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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뮤즈콘서트콰이어 원문보기 글쓴이: 장석진
날씨도 꿀꿀하고 별 바쁘지도 않고 하여...
제가 속해 있던 카페 돌아다니다가...그러다가.
전에 올렸던 글 하나 올립니다.
시간 여유 있을때 천천히 함 읽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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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음은 인간의 영혼을 춤추게 한다.
내가 초등학교 음악시간에 음악의 3요소가 음정 박자 화음 이란 것을 의미도 모르고 그냥 기계적으로 외웠던 기억이 있읍니다. 최근 갑자기 음악을 좀 심하게 접하다 보니 그 때 배웠던 음악의 3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좀 진진하게 생각 해 볼 수 있었읍니다. 박자는 인간의 몸을 춤추게 하고 음정은 마음을, 화음은 영혼을 춤추게 한다고 합니다. 정말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나는 몸, 마음, 영혼이란 단어 중 영혼을 좀 더 나은 가치로 여기고 있었고 따라서 음악의 3요소 중 지향해야 할 상대적 우위의 가치는 화음이라 생각하여 합창, 교향곡 등 을 우위에 두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러한 생각의 기저에는 “믿음,소망,사랑 이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성경말씀이 저의 사고 틀을 형성하는데 잠재하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요즘 이러한 생각들이 좀 바뀝니다. 영혼을 인지하고 행복해 하는 정신,마음도 영혼 못지 않게 중요하며 그러한 마음이 담겨 있는 구체적이며 개별적인 몸도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문에 박자와 음정도 인간의 몸과 마음과 같은 구실을 한다고 봅니다.
망구, 기냥 제 생각…
최근 영어 공교육 강화를 계기로 몰입식 교육이라는 단어가 메스컴을 도배 하고 있는데 여기에서의 몰입은 immersion 이고 칙센트 미하이 교수의 몰입은 flow(흐름) 이라고 표현 하네요.
동양의 유(游)의 개념으로 굳이 번역하자면 “흐르기” ?? 외적 보상에 연연해하기 않고 자발적이며 완전이 헌신적인 삶, 즉 완전한 자기 목적적인 경험.을 의미한다는 군요. 칙센트 교수의 책은 1)몰입의 즐거움, 2)몰입의 경영, 3)창의성의 즐거움, 4)몰입의 기술 등이 있는데 기본적인 논조는 비슷하나 개별 책들이 다 독특한 맛이 있습니다. 그 중에 강추 하고 싶은 책은
1) 몰입의 즐거움 (finding Flow, 200여 쪽 정도의 간단히 읽을수 있는 책 처음 읽을때보다 두번째 읽을때 더 재미있음)
2) 몰입: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든다. (Flow 600 여 쪽으로 실제적인 몰입의 여러 경향, 사례들을 소개하여 매우 재미있음) 두 권입니다.
그 동안 단편적으로 느꼈던, 무엇을 한다는 것에 대한 생각의 구슬들을 이 두 권의 책이 실로 꿰어주어 가치 있는 보물을 만들어 주는 것 같았습니다. 주옥 같은 글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한 단락, 음악의 즐거움에 대한 내용을 옮겨 봅니다.
음악을 사랑하시는 여러분께
음악에 대한 생각의 지평을 넓히시는 좋은 자료가 되길....
또 여가시간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보내느냐에 대한 생각....
나아가, 우리의 삶을 능동적이며, 주체적으로 만들어 한 단계 나은 가치있는 삶들로 엮어나가는 단초가 되길..
바라며……
음악의 기쁨 : 듣는 즐거움
귀를 즐겁게 하도록 배열된 음은 지금껏 알려진 모든 문화에서 삶의 질을 향상 시키는데 널리 활용되어 왔다. 원하는 분위기에 맞는 양식으로 청취자의 주의를 집중시켜 주는 것이 가장 오래되고 어쩌면 가장 보편적인 음악의 기능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춤곡을 비롯하여 결혼식, 장례식, 종교의식을 위한 음악 ,애국심을 고양시키는 노래 연애 감정을 불어 넣어주는 음악, 군대가 질서 정연하게 행군 할 수 있도록 해주는 행진곡 등이 만들어 진 것이다. 중앙 아프리카의 이투리 피그미족들은 어려운 시기를 닥칠 때 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제공해주는 은혜로운 숲이 우연히 잠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시기가 오면 종족의 우두머리들은 지하에 묻어 두었던 신성한 풀피리를 파내어 며칠 동안 밤이고 낮이고 불었다. 잠자는 숲을 깨워 좋은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이투리 족의 이 같은 음악 사용법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음악적 기능의 좋은 표본이다. 뿔피리 소리가 숲을 깨우지는 못 했을지라도 그 익숙한 피리소리가 피그미 족에게는 곧 도움을 받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주어 자신감을 갖고 미래에 맞서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거시이다.
