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는 일부가 마멸이 되어 정확한 비문의 판독이 어려우나, 524 년(신라 법흥왕 11)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의 크기는 높이가 204cm, 글자가 새겨진 부분의 윗너비 32cm, 가 운데 너비 36cm, 아래쪽 너비 54.5cm로 전체모양은 사다리꼴에 가까 운 부정형으로 414년(고구려 장수왕 2)에 세운 광개토왕비와 유사하 며, 자연석을 거의 그대로 이용한 것은 삼국시대에 제작된 비의 일반 적인 모습이다. 비문은 자연석 화강암에 한 면(앞면)만을 다듬어 글자를 새겼는데, 구성은 전체 10행으로 1행 32자, 2행 42자, 3행 41자, 4행 42자, 5행 25자, 6행 46자, 7행 45자, 8행 44자, 9행 40자, 10행 42자로 전체 글자 수는 399자이다. 비문의 대체적인 내용은 이 비가 세워지기 얼마 전에 울진지방에서 중대한 사건이 발생하자 신라에서는 대군(大軍)을 일으켜 이 사건을 진압한 뒤 법흥왕과 신료 13인이 모여 그에 대한 사후 처리의 일환으로 육부회의(六部會議)를 열어 얼룩소를 죽이는 등 일정한 의식을 행한 뒤 현지 관련자들에게 책임을 물어 장육십, 장백대 등의 형을 부과하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방민에게 주지시킨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비의 성격을 대체로 율령비(律令碑)로 보고 있다. 이 비가 발견됨으로 인하여 고대사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를 제공하여 그동안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한국의 고대사가 밝혀지기도 하였다. 즉, ‘신라육부(新羅六部)’라는 글자가 나옴으로 인해 6세기 초 이전에 이미 신라6부가 성립되었음을 확인하게 되었으며, 법흥왕이 탁부(啄部)로, 그 동생인 사부지갈문왕(徙夫智葛文王)은 사탁부(沙啄部) 소속으로 되어 있어서 형제가 각기 다른 부(部)를 관칭(冠稱)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기도 하였다. 또 노인법과 죄인을 처벌하는 장형의 존재는 520년(신라 법흥왕 7) 율령제도가 성문법으로서 실제로 행하여졌음을 증명해 주는 등 『삼국사기』의 기록이 사실임을 증명해 주었다. 이밖에도 부를 초월하지 못한 왕권의 한계, 당시 신라의 영역, 관료제도, 지방통치조직과 촌락구조, 의식행사 양상 등의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사료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 비의 지정명칭이 ‘울진 봉평 신라비’에서 ‘울진 봉평리 신라비’로 2010년 12월 27일 변경되었다.
甲辰年正月十五日喙部牟卽智寐錦王沙喙部徙夫智葛文王本波部巫夫智五干支岑喙部美昕智干支沙喙部而粘智太阿干支吉先智阿干支一毒夫智一吉干支喙勿力智一吉干支愼?智居伐干支一夫智太奈麻一?智太奈麻牟心智奈麻沙喙部十斯智奈麻悉?智奈麻等所敎事。
갑진년(법흥왕 11년, 524) 정월(1월) 15일 탁부 모즉지 매금왕(법흥왕)과 사탁부의 사부지 갈문왕(법흥왕의 동생인 입종, 즉 진흥왕의 아버지), 본파부의 무부지 오간지, 잠탁부의 미흔지 간지, 사탁부의 이점지 태아간지, 길선지 아간지, 일독부지 일길간지, 탁[부]의 물력지 일길간지, 신육지 거벌간지, 일부지 태나마, 일이지 태나마, 모심지 나마, 사탁부의 십사지 나마, 실이지 나마 등이 하교(下敎)하신 일이다.〔1단락〕
別敎令。 居伐牟羅男?只本是奴人。 雖是奴人前時王大敎法。 道俠?隘禾耶界城失火?城到大軍起。
若有者一行△之人備土尊王大奴村負共値五其餘事種種奴人法。
