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문 : 열왕기상1장1~10절
제목 : 노쇠한 아버지, 야심 찬 아들
열왕기상·하는 원래 한 저자에 의해 기록된 한 권의 책이었는데 70인역에서 나누어 놓았습니다.
본서의 기록은 예레미야로 알려저 있습니다.
그 근거는 첫째, 유대교의 전승인 탈무드에서 본서의 기록을 예레미야로 단정하고 있고, 둘째, 열왕기하 마지막 장과 예레미야 25장에는 서로 유사한 점이 많고, 셋째, 열왕기와 예레미야의 용어들이 여러 경우에서 매우 흡사합니다.
본서의 저작 연대는 바벨론 포로 말기인 B.C. 561~538년 사이라고 추정합니다.
기록 장소는 유다와 애굽에서 기록 했을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을 대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열왕기상은 솔로몬의 왕위 계승(주전961년경)부터 북왕국 아하시야의 통치 초기(주전843년)까지 약 120년의 이스라엘 역사를 소개합니다.
이 사이에 여러 가지 여러 가지 사건이 전개되며, 하나님의 약속, 심판, 회복의 드라마를 연출해 나갑니다.
본서의 저작 목적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근거로 할 때 왕국의 흥망성쇠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함에 달려 있으며, 왕들의 성공 여부도 모세의 법대로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는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역사의 무대 배후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들어 가시는 구원의 드라마는 지금도 계속됩니다.
우리는 열왕기상을 통해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가 사는 이 시대와 우리 인생의 드라마를 연출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늙은 때(BC971년경), 아도니야가 왕이 되고자 합니다.
늙고 쇠약해진 다윗 왕을 위해 신하들은 아비삭에게 시중들게 합니다.
그 사이 다윗의 아들 아도나이는 왕위에 오르기 위한 야심 찬 계획을 실행에 옮깁니다.
1. 쇠약해져 가는 다윗(1~4절).
본문은 다윗 왕의 노환(老患)이 기록되어 있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본서 저자가 본서 초두에 다윗 왕의 노환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습니다.
(1) 다윗 왕이 노환으로 인해 더 이상 국정을 돌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함으로써, 아도니야가 다윗의 후계자로 자처하고 반란(反亂)을 꾀하게끔 되는 배경을 제공해 줍니다.
(2) 같은 맥락에서 다윗 왕의 서거 이전에 솔로몬이 급히 즉위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제공해 줍니다.
한편 노환으로 인한 다윗의 나약한 모습을 다루고 있는 본문은,
인생(人生)의 무상감(無常感)을 느끼게 해줍니다.
베들레헴의 이름 없는 목동으로부터 이스라엘의 위대한 통치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윗은 실로 파란 만장한 세월을 경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된 이후에도 다윗은 많은 날들을 전쟁터에서 보냈고,
그 결과 이스라엘 영토를 확장하고, 성전 건축의 기반을 다지는 등 명군(明君)과 성군(聖君)으로서의 역량을 한껏 발휘했습니다.
그러나 그 영화로웠던 세월들도 유수처럼 흘러 지나가고, 이제 다윗은 칠십 노인이 되어 바야흐로 인생의 황혼기를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1절).
“[1]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1)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다윗 왕이 나이가 많아 늙으니”
다윗은 30세 왕이 되어(삼하 5:4,5)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 도합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므로(2:11;대상29:27).
이때 그의 나이는 70세였습니다.
한편 히브리 원문상 '나이 많아'와 '늙으니'는 종종 같이 연결되어 나타나는 관용어입니다(창18:11;24:1;수 13:1).
(2)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불'('베가드')은 원래 '덮개'란 뜻을 가진 단어로서 의복, 겉옷의 뜻으로 사용되기도 하고(창39:12;왕상 22;10) 침상이나 탁자를 덮는 이불로 사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쇠약하여 침실의 침상에서 줄곧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15, 47절).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 몸의 온기가 떨어진 것은 단순히 나이 많음에서 오는 것뿐만 아니라 다윗의 젊은 날의 고생 때문이기도 합니다.
