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기업들은 21세기 들어 공급망(supply chain)의 중요성에 눈떴습니다.
전세계를 대상으로 해서 공급업체를 찾을 경우,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을 자각한 것입니다.
대형 마트나 패스트패션 등이 비교적 괜찮은 품질의 제품을
싼 가격에 공급할 수 있게 된 것도 바로 공급망 관리의 결과입니다.
그 결과 우리가 세계적 브랜드의 어떤 옷이나 생필품을 사면,
그 브랜드의 국적과는 무관한 중국이나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이
제조국으로 표기돼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대기업 내에서 구매 담당자의 역할도 커졌습니다.
이제는 공급망 관리자(SCM·supply chain manager)라는 표현을 주로 씁니다.
역할도 단순히 협력업체로부터 물건을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세계 기업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제품이나 재료를 값싸게 사들이기 위해
그들을 만나고, 기획하고 관리합니다.
아마 효율적인 공급망 관리의 대표 격인 회사가
세계 최대의 유통업체인 월마트일 겁니다.
이 회사는 아예 인공위성들까지 동원해서 공급망을 관리합니다.
소비자로서는 세계화와 다국적 기업들의 공급망 관리 덕을 톡톡히 봅니다.
더 나은 제품을 더 싸게 살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기업에 제품이나 재료를 대는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죽을 맛입니다.
쉴 새 없이 가격을 내리려는 발주업체의 요구 때문이죠.
실제로 월마트에 물건을 대는 협력업체의 60%가 망했다는
미국 내 속설이 있을 정도입니다.
팍스콘을 포함해 애플 제품을 만들거나 부품을 공급하는 중국 내 공장이
근로자의 잇단 투신으로 논란에 휩싸인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경우도 비슷해져 갑니다.
당장 대형마트 같은 경우는 협력업체에 엄청난 가격 인하 압력을 가합니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그래도 워낙 많은 물량을 소화해주니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대형 거래처 하나만 잘 잡으면 회사가 장기적으로 발전한다고 했습니다만,
지금은 오히려 이게 생존의 족쇄가 됩니다.
그래서 새로운 생존계(survival network)가 필요하다는 얘기를 합니다.
불확실한 저성장기에는 우리 물건 사주는 기존 구매처만으로는
생존을 장담할 수가 없다는 거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다른 거래처, 다른 소비처를 준비해둬야 한다는 것인데요.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보통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역시 새로운 생존계를 준비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