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나 간 구닥다리 자꾸 올려도 되는지 모르겠네요~~~
***백두산 여행기(2010.7/10-7/13)***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신비의 영산인 백두산 여행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언젠가 한번은 가보리란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러던 그날이 다가오니 가슴 설레었다. 06:00시에 포항종합운동장에서 출발이라 평소보다 조금 일찍(03:00) 일어나 조깅을 하면서 행여 빠뜨린 물건이 없나 머릿속으로 체크하여본다. 어저께 모두 챙겼다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니 등산화와 배낭을 빠뜨린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하였다. 평소에 3바퀴 돌던 청송대 코스를 2바퀴만 돌고 서둘러 집에 도착하여 준비물을 챙긴 후 아내가 정성스레 챙겨준 아침밥을 맛있게 먹곤 출발 장소로 향한다.
모두가 시간 약속을 잘 지켜 06시에 곧 바로 김해 공항으로 출발 하였다. 오늘 함께 갈 일행은 10명이며 모두가 실장을 역임한 분이거나 현직 행정실장들이라 마음이 잘 통하였다. 나보다 연배가 4명이며 후배 실장들도 5명이라 나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 할 것 같았다. 모두들 아침 일찍 일어난 탓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 것 같았다.
나 또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살포시 잠이 들었다 깨었다한다.
이른 아침이라 고속도로는 한산하여 관광버스는 빠르게 달리고 있다. 덩달아 내 마음도 바쁜 것 같다. 올림픽을 치룬 이후 중국은 많이 변했을까? 백두산 천지를 과연 선명하게 볼 수 있을까? 조선족들 생활은 우리와 어떤 차이가 날까? 이 생각 저 생각 하는 사이 7:30분경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 수속 절차를 마쳤지만 1시간의 여유가 있었기에, 일송정횟집 사장님이 준비하여 온 가자미회를 공항 출입문 밖에서 먹으니 꿀맛이었지만 소주가 없어서 조금은 아쉬웠다. 꿀맛 같은 입맛을 다지며 9:30분 비행기를 탑승하러 출구로 향한다. 검시 대를 통과 하는 순간 다소 긴장되었지만 모두들 별반 사항 없는지 무사히 통과하였기에 안도의 숨을 쉬면서, 면세점을 기웃기웃 거리다 탑승이 시작되어 탑승한다.
김해에서 심양으로 가는 아시아나 항공은 승객들이 많지 않은 탓인지 좌석이 드문드문 비어 있었다. 출발에 앞서 전망이 좋은 빈자리를 찾아가 앉는 사람들도 눈에 보인다. 비행시간은 1:40분 소요되며 11:00도착 예정이지만 현지시간과 1시간의 시차로 10:00경에 도착 예정이라 한다. 오랜만에 신문을 보면서 이따금 모니터를 보니 비행 속도가 시속 1,000km를 넘을 때도 있기에 저어기 놀랐다. 안내 방송이 나온다. 이상 기류가 심하여 기채가 많이 흔들리니 안전벨트를 꼭 메라고 당부한다. 안전벨트를 확인하여본다. 꼭 매여 있다.
만약에 난기류에 휩싸여 비행기가 서해바다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물론 그러할 일이야 없겠지만 사람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야 하며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싶었다. 이런 저런 지난날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되는 순간 예쁜 스튜듀스들이 기내식을 제공하며 승객들에게 콜라. 주스. 맥주. 하면서 친절하게 묻곤 한다. 스튜듀스 직업은 옛날엔 선망의 대상이었으나 요즘은 아니란 생각이 들며 고달픈 직업이란 생각하니 측은한 생각마저 들었다.
난 아침을 먹고 왔지만 그래도 기내식을 받아들곤 주스 한잔을 청했다. 쇠고기 비빔밥과 메밀국수 등 메뉴가 마음에 들었다. 메밀국수 소스인줄도 모르고 쇠고기에 소스를 짜 넣어 버렸기에 아예 메밀국수도 함께 넣어 비볐다. 맛이 없을 줄 알았는데 그런대로 맛이 좋았다. 배가 너무 불러 빵은 그대로 둔 채 커피 한잔만 하여도 포만감이 젖어들어 잠을 청하여본다.
