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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중금은 음정이 민속적이면서도 그 크기가 알맞아(약50-60cm정도)손에 쥐면 편안하게 다룰 수 있어 일반 대중에게 가장 만만한 전통 관악기임에도 불구하고 자료의 부재와 계승하고자하는 노력의 부족 등으로 이제 사라져가는 악기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삼국사기 악지에 대금, 중금, 소금이 신라 삼죽으로 소개되었으며, 통일신라시대에는 대금, 소금과 함께 일곱 가지의 악조를 연주했고 중금을 위한 곡이 이백마흔다섯 곡이나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 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는 동안 중금은 궁중음악과 풍류를 연주하는 악기로 전승되었었습니다. 당시에는 중금이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또한 이시대의 최고의 연주자 김계선님은 "대금을 전공한다 하여도 첫날부터 대금에 착수함이 아니요, 그보다 길이도 약간 짧고 지공 사이도 매우 가까운 중금을 얼마간 연주한 뒤에 비로소 배우는 것이다."라고 한 것처럼 대금을 배우는 과정에 중금이 소중히 쓰여 졌습니다. 이렇듯이 중금은 대금보다 배우기가 쉽다는 강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운지의 무리함도 없고 길이나 굵기가 정악대금이나 산조대금보다 만만 합니다. 중금을 만드는 재료는 대금과 마찬가지로 여러 해 묵은 황죽(黃竹)이나 쌍골죽(雙骨竹)을 씁니다. 전통중금은 청공(淸孔)이 없으므로 대금보다 음색의 변화가 적으나 맑고 고운 소리가 납니다. 원래는 노래와 춤의 반주에 사용되었었습니다. 대금보다 작고 취구1개, 지공6개, 그리고 수개의 칠성공이 있으나 청공(淸孔)이 있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통중금은 아쉽게도 현대에 이르러서는 거의 연주되지 않습니다. 전해오는 악보자료가 부족하고 음역의 폭에 한계가 있어 그저 민요정도만 맛 배기로 연주해 보는 것이 전부입니다. 서양음악이 보급되면서 서양의 음정을 소화 할 수 없었던 전통중금이 설 자리가 없게 된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