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천의 암투병기≫
◇ 머릿말
위암절개수술을 받은 지 이제 15년이 지났습니다.
위를 완전히 들어냈기에 나에게는 위가 없습니다.
언제 재발할지 모르는 암과 싸워야 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지나더라도 없어진 위가 다시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희망이 있기에 절망하지 않았을 뿐, 모진 통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후유증에 면역력이 떨어져 걸핏하면 몸져눕곤 했습니다.
만성소화불량에 악성빈혈에 탈장에 대상포진에 추간판협착증에 디스크에,
그러다가 급성췌장염으로 쓸개도 제거 했습니다.
남의 일로만 생각했던 암,
그 판정을 받았을 때의 제 기분과 우리 집안의 분위기,
그리고 암과 맞대응하던 나와 내 가족의 순수한 이야기를 전해드리고
회원 여러분과 제 경험을 공유코자
본 카페의 비어있는 지면을 빌리기로 하였습니다.
암이란 사실을 몰랐다면 더 오래 살 수 있었던 사람이
암이란 판정을 받은 후 금세 무기력해져서
제대로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경우를 보았습니다.
그것은 대부분의 암 환자는 암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그에 대한 공포감이나 그 공포감으로 인한 면역체계 파괴 때문이라 합니다.
따라서 암환자에게는 무엇보다도 안정이 절대 우선이라고 합니다.
저는 잡념을 없애고 적당하게 긴장하기 위해 투병 중에도 시를 계속 썼고
『징검돌이 있던 자리』라는 제호의 시집도 냈습니다.
그리고 암투병기를 기획․제작하였습니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해 있던 그 암울하던 기간에
같이 지낸 많은 환자와 그 가족들의 모습을 스케치해 두었던
“조용한 사람들”이란 자작시를 모두로 하여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제 암투병기를 연재하고자 합니다.
103병동, 암 환자 입원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속히 벗어나고 싶지만 그게 잘 안 된다.
머무는 날이 길어진다는 것은
그만큼 고통인줄 알지만
아무 때나 쉽게 떠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무단이탈은 절망을 뜻한다.
그 이상은 생의 벼랑을 의미한다.
이곳의 이탈 소식은 빠르게 병실로 전이된다.
수술 전날 각서에 서명하고
생각을 정리했던 이곳 사람들은 말을 아낀다.
사람들은 혈관에 주사바늘을 꽂고
조용히 병실에 누워 예후를 기다린다.
일부는 링거 대에 의지하여 말없이
등 굽은 낙타처럼 복도를 서성인다.
이곳에서는 침묵도 하나의 믿음이 된다.
사람들은 침묵을 광신도처럼 따른다. (『조용한 사람들』의 전문)
첫댓글 수만가지 생각에 짓눌린 병실 환자들의 촛점없는 눈빛이 아른거립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