잠이든 상태에 비행기는 어느 사이 서해를 건너 대련을 지나 심양으로 향하고 있었다. 남은 비행시간은 20분이 남았다는 모니터의 자막이 보이며 고도를 점점 낮추는 것 같았다. 1시간의 시차 때문에 시계를 1시간 늦추니 10시가 가까워진다. 행여 비자엔 문제가 없을까? 무사히 입국 할 수 있을까? 은근히 걱정되는 사이 비행기가 착륙하고 있었다. 공항은 그리 커 보이지 않으며 습기가 많은 듯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첫 인상은 그리 좋게 느껴지지는 않았으며 무사히 입국 절차를 마치고 게이트를 빠져 나와 현지 가이드를 만나니
이제 안심이 되며 평정심으로 돌아왔다.
현지 가이드는 여자였으며 잘난 인물은 아니나 수수하게 생겨 마음씨 좋은 아가씨로 느껴졌다. 가이드의 인솔에 따라 먼저 누르하치가 건립하였다는 청나라의 궁전이었던 고궁을 관람하였다. 숭전전(집무실). 대정전(즉위실). 8기병 집무실. 동궁(미녀궁)으로 나누어져 있었지만 북경의 자금성에 비한다면 웅장하다는 생각은커녕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나라 시조인 누르하치와 2대 황타이치 까지만 이곳에 집무 하였다하며 우리나라 경북궁과 별 다른바 없었기에 감탄할 정도는 아니었다.
고궁 관람 후 곧 바로 국립 박물관을 향했다. 국립박물관은 시내 중심부 시청 부근에 있었으며 1층엔 그림, 2층엔 서예, 3층엔 화폐 중심으로 전시장으로 꾸며져 있었으나 별로 나의 시선을 끌지 못하여 그냥 대충 대충 훑어보곤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조그마하였지만 아늑하였고 둥근 테이블에 10명이 앉을 수 있었으며 한국음식이라 좋았다. 중국음식은 향료가 많아 역겨운데 한국 음식은 우리 입맛에 맞아 맛있게 잘 먹었다. 식사 후 2시경 심양에서 통화로 출발하였다. 심양은 중국에서 6섯 번째 큰 도시로 상해. 북경. 천진. 중경. 서한. 다음으로 큰 도시라하며 인구는 8백 5십만 정도라 하였다. 심양에서 통화로 가는 주변 벌판은 대부분 옥수수 밭으로 끝이 보이지 아니하며, 이따금 논(답)이 보이긴 하였지만 옥수수로 뒤 덥힌 넓은 벌판이 차창가로 스치니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저렇게 많은 옥수수는 어디에 쓰일까 궁금하였으나 술을 담그는데 사용한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쉽게 수긍이 가지 않았다.
4시간여의 여정 끝에 통화에 도착하였으며 시가 거리는 어둠으로 묻혀있었다. 통화 시는 제철, 의약, 와인으로 유명한 도시라하며 인구는 6십만 정도로 포항시 보다 조금 큰 도시인 듯 하나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와인이 유명하다기에 식사 때 와인 맛을 보니 내입에 딱 맞기에 1병을 주문하여 챙긴 후 맛있게 식사를 하곤 곧 바로 후핑호텔로 이동하였으며 별이 4개였지만 그렇게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호텔 로비는 수리 중에 있었으나 내부는 그런대로 괜찮았기에 불편했던 심기가 가라앉았다.
내일 백두산 관광을 위하여 05시 정각에 모닝 콜 한다기에 모두들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며 나 또한 와인으로 약간의 취기가 있는데다 룸메이트와 소주 몇 잔을 마셨으니 금방 졸음이 쏟아져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01:40분경 목도 마르고 소변이 보고 싶어 일어난 김에 아침운동을 나갔다. 02:30분부터 월드컵축구 3. 4위전 독일 :우루과이 중계를 보기 위해서는 1시간 정도 밖에 여유가 없기에 호텔을 빠져 나왔으나 가로등이 모두 꺼져 암흑의 거리라 겁이 덜컹 났다. 중국도 빈민가가 많기에 행여 퍽치기나 당하지 않을까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면서 이따금 가게에서 비치는 희미한 불빛 따라 조심조심 달리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로 위를 쓸고 있는 환경미화원들의 모습에 새삼 놀랐다. 보이지 않은 저런 곳에서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유지 되는구나 다시 한 번 느껴졌다.