혹 병(病)이 들어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하튼 다윗은 초기에는 외부적으로 망명 생활, 숱한 전쟁 등으로 인해 온갖 풍파를 겪었으며, 말년에는 내부적으로 집안의 불화, 반란, 살인, 음모 등으로 인해 심신이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더욱이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 이후 하나님의 징계로 겪었던 집안의 불화는 결정적으로 다윗을 노쇠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 모든 일이 말년에 노환(老患)이 되어 다윗을 쇠약하게 만든 듯합니다.
한편, 본서 초두에서 이처럼 다윗의 몸의 증세를 상세히 알리는 것은
그가 더 이상 나라를 통치하기에는 너무 쇠약해졌음을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2)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려합니다(2절).
“[2]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원문에는 초두에 '그러므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하의 내용은 앞의 다윗의 노쇠를 해결하려는 의도 외에 다름 아닙니다. 즉 향락(享樂)이 목적이 아니라 치료(治療)가 목적입니다.
그의 시종들이 왕께 아뢰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원문에는 단수, 즉 한 사람의 말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용상 그의 말은 다른 모든 신하들의 견해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수로 번역되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상태가 다윗의 모든 신하들을 근심하게 하는 심각한 문제였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뚜렷한 후계자가 부각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윗 왕의 쇠약은 국가적인 중대사였던 것입니다.
한편 유대 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여기서 신복들은 왕의 궁중 시의들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구하여 그로 왕을 받들어 모시게 하고. - 히브리 원문에서 이 말은 허락을 요청하는 형태입니다.
즉 '구하도록, 받들어 모시도록 허락하소서'란 뜻입니다.
따라서 다윗은 이를 허락하였습니다(3절).
이것은 신하들 뿐만 아니라 다윗 자신도 문제의 심각성을 느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한편, 여기서 '받들어 모시게'란 말은 '친숙하다','일하다'란 뜻의 기본 동사
'사칸'에서 파생된 말로 곧 곁에서 간호하는 행위를 가리킵니다.
젊은 처녀 - 남자관계가 전혀 없는 나이 어린 동녀를 가리킵니다.
이처럼 특별히 젊은 처녀가 요구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습니다.
(1) 다윗 왕의 체온 저하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젊은 처녀의 온기가 필요하였기 때문입니다.
(2) 또한 그녀는 다윗 왕의 후궁으로 간주되어졌기 때문에 반드시 처녀여야만 했습니다.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 젊은이의 온기를 받아 늙음 몸의 기운을 회복하는 방법은 고대 치료 의술 중 하나로서,
갈렌, 그로티우스 등 고대 의사들의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즉 고대 헬라의 명의 갈렌에 의하면, 젊고 건강한 사람의 체온으로 노쇠한 사람의 체온 저하를 방지하는 치료 의술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처녀로 다윗의 품에 눕게 한 것은 분명 그 같은 치료 방법을 통하여 다윗의 원기를 회복시켜, 그로 하여금 통치를 계속할 수 있도록 목적한 것이 확실합니다.
3) 처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습니다(3절).
“[3] 이스라엘 사방 영토 내에 아리따운 처녀를 구하던 중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수넴 - 수넴은 나사렛에서 대략 11.2Km 떨어진 소(小) 헬몬산 남동쪽 기슭에 위치한 잇사갈 지파의 고을로 현재의 '술렘'또는 '솔람'이란 곳입니다. 한편 에스드라엘론 평야 지대에 위치한 이 곳은 넓고 비옥한 농토와 숲으로 둘러싸인,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고장입니다(수19:18;삼상28:4).
아비삭 - 간호와 온기로써 다윗 왕의 봉양할 의무를 띠고 이스라엘 중에서 뽑힌 수넴 출신의 아리따운 처녀입니다.
이름의 뜻은 '나의 아버지는 방랑자'입니다.
