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이슈3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 일상, 여행이 되다
글: 권다현 여행작가
지난 봄 여행작가와 여행기자, 여행유튜버 등이 한자리에 모여 ‘생활관광’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기회가 있었다.
대부분 관광을 현장에서 접하는 직업들이다보니 생활관광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부터 다양한 생각들이 오갔다.
누군가는 ‘00에서 한 달 살기’처럼 일상 자체가 여행이 되는 요즘의 트렌드를 이야기했고,
또 다른 이는 멀리 떠나지 않고도 일상을 여행하듯 즐기는 삶에 주목하기도 했다.
생활관광이란 익숙하고도 낯선 단어를 바라보는 시선은 조금씩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앞으로의 여행은 ‘어디(Where)’가 아닌 ‘어떻게(How)’를 고민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제주에서 한 달 살기, 참 혹독했던 신고식
스물네 살, 사회생활은 버겁고 툭하면 서러워 눈물을 쏟던 나이였다. 정글과도 같은 사무실을 벗어나 자취방에 들어서면 스타킹도 채 벗지 못하고 잠드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생애 첫 여름휴가지로 제주를 떠올린 건 그처럼 치열했던 일상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렇게 찾아간 제주는 투명한 바다와 보드라운 모래, 푸른 숲길을 지나온 바람이 내 몸과 마음을 감싸 안았다. 격려였고 위로였다. 그날부터 수시로 제주를 드나들며 가끔은 삶터를 아예 옮겨볼까 생각했다. ‘소길댁’ 이효리가 화제를 모을 땐 하루에도 몇 번이나 부동산 사이트를 들락거렸다. 그런데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준비하는 친구에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다 충동적으로 동거를 결정해버렸다.
내가 추천했던 시골집이 독채를 사용하는 조건이었고, 친구네 가족이 쓰기엔 본채만으로도 충분했기에 나에게 별채에 함께 머물면 어떻겠냐고 제안한 것. 그렇게 갑작스레 제주살이가 결정되고 오랜 꿈이었던 제주에서의 생활을 설레고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처음 며칠은 더없이 좋았다. 분주하게 여행지를 돌아다니는 대신 집 앞 바닷가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기는 동안 그늘막에 누워 책을 읽거나 낮잠을 즐겼다. 아이들은 물놀이가 지루해지면 바위틈에 붙은 보말을 잡았다. 오후가 되면 싱싱한 보말이 바구니 한 가득이었다. 덕분에 우린 제주살이 내내 푸짐한 보말죽과 보말미역국을 원 없이 먹었다.
저녁엔 마당에 둘러 앉아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어둠이 깊어지자 어디선가 반딧불이가 나타났고 아이들은 녀석을 잡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소리를 질러댔다. 도시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한밤중의 시끌벅적함이었지만 우린 어떤 항의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이웃집 어르신들은 아이들 먹이라며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넉넉하게 챙겨주시곤 했다. 이런 게 꿈꾸던 제주살이지! 우린 하루에도 몇 번씩 이 말을 주고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전혀 엉뚱한 곳에서 시작됐다. 흙에서 바다에서 마음껏 뛰놀다보니 아이들은 하루에도 몇 벌씩 옷을 더럽혔다. 그래, 언제 이렇게 옷이 지저분해질 만큼 놀아보겠니! 관대하게 웃어 넘겼던 친구와 난 금세 챙겨온 옷들이 바닥나버렸다.
매일 세탁기를 돌려야했지만 습도가 높은 섬의 특성상 옷이 보송하게 마르는 일이 없었다. 축축하게 덜 마른 옷을 입는데 익숙해져야 했다. 비라도 내리는 날이면 빨래한 옷에서도 쾌쾌한 냄새가 올라왔다. 그러니 해가 쨍하게 떠오르면 놀러가기보다 밀린 빨래를 해치우기 바빴다. 따스한 햇살 아래 기분 좋게 빨래를 널어놓아도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제주의 거센 바람은 하루가 멀다 하고 널어놓은 옷을 돌담 너머로, 옆집 텃밭으로 날려버리곤 했다. 아무리 맑은 날도 오후 대여섯 시쯤이면 저녁 이슬이 내려 옷을 적시기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결국 제주에서 지낸 한 달 동안 우리는 구좌읍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제주살이 일주일쯤 되었을 땐 비명도 나오지 않을 만큼 끔찍한 외모의 붉은 지네와 대면했다. 제주 시골집에선 간혹 있는 일이라지만 건장한 친구 남편조차 어찌할 바를 모를 만큼 녀석의 등장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필요한 먹거리가 있으면 바로 앞 마트로 쪼르르 달려가는데 익숙했던 우리에게 장날에 맞춰 식재료를 구입하는 일도 낯설었다.
신나게 뛰어논 만큼 식욕이 폭발한 아이들 때문에 늘 넉넉하게 장을 봐도 금방 동이나 버렸다. 한밤중에 배고프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을 두고 먹거리를 구할 수 없어 발을 동동 굴렀던 날도 있었다. 그 흔한 치킨 한 마리도 날이 어두워지면 배달이 불가했다.
유난히 바람의 기운이 심상치 않다고 느꼈던 어느 날 밤, 성난 짐승의 울음처럼 귓가를 할퀴던 비바람에 지붕 일부가 날아가고 물과 전기가 끊겼다. 2016년 10월 제주 동쪽마을을 강타했던 태풍 차바(Chaba)였다. 동네 어르신들도 몇 년 만에 겪은 큰 태풍이었다고 하니 제주살이 신고식이 참으로 혹독했다.
