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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 1장 강해 이부 미쁘다 이 말이여
디모데전서 1장 12-디모데전서 1장 20
요절 디모데전서 1장 15절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우리는 우리가 있는 가정이나 교회나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의 모형으로 만들기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을 보면 아직도 가정이 지옥 같은 분들이 있습니다. 정말 지옥처럼 싸우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는 교만입니다. 하나님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힘써야할 것은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겸손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는 겸손을 통하여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가장 잘 닮은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바울은 겸손하였고 그가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가 건설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서 바울이 어떻게 그렇게 겸손했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임한 에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았고 그 복음 안에서 그는 겸손하였습니다. 우리가 바울의 복음과 겸손을 배워서 우리가 있는 공동체를 하나님 나라로 만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진실하게 여겨 직분을 맡겼습니다.)
12절을 보십시오.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바울은 주님께 감사합니다. 바울을 충성되이 여겨서 사도의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충성되이 여겼다는 것은 헬라어로 피스톤인데 영어로는 faithful 신실하고 여겼다는 것입니다. 신실함의 어원은 진실에 있습니다.
다른 것은 없어도 진실은 있어야 합니다. 재주도 능력은 없어도 진실해야합니다. 재주와 능력이 있는데 진실이 없으면 무서운 것입니다. 진실은 모든 것의 기본입니다. 그는 교회를 핍박했어도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그는 핍박을 할 때도 충성스럽게 핍박하였습니다. 바울이 악해서 핍박한 것이 아니라 잘 모르고 하나님을 향한 진심에서 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율법을 지키기 위해서 핍박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이런 진심을 이해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진정 사랑한다면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진실을 알아주는 것입니다. 주님은 바울의 중심의 진실을 알아주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진심을 믿는 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유 없는 반항이란 영화가 있습니다. 제임스 딘이 주인공입니다. 그는 청소년기에 부부싸움하는 부모님을 향해 이렇게 소리지릅니다. “당신들이 나를 갈기갈기 찢고 있어!” 제임스 딘은 집을 나와 방황하다가 청소년기에 친구 둘을 잃어버립니다. 한 친구는 객기로 절벽에서 자동차 경주를 하다가 떨어져 죽습니다. 둘재 친구는 살인자로 오해 받는 자기를 보호하러 왔다가 술을 먹고 경찰과 총질을 하다고 총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는 두 명의 친구를 잃고 상심하여 마음의 문을 닫고 있습니다. 딘의 잘못이 아닌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딘이 친구들을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친구 어머니가 너의 진실을 안다는 말에 제임스 딘의 마음이 열립니다. 애당초 믿을 수 없다고 하면 무슨 말을 하여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마음 깊은 곳에 진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진심을 아시고 바울에게 직분을 맡겼습니다. 직분은 일 사역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사도를 맡겨주셨습니다. 일을 맡기는 것은 신뢰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진심과 능력을 믿습니다. 상대방을 믿어줄 때 일을 맡기고 돈을 맡기고 교회를 맡깁니다. 맡은 사람은 주의 사람으로 심부름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께서 일을 맡긴 것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일을 맡겨주신 하나님에 대해서 소중히 생각하고 감사해야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에 선생님은 부분단장을 맡겨주셨습니다. 부분단장은 분단장을 보조하는 것입니다. 저는 저를 그렇게 맡겨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하였습니다. 별것도 아닌데 청소도 열심히 하고 심부름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목자로 양들을 맡겨주셨습니다. 사회나 특송이나 기도나 특송을 맡겨주셨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감사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부분 일을 많이 한 바울에 대해서 주목합니다. 그러나 일을 한 바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일을 맡긴 하나님이 중요한 것입니다.
비발디는 이탈리아 작곡가이며 바이올린 연주자였습니다. 연주회를 가졌는데 비발디는 평소보다도 매우 많은 청중들이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스트라디우스가 만든 스트라디우스 바이올린이 있는데 이것은 세계에서 최고 비싼 바이올린입니다. 비발디가 스트라디우스 바이올린으로 연주를 한다고 하니 평소보다 휠씬 많은 사람들이 연주회에 모여들었습니다. 그는 한창 바이올린을 연주하니 사람들이 스트라디우스 바이올린이라는 생각에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비발디는 한창 연주하다가 바이올린을 집어던져 깨뜨렸습니다. 사람들이 낌짝 놀랐습니다.