여기서 '아브'또는 '아비'는 '아버지'란 의미로서,
히브리인들의 이름 중에서 흔히 발견되는 합성어입니다.
예컨대 아비야, 아비아달, 아비멜렉, 아비가일, 아비새 등이 있습니다.
한편, 여기의 '수넴 여자 아비삭'이 솔로몬의 애인 '술람미 여인'(아6:13)과 동일하다는 설이 있으나, 근거 없는 이야기입니다.
4) 쳐녀는 왕을 받들어 시중을 들었으니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4절).
“[4] 이 처녀는 심히 아름다워 그가 왕을 받들어 시중들었으나 왕이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잠자리는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 다윗이 아비삭과 동침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해석으로는 다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즉 (1) 아비삭은 다만 간호의 역할을 하는 시녀였으므로 다윗이 동침하지 않았다는 견해.
(2) 다윗이 노쇠하여 무기력했기 때문에 동침할 수 없었다는 견해 등입니다.
첫째 견해의 경우, 이 구절은 후에 솔로몬의 이복형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할 수 있었던 배경을 제공해 줍니다(2:13-18).
그러나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요구를 부왕의 후궁을 요구하여 왕위까지 노리는 불측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를 죽입니다(2:22-25).
한편 70인역은 아비삭의 봉양을 '함께 누워 흥분하게 하는 것'으로 번역하므로 두번째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어느쪽으로 해석하든 본문은 다윗의 노쇠함이 심각할 정도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 반역의 시도(5~6절)
1)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왕이 되리라하고 호위병을 준비하였습니다(5절).
“[5] 그 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호위병 오십 명을 준비하니”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 - 아도니야는 헤브론 통치 시절에,
다윗이 학깃을 통해 낳은 넷째 아들입니다.
첫째는 암논인데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을 통해 낳은 아들이며,
둘째는 길르압인데 갈메 여인 아비가일을 통해 낳은 아들입니다.
셋째는 암살롬인데 그술 왕 달매의 딸 마아가를 통해 낳은 아들이며,
넷째가 바로 이 아도니야인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부로부터 37세 때까지 헤브론 통치 시절 도합 6명의 아들을 낳았습니다(삼하 3:2-5).
따라서 아도니야 역시 헤브론에서 태어났으니(삼하3:5;대상3:4).
당시 아도니야의 나이는 33세로부터 40세 사이였을 것입니다.
다윗의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대상 3:1-9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스스로 높여서. - 히브리어 '미트나세'는 분수에 맞지 않는 교만한 행동, 또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독자적 행동을 가리킵니다(민16:3;잠30:32). 그런데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인 까닭은 6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중 장자의 권리가 가장 기초적인 이유였습니다.
왜냐하면 압살롬이 죽은 후 다윗의 남은 아들들 중에서는
아도니야가 가장 연장자였기 때문입니다(삼하3:2-5;6절 주석 참조).
따라서 때마침 다윗이 늙고 무기력해졌으므로 아도니야가 왕권에 대한 욕심을 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데 있어서는 장자권 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선택이었습니다(신17:15).
*신17:15~17[이스라엘 왕] “[15]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네 위에 왕을 세우려면 네 형제 중에서 한 사람을 할 것이요 네 형제 아닌 타국인을 네 위에 세우지 말 것이며[16]그는 병마를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17]그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 그의 마음이 미혹되게 하지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그리고 이 선택은 이미 솔로몬에게 주어졌었습니다(삼하7:12-17; 12:24,25; 대상22:6-10).
또한 아도니야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 한 것은 분수를 넘는 일일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 행동이 됩니다.
그래서 아도니야의 왕의 찬탈 시도에는 '스스로 높여서'라는 부정적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내가 왕이 되리라.
당시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했던 동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왕자 중 아도니야의 연장자였던
암논은 다말 사건으로 인하여 피살되었고(삼하 13:29),
압살롬은 자기 아버지 다윗을 반역했을 때 군대 장관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으며(18:24),
길르압(다니엘)은 어렸을 때 죽은 것으로 보입니다(대상 3:1).
