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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나무에 대한 자료검색을 하거나 식물도감을 찾아 알아보는 경우 혼란이 많이 온다. 이것이 맞는지 저것이 맞는지 일반적으로 자신을 갖지 못하기에 혼돈하게 되는 몇 가지를 밝혀야 한다. 첫째로 보리수나무 하면 사찰을 생각하게 하는 나무로 인도에서 석가모니가 그 나무 아래에서 득도를 했다는 나무로만 알고 실물을 접하지 않았기에 신도들도 보리수를 보지 못하여 생태를 알지 못한 터라 말로만 보리수이지 확실한 자신을 갖지 못하여 때로는 염주를 만들 목적으로 심어진 피나무 종류를 보리수나무로 부르는 경우가 흔하다.
둘째는 불교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보리수나무가 많이도 자생하는데 본명을 부르지 못하고 지역마다 부르는 이름이 달라 혼돈을 가져와 소통이 어려운 상태로 우리 지역에서는 ‘보리똥나무’ 혹은 ‘물포구나무’로 부르는 토종의 보리수나무를 지역의 속명으로만 계속 이름을 부르기에 모두가 함께 부르는 이름이 통용되지 못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셋째는 보리수나무가 아닌 가짜보리수나무로 슈베르트의 가곡에 나오는 ‘성문 앞 우물가에 서 있는 보리수’로 이 나무는 피나무의 한 종류인지라 나무를 잘 모르고 피나무를 보리수나무로 알고 노래를 하니 노래가사가 종교적 대접을 받는 경우가 있다.
넷째는 우리의 산야에 있는 보리수나무가 지역에 따라 여러 종류와 여러 이름이 있기에 헷갈린다는 것이다. 꽃이 피고 열매가 익는 시기가 다르고, 열매의 모양과 잎의 크기가 다르고, 상록수, 낙엽수가 있기도 하는 경우이다.
필자는 불자(佛子)가 아니지만 보리수나무 때문에 지역에 있는 한 사찰을 몇 번 들린 적이 있다. 2010년 여름에 세 번째로 보리수나무를 찾아 자람을 살펴보니 그간의 적응이 좋아 나무로의 모양새를 갖추어 자라고 있음이 반가웠다. 그 보리수나무의 안내 글을 메모하여 옮겨 본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보리수나무는 우리의 산야에 자생하고 있는 흔하게 부르는 ‘보리똥나무’라 부르는 것으로 가을철에 익은 붉은 열매가 맛이 있어 사람들이 많이 따 먹기에 배를 채워주고, 아이들의 간식으로도 이용되고, 약용으로도 쓰이는 우리의 산야에 자생하는 보리수나무임을 알리며 안내의 글을 소개하여 본다.
인도 부다가야 보리수(菩提樹) : 보리수란?... 보리수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 끝에 이 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셨기 때문에 보리수로 불립니다. ‘보리수’ ‘보리’는 산스크리트어 ‘Bodhi'를 소리 나는 대로 옮긴 말인데 ’깨달음‘ 이라는 뜻입니다. 만불사 보리수는 인도 부다가야 보리수의 후손입니다. 인도 아쇼카왕의 공주인 상가밋타스님이 부왕의 명으로 불교를 전하기 위해 스리랑카로 떠나면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지켜본 부다가야 보리수를 가져다 심었다고 합니다. 만불사는 1994년 상가밋타 스님이 심은 아누라다푸라 스리마하보디 사원 보리수의 후손 세 그루를 옮겨와 심었습니다.
만불산 보리수는 1994년 스리랑카 ‘아유타사’에서 만불회 회주 학성 스님께서 직접 이운해 오신 보리수입니다. (사진-스리랑카 대통령과 종정 스님이 부처님 진신사리 5과와 보리수를 만불사에 기증하는 모습과 이운하는 모습)
이 사찰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아예 이 나무가 자생하지 못하는 나무임을 알고 월동시키는데 세심한 노력을 하였기에 보리수를 알리고 확인할 수 있는 상태라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을 실감하는 편으로 상록활엽의 교목이며 잎은 포플라의 잎처럼 생겼고 자연 상태로는 추위에 약해서 우리의 기후풍토에서는 도저히 자랄 수 없지만 보리수를 길러 보여 주기에 확실하다 하겠다.