오늘날 음악의 대부분도 이와 비슷한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있다. 인격 형성의 갈림길에서 하루 종일 이런저런 방황을 하는 십대들은 특히 음악에 의존해 그들의 의식 속에 어느 정도 질서를 회복한다, 많은 성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은 조직화된 청각의 정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정리해 줌으로써 심리적 엔트로피 – 즉 관련 없는 정보들이 우리가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할 때 경험하게 되는 무질서- 를 감소시켜 준다. 음악을 들으면 지루함이나 근심 걱정을 떨쳐 버릴 수 있고 진지하게 감상 할 때는 플로우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이는 기술의 발달로 음악을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접할 수 있게 됨으로써 삶의 질이 상당히 향상됐다고 주장할는지도 모른다. 라디오 테이프, CD, 등을 통해 선명하게 녹음된 최신 곡들을 하루 종일 들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계속해서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우리 삶을 더욱 풍족하게 만들어 주어야 이론에 맞는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흔히 행동과 경험을 혼동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녹음 된 곡으로 며칠이고 계속해서 듣는것이 몇 주일 동안 고대하던 콘서트에서 단 한 시간 음악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울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삶의 질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음악이 항상 귀에 가깝게 있다는 사실이 아니고 우리가 주의를 집중해서 귀를 열고 들을 때 만이다.
예컨대 식당이나 가게에서 나오는 배경음악을 들을 때 그것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따라서 그로 인해 플로우를 경험하기란 극히 어려운 것이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로 음악도 즐기기 위해서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현대인들은 녹음 기술의 발달로 음악을 듣기가 너무나 편리해진 나머지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음악을 통해서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우리의 능력도 그 만큼 감소 될 수 있는 것이다 녹음의 기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종교의식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던 시절의 음악이 자아내던 것과 같은 경외감을 라이브 음악 공연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교향악단은 물론이요, 마을의 무도회 반주 그룹까지도 이와 같은 조화로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신비한 기술을 잘 보여 주는 좋은 예가 되었다. 당시에는 한 번의 공연이 유일무이 한 것이며 다시 되풀이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사람들이 이런 행사에 거는 기대가 매우 높았던 것이다.
오늘날 록 콘서트와 같은 라이브 공연의 관객들도 어느 정도는 이와 같은 의식적 행위에 참가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말고는 이처럼 낳은 사람들이 모여 같은 행사를 보고 같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며 동일한 정보를 처리하게 되는 예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집단으로 행사에 참여하는 관중들은 뒤르켐이 명명한 ‘집단적 흥분’을 경험 하게 되는데 이는 어떤 집단에 확고히 소속되어 있다는 존재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을 말한다. 뒤르켐은 이러한 느낌이야 말로 근원적인 종교적 경험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라이브 공연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에 집중할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기 때문에 재생된 음악을 들을 때보다 공연장에서 플로우를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다. 라이브 연주가 녹음된 음악보다도 원래 더 즐거운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와 반대의 경우를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타당성이 희박하다.