따라서 아도니야는 당시 생존한 왕자들 중 최연장자였으므로 순서대로라면 왕위 계승 서열 1위였습니다.
(2) 또한 아도니야는 용모가 준수한 자로 다윗의 총애를 받고 있었습니다(6절).
(3) 그리고 아도니야는 주위의 인물들 특히 군대 장관 요압이나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같은 사람들을 포섭할 만한 정치력이 있었고,
또한 그 같은 사람들에 의해 사주를 받았습니다(7절).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아도니아는 교만해져서 왕이 되려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도니야는 가장 중요한 하나님의 뜻과 다윗 왕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모든 사건은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자는 결국 멸망에 이를 수 밖에 없습니다(시107:10, 11).
*시107:10,11 “[10]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11]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하물며 메시아의 가게로 선택받은 다윗 집의 사건에 관해서야 더 말할 나위 없는 것입니다.
한편 A.D. 1세기 경의 유명한 유대 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수리한 용모하며 야심만만한 기질, 그리고 용의주도한 정치력 등
모든 면에서 아도니야는 형 압살롬을 닮았다고 합니다.
2) 아도니야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입니다(6절).
“[6] 그는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요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그의 아버지가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고 하는 말로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아도니야가 교만해져 왕이 되고자 한 원인이 설명됩니다.
압살롬 다음에 태어난 자 - 이 말은 당시 아도니야가 다윗의 아들들 중 최 연장자임을 밝히기 위해 기록되었습니다.
즉 다윗의 맏아들 암논은 근친상간으로 인해 압살롬에게 죽고(삼하 13:28), 셋째 아들인 압살롬 역시 반역하다 죽었습니다(삼하 18:14,15).
그리고 둘째인 길르압(혹은 다니엘, 대상 3:1)은 이후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어려서 일찍 죽은 것으로 추측됩니다.
따라서 이제 남은 아들들 중에 최연장자는 아도니야 자신이었던 것입니다.
용모가 심히 준수한 자라. - 이스라엘 최초의 왕 사울도 준수한 용모를 가졌으며(삼상9:2), 아비 다윗 왕에 대해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도 그러하였습니다(삼하 14:25).
그리고 다윗도 준수한 용모를 가졌던 것으로 나타납니다(삼상 16:12).
사실 지도자에게 있어 준수한 용모는 백성들의 인기를 끄는 데 우선적으로 고려되는 요인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아름다움 보다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께 선택받은 것이 더 중요한 자격입니다(삼상 16:7).
*삼상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한 번도 그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 -'한번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야마우'는 '그의 모든 날들로부터'란 뜻입니다.
즉 아도니야가 태어난 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책망을 들은 일이 없음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5절의 방자한 행동에 대한 감시 소홀 내지는 후계자로 생각해서 내버려 둔 것입니다.
다만 아도니야의 교만한 행위의 원인 중 하나가,
다윗이 그를 적절히 훈계치 못한 데에 있음을 암시할 뿐입니다(잠22:6).
*잠22:6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여기에 더하여 다윗이 노쇠해지자 아도니야는 부친을 무시하고 동의도 없이 멋대로 왕이 되려 하였던 것입니다(18절).
3. 반역에 가담한 자와 가담하지 않은 자(7~10절)
1)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합니다(7절).
“[7]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
스루야의 아들 요압. - 다윗의 군대 장관으로 전공을 많이 세운 인물입니다. 비록 요압은 다윗에게 충실하였지만, 그러나 그는 자주 다윗을 거스렸습니다(2:5;삼하 3:27;20:10).
그래서 다윗에게 잘못 보인 그는 다윗과 선지자 나단의 영향하에서 자란 경건하고 온유한 성격의 솔로몬 보다는 야심만만하고 준수한 용모의 아도니야에게 가담하여 다윗 사후에도 계속 권세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즉 요압은 다윗의 바램이나 하나님의 뜻 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실리를 좇아 행동했던 것입니다.