어두워 길이 보이지 않기에 조심조심 달리는데 이따금 비치는 차량 불빛 때문에 눈이 부셔 앞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았다. 1시간 20분 정도 달리곤 3시경에 숙소에 들어오니 벌써 전반전이 거의 다 끝날 무렵이었다. 1:1 예상 밖이었다. 독일이 일방적으로 리드 하리라 생각 하였으나 전반전은 1:1로 끝나고 후반전 역시 팽팽하게 주고 받드니 우루과이가 먼저 1골을 넣어 2:1이 되니 독일이 패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독일의 반격 또한 매서웠으며 곧 바로 1골을 넣어 2:2 균형을 이루더니 또다시 1골을 추가하여 2:3으로 역전하여 독일이 3위하는 모습을 보곤 샤워 후 곧 바로 백두산 출발 준비를 하였다
7/11일(2일차)
06:00 아침식사 후 06:40분경 관광버스를 타고 서 백두산으로 향했다. 5시간 소요 된다기에 한숨 푹 자려 하였으나 이곳에 언제 다시 와 보려나 생각하니 아름다운 풍경을 많이 눈에 담아 두고 싶었다. 달려도 달려도 보이는 것은 옥수수 밭뿐이며 나지막한 야산이라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개간 할 수 있을 것 같아 부러움이 쌓였다. 집은 하나 같이 똑 같은 모양으로 지붕은 붉은 색깔이며 마치 창고처럼 느껴져 사람이 살고 있지 않을 것 같았지만 살고 있다한다. 그러나 사람들의 모습은 거의 볼 수 없기에 이상하게 생각되었지만 일터에 나갔다가 밤이 되면 집으로 돌아 올 것이라 생각하여 보았다.
도로는 편도 한 차선 뿐이었지만 한산하였고 노면이 좋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달리니 덜컹덜컹 마치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느낌이었다. 위험한 커브 길에도 경적을 울리며 추월을 하니 가슴이 조마조마 하였지만 무질서 속에 질서가 있는 것 같아 안정을 되찾아갔다. 서로가 알아서 잘 피하여 달리고 있다. 어느 사이 백두산 초입에 이르니 비행장 가는 길도 눈에 보였다. 이 비행장은 매일매일 이-착류하는 공항이 아니라 1주일에 한 두편 특별기만 이착륙하는 공항이라 한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하여 식당에 들리기 전 백두산이 위치한 곳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까맣게 덥혀 있어 천지를 구경하기 힘들다는 가이드의 말에 약간은 실망스러움이 스쳐 지나간다.
중국에서는 백두산을 장백산이라 한다하였다. 백두산은 머리가 항상 눈으로 덥혀있어 백두산이라 일컬으며 장백산은 흰 산이 오랫동안 지속된다하여 장백산이라 한다며 똑 같은 뜻이라 하였다. 좀 이른 시간이지만 11시경 점심 식사를 마치고 꼬불꼬불한 길을 한참 달리니 장백산이란 큼직한 표지판이 나오는 매표소 입구에 이르렀다. 장백산 매표소 입구에서 셔틀버스를 갈아타고 정상을 향하니 마치 밀림을 헤쳐 나가는 듯 하드니 이내 초원이 펼쳐지는 것 같았다. 마치 예쁜 야생 꽃들을 심어 놓은 듯 군락지를 이루고 있으며 초지들이 무성하여 산이라기보다는 목장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길이 좁아 도저히 차량을 비키지 못할 것 같은 꼬불꼬불 커브 길에서도 많은 셔틀버스들이 곡예 운전하며 잘도 비켜가고 있음에 새삼 놀랐다.
