으로 흘려보내는 사람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려면 어디로 가야 되겠습니까?
모든 나라로 모든 민족과 열방에게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거기로 가서 이 모든 곳으로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세례를 주라 그러죠
우리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며 나아간다고 한다면 이 고난 앞에 제자들은 능히 이 고난을 이기며 나아갈 수 있다라는 것이죠.
자 결국 제자는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신뢰하고 따라가는 신자 바로 제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던 부분 예수님의 제자로 사역하는 것은 무엇인가?
또 부르심 앞에 이전에 얼마나 주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갖고 또 주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가? 이런 것들을 함께 살펴봤었습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비유에 대해서 함께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제목이 비유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이 비유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의 풍성한 측면을 이 비유를 통해서 드러내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포인트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비유란 무엇인가 함께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비유라는 것은 알레고리와는 다릅니다.
비유가 갖고 있는 고유한 특징이 있는 것이죠.
당시 헬라 세계의 여러 이 수사법들이 있었는데 17가지의 다양한 수사법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비유 이 파라볼레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비유가 어떤 것이고.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함께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비유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경계하자 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자칫 잘못 해석하면 비유를 통해서 엉뚱한 결론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비유는 무엇이고 건강한 해석이 무엇이고 함께 살펴보면서 마태복음 13장에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건강한 결론 또 건강한 이해를 함께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마태복음 13장 비유 이외의 바른 길잡이 이렇게 볼 때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는 무엇인가? 특별히 이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13장만 딱 떼놓고 보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 4장 5장 6장 7장 그리고 8~9장 10장부터 12장까지의 전체적인 이해를 기초로 해서 13장을 이해할 때 이해를 더 풍성하게 균형 잡히게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우리 함께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 그러면은 오늘 이제 마태복음 내용의 중간 13장 이렇게 돼 있는데요. 이 비유의 내용을 우리 살펴보기 전에 마태복음에 등장하는 5개의 설교문이 있다고 그 전에 우리 함께 배운 적이 있습니다.
먼저는 마태복음 5장부터 7장까지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설교입니다.
그 다음에 8~ 9장은 이 산상설교를 기초로 한 하나님 나라의 기적 능력을 우리가 함께 공부했었고요.
그다음에 마태복음 10장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예수님께서 하셨던 제자파송 설교입니다.
그리고 이제 13장에 나오는 천국 비유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 18장에 제자 공동체를 향한 설교를 하십니다.
그리고 24장 25장이 성전 멸망에 관한 소위 말하는 종말에 관한 설교 말씀을 하십니다.
이 중에 가장 가운데 있는 설교가 바로 이 마태복음 13장에 등장하는 천국비유 설교라는 것이죠.
그래서 마태복음의 가장 가운데 있기 때문에 이 마태복음 전체가 이야기하는 천국 하나님 나라에 아주 핵심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마태복음 13장에 등장하는 하나님 나라 천국의 비유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사역을 하시면서 선파하셨던 말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천국이 과연 어떤 것인가를 아주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오늘 이 마태복음 13장의 비유 말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13장은 결국 천국이 어떤 것인가를 드러내기 위한 아주 중요한 말씀이라고 우리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비유의 자전적인 의미를 우리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비유란 도대체 무엇이냐? 여기 이제 보시면 이 비유를 헬라어로 파라볼레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파라볼레라는 것은 이제 파라라는 말과 발로라고 하는 동사가 이제 합쳐진 말입니다. 이 파라라는 것은 접두어인데 곁에라는 뜻입니다. 사이드 어사이드라는 말이죠. 발로라는 건 던진다 라는 동사입니다.
그래서 바라볼래라고 하는 건 곁에 던져둔 것 이런 의미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곁에 견두어 두어서 이해를 쉽게 하도록 하기 위한 것 이런 의미입니다.
여러분 예전에 이런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이게 뭔 것 같으십니까 낫입니다. 낫 맞나 모르겠네요. 잘 그렸나 모르겠네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이런 속담이 있었죠.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 이것은 낫이라는 오늘날 시대에는 친숙하지 않습니다.
어린아이들에게는 그러나 옛 세대에는 낫이라는 친숙한 것을 통해서 기역자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기억자를 이해하기 위해서 낫을 견주어서 이해할 수 있도록 이 수사법 이게 바로 비유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비유는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비유는 쉬운 것이고. 쉽게 이해할 때 명쾌하게 다가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비유에 대한 오해들이 꽤 많이 있습니다. 이 비유는 사실 정통 교회 말고 잘못된 단체들이 단골로 사용하는 성경 공부 방식중의 하나입니다.
