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후반이나 30대 초(1980년대), 무선전화가 세상에 나왔다. 조금 부유한 사람은 자동차에 군용 지프처럼
5m가량 되는 안테나를 부착하고 다녔다. 그리고 남성 허리띠에는 비퍼(beeper)라는 남성 주먹 1/4 크기의
기기를 차 있었다. 누군가 전화가 오면 비퍼에서 발신자 전화번호와 함께 비퍼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공중 전화 박스로 발걸음을 옮겨 발신자에게 전화를 건 시절이었기에 무선전화가 세상에 나온 것은
획기적 사건이었다. 군용 무전기처럼 어디든 안테나를 뽑아서 자유롭게 전화하는 모습은 부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휴대폰이 나오기 전의 발판이었다. 과학의 발전은 점차 진행돼 결국 누구든 전화기를 휴대하고
다니는 세대가 됐다.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발전했다. 나는 아직도 휴대폰, 폴더폰, 터치폰에 이은 스마트폰의
발전을 보면서 앞으로 어떤 세상이 도래할는지 짐작이 가지 않을 정도로 인간은 엄청난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이것이 발전될 것이라는 입소문으로 투자했다가 많은 상처와 돈을 잃은 자들이 많았다. 또 앞으로 어떤 일로 인해
사람들이 손해를 볼지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 수 없다.
제20세기 중엽, 제3차 산업혁명이 있으면서 세상은 그야말로 하나의 촌락이 됐다. 누구든 외국 여행이나 업무를
집에서 하게 됐고, 통화뿐 아니라 영상을 자유롭게 시청하게 됐다. 더욱이 영상 제작은 특정한 사람의 업무가 아니라
누구도 시도하여 부를 창출하게 됐다. 게다가 돈이 아닌 가상 화폐가 세상에 등장하면서 일부 사람은 신기루를
쫓아가곤 한다. 가상의 세계에 살고 있는 현장을 쉽게 말하는 듯싶다. 앞으로 어떤 일들로 인간의 호기심을
건드려 흔들리게 할런지 암울하다.
과학의 발전은 돈과 관련을 맺지 않으면 발전조차 시도하지 못한다. 그래서 온갖 잔꾀를 짜서 돈을 모으려 하고
그것으로 호기심을 채우려고 한다. 견물생심인지라 보면 먹고 싶고, 갖고 싶고, 마시고 싶고, 누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게 약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세상의 일은 전문가의 바른 조언을 듣지 않으면 언제든 기만당하고,
기만하고, 기만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성실하게 산 것으로 보상받는다는 유토피아가 있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주장인 것처럼 보인다.
신앙은 볼 수 없는 것을 바라고, 들을 수 없는 것을 깨닫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믿는 것처럼 보인다.
죽어서 가는 하늘나라를 맹신하는 것처럼 보이고, 막연한 신이 자신을 돕는다는 과신도 있다.
어느 경우든 신앙이 아니라 신념이 신앙으로 포장한 것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누가 멋진 포장에 매력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명절 선물의 포장지는 화려하다.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됨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포장에 관심을 둔다. 포장이 근사하지 않으면 눈길도 주지 않는다. 어느 것이 옳은지는 개성에 달렸다.
신앙은 인간 중심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하나님에게서 출발한다. 인간의 삶을 위해 하나님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삶을 전개한다. 신념으로 포장된 신앙은 나를 위한 하나님으로 섬긴다. 신앙은 신념을 포함하지만
신념이 신앙이 되어선 안 된다. 변화무쌍한 인생의 연속극에서 신기루를 쫓아가지 않고 가야할 길을 곧 바로 가려면
그분이 인생의 목적이 돼서 마치 인공위성처럼 나를 인도하기를 바라고 명하는 것에 따르는 삶을 사는 것이
적은 후회의 삶을 살 것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