이 나무 아래에 불교에서 말하는 부처님이 모든 법을 깨우쳐 득도했다는 뜻이 ‘Bodhi'라고 한다. 이 말을 한자로 음역하면 보리(’菩提)라고 표기되므로 나무 수(樹)를 합하여 보리수(菩提樹)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다음에는 슈베르트가 1827년에 작곡한 가곡 ‘겨울나그네’ 가운데 제5곡으로 나오는 보리수는 보리수나무의 종류가 아니라 염주를 만드는 보리자나무로 피나무류 식물이다. 가곡의 ‘린덴바움’을 우리말로 옮기면서 불교의 보리수와 혼동하여 잘못 옮긴 것으로 전한다. 보리자나무가 절에서는 흔히 보리수나무로 불리기도 하지만 불교에서 말하는 보리수와는 다른 나무이다. 석가와 관련된 보리수는 보오나무로 인도의 가야산에서 자라는 상록교목이며 잎의 기부가 꼬리처럼 길게 자라는 특징을 지니며 ‘사유수’ 또는 ‘인도보리수’로도 불린다.
그러면 왜 피나무를 보리수나무로 불렀냐 하면 피나무는 목재의 질이 좋아 목탁을 만들기도 좋고, 건축용으로도 쓰임이 많았고, 열리는 동그랗고 까만 열매로는 염주를 만들었기에 절 주변에 많이 심게 된 원인이며 보리수로 착각을 하고 이름표까지 달아 주는 경우도 있다. 우리의 산야에 자생하고 있는 보리수나무는 언뜻 듣기에 불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나무로 여기기 쉽다. 보리수나무의 보리는 곡식의 보리를 뜻하는 말이기에 불교나 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나무이다. 보리수나무는 ‘보오나무’나 ‘피나무’처럼 키가 커지도 않고 더구나 사람을 위해 그늘을 지워주지도 않는 우리나라 전역에 분포되어 자라는 나무이다. 자생하는 종류가 여러 가지이고 특히 경상도에서는 보리똥나무로 통한다. 5월경에 꽃이 피면 향기도 좋은 반면 벌, 나비, 파리까지 많은 곤충들이 모여 먹이 활동을 하기에 곤충들을 불러 모으는 나무이다.
보리수나무 종류 중에 사찰이나 정원에 심는 뜰보리수나 왕보리수는 6-7월에 열매가 익고, 바닷가에 많은 보리장나무는 잎이 상록이며 꽃이 핀 후 이듬해 4-5월에야 열매가 익는다, 산야에 흔한 보리수나무는 9-10월경에 익는 것이 다르다. 또 다른 보리수나무라는 이름이 꽃이 피고, 열매가 익는 시기가 보리와 같은 시기이기에 그리 부르기도 하지만 빨갛고 조그만 열매를 따 먹으면 단맛이 나고 속에는 보리알 모양의 씨앗이 들어있는데서 이름이 지어졌다고도 전한다. 보리라는 말만 들어도 잊혀 지질 않는 어린 시절의 춘궁기가 떠오른다. 마을마다 농촌의 보릿고개는 모두가 힘들었다.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 지금이 바로 보리가 익어가는 시기이기에 보릿고개라 짐작이 간다. 자연이 주는 산야초를 반찬으로 삼고 보리가 누렇게 익어야 보리밥이라도 먹어 기운을 차린 가난의 상징어인 보릿고개는 이제는 없어 졌지만 보릿고개보다 더 무서운 환경오염의 고개를 인류가 어찌 넘을지 우려치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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