계단입구 못미처 주차장에 이러니 12:20분경이며 많은 관광객들로 붐볐다. 정상까지는 1,236계단이며 이제부터 이 계단을 올라야 한다. 뛰어 올라가볼까? 그렇지 않으면 몸이 불편한 일행과 천천히 함께 오를까 망설이다가 도우미 역할을 하면서 함께 가기로 마음먹곤 맨 뒤로 처졌다. 그런데 몸이 불편하신 분이 들것을 타고 올라간다며 먼저 올라가라한다. 들것을 타고 정상까지 오르내리는데 8만원이라 하기에 비싼 것 같았지만 혼자 오르는데도 힘 드는데 2인 1조가 되어 사람을 태워 1,236계단을 올라간다는 것이 여간 힘 드는게 아니라 생각하니 비싸다는 생각을 떨쳐 버렸다.
가마를 타고 올라가는 것을 보곤 그때부터 달리기 시작하였다.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많아 부딪히기도 하였지만 한 동안 잘도 뛰어 올라갔다. 6-7백 계단쯤에 이르니 가슴이 터질 것 같고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들어 이대로 계속 달리다간 심장이 파열되어 죽을 것만 같기에 달림을 멈추고 빠르게 걸어올라 갔다. 생각보다 끝까지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었기에 포기라는 단어를 생각하였다.
중간쯤에 이르니 아직 잔설이 많이 남아 있기에 신기하다는 생각에 잔설을 밟기도 하고 계곡에 물이 콸콸 흘러내리는 모습을 보곤 놀라기도 하였다. 내려오는 관광객들에게 천지가 보이더냐고 물으니 보인다하였다. 그렇지 않아도 먹구름이 걷히는 모습이 눈으로 보였다. 깨끗하고 맑은 천지를 눈에 담으려 빠르게 올라가니 20분이 소요되었으며 천지가 선명하게 내 눈앞에 나타났다. 정말 신기하였다. 이렇게 높은 산꼭대기 정상에 물이 가득 고여 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평소 사진으로 본 천지는 상당히 커다 생각하였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커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선명한 천지를 오랫동안 간직하려 한 장에 6천원 하는 사진을 2장에 만원하여 찍곤 우리 일행들이 올라오기를 기다리면서 변화무쌍한 천지에 감탄사를 연발하였다. 한참을 기다리니 일행들이 올라와서는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하며 기념사진을 수없이 찍곤 잊지 못할 정상 주를 한잔 후 2시경에 천천히 내려오는데 갑자기 소낙비가 퍼 붇기 시작한다.
우리는 정말 때를 잘 맞추어 올라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의 천지는 그 아름다운 자태를 좀처럼 들어내지 않으며 3대가 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던데 우린 운 좋게 볼 수 있어 천만 다행이었다. 그리고 백두산에서 원 없이 소낙비를 맞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었다. 1회용 우의를 입었으나 가슴속까지 물기가 젖어 들며 싸늘함을 느끼게 하였다. 그렇게 세차게 비가 내리는데도 천지를 구경하겠다고 올라가는 관광객들을 보면서 올라가 보아야 구름에 덥힌 천지를 보지 못 할 거라 생각하니 실없는 웃음이 나왔다, 우린 어느 사이 주차장에 도착하여 잠시 비를 피하곤 셔틀버스를 타고 매표소를 향했다. 내려오는 중도에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협곡을 이루었다는 협곡을 잠시 구경하였으나 감탄 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른 점심과 1,236계단을 오르내린 탓인지 모두가 시장하다며 누군가가 잔치국수 한 그릇 했으면 좋겠다는 얘기하니 가이드가 점심 먹었던 식당에 준비 시키는 것 같았다. 한국 관광객들을 많이 접한 탓인지 잔치 국수 맛이 너무 좋았으며 독한 술이었지만 하산 주 또한 맛이 일품이었다. 이제 장시간 버스를 타고 가야하기에 얼큰히 취하고 싶어 3잔을 연거푸 마시니 취기가 감돌았다. 쏟아지는 비속을 헤치며 달리는 차량에 몸을 맡긴 채 한 숨을 자곤 창밖을 보니 비가 그치는 듯 하더니 다시 세차게 내리기에 대륙이 넓긴 넓다는 생각이 들었다.
