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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이야기/2012년.5월13일 제2주 일요일 자유로운 영혼 이상세계.
옹달샘
화악 지맥의 거대 숲길에서 홀로선 나무를 본다.
5월 봄날의 당림 숲길 포스팅『posting』초록의 그 길을 걷고 또 걷는다.
당림 숲에 들기전, 싱그러운 잎세, 어린애기 부드러운 손가락을 닮은 초록색 새순이 이제막 늘어
지기 시작한 산중 숲길을 살핀다.
이시간 출발 이틀전의 밤과 무언의 대면식 중이다.
오래전부터 염두에 두고 계획한 이 길을<당림숲 옛 길> 걷기위해 궁리를 거듭 해 온바, 숲에 들고자하는 계절 선정, 출발 당일 일기, 그리고 제한적일 수 밖에없는 시간의 불편함 등, 이런저런 핑계로 미루고, 미루어 오던 길,,,,,
그 길을 향해 5월13일 드디어 오랜 숙원 이엇든 숲길의 출발선에 서게되었다. 금주 들어서 수일 전부터 미리 전해지는 일기 예보의 불편함에 마음은 다소 무겁고 어지럽다.
다. 이러다, 이런 저런 사유와 핑게로 또 한번 발목을 잡히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벌써부터 앞선다. 길은 그만큼 인적이 끊긴지가 한참이듯, 내게는 멀고도 험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미지의 행로이기 때문이다.
허나 "길이있어 걷고, 그곳에 물이흐르는 내<川>가 있어 쉬어서간다'는것이, 필자의 길을 걷기전 마음속 다짐이니 설령 이런저런 어려움이 예상되어진들 예서 멈출수는 없는 일이다.
조금더 극한 표현으로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간절함이 뭍어나는 글귀를 살피게도 되는 오
늘 밤 이기도 하다.
필자는 산길의 가치를 논할때 이미 명산의 반열에 들어선 산들은 머리속에서 배제시켜온 터였다.
초록이 주는 생명을 노래하기에는 그 역동성과 에너지를 수많은 사람들의 잦은 방문길에 모두 빼앗겨버린 후의 지기를 잃어버린 땅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명산은 수많은 생명이 다녀간 흔적으로 인하여 산길은 이미 긴세월을 품어온 지기<地氣>를 많이도 소진해 버린 탓이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듯한 자연은 그 품안을 조용히 찿아든 이들에게는 숨길수없는 생명의 숨소리로 화답을 해주기 마련이다.
이미 바람결에 몸을 맡긴 "벌과, 나비를 비롯한 산중 생명들의 울음 소리는 조용한 사색가의 발길을
멈추어 서게하며 짝을 향하여 애타게 부르는 생명연장의 다중창을♪ 시작한지 오래이다.
숲을 찾은 소수의 방문자는 자연을 향해 세상의 어지러운 소움과 무례함으로 거스르지 않음을 그들도 이미 알고 있음 이리다.
그들과 벗하며 걸어 들어설 옛 길을 생각하면, 길의 출발선에 들어서기도전에 성급해진 마음은 이미 그리운 임 마중 하는양 설레이기 마련이다.
후일, 절절한 옛 사연과 그 속에 사무친 그리움을 찾아서 시간이 멈추어버린 배후령의 숨겨진땅!.
산막골의 옛길을 찿아 나서기에 앞서, "봄내천'의 마지막 순례길을 정리하고져 나는 오늘 이길을
나선다.
.2012년 5월 11일 밤_ 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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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을 가기위하여는, 기본적으로 세가지 정도의 기본게념을 마음에 담고 찾아드는 것이 그 길을 찿는이의 예의일듯
십다. ......
그 첮째의 덕목이, "길을 가기위한 마음, 둘째가 길을 찾기위한 마음, 세째가 그 길에 들기위한 마음이' 아닐까십다.
이러한 마음의 준비없이 길을 나섯다가는 끝없이 이어지는 옜길의 다소 지루한 연속성에 질리어 실망과 후회로 중도
포기는 물론이요,그 길의 언저리에서 맴돌다, 길의 본질을 들여다 보기도 전에 중도에 백기를 들고 포기를 하고 말겄
이 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본란을 통하여 지나간 해에 북,동 지역의 산간마을 옛길인 춘천의 4대 봄내길을 포스팅 아여 올린바 있다.