비유풀이 성경 공부를 하자 이렇게 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데요. 사실 이 비유풀이를 통해서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를 마련하게 됩니다.
이 비유 성경 공부를 많이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이 비유 성경 공부만 일단 제대로 사람들이 받아들이면 그 다음부터는 성경을 왜곡시키여서 받아들이게 하는데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종의 교두보를 마련해 주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비유에 대해서 제대로 된 이해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이해할 것은 비유를 과연 그 당시에 사람들이 알아듣지 못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여러 곳에서 비유를 듣고 사람들이 많이 이해했다. 잘 이해했다 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구절들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셨다 라고 말씀하죠.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예수님께서 많은 비유를 다 어렵게 수수께끼로 암호화하고 감추어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많이 말씀하셨다고 이야기를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또 보면 마태복음 13장 35절 말씀입니다. 이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로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라
그래서 비유는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는 감춘 것들을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는 계시 밝히 드러내는 계시가 비유이지 절대 감추어져 있고 비밀리에 깨달은 자만이 알 수 있는 비유의 메세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 보시면요 그들이 예수의 이 비유가 이 그들은 예수님의 대적자들을 말합니다.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알고 그 다음에 이 예수님을 잡고자 하되 무리를 두려워해서 예수를 두고 가니라 라고 말씀을 하죠.
자 여기 보면 그들 예수님의 대적자들 바리세인 서기관들 자 이런 이들이 예수님이 하신 이 비유의 말씀이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알았다라고 말씀합니다.
비유를 들으면 모르는 게 아니라 이 비유가 무슨 말씀이고 누구를 가리켜 하시는 말씀인지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 비유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대적자들도 알 수 있는 쉬운 말씀이 비유라는 것이죠. 우리는 비유에 관한 이 고정관념을 좀 버릴 필요가 있습니다.
자 그다음 보시면요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 되었나니 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이것을 보면 또 이상하다 천국의 비밀 이 비유 말씀을 제자들이 아는 것은 허락이 됐지만 그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대적자들이 아는 것은 허락이 되지 않았다.
이게 무슨 말씀일까?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이걸 보면은 바로 전에 읽었던 말씀과 모순되는 것처럼 느껴지죠
자 이것은 왜 그러냐 여러분 그 다음 보시면 그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말씀하죠.
이 비유는 무슨 말인지 듣고 알기는 하지만 문제는 뭐냐 마음이 완악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대적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비유 말씀을 듣고 이게 무슨 말씀인지 알고 또 그게 누구를 가리켜 하시는 말씀인 줄도 알지만 이 말씀을 내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예수님께 돌이키고 회개해야 되기 때문에 이것이 두려워서 기존의 기득권들을 빼앗길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손해들이 있겠죠. 두려워서 마음을 완악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바로와 같습니다. 바로도 마음이 완악해졌었죠.
모세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돌이키질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예수님의 대적자들도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는 알았지만 돌이키기를 두려워하고 주저했다라는 것입니다.
자 그다음에 예수님이 마태복음 13장 51절 끝에 가서 말씀하시죠.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그러자 제자들이 그러하오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이 비유를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제자들은 어떻게 했느냐 깨닫고 이해했다라는 것이죠.
이렇게 볼 때 비유의 말씀은 절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쉽게 이해하고 깨달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비유가 자꾸만 잘못 이해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비유에 대한 바른 이해를 우리가 하려면요 비유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견주어 보는 것이라고 그랬습니다.
자 견주어서 뭘 하냐? 서로 간의 유사점을 찾는 것이죠. 서로 간의 유사점을 찾아서 그 공통점을 갖고 이해를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 비유 풀이에 대해서 아주 친근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수 없이 우리도 모르게 세뇌 비슷하게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비유풀이를 하면 상당한 친근감을 갖고 가게 됩니다.
그 원천적인 이 비유풀이의 원형이 뭐냐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까지 가죠
이런 것들이 우리에게 익숙하다 보니까 이 비유로 논리적으로 이렇게 비약하고 건너뛰는 것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논리적인 도약이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에 따라서 그 결론은 천차만별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가 이것을 이해할 때 논리적인 비약과 유사점 사이의 분별을 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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