비발디는 다음에 바이올린을 가지고 오라고 해서 이것이 스트라디우스라는 진짜 바이올린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비발디보다도 바이올린에 주목한 것을 부끄러워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숙연하여졌습니다. 바이올린보다는 누구의 손에 들려서 연주하느냐 중요합니다. 사도 바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손에 들리웠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각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일을 맡기고 쓰시는 하나님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능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은 바울을 능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능하게 하십니다. 일만 맡긴 것이 아니라 일을 감당하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합니다. 애굽에 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합니다. 모세는 말을 잘못한다고 하니까 입을 지은 자가 누구냐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입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일을 맡겼으면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모세에게 열가지 재앙을 내리게 하셨고 홍해를 가르게 하시고 광야에서 만나와 물을 주도록 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이 능하게 하심으로 많은 일을 하였습니다. 그는 많은 일을 하고 승리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업에 실패하였습니다. 다시 일어서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는 어렵지만 아내를 위로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작은 선물을 사왔습니다. 딸이 먼저 아빠를 보고 그 선물을 엄마에게 갔다가 드리겠다고 합니다. 딸은 소아마비에 걸려서 휄체어에 앉아 있고 엄마는 계단으로 올라가는 이층에 있습니다. 아버지는 네가 어떻게 이층에 가겠느냐고 하였습니다. 딸은 웃으며 아버지가 나를 안고 올라가면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버지처럼 안고 능력을 주셔서 일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능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바울은 긍휼을 입었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은 나는 지금 이렇게 사도지만 과거에 본성이 나는 이런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본질을 고백합니다. 바울이 전에는 복음을 비방하는 자였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훼방하는 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를 예수 믿지 못하도록 박해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폭행하는 자였습니다. 건방지고 오만하고 교만한 자라는 말입니다. 과거에 바울은 교만하여 바리새인처럼 의롭고 깨끗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이 교만한자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나는 가장 교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알게 모르게 나는 교만한 성격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어거스틴은 참회록에서 나의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다 죄 아닌 것이 있었습니까? 반문합니다. 그러므로 어거스틴은 성자입니다. 나는 조금이라도 낫다고 생각하는 순간 나는 교만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울에게 도리어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바울이 믿지 않을 때에 알지 못하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도 목자로 사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도 긍휼을 베푸십니다.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였습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우리 주님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바울에게 넘치도록 풍성하였습니다. 교만한 바울을 용서하신 것은 크신 은혜입니다. 더욱이 사도로까지 맡겨서 복음을 전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표적을 행하게 하신 것은 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바울을 믿어주시고 풍성하게 사랑하여주셨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믿자 믿음과 사랑도 넘치도록 풍성히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신뢰하여 사도의 직분을 맡기시고 교회를 맡기시고 신약성경을 쓰도록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셨습니다. 사랑은 아가페의 사랑입니다. 바울의 죄를 십자가에서 감당하여주셨습니다.
바울은 이런 은혜와 믿음과 사랑이 넘쳐 흘러서 다른 사람들을 은혜로 대하였습니다. 감히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 안에서 믿고 일을 맡겼습니다. 디모데를 믿고 교회를 맡겨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인하여 핍박을 받으며 그 죄를 감당하여주었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하시려 세상에 임하였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바울은 죄인 중에 괴수라고 말합니다. 그는 죄인의 우두머리라는 말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좀더 낫다 좀더 깨끗하다고 생각하면 나는 교만한 것입니다. 바울이 내가 죄인의 우두머리라는 것은 조금도 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하고 진실한 것입니다.