봄내란' 춘천의 순수 우리말 표기로서 봄!, 따듯한 날, 그리고 냇물이 흐르는 고장이라는 뜻이된다 하겠다.
봄내 마을 옜길의 4대 구간중, 다소 불편한 교통 여건과 길게 이어지는 산림통제 그리고 개인사적인 핑계로 3개구간을 일찍이 한두 차례에 걸쳐 마루리를 해두고서도 찾아들지 못하였든 이길을 5월의 녹음이 완연한 오늘<5월13일>아직 산림 통제의 기간이 완료 전임을 감안하고서도, 기어이,그리고, 민폐를 줄이기위한 마음으로 조용한 산중길에 홀로이 찾아 들고야 말았다.
봄내천길의 4대구간은 다음과 같다.
제일구간_실례 마을길/8km 2시간 소요, 제2구간_물께마을(구구리길)18.9km4시간 소요 제3구간_석파령 넘이
길/21km(기타구간 약1.5k)_6시간소요. 제4구간_의함호 나들이길15km_4시간소요.
필자는 이들 4대 구간중 1,2,4,구간을 완료한바 미답 구간인 제3구간, 당림숲, 석파령 고개길을 탐방
하여 봄내 옛길의 마지막 구간으로 소개 올리고자 한다.
자~~ "걸으면 살겄이요, 누우면 죽는다는, 길을 찾아 떠나볼 채비를 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래 편집미결...▼
춘천시<春川> 서면 당림리 석파령
일시_2012.5.13/날씨_흐린후 맑음.
코스_당림리_예현병원_석파령_덕두원1리_덕두원2리_신작로길약5k_명월리_방동1리_수레간길기점_
수레간길고개_한백록정문_방동리마을회관_방동2리_신승겸묘역.
이동구간소요경비_택시9000+버스/전철_6000 =15000 지출.
석파령의 옛길은 아직까지는 찾는이가 거의없음을 실증이라도 해주려는듯 마을길과 등로길 초입은
물론이요, 산중길 내내 적막감 그 차체였다.
혼자 넘어서기에는 다소간의 용기도 필요할듯한 구간 고개길은 쉼없이 굽이지며 밤문자의 발길을 정
상길로 이끈다.
사실 이구간은 춘천시 주관으로 해설사를 동행하여 승합차를 이용한 참관객만이 제1구관과 제2구간
으로 나누어 1년에 한두번 드나들 정도의 길로서, 그나마도 길의 맥을 온전히 걷기 보다는 승합차의
이동 가능구간은 모두 차량으로 이동하는 투어 형태의 방문자만이 드나들던 산길이니,온전히 그것도
적막한 산중 구석구석과 끊임없이 이어나가던 명월리의 뙤약볕 작열하든 신작로길,그리고 길게 이어
지는 산중마을의 하산길을 이를 악물어가며 이어 나간이는 아마도 필자뿐이 아니겠는가 하는 미확인
성 장담의 기고글을 올리는 바이다.
♣아침길/택시기사님의 말씀_기점 좌측에 자리한 예현병원은 알콜 증증 환자들만 찾아드는
요양 병원 이란다,
이곳까지 택시로 오는 대부분의 승객은 병원 관계자와 환자를 찾아오는 방문자가 전부라는데
그것 초차도 아주 드물게 말이다.....
글래들어 산길에 들어서기위해 찾아온이는, 필자가 처음이라는 아슬아슬한 고백을 해온다.
그말이 왠지 불안하다.
간혹 병원의 중환자 분들께서 택시를 콜 하곤 한다는데, 소주 너뎃병을 사다 달라는 부탁이란다
마치 첩보원 접선하듯이 거래를 하는 꼴인데, 병원 관계자께서 아시면 큰일날 일이 되겟다.
치료는 무슨! 이들은 먹을것은 다 먹어가며 퇴원의 그날만을 학수고대 하고있는 호화로운?요양
생활을 하고 있는 중이다. 부디, 그들중 일부의 행적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당림숲 입구의 예현병원 우측으로 난 소로길이 석파령의 들머리이다.
필자는 이곳에서 택시 기사님과 이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마치 큰일을 앞에 둔듯 결의에찬 인사를 들으면서 말이다.
풍류가 흐르던길 석파령,~화악지맥상의 동측구간 산간마을, 가덕,북배
계관산자락 사면의 신영강가, 수변마을 길을걷는다.
석파령, 지난시절 무수한 봄내사람들이 삶의애환을 가슴속에묻고서,힘겹게 넘나들던
옜길이다.