듣는 이가 진지한 자세만 갖춘다면 어떤 음악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사실상, 야쿠이족의 마술사가 인류학자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에게 가르쳐 준 바와 같이 음과 음 사이의 정적까지도 면밀히 들으면 즐거운 것이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희귀 음반까지 탐내면서 많은 음악을 수집해 두고 있지만, 그것을 실지로 즐기지는 않는다. 몇 번 음악을 들으면서 음향 시설이 내는 선명한 음에 감탄하고서는, 더 좋은 음향 기기가 나와 그것을 새로 구입할 때까지 잊어버리고 다시는 음악을 듣지 않는다. 이와는 반대로, 음악에 내재한 기쁨의 잠재성을 최대로 살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경험을 풀로우로 변화시킬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알고 있다. 그들은 우선 일정한 시간을 음악 감상에 할애한다. 그 시간이 되면 불을 끄거나, 제일 좋아하는 의자에 앉거나, 혹은 주의를 집중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어떤 방법을 통해 집중도를 높인다. 그들은 감상할 음악을 미리 신중하게 선곡하며, 감상 시간에 맞는 구체적 목표를 설정해 둔다.
음악 감상은 처음에는 감각적 경험 단계에서 출발한다. 이 단계에서는, 우리 신경계에 유전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유쾌한 육체적 반응을 유발시키는 음색에 반응을 보인다.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그런 특정 가락이나, 플루트의 애조를 띤 호소, 또는 활달한 트럼펫의 곡조에 반응을 나타낸다. 우리는 특히 드럼이나 베이스의 리듬에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데, 이런 리듬이 록 음악의 기초가 되는 것이며, 누군가는 이와 같은 리듬이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처음으로 듣게 되는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상기시켜 준다고 하기도 한다.
다음 단계는 유추적 감상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음의 양식에 따라 감정과 이미지를 떠올리는 기술을 갖추게 된다. 음울한 색소폰의 악절은 대평원 상공에서 먹구름이 몰려드는 것을 바라볼 때 느꼈던 경외감을 상기시켜 준다. 또 차이코프스키의 곡은 눈이 가득 덮인 숲 속에서 종을 딸랑 거리며 썰매를 타고 달리는 광경을 눈으로 보는 듯하게 해주기도 한다. 대중 가요도 물론 그 노래가 어떤 분위기와 어떤 이야기를 나타내는 곡인가를 명확히 알게 해줌으로써, 이와 같은 유추적 감상법을 최대로 활용한다고 하겠다.
음악 감상의 가장 복합적인 단계는 분석적 감상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음의 감각적 혹은 서사적 측면보다는 음악의 구조적인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감상 기술이 이와 같은 수준이 되면, 그 작품 저변의 양식 및 그와 같은 화성을 이루어 낸 방법을 인식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이러한 수준의 감상 기술을 익히게 되면, 각 공연마다 상이한 음향의 질을 비교 평가할 수 있으며, 공연 작품을 그 작곡가의 초기 및 후기 작품과 비교하기도 하고, 동시대의 다른 작가가 만든 작품과도 비교할 수 있다. 또한 같은 관현악단, 지휘자, 악단의 초기 공연과 후기 공연을 비교해 보거나, 다른 악단과 지휘자는 같은 작품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비교해 볼 수도 있다.
이처럼 분석적 감상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블루스 곡을 다양하게 변화시킨 편곡 작품들을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카라얀이 1975년에 지휘한 제 7번 교향곡 제 2악장이 1963년 공연 당시와 어떻게 다른가 한번 볼까?” 라든지, “시카고 교향악단의 금관악기부가 베를린 교향악단보다 정말 나은가?”라는 생각을 염두에 두고 감상을 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목표를 설정해 놓았기 때문에 듣는다는 작업은 하나의 적극적인 경험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카라얀이 빠르기를 좀 늦추었네.”라든지 “베를린 교향악단의 관현악부의 소리는 더 선명하지만 부드러운 맛이 좀 적군.” 등과 같은 계속적인 피드백을 얻는다. 이와 같은 분석적인 감상 기술을 익혀나가게 되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호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 음악을 듣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플로우가 생겨나는가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런데 음악을 직접 만드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는 더욱 많은 선물이 주어진다. 