5시간 정도 줄기차게 달려 통화에 도착하니 7시가 조금 지나고 있었으며 저녁 식사 후 숙소에 도착하였다. 오늘의 피로를 깨끗이 풀기 위하여 발마사지를 하자는 데 의견 일치를 보았다. 시간이 늦은 탓에 업소로 이동하기보다는 출장 마사지를 받는 것이 좋겠다는 다수의 의견에 10시경 호텔에서 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받는 순간은 시원한듯하였으나 출장비까지 보태어 돈을 더 주면서도 서비스는 오히려 못하여 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사지사들은 돌아가고 룸메이트와 소주 1팩을 나누어 마시곤 잠을 청하니 금방 꿈나라로 떨어졌다.
7/12일(3일차)
02:30 월드컵 결승전 중계방송이 있기에 02:20분경에 일어나 TV를 켜니 예선전 명장면들을 재방영하고 있었다. 룸메이트를 살짝 깨웠지만 곤히 잠에 떨어져 있어 볼륨을 최대한 낮추어 시청하였다. 당초 나의 예상과는 정 반대였다. 막상 막하라 생각하였는데 스페인이 일방적으로 공을 갖고 상대방 진영을 헤집고 다녔지만 좀처럼 골은 터지지 않았다. 전반전은 0:0 후반전은 골이 터지리라 생각을 하였지만 역시 후반전도 스페인이 일방적으로 공격하기에 네덜란드가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골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으며 후반전도 0:0으로 끝나곤 연장전으로 접어들었다.
연장 전.후반도 득점 없이 끝나가고 있기에 PK로 승부하면 밀리던 팀이 항상 이기는 징크스가 있던데 오늘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겠지 하는 순간 스페인 팀이 네덜란드 골문을 열었다. 120 여분의 사투 끝에 스페인이 월드컵 사상 처음 우승컵을 안는 순간, 전 세계인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으며 지구촌 열기를 서서히 잠재우게 하였다. 월드컵 결승전을 보곤 1시간여 아침운동을 하려 하였으나 연장전을 치루는 바람에 운동을 하지 못하고 계속 TV에 눈을 고정 시켰다.
오늘도 05:00에 모닝콜 하여 06:00에 식사를 하곤 곧 바로 고구려 전성기 시절 요동 벌판을 지배한 고구려인들의 유적이 있는 집안(集安)으로 향했다. 집안은 고구려 제2의 수도인 국내성이었으며 현재의 지명은 국내성이 아닌 집안으로 명명되며 길림성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집안은 고구려 2대왕인 유리왕이 졸본성에서 국내성으로 천도하여 424년간 수도로서 가장 찬란했던 전성기를 누렸던 만큼 1만 여개의 고분과 수많은 유적지가 남아 있다지만 지금은 광개토대왕릉과 비, 그리고 장수왕의 장군총 등만 유적으로 남아 있으며 중국의 동북아 정책으로 중국의 문화유적으로 둔갑하여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 되어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서글픈 현실이었다.
통화에서 집안까지는 2시간 정도 소요되며 9시경 집안에 도착하였다. 집안은 사방에 산과 강으로 둘러 싸여 한 눈으로 보아도 전략 요충지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되어 있다지만 유적지로 진입하는 도로는 농로에 불과하여 근접하기가 상당히 불편하였다. 어느 왕의 능인지는 몰라도 도굴되어 유물은 하나도 없었지만 벽면엔 색채로 된 벽화가 특이하였다. 어둡고 침침하고 또한 낡아서 가이드가 벽면을 보면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신도를 설명 하여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다만 2천년전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석곽을 쌓을 수 있었고 색채화 된 벽화를 그릴 수 있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고분벽화를 관람 후 부근에 있는 장군총을 관람하였다. 19대 광개토대왕의 아들인 장수왕릉으로 돌무지무덤 이었다. 마치 피라밋 형상으로 고구려 고분 중 가장 웅장하고 거대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그 옆에 자그마한 돌무지무덤은 애첩의 묘, 또는 신하의 묘라는 설도 있었지만 증명할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장군총 관람 후 유리관 속에 보관된 광개토대왕비를 관람 하였다. 서기 414년 고구려 장수왕이 세운 광개토대왕비는 높이 6.5m에 무게는 수 십 톤에 달하여 보기만 해도 그 웅장함에 위압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삼국시대뿐 아니라 이 광개토대왕비가 세워질 당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거대한 비는 설치되지 않았다한다. 비석에 새겨진 내용은 고구려의 탄생과 광개토대왕의 영토 정복에 관한 것으로, 주변국가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료라 하지만 읽을 수도 제대로 볼 수도 없었기에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이에 반하여 광개토대왕릉은 능이라 하지만 도굴 된 탓인지 장수왕릉에 비하여 초라하고 허물어진 돌무지가 너무 볼품이 없었다. 만약에 우리나라 영토였다면 저렇게 방치 하진 않았을 텐데 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으며, 돌아오는 길에 환도 산성을 구경 후 압록강으로 향했다. 압록강은 중국과 북한의 경계지점으로 이곳은 강폭이 좁아 얼마든지 국경을 넘나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압록강이란 표지판 앞에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니 기분이 이상야릇했으며 바로 눈앞에 두고도 북녘의 땅을 밟을 수 없다는 현실이 또 한 번 나를 서글프게 하였다.