고립무원이나 다름없었든 지형상의 어려움탓에 찾아들기 쉽지 않았을 지역의 방문길에 필
연적으로 넘어설 수밖에 없었을 선인들의 무거웠든 발걸음과 주름이 깊게페인 이마의 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슬쩍 닦아내든 모습만이 오버랩되는 산중길이다, 당시에는
험한 산중속에 뚤린 이길이, 좁기만하여 고개길의 동쪽 산골마을인 춘천시 덕두원리의 수령
과 신임부사간의 교구 이임식을 오는이와 떠나는이의 편리성을 위하여 석파령고개에서 행하
였는데, 이때 가지고온 자리를 길이 좁은지라 궁색 하나마 둘로 나누어 앉아 의식을 거행
하였다 한다.
그리하여, 석파령이라... 예서, 고개길의 지난 유래를 찾는다.
산길 서쪽의 초입이되는 당림리에는 조선시대 역원제도가 성행할 당시 당림 마을에
말들과 마부를 위한 고역촌이 있었고,그 위취는 지금의 46번국도에서 막들어선 당림리
의 초입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자리가 당림 초교로 바뀌었다고한다.
당림리의 석파령 산중계곡인 마당골과 당림숲은 드넒은 고개의 넓은 평원을 일컽는 말인데
이 당림숲속에는 마을의 안녕을 비는 당집과 유사한 역활을하는 집의마당이 있었다고 전하여져
내려온다.
당림리 마을 이름의 옜 유래가 될듯하여 살피어 올린다.
마을 안보역 마방에는 30~40 여 마리의 말들이 관리되었는데 석파령을넘나들며 춘천과 상천리
등을 오가는 사람들을 대신할 등짐을 실어 날랐다고 전하여진다. 그림으로야 북한강변 길따라
말등에 올라서서 한강수 타령이라도 흥얼 거렸을 선인들의 노랫가락 소리가 들리는 듯도하다
초입, 예현병원기준, 석파령 넘는길 약 500m 진입로 풍경
지난시절에는 자리를 나누어 앉았을 만큼의 좁은 산길 이었겠으나
봄내길의 개통으로 인하여 차량이 드나들 정도의 넓은길로 변모하였다
산중길은 적막한 가운데 길은 심한 s자 코스를 이르며 오르고 또 오른다.
산중의 6부능선에 오르자 드디어 그간의 답 답함을 뒤로하고 북진하고있는 계관,북배,의
지능선을 보여준다.
올라선 마당골 계곡의 전망.
s자 굽이길로 오르고, 또 오르고......
요런 산모퉁이길도 돌아 나갑니다.
이른아침, 저길 뒤에는 무었이있을고??
혹여 멧돼지라도 출몰할까하여 휘파람을
크게 불어본다,
*석파령이*
점차~
가까워 짐을 느끼게된다.
직감적으로......
모처럼 시야가 훤히 뚤린 산 구릉에서, 시계는 멀리, 강촌 삼악산의 등선봉을<632m> 향한다.
다시 한참을 걸어돌아서, 이제는 삼악산의 동측 끝봉인 청운봉과<632> 용화봉이<654> 잡힌다.
시계는 정 서역이며,강촌의 검봉산을 향하고 있다.
맨뒤쪽 봉긋한 봉우리.
드디어! 드디어! ~ 석파령의 관문에 들어선다.
도로의 넓힘으로 인하여 길은 편해졌으나 옛 고개의 흔적과 향수는 찾아볼수 없게되엇다.
이지점 고개 좌측이 계관산 오름지이고, 우측이 삼악산 내림길이니, 화악지맥의 종주 연결 구
간이 된다 하겠다.
이 지점에서 삼악산 산정은 고개 우측 능길따라 2.8km의 거리이다.
고개를 넘기전 인증을 올려본다.
셀프 촬영 인지라 녹녹치 않다.
저 ~ 고개 해발<360>m이다.
허나, 길은 멀고 험하였다.
이지점 부임 부사와 위임 부사간의 위임의식이 치러졌든 장소이다.
그시절 길이 너무도 좁아 준비해온 자리를 둘로 나누어 깔고 앉을
수밖에 없었다는......
하기사 그시절에는 오랑캐의 침범을 막아내기 수월 하도록 길을 넓
히는 일 조차가 범죄 행위 였다니, 오죽 하였겠는가.....