태풍 때문에 물과 전기가 끊겨 어쩔 수 없이 떠났던 캠핑조차 아이들에겐 즐거운 기억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싶다. 제주가 아닌 다른 곳이라도 좋다. 삶과 여행은 분명히 다르지만, 그 경계쯤에서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감성이 있다. 한껏 꾸미고 단장한 여행지가 아닌 수수하고 소탈한 도시의 민낯. 여행지의 낭만이 풋풋한 연인의 설렘이라면 속살을 부대끼며 쌓인 정은 오랜 친구처럼 정겹다. 문득 떠올라 그립고 때론 달려가 푹 안기고 싶다. 살아보는 여행은 그런 진득한 애정을 남긴다.
일상으로의 여행, 대구 사람들에게 대구를 소개하다
얼마 전까지 남편의 직장 때문에 대구에서 생활했다. 젊은 여행자들 사이에서 ‘힙’한 여행지로 통하는 대구에서 몇 년을 살아보는 경험은 여행작가로서 큰 행운이었다.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얼른 카메라를 들고 도시 구석구석을 탐닉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일상의 공간이었을 테지만 내겐 하루하루가 여행이었다. 그러다보니 여행자의 눈에만 보이는 도시의 특징들도 발견했다.
예를 들면 대구에선 ‘사거리’ 대신 ‘네거리’를 사용하고 닭갈비 대신 찜닭을 즐겨 먹는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젊은 자영업자가 많고 잘 나가는 맛집도 주말이면 문을 닫거나 일주일에 하루 이상은 꼭 쉰다. 대구 친구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랬나? 고개를 갸웃거린다. 생활자의 눈에는 보일 리 없는 소소한 도시의 개성이다.
대구에서 생활하는 동안 여행프로그램을 몇 번 진행할 기회가 있었다. 수강생 대부분이 대구에서 수십 년째 살아온 토박이들이니 여행지를 선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오랜 고심 끝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감상실인 ‘녹향’으로 향했다. 1950년대 대구의 르네상스를 이끌었던 녹향은 수많은 예술가들이 전쟁 통에도 문화에의 뜨거운 갈증을 풀어냈던 장소다.
가난한 화가 이중섭은 이곳에서 담뱃갑 은박지를 도화지 삼아 그림을 그렸고 한쪽에선 청마 유치환이 시를 썼다. 시인 양명문은 녹향에서 대표적인 한국가곡 중 하나로 꼽히는 <명태>의 가사를 썼고 변훈은 거기에 곡을 붙였다.
그렇게 젊은 예술가들이 매일같이 모여들고 밤낮 북적였던 녹향이지만 내가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땐 머리 희끗한 노신사 한명이 전부였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음악에 집중하던 그는 가끔 노후한 음향시설에서 잡음이 새어나오면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기도 했다. 그 가슴 뭉클했던 풍경을 수강생들과 공유하는 사이 한 어르신이 해진 소파 귀퉁이를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다.
젊은 시절 녹향을 드나들며 음악가의 꿈을 키웠다는 그는 세월의 부침 속에 이곳도 자연스레 사라졌으리라 생각했다며 깊은 감회에 빠져든 모습이었다. 그 사이 다른 어르신이 은발의 DJ에게 신청곡을 써냈다. 곧 정겨운 올드팝이 흘러나왔다.
특별한 사연이 있는 곡인가 싶어 물었더니 이곳 녹향에서 남편에게 프로포즈를 받을 때 흘러나왔던 음악이란다. 로맨틱한 선율에 젖은 그녀의 얼굴이 스무 살처럼 빛났다.
한번은 수강생들과 희움 일본군위안부역사관을 찾은 적도 있다. 고 김순악 할머니의 유언을 계기로 건립된 이곳 역사관은 위안부 피해자의 참담한 증언과 기록들, 그리고 평화와 여성인권에 대한 메시지로 채워져 있다.
대구가 지닌 보수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여행자의 눈에는 조금 의외로 여겨졌던 곳이다. 공간이 지닌 묵직한 울림에 일정이 마무리된 후에도 다들 쉬이 걸음을 떼지 못했다. 예정보다 한참 시간을 넘겨 헤어질 무렵, 한 어르신이 내 손을 꼭 잡으며 태어나 처음으로 대구를 제대로 알고 느끼며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여행에서 만난 이탈리아 친구 마리아는 콧대 높은 패션의 도시 밀라노에서 꽤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멋진 도시에 사는구나! 부러움 가득한 눈을 반짝이자 그녀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밀라노? 늘 시끄럽고 지저분해.
여행자는 언제든 새로운 도시와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되어 있다. 낭만과 환상이란 콩깍지가 벗겨지기도 전에 난 밀라노를 떠났고, 그래서 밀라노는 내게 눈부시게 화려한 여자들의 도시로 남았다. 만약 그곳에서 한 달을 살게 됐다면 어땠을까.
내가 미처 만나지 못한 밀라노의 진짜 아름다움은 다른데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생각해본다. 마리아가 하루하루 여행하는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간다면 내가 느꼈던 밀라노의 매력을 그녀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Where’이 아니라 ‘How’다. 어떻게 여행하느냐에 따라 소박한 여행지조차 살고 싶은 곳이 되고 떠나고만 싶었던 번잡한 일상이 정겨운 삶의 풍경이 된다.
자료 :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웹진 문화관광 20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