북녘의 땅을 유심히 바로 보았지만 산간 마을의 낡은 집들은 몇 채 보였지만 사람들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유령 마을인지 이곳 중국과는 너무나 대조적으로 보였다. 압록강 관광을 끝으로 모든 관광 일정은 끝나고 북한에서 직접 운영한다는 묘향산 식당에 들렀다. 북한 공연단이 공연하는 가무를 즐기면서 식사 전에 반주로 주문한 들쑥주는 1병에 5만원이라 비싸긴 하였지만 맛이 일품이라 1병을 추가하여 몇 순배 돌리니 취기가 돌았다.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고향의 봄을 부르는 공연단을 보곤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감동하였으며 같은 동족이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이념이 무엇인지 망각할 정도였다.
점심 식사 후 내일 출발장소인 심양으로 향했다. 6시간 소요 된다기에 취한 김에 뒤 좌석으로 가서 잠을 청하였다. 이따금 울리는 경적소리에 잠이 깨곤 하여 창밖을 바라보니 보이는 것은 역시 옥수수 밭과 판자촌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건물뿐이며 곳에 따라 소나기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운전기사가 엄청 빠르게 달린 탓인지 6:30분경 심양에 도착하니 이곳에도 비가 많이 내리고 있었다. 오늘 저녁은 불고기 백반이라 하며 일송정 허 사장님이 쏜다 기에 박수를 치면서 환호하였다. 덕분에 맛있게 식사를 마치곤 마지막 날 밤을 재미있게 보내자는 회원들의 의견에 따라 노래방에서 술 한 잔 하기로 결정하곤 일단 호텔로 향했다.
뉴월드호텔 숙소에 여장을 풀곤 간단히 샤워 후 8:30분경 로비에 모여 노래방으로 향했다. 단체 경비가 얼마 남지 않아서 도우미 아가씨는 3명만 부르기로 하고 노래방으로 향했다. 노래방은 상당히 크고 화려하였으며 아가씨들이 한꺼번에 10명 이상 들어오는데 누가 더 이쁜지 구분 할 수 없을 정도로 모두들 미모가 뛰어났다. 그런데 누군가 3명을 지명 하자마자 나머지는 모두 밖으로 나가는 뒷모습을 보니 측은하고 조금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우미들은 중간 중간에 끼여 앉고 노래가 시작되고 술이 몇 순배 도니 누가 뭐라할꺼 없이 스스로 무대 앞으로 나가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흥겹게 놀기 시작하였으며, 2시간 정도 흥겹게 놀다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을 청했다. 아침에도 운동을 못 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곳 심양의 거리를 내일 아침 꼭 달려 볼 생각으로 잠을 청했지만 흥겨운 여운이 아직 가슴에 남은 탓인지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7/13일(4일차)
04:00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간밤의 비는 거짓말처럼 그치고 하늘은 맑았다. 비 온 뒤의 하늘은 청명하였으며 이국의 하늘도 조국의 하늘과 다를 바 없었다. 준비 후 프런트에 내려오니 직원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으며 어느 쪽으로 달릴까 망설이다 우측으로 향하니 300m 전방에 공원이 보인다. 공원 이름은 중산공원이란 표지판이 큼지막히 붙어 있으며 상당히 넓어 보였다. 공원내엔 우레탄 트랙이 깔려 있으며 한 바퀴 돌아보니 600m 정도 되어 보였다. 중국 사람들도 아침 일찍 운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으며 천천히 걷는 사람과 빠르게 걷는 사람, 달리는 사람, 기체조 하는 사람, 배드민턴 치는 사람, 악기를 연주하는 가족 등등 정말 다양하였다. 5바퀴 정도는 천천히 돌곤 좀 빠르게 달리는데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부딪히므로 빠르게 달릴 수 없을 정도였다.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달리지만 빠르게 나를 추월하여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마 마라톤을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하여 뒤 처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하여 따라가 보지만 역 부족이었다. 