아폴로의 친화력도 수금을 연주하는 능력에 기인했던 것이며, 목양신(牧羊神) 팬도 그의 피리 연주로 청중들을 열광시켰고, 하프의 명수 오르페우스는 그의 음악으로 죽음마저도 제지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그리스 신화의 이야기들은 음으로 하모니를 만들어 내는 능력과 우리가 이른바 문명이라 부르는 사회 질서 밑바닥에 있는 사회적 하모니와의 관련성을 잘 나타내 준다. 플라톤은 이와 같은 상관성을 염두에 두고, 어린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음악이라고 믿었다. 우아한 리듬과 화성을 경청하는 법을 배워가노라면, 아이들의 의식 세계에 질서가 확립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문화는 어린아이들의 음악적 기술을 일찍부터 개발해 주어야 하는 중요성을 점점 더 소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학교의 예산 감축이 있을 때마다 제일 먼저 삭감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미술·체육 시간과 더불어 음악 시간이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너무도 중요한 위의 세 기술을 없어도 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요즘의 교육 분위기를 볼 때 매우 실망스럽다. 아이들이 음악을 자주 접하지 못하고 자라나 십대의 청소년들이 되면, 자신들만의 음악에 과도하리 만큼의 정신 에너지를 투자함으로써 그와 같은 결핍을 보상하려 한다. 이들은 록 그룹을 만들거나 테이프와 레코드를 사재기하는 등 하위 음악 문화에 심취하게 되는데, 이것들은 일반적으로 의식 세계를 확장시킬 기회를 그다지 제공해 주지 못한다.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친다 하더라도 흔히 발행하는 문제가 있다. 즉 연주를 얼마나 잘하는 지에만 지나치게 중점을 두고, 아이들이 무엇을 경험하는지에 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녀의 바이올린 연주 실력이 향상되기만을 지나치게 바라는 나머지, 실제로 아이들이 바이올린 켜는 것을 좋아하는지 아니면 싫어하는 지에는 관심조차 없다.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주위의 관심을 받고, 상을 타고, 결국에는 카네기 홀에 설 수 있을 정도로 연주를 잘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함으로써 음악 본연의 목적을 정반대로 왜곡시키는데 성공한다. 다시 말해서, 음악이 심리적 부조화의 한 원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부모들의 이와 같은 음악 ‘행위’에 대한 기대는 종종 자녀들에게 과도한 스트레스를 준다. 때로는 완전히 신경쇠약에까지 이르는 아이들도 있다.
토스카니니의 관현악단에서 제1바이올린을 연주했던 완벽주의자 아버지를 두었던 피아노 신동 로런 홀란더는, 어릴 적 혼자 피아노를 칠 때는 환희에 젖어 모든 것을 곧 잘 잊어버리곤 하다가도 지나친 요구를 하는 엄격한 선생님들 옆에서는 공포에 떨었다고 한다. 그는 십대가 되었을 때 연주회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 손이 굳어져 몇 년 동안이나 꽉 쥐어진 손을 펼 수 없었다. 그의 의식 저변에 있던 어떤 잠재 의식적 기제가 발동해 계속적으로 부모의 비판을 들어야만 하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홀란더는 심리적 원인으로 유발되었던 마비에서 벗어나, 다른 재능 있는 어린 연주자들이 음악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며 살고 있다.
악기 연주는 어릴 적에 배워야 가장 바람직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시작해도 늦지 않다. 성인을 가르치는 전문 교사들도 있으며, 나이 50이 넘어 피아노를 배우기로 결심하는 사업가들도 많다.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하거나 아마추어 현악 앙상블에서 연주하는 일은 자신과 다른 사람의 기술이 한데 어우러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유쾌한 방법이다. 요즘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따라오는 정교한 소프트웨어로 인해 한결 쉽게 작곡을 할 수도 있으며, 자신이 작곡한 것을 즉시 들어볼 수도 있다. 조화로운 화음의 작곡법을 배우는 것은 다른 어떤 복합적 기술을 숙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즐거운 것인 동시에 자아를 한층 강화시켜 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가 시간의 낭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직장을 벗어나 집으로 가서 어렵게 얻은 여가 시간을 활용하고 싶어하지만 막상 빚에 가면 무엇을 해야 할지를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역설적이게도 일은 여가 시간보다 더 즐기기 쉽다.