따로 영(令)을 내리시길, “거벌모라(울진지역 중심지)와 남미지(울진지역 촌)는 본디 노인(奴人)이었다. 비록 노인이었지만 앞선 시기에 왕께서 크게 법(大敎法)을 내려주셨다. 그런데 길이 좁고 오르막도 험난한 화야계성(禾耶界城)에 마음대로 불을 내고 성(城)을 에워싸니 대군(大軍)이 출동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이 한 자(者)들은 모두 처벌을 해야 사람들이 땅을 지키고 왕(王)을 높이게 될 것이니, 대노촌(大奴村)은 값 5를 부담하도록 하고 그 나머지 일들은 사안별로 노인법(奴人法)에 따라 처리하도록 하라.”고 하셨다.〔2단락〕
新羅六部煞斑牛??。 處事大人喙部內沙智奈麻沙喙部一登智奈麻具次邪足智喙部比須婁邪足智居伐牟羅道使卒次小舍帝智悉支道使烏婁次小舍帝智。 居伐牟羅尼牟利一伐?宜智波旦?只斯利一全智阿大兮村使人奈?利杖六十葛尸?村使人奈ホ利居△尺男?只村使人翼?杖百。 於卽斤利杖百。
신라6부(新羅六部)에서 얼룩소(칡소)를 잡아 배를 가르고 피를 뿌리는 의식을 행하였다. 일을 처리한 대인(大人)은 탁부의 내사지 나마와 사탁부의 일등지 나마, 구차 사족지, 탁부의 비수루 사족지, 거벌모라 도사 졸차 소사제지, 실지(지금의 삼척) 도사 오루차 소사제지이다. 거벌모라 니모리 일벌, 미의지 파단, 탄지사리 일전지와 아대혜촌(울진지역 촌) 사인 나이리는 장(杖) 60대에 처하고, 갈시조촌(울진지역 촌) 사인 나등리 거△척, 남미지촌 사인 익사는 장 100대에 처하고, 어즉근리는 장 100대에 처한다.〔3단락〕
悉支軍主喙部?夫智奈麻節。 書人牟?斯利公吉之智沙喙部善文吉之智。 新人喙部述刀小烏帝智沙喙部牟利智小烏帝智。
立石碑人喙部博士。 于時敎之。 若此者獲罪於天。
실지 군주인 탁부 개부지 나마가 일을 맡았다. 글 쓴 사람(書人)은 모진사리공 길지지와 사탁부 선문 길지지이고, 비에 새긴 사람(新人)은 탁부의 술도 소오제지와 사탁부의 모리지 소오제지이며, 비를 세운 사람(立石碑人)은 탁부 박사이다. 이때에 하교하시기를, “만약 이와 같이 하는 자는 하늘에서 죄를 얻으리라(천벌을 받으리라).”고 하셨다.〔4단락〕
居伐牟羅異知巴下干支辛日智一尺世中字三百九十八。
거벌모라의 이지파 하간지와 신일지 일척이 그 해(年)에 (일을 마쳤다.) 글자는 399자이다.〔5단락〕
내용출처 : 울진군청홈페이지
첫댓글 비오는 날의 아름다운 여행이네요.
벚꽃도 예쁘게 핀 신라비 전시관이 비에 젖어 더욱 운치있네요.
그러게요, 역사공부는 싫어도 꽃이 있는 비석전시관은 운치있었습니다.
고운저녁시간 보내세요 ^^
사진 안나온다고 자꾸 그르시드니 괜찮구만....엄살은...
포스팅 잘 보고 갑니다 수고하셨어요~~
흔들린거 다 버리고 몇장 안되어요..ㅎ
잘 가르쳐 주셔서 감사해요..
석이님 고운 저녁시간 보내세요 ^^
비오는날 촬영하신다고 고생 많으셨네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운밤 보내세요 ^^
신라봉평비의 발견에 우리의 역사에 얼마나 소중한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고운 하루 보내세요 ^^
신라봉평비전시관의 세세한설명 잘보고갑니다^^~비가 와서 고생많이 하셨겠어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운 하루 보내세여 ^^
180억짜리 비석이 아니라
이 전시관을 지은가격이 180억이라는 애기던데요.
오맛.. 수정 해야 하나요.. 저는 돌덩어리 하나에 180억이라는 해설가님에 말을 들어 가지고 여러번 반복 청취를 해서 쓴건데요..
고칠수가 없어요 ㅠㅠ 에라 모르겠습니다.
그 비석때문에 전시관 설립을 하게되었다는 이야기....ㅎ
전시관이 180억이라는 이야기같으요~~~ㅎ
비가 많이 오는날이였어 수고했죠?
비를 굉장히..잘담으셨습니당..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