그 사람은 내가 4바퀴 돌때 마다 한 바퀴씩 추월 하는 것을 보곤 적이 놀랐으며 아마 그는 sub-3 주자가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내 앞을 추월 할 때마다 그의 뒤를 따라 열심히 달리니 숨이 턱 까지 차오르며 죽을 것만 같아 따르기를 포기하였다. 30바퀴 돌려다 너무 지친 상태며 갈증이 심하여 27바퀴만 돌아도 온 몸이 물에 빠진 생쥐처럼 땀이 줄줄 흐르기에 숙소로 향했다.
천천히 숙소로 향하면서 곰곰이 생각하여 보았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긴 하지만 많이 개방되어 국민들이 여가 선용도 즐길 줄 아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입가엔 엷은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2004년 베이징 마라톤대회 참가할 때만 하여도 국제마라톤대회라 하지만 대회운영도 미숙하고 기록증은 완주기록도 없이 백지기록증을 지급하면서 본인 기록은 본인이 기록하라는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개최 후 많이 개방되어 서구문화를 많이 받아 들였는지 여가선용을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북한은 아직도 폐쇄된 국가로 기아에 허덕이며 굶어 죽어가고 있는 어린이들이 수 없이 많은데도 지도자들은 전쟁준비에만 몰두하여 핵을 만들었다니 보유하고 있다니 떠들어 대는 뉴스를 볼 때마다 같은 동족으로 너무 가슴 아팠다.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라 하지만 남북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져 금강산과 백두산은 휴전선을 통하여 자유롭게 여행 할 수 있다면 중국에 주는 외화만 북한에 주어도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은 없을 거라 생각하니 너무 마음 아팠다. 하루 빨리 통일이 되던가 아니면 교류가 활발하여 서로서로 왕래 할 수 있는 길이 열려야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사연도 모두 해소 되리란 어줍잖은 생각을 하면서 호텔 현관문에 들어선다.
중국에서 마지막 식사인 아침을 뷔페로 맛있게 먹곤 짐을 챙겨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너무 이른 아침에 공항에 도착한 탓인지 직원들이 아직 업무를 보지 않기에 로비에 앉아 오랫동안 기다리다 짐을 붙이고는 3박 4일 동안 정 들었던 가이드와 석별의 정을 나누고 고국의 품으로 향 하였다. 중국 대륙이 넓디넓고 볼 것이 많다하지만 역시 고국의 산천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정겹게 다가왔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산과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이 창밖으로 스쳐지나니 마음이 아늑해지고 포근하여진다. 오막살이 집이라도 내 집이 좋듯이 우리 강산 우리 조국이 너무 가슴 벅차게 다가왔다.
이번 백두산 여행은 정말 운 좋게 맑은 천지를 볼 수 있어 너무 좋았으며 휴화산인 백두산이 서서히 활화산으로 바뀌고 있다는 학자들의 설이 많으니 기회가 온다면 화산이 폭발하기 전에 육로를 통하여 다시 한 번 백두산 천지를 구경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쉬움을 남긴 채, 3박 4일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됨을 우린 안도하고 서로 서로 감사한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었으며, 인솔 단장에게도 힘찬 박수를 보내며 다음을 기약하였다.
2010년 7월 백두산 여행기
첫댓글 달빛형은 안가보신데가 어디메인가요???? 울트라처럼 여행도 울트라급...ㅋㅋㅋ
부럽습니다
개통되모 기차타고 가봐야 될시더ㅡㅡ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