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구입 목록을 작성할 때부터 '연암'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의심없이 구입했던 책.
새책들이 들어오고 점 찍어 두었던 다른 책들을 읽느라 이 책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마음에 담아뒀던 다른 책들을 모두 읽은 후에 또 읽을 만한 것은 없나하며 서가를 주욱 훑어보는데 '아 맞다! 이 책1'하는 생각을 하며
서가에 가만히 기대 있는 책을 집어들었다.
4교시 수업이 없었던, 점심시간이 긴 날이었기에 책을 손에 들고 귀에는 이어폰을 꽂고 운동장으로 나섰다.
익숙한 음악이 귀에서 흐르는 가운데 책을 펼쳤는데 서문부터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런데 이 서문은 '짧은 서문'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에서야 서문이 드디어 끝나는 재미있는 구성으로 되어 있다.
창비청소년문고에 속해 있는 책이지만 아이들에게는 표현이 조금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다.
[간단한 책소개]
미노와 그의 엄마, 아빠
이야기선생과 그의 조카 w,
미노와 w의 학교 친구 k
모든 사건은 공부 잘 하고 빽 좋은 집안의 아들 k와 미노, w의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됨.
가해자였던 k를 학교에서는 감싸려고 했고 마침 그 때 사업이 위기에 빠져있었던 미노의 아빠는 합의금을 받고
사건을 마무리함.
그 사실을 참기 힘들었던 미노는 2년 전부터 등교거부를 하고 방 안에 틀어박혔음.
w도 처음에는 함께 등교 거부를 했었으나 외숙모의 죽음이라는 큰 사건을 겪고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미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등교함.
미노의 부모는 방 안에 틀어박힌 미노를 위해 과외교사, 심리상담사, 사회 복지사, 자원봉사자, 교회 여성 전도회 회장 등
다양한 사람들을 미노에게 붙이지만 모두 미노를 세상으로 다시 끌어내는데 실패했음.
마지막으로 미노에게 붙여진 사람이 바로 '냄새나는 가죽주머니'라는 별명을 가진 이야기 선생.
읽으면서 마음에 들었던 부분.
- 모든 붉은빛은 머지않아 사라질 터이다. 모든 건 시간 문제일 터이다.
- 세상의 흐름을 멀리하려 애쓰는 반항아의 성품이 한 마디 한 마디에서 절로 느껴졌다.
- 늦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돼. 인생이 참 허무하다고 느끼게 되고... 그럴 때 너라면 어떻게 하겠니?
- 너의 몸에는 원래 이름이 없었다. 몸이 생겨난 후 이름이 붙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네 몸을 칭칭 감고 너를 가둔다는걸 너는 모르고 있다.
- 부드러운 웃음을 지녔으나 불의와는 결코 타협하지 않았다.
- 그는 낙서가 내내 하고 싶었던 말이 이 한마디였음을 깨달았다. 이 한마디를 위해 지금까지 그가 하는 말을 다 들어주었음을 깨달았다.
- 양현교는 밖을 보고 있었다. 맑으나 무기력해 보이는 시선이 그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려 애쓰는 자.
[짧은 소감]
이야기의 전체 흐름보다, 솔직히 나는 연암과 이서구, 박제가 등 원래부터 내가 좋아했던 실학자들의 모습을 소설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괴로웠던 수학여행에서 도피처로 열하일기를 읽었는데 이번에는 연암집에 도전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