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상(想像), 마음속으로 미루어 짐작하다.
북방(北方)에 귀로만 듣고도 눈으로 본 듯이 사물의 실상을 잘 그려내는 화가(畵家)가 있다. 그에게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것저것 그려달라고 청탁을 한다. 심지어 남방(南方)에 한 차례도 가보지 않은 화가에게 남방의 영험한 동물인 코끼리를 그려달라는 거상(巨商)이 찾아온다. 거상은 장삿길에서 본 코끼리의 형상을 뭇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한다. 흔히 남방에서 코끼리는 재화와 상업의 신으로 받아들여져서, 코끼리의 형상은 재운(財運)을 가져다준다고 믿어진다. 거상은 뭇사람들에게도 재운이 함께 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코끼리 상을 보여주고자 한다. 거상은 코끼리의 형상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화가에게 설명한다. 화가는 눈으로 본 듯이 맘으로 새기며 한 장의 코끼리를 그려낸다.
상상(想像)은 참으로 흥미로운 글자이다. 자원(字源)을 살펴서 글자를 그림처럼 읽어보면, 실상[木]을 눈[目]으로 보듯이 마음[心]으로 헤아리는 글자가 ‘생각할 상(想)’이고, 한 사람[人]이 한 차례도 보지 못한 영험한 동물인 코끼리[象]를 그려낸 이야기 같은 글자가 ‘본뜬 형상 상(像)’이다. 따라서 상상은 마음속으로 그리며 미루어 짐작하는 것이다.
인문학은 참으로 매력적인 분야이다. 인문학의 힘, 이 가운데 하나는 무한한 상상력이라 할 만하다. 상상은 허망, 망상과는 엄연히 다르다. 상상력은 ‘있는 사실’ 이상으로 ‘있어야 할 사실’을 그려내는 데 역할을 다한다. 또한 상상력은 ‘있었던 사실’의 조각, 퍼즐을 맞추는 데 유용한 도구라고 할 만하다.
- 이문성, {조선후기 풍속의 재구성},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