바울은 나이를 먹을수록 진실하게 자신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 믿기 전에는 착한 사람으로 생각하였습니다. 흠이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죄를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고린도전서에서는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합니다. 에베소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작은 자라고 합니다. 노년에 쓴 디모데전서에서는 나는 죄인들 중에 가장 큰 죄인이라고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갈수록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죄인을 구원하시고 쓰시고자 십자가에 오셨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정말 착한 사람인 줄 착각했습니다. 사실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나니 나는 얼마나 죄악 된가 발견했습니다. 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은 개만도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진실입니다. 나는 58년 개띠지만 개만도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죄인임을 발견할 때 겸손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긍휼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긍휼히 여기신 신실하신 복음을 전합니다. 이 복음은 모든 사람이 믿을 만한 말입니다. 그래서 미쁘다 이 말이여! 라고 감탄합니다. ‘미쁘다’도 진실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정확하고 완전하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너무나 신실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구원하신 긍휼의 하나님이 모든 죄인들을 구원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구원의 본을 삼으셨습니다)
16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교만하고 죄악된 바울이 하나님의 긍휼을 입었습니다. 하나님이 바울에게 긍휼을 베푸신 이유는 예수그리스도께서 바울에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허물을 감당하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참아주셨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발길질할 때도 당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오만한자여! 라고 벼락이라도 내리치셨으면 모든 것이 끝났습니다.
사랑의 가장 제일 큰 표현은 참는 것입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여 자녀에 대해서 참습니다. 달라지고 변화될 것을 믿습니다. 낙심하지 않고 참습니다. 사랑에는 실망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핍박을 받으면서 참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로우시고 노하기를 더디하십니다. 나의 잘못을 오래오래 참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오래 참으사 선택하셨습니다. 주도적으로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오래 참으셔서 구원받을 자의 본이 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참으시고 구원하신 것은 주를 믿어 영생을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입니다. 본은 하나의 패턴이라는 말입니다. 하나의 시범이라고 해도 됩니다.
한 분이 출판 기념회를 하였습니다. 그분은 배운 것이 없는데 책을 많이 출판하였습니다. 출판회를 하자 많은 사람이 모여서 칭찬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나와서 답사를 하였습니다. 그는 나같은 사람도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본을 보이고자 책을 썼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도 다 책을 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통하여 어떤 죄인도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무궁할지어다)
17절을 보십시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죄악된 바울을 구원하시고 쓰시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썩지 않으시는 영원히 살아계신 왕이십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아니하십니다. 홀로 하나이신 왕이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백성들이요. 죄인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으로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어야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이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 무궁히 있기를 기도합니다. 죄악된 우리는 누구도 영광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그의 빛을 받을 뿐이십니다.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18절을 보십시오.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바울은 아들 디모데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교훈으로 명령합니다. 바울은 영적인 장군으로 부하인 디모데에게 명령합니다. 명령은 예스라는 응답만을 요구합니다. 여기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선택권이 없습니다. 비판하고 다시 생각해보려고 하지 말아야합니다 어떤 때는 어처구니 없는 명령을 할 때도 있습니다. 어처구니는 맷돌의 손잡이입니다. 손잡이도 없이 맷돌을 돌리라는 말입니다. 상황이 어떠냐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총알이 비오듯하는데 돌격하면 돌격해야합니다. 전에 바울을 지도한 예언을 따라서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선한 싸움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닙니다. 내면의 죄와 싸우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신 것은 긍휼을 이용하여 죄를 짓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긍휼을 받은 자로서 죄와 싸우도록 하는 것입니다.
지금 신명기 강해를 마쳐갑니다. 신명기 강해를 하면서 배운 것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우리를 복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방해하는 것이 죄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죄와 피흘리기까지 싸워야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기까지 싸우신 것을 본 받아 죄와 싸워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죄와 싸우지 않고 사람과 싸우는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차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에 기초하여 죄와 선한 싸움을 싸워야합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라는 말은 정정당당히 싸우라는 말입니다. 선함은 도덕적으로 선한 이 아닌 정정당당하다는 말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좋은 일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꼼수를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꼼수를 두지 말고 죄와 정정당당히 싸워야합니다. 경기를 할 때 꼼수를 써서는 안 됩니다. 정정당당히 싸워야합니다. 페어플레이를 하려면 남들의 평판에 대해서 신경을 써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싸워야합니다.