왜냐하면 직업은 플로우 활동과 마찬가지로 자체 안에 목표가 있고 피드백, 규칙, 도전 등을 갖추고 있어서 당사자로 하여금 일에 더욱 열중하고 그 가운에서 자신을 잊고 몰입 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가 시간은 일정한 틀이 없기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만 즐거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기술이 필요한 취미활동 목표와 한계를 정해주는 습관 . 개인적 관심사 그리고 특히 내적 훈련등 은 여가 활동 본연의 재창조 를 성취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사람들은 일하는 시간보다 오히려 여가시간에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리는 수가 많다, 약 60년 전에 미국의 사회 학자 파크가 ‘여가 시간을 생각 없이 보내 버리는 것이야 말로 미국인의 생활에서 생활 에서 가장 큰 낭비가 아닌가 생각된다. ‘ 라고 하지 않았던가. 지난 몇 십 년 동안 거대하게 성장 해온 여가 산업은 여가 시간을 즐거운 경험으로 채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자원을 사용해 플로우를 경험하기 보다는 많은 시간을 들여 유명한 운동 선수들이 거대한 경기장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매주 관람한다. 음악을 직접 만들기 보다는 백만장자 음악가들이 만든 레코드판을 듣는다. 예술활동을 직접 하기 보다는 최근 경매에서 최고 가격으로 팔린 그림을 감상하러 간다.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위험을 무릎쓰기 보다는 모험을 감행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배우들의 연기를 매일 몇 시간 동안 지켜본다.
이와 같은 대리적 참여는 시간을 낭비 하는 데서 오는 공허함을 일시적으로나마 달래 줄 수는 있다., 그러나 결코 이것을 실질적 도전에 투자 되는 주의력과 비교 할 수 없다. 기술을 사용함 으로써 얻어지는 플로우 경험은 성장을 하게 해 주는 반면 수동적인 여흥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개개인의 의식이 낭비되는 시간을 합산하면 일년에 수백만년의 시간이 된다. 고난도의 목표 달성에 집중될 수 있고 즐거움 성장의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는 에너지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일 뿐인 자극에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수동적으로 그리고 자기 지위를 과시하려는 것과 같은 외적인 이유로만 주의를 기울이게 된다면 대중적 여가, 대중 문화 , 심지어는 고급 문화 까지도 모두 우리 정신을 좀먹는 기생충이 될 수 있다. 그것을 심리적 에너지만을 흡수 할 뿐이며, 그 대가로 어떤 실재적인 힘도 제공해 주지 않는다. 결국 우리들은 이전보다 더욱 지치고 의기 소침하게 만들어 줄 뿐이다. 일이나 여가 시간 모두 우리가 통제 하지 못한다면 실망스럽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일과 많은 여가 활동, 특히 대중매체의 수동적 소비와 관련된 것들은 우리들을 행복하고 강하게 만들어 주지 못한다. 이을 통해 금전적 이득을 보는 사람은 따로 있다. 우리가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 한다면 이러한 것들은 우리 삶의 정수를 모두 고갈시켜 빈 껍데기만 남게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일과 여가도 우리 필요에 맞게 조정할 수 있다.
일을 즐길 수 있고 여가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삶이 전반적으로 훨씬 더 가치 있게 되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브라이트 빌은 “ 미래는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의 것일 뿐 아니라 여가 시간을 현명하게 활용하도록 교육 받은 사람의 것이 될 것이다” 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첫댓글 아~이 긴 글을 인내심을 갖고 읽었습니다..`조각시간은 새롭게 조각된 또 하나의 나를 만든다`... 여가시간 관리는 인생에 가장 소중한 훈련입니다..그 시간중.. 음악회가서.. 듣는 즐거움으로..영혼을 춤추게 해야겠네요..``몰입은 미치도록 행복한 나를 만든다`도`..넘 멋진표현입니다..써먹어야겠어요~~쌤..감사^^
내가 쓴 글이 아니고 저번 서울세미나에 왔던 제 후배자 부천 남성합창단 한다던 장석진 회원의 글을 스크랩 했답니다^^
오늘은 음정. 박자. 화음만 기억하겠습니다음정 박자 화음 다 중요하다는 말씀. 조금씩 조금씩 야금 야금
'몰입의 즐거움'을 원하지만 쉽지 않습니다~'결과'를 기다려야 하는초조함을 잘 극복하려면 이런 즐거움을 제가 만나야 할텐데요^^~결코 쉽지만은 않군요! 저도 한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황선미 장편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인데요 곧 영화로도 개봉한다는데 제 딸이 추천 해준 아동문고입니다. 부모와 자녀가 돌려보면 좋을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