오늘, 옛 길은 넓히어 졌으나 옛 산중을 넘든 인걸은 간곳이없다.
다만 주막이 성행하였다는 그 흔적은 찾아보기 어려워 보였다.
길이 완성 되려면 그시절, 역사성 정도는 지역 관청에서 살피어 두길 바라는 마음이다.
고개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화악지맥의 이동경로...
석파령에서 옛 기운을 잠시라도 밭고 가기위하여 일정시간의 휴식
시간을 보내기로 하였다.
휴대폰의 앰피3 에서 배호가 부르는 영시의 이별이 흘러 나오며,
적막감에 휩쌓인 산중 고개마루의 정적을 깬다.
선인의 이별사가 보이는 듯도하여 마음은 애잔하나...
영마루의 솔바람을 벗삼은 세인의 또다른 마음은!
말그대로 꿈갇은 여유다.~~~
드디어 제1구간의 고개 하산길을 내려선다.
덕두언1리마을 가는 옛 길이다
북한강을 따라도는 46번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이길이 춘천의 주요 관문길 이었다.
1920년 무렵까지 말이다.
세 월 무 상,.,수많은 선인들이 넘나들던 옛길을 따라넘는 심사는...
방문자의 상상에 맡긴다......
하산길의 여로를 줄기어가며~~~
돌아서 가는 길가의 꽃은!!
나의 발걸음을 가볍게 하여 주는 길동무이다.
민들레 홀씨의 온전한 모습에,
후~ 하고 불어 날리고푼,
그~욕망을,...
그~저 참으며 내려선다.
나는 자연인이다.ㅎ
이지점 아래 산중마을에서 기르는 개인듯,
족보가 있어보이는 커다란 쌍둥이 개 두마리의
위협에 초긴장을 하였다.
놈들은 길을 점유하고 좀처럼하여 물러날 기세
없이 나를 향해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밀리면 끝장이란 생각으로 조용히 길가의 큰 나
무가지를 집어들었다,
함판 해보자는 심사로.,,,
그제서야 힐끔거리며 마을 아래로 슬금슬금 물러난다.
한참의 소리없는 무언의 기싸움을 치르고서야 이 구간
을 지날수 있었다
휴~~우 정신이 다 어지럽다.
젠장맞을.....
어쩌면 내가 그들의 영역을 침범한
우를 범한것은 아니까?...
그곳을 벗어난 한참후의 생각이다.
이길을 다 내려서도록, 내내 나는 한사람의 인기척도 들을수가 없었다.
덕두언의 마을로 젒어드는 모퉁이에 들어서는 구간이다.
휴식지 통나무 의자 뒤로는 맑은 계속수가 흘러내린다.
2차 휴식겸 앞으로 이어질 상황에 대비하여 수통에 물을
그득 채운후,앞으로 나아갈 지형을 살핀다.
이후! 갈길은 넘어선 길의 약 두배가 조금 못미치는 마을 들길과
신작로길을 걸어 나가야 하는 악천후 길이된다.
삼악산의 영봉이 확연히 들어서는 지점이다.
맨 뒤쪽 그림
춘천시의 의암댐에서 흥국사를 경유하여
삼악산 정상으로 오루는 구간이다.
필자는 강촌의 등선봉을 경유한 삼악산 산길을
서너차례 완등한바, 그 반가음에 산중에서의
외로움을 일시에 날려 보내고도 남음이 있었다.
유 유~자작 덕두언의 옛 고을을 향하여 내려선다.
발걸음은 자못 가벼워 졌으나 이지점에 이르러서도
역시 인걸의 모습은 좀처럼 하여 볼수가 없었다.
아직은 첩첩 산중마을이다
또다시 한참을 내려서서....
드디어 사람이 산다는 집이란것을 볼수가있었다
사실 하산길 계곡물가 숲속에서 어렴픗이 가옥의
형태를 살피었으나 하계 별장인듯, 하여 관심을 두
지않은 터였다.
이지점! 여하간에 무진장 반갑다.
덕두원의 산림 통제소가 보인다.
하산길의 여유로운 들길을 지나고....
내림길 좌측으로 염소농장이 보이나 ...
그들의 배고품에 지친 울음소리만 들릴뿐.
역시 인걸의 모습은 어디에고 없다.
덕두원▶조선 시대의 원이 자리하였든 고을이었다.