흑인인 마리안 엔더슨이 당대 최고의 콘트랄토 가수의 한 사람으로 노래를 잘 불렀습니다. 그의 흑인이요 일굴도 못생겼지만 영혼을 울리는 천상의 목소리로 유명합니다. 미국에서 예전에는 시내버스에도 백인 자리가 있고 흑인 자리가 따로 있습니다. 화장실도 백인 화장실 흑인 화장실이 따로 있었습니다. 텔레비전에는 흑인이 못나올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흑인이라고 혹평을 하자 그는 울고 노래를 부르지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왜 모든 사람에게 창찬을 받고자 하느냐 그것은 교만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나대로 멋지게 싸워야지 사람들의 평에 신경을 쓸 것이 없습니다. 경기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나서야 합니다. 디모데는 이미 들은 예언의 말씀으로 싸워야합니다. 말씀이 가슴에 있고 말씀이 지혜가 되고 힘이 되어 싸워야합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랴)
19절을 보십시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디모데는 싸움을 싸울 때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져야합니다. 다른 복음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이용하여 양심을 버리고 바른 믿음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인을 구원하러왔으므로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합니다. 이들은 영지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양심이 화인맞은 악한 자들입니다. 믿음은 진실입니다. 성공을 위해서 연연하다가 믿음과 진실과 양심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운동도 하고 경기도 하고 공부도 하면서 진실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착한 양심을 가져야 합니다. 비양심적이고 비겁한 행동을 해서 이기고자 합니다. 속임수를 써서는 안 됩니다. 남이 실수하기를 바라서 이기고자 합니다. 남이 잘못되는 것을 안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신만 열심히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지 말아야합니다.
꼼수의 한 예를 보여주겠습니다. 어떤 농부가 무 농사를 지었습니다. 수십 년 동안 처음 보는 매우 큰 무가 나왔습니다. 그 큰 무를 원님에게 갔다 드렸습니다. 원님이 옆 사람에게 좋은 선물 없나? 하니 황소하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농부에게 황소를 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어떤 욕심쟁이가 좋은 황소를 원님에게 가져갔습니다. 그는 집이라도 한 채 기대하며 갔습니다. 원님이 뭐 좋은 거 없느냐 하니 무 하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황소를 주고 무를 받았습니다. 그 사람은 비양심적인 사람입니다.
어떤 이들은 착한 양심을 버렸습니다.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배우면 말씀을 통하여 착한 양심이 회복됩니다. 어떤 이들은 얌심을 버렸고 믿음에서 파선하였습니다. 그는 시기하고 질투하고 자랑하는 마음으로 양심을 버렸습니다. 페어플레이를 하지 못하였습니다. 선한 일을 하면서도 사람에게 보이려는 마음에 걸려서 양심을 속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거짓되었습니다. 거짓된 자는 회개할 수 없습니다.
(후메내오와 알렉산더)
20절을 보십시오.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선한 양심과 믿음을 버린 사람 가운데 후메네오와 알렉산더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을 이용하여 마음대로 죄를 짓은 이단의 앞잡이입니다. 후메내오는 디모데후서에 악성 종기와 같이 퍼져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암과 같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마음 속에 지울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알렉산더는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을 괴롭혔다고 합니다. 예수님도 가룟유다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습니다. 아무리 가르쳐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양심을 버리고 믿음을 버렸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주었습니다. 사단에게 내어주었다는 말은 이상 더 그에게 긍휼을 베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를 위해서 기도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불행한 일로 가는 것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먼지를 턴 것입니다. 출교시킨 것입니다. 예수님도 가룟유다에게 네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그들이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자들에 대해서 너무 많이 신경을 쓰다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가식되고 거짓된 자에 대해서는 먼지를 털어야합니다 복음을 버리고 회개치 않는 자는 남으로 여겨야합니다. 디모데에게 알렉산더와 후메네오 같은 사람은 잊어버리고 합니다. 이것이 목회자에게 주시는 좋은 교훈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원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 겸손해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를 죄인의 우두머리로 발견해야합니다. 우리가 겸손하기 위해서 한 가지 필요한 것은 바로 진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야합니다. 나에게 진실하신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나의 죄에 대해서 솔직히 회개해야합니다. 우리는 선한 양심을 가져야합니다. 바람에 이는 잎새에도 괴로워하는 죄책감을 느낄 수 있어야합니다. 다른 사람과 싸우지 말고 그 사람의 죄와 싸워야합니다. 그리고 다음에 다른 사람의 죄와 싸워야합니다. 다음에 신실해야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나에게 일을 맡기시고 크게 쓰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덧입어 죄와 진실하게 싸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아름다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디모데전서 1장 강해 이부 미쁘다 이 말이여
디모데전서 1장 12-디모데전서 1장 20
요절 디모데전서 1장 15절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디모데전서 1장 강해 이부 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