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09월 19일(월) 광주일보

제83회 아카데미 영화제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킹스 스피치>는 조지6세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다. 이 작품은 화려한 액션도, 거대한 스펙타클도, 심장을 옭죄는 서스펜스도 없는 아주 담백한 회고적 스타일의 영화다. 하지만,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톰 후퍼 감독의 노련한 연출은 끝까지 관객의 시선을 붙들어 맨다.
<킹스 스피치>는 기본적으로 ‘관계’를 다루고 있는 영화다. 이야기의 중심은 말더듬이 왕 조지6세(콜린 퍼스)와 그를 치료하는 무면허 의사 라이오넬(제프리 러쉬)의 ‘관계’. 둘은 처음 왕과 시민의 관계로 만나 환자와 의사의 관계로 발전하고, 결국엔 서로의 상처를 고백하고 어루만지는 ‘친구’의 관계로 치환된다.
조지 6세가 말더듬이가 된 배경은 왕족으로서 일반인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했던 유년의 기억과 상처 때문. 이 트라우마와 말더듬의 관계를 밝혀서 그를 치료하려는 라이오넬의 노력은 기억과 인간의 잘못된 관계를 바로잡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결국 영화는 나치의 도발에 일치 단결된 마음으로 대항하자는 조지 6세의 대국민 연설까지 순식간에 내닫는다.
가장 중요한 순간, 가장 엄숙하게 라디오 연설을 진행해야 하는 조지 6세와 라이오넬은 마이크를 가운데 두고 함께 선다.
마치 지휘를 하는 것 같은 라이오넬의 손짓에 맞춰 조지 6세가 입을 떼자 베토벤 교향곡 제7번 2악장의 장엄한 선율이 흐르기 시작한다. 알레그레토 4분의 2박자 리듬이 곧 낭독 리듬이 되고, 그가 말하는 앞으로의 위기와 어려움은 곧 A단조의 엄숙한 멜로디가 된다.
영화라는 장르에서만 만날 수 있는, 음악과 영상 그리고 내러티브가 완벽하게 합쳐지며 하모니를 이루는, 잊혀지지 않는 명장면의 탄생이다.
베토벤 교향곡 7번의 녹음은 어쩔 수 없이 단 한 장의 음반으로 귀결된다. 베토벤 교향곡 7번 음반은 이 녹음 이전과 이후로 나뉠 수 밖에 없으며, 아직까지 이 녹음을 뛰어넘는 음반이 없다는 게 전세계 평론가들의 중론이다. 바로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빈 필의 연주.
교향곡 5번과 커플링 되어 있는 이 음반은 1976년 LP로 처음 발매되어, 현재는 SACD로 리마스터링 재발매되어 있다. 가장 완벽한 리듬의 향연을 보여주는 연주로, 클라이버는 1악장부터 4악장까지 완벽하게 통제된 리듬 위에 빈 필의 유려한 선율을 얹어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항상 완벽한 연주가 아니면 녹음 발매를 허락치 않았던 그의 결벽증이 낳은 최고의 음반이다.
클라이버와는 정반대편에서 재해석한 연주도 있다. 녹음을 아주 싫어했던 지휘자 세르지우 첼리비다케와 뮌헨 필의 연주다. 거장의 말년 실황을 사후에 발매한 음반인데, 다른 음반에서는 결코 들을 수 없는 ‘이상한?’ 베토벤을 들려준다. 클라이버 연주에 비하면 무려 10분 가까이 느리게 연주한다. 하지만 기묘하게도 느린 템포 가운데 묵직한 리듬이 아로새겨지며 4악장까지 감정의 분출을 충실히 쌓아 올려가는 해석이다. 특히 2악장 연주는 오히려 클라이버의 해석을 뛰어넘어 청자의 가슴에 강한 감동과 울림을 남긴다.
클라이버와 첼리비다케의 음반 두 장, 그리고 <킹스 스피치> 영화 한 편이면 육신의 고통을 뛰어넘어 위대한 선율을 창조했던 베토벤의 심장 박동까지 모조리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독립영화감독/음악칼럼니스트)
첫댓글 아직 못보았습니다. 얼른 봐야되겠습니다.
참 좋은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