석파령의 어줍잖은 위임식을 마치고 이 고을에 이르
러 지역의 수장으로서 행정을 두루 관장한 부사가
그 적막한 고립감에, 임기를 마치길 학수고대 하다
가 떠날때가 되어서는 고울의 인심에 정이들어 눈
물을 머금으며 떠나 같다는 덕두원 마을이다.
부사_고려와 조선시대의 지방 장관에 해당되는 관직이다.
현제의 군격으로서 조선초기 전국에 44개이상의 고
울 원이 촌치 되었다한다,
덕두원 마을의 실게천을 따라 한참을 내려서면.
산골짜기 이곳저곳에 산제한 마을을 살피게도되고......
실개천의 맑은 물길을 바라보개도 된다.
드디어 의암땜의 신영강을 향하여 춘천시내로 건너가는 방향의 덕두원교 다리가 나온다...
덕두원 1리의 마지막 구간이 되겠다.
이로서 석파령을 넘어선 구간의 끝지점에 이르고, 이길은 춘천시관할 국유 영림서 시행으로
1990년도에시공한 당림리와 ~ 덕두원리간의 옛길, 약10.786km로 복원된 국유 임도길의 마무리 지점이다.
덕두원 다리위로는 삼악산의 북측구간 암자인 봉덕사의 초파일을 대비한 흔적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서면 산의 200고지 능선에 자리한 봉덕사 사찰이 보인다.
좌측의 다리 난간을 직진하여 건너서면 의암댐의 신연교를 건너서서 춘천시내로 들어서는 구간이 된다.
필자는 덕두원교를 좌측으로 건너서서 또다시 이어지는 봄내길의 뙤약볕이 내리쬐는 신작로구간을 따라
여로의 행불을 밝힌다.
이길은 앞으로 행자를 괴롭히며,추정거리 5~6km를 지번도없는 산중 도로가의 명월천변을 따라
수래넘이길을 향해가는 필자를 괴롭히며, 중도포기를, 수차례 권유한다...
사실 길의 저~끝을 알고라도 간다면 별문제가 없겠으나, 현지상황을 일리없는 뙤약볕 행군길이 마음
을 다소 무너뜨리는 순간이기도 하였다...
이길의 끝은 북배산의 동측구간 고개인 싸리재를 향한다.
싸리제 넘이는 가평군의 북면 홍적고개 아래마을 방향이된다.
명월리길 신작로 약1km지점에 이르러 온길을 뒤돌아보니, 삼악산중의 봉덕사가 보인다.
버스라도 지나가면 얻어탈 기세 였으니, 하마터면 길의 연속성을 깨버릴
후회할일!, 위기를 잘넘긴샘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하루 두세차례 오간다는 지역 버스는 다행히도 행군내내 지나가질 않았다.
끝을 알수없든 지루한 신작로길을벗어나, 명월교를지나서, 명월리 마을 회관에 이르
럿으나 역시 사람의 흔적이 없다.
건물 앞에 다다르자 느티나무 그늘아래 와상에서 주차된 승용차와 인적 발견.
허나 왠지 낱설다...
지난시절 다녀간 이길의 끝지점 북배산아래 싸리골의 추억을 찾아든 여행객
께서 지친 심신을 다스리며 식사를 마친후란다,
그냥 지나치려다 그에게 말을 붙여본다.
오늘 하루중 얼마만에 해보는 사람간의 대화인가.
나역시 가져간 식량의 일부를 이곳에서 섭취
하기로 하였다.
곳이어 전개될 수레넘이 산중고개를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잠시잠깐 말벗의 인연으로 객께서는 한사코,기어이,
자신의 승용차로 수레넘이 등로길 초입까지
지나온 그길을따라 태워다 주마고 하였다.
예측대로 불과300 여m 전방 우측으로 수레넘이 길이
확인되었다 .
자유로운 방랑자이신 한양땅 그 객분께 감사를 드린다.
이윽고.
저길.
전방으로 보이는 저 수래넘이길의 차단기를 넘어선다.
다시 또 이어지는 산중길의 초입이다.
수래가 넘어간길~
한참을 올라서서 허름한 농가옥 주인장과 간단한 대화를 주고 밭는데
이길은 산행길이 아니라며 조심하라는 당부를 내게 알린다.
멀리 전방으로 승용차의 모습이...
닥아서서 확인한 결과
지역 화전민의 차량으로 확인 되었다.
길위의 이야기 제2부로 이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