제사장 아비아달. - 사울이 놉의 제사장들을 학살할 때 피하여 다윗의 보호를 받다가(삼상22장), 이후 다윗 통치 하에서 사독과 더불어 대제사장이 된 인물입니다(삼하20:25).
오랜 역경의 세월 동안 다윗과 동거 동락해 온 그가 다윗의 뜻을 거스리고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이유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추측하건대 아비아달은 당시 공동 대제사장이었던 사독을 시기한 끝에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즉 성경 기록상 엘르아살 계통의 사독의 이름이 항상 이다말 계통의 아비아달의 이름보다 앞서서 나타나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삼하8:17;15:29,35;20:25),
당시 사독이 아비아달 보다 주도적인 위치를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아비아달은 자신의 대제사장적 가문의 회복을 위하여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한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혹자의 견해처럼, 군대 장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왕위 찬탈 음모 가담은 아도니야가 최연장자로서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였기 때문이라는 대의명분을 좇아서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다윗 사후 자신들의 정치적 종교적 강화하기 위한 실리적 목적으로 아도니야의 음모에 가담했습니다.
결국 요압의 처형(2;28-35)과 아비아달의 추방(2:26,27)이라는 비극적 결과가 이들의 그러한 사욕을 입증해 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않았습니다(8절)
“[8]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제사장 사독 - 사울이 죽은 후 헤브론에 있던 다윗에게 가담한 무리 중 한 사람으로(대상12:28),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의 후손 아히둡의 아들입니다(삼하8:17).
압살롬의 반란 때 그는 다윗을 편들어 왕궁에 머물면서 후새를 도와 첩자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삼하 15:28,29;17:15).
한편 사독은 다윗시대에 아비아달과 더불어 공동 대제사장으로 있었는데,
이처럼 다윗 시대에 2명의 대제사장이 있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곧 다윗은 도피시절에 사울의 손을 피해 에봇을 가지고 자신에게로 도망쳐 온 아비아달을 대제사장으로 거느리고 있었습니다(삼상23:6).
그런데 이후 사울 사후에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를 통치하고 있을 때, 이미 아론의 집 족장 여호야다의 뒤를 이어 대제사장이 된 사독이 사울의 나라를 다윗에게 돌리기 위해 헤브론의 다윗에게서 나아왔습니다(대상12:23,27,28).
그리고 이때 다윗은 또한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맞아들였으므로,
결과적으로 다윗의 통치하에서는 2명의 대제사장이 존재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 브나야는 다윗의 전성기에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했던 인물입니다(삼하8:18).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은 외국인 용병으로 왕의 친위대를 구성하고 있었고(38절), 브나야는 이들의 대장이었습니다(대상 18:17).
본래 브나야는 대제사장 여호야다의 아들로서(대상27:5) 레위인이었으나,
그의 뛰어난 무용으로 인해 다윗 왕의 시위대장으로 발탁된 것 같습니다(삼하23:20-23;대상11:22-25).
그러다가 브나야는 솔로몬의 명령을 받고 아도니야의 반란 사건에 가담한 요압을 죽인 후 대신 군대 장관이 됩니다(2:28-35).
선지자 나단 - 다윗의 신임을 받는 왕궁의 조언자였습니다.
당시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습니다.
나단은 다윗의 성전 건축 계획을 솔로몬에게 넘겨주도록 하였고(삼하7:4-17), 밧세바를 취한 일로 다윗을 꾸짖기도 하였습니다(삼하12:1-14).
그리고 나단은 솔로몬 출생시 하나님의 명으로 솔로몬에게 '여디디야'('여호와의 사랑을 입은 자'란 뜻)라는 이름을 붙여 준 일이 있으므로, 일찍부터 나단은 솔로몬이 다윗 왕의 후계자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히 암시받은 바 있었습니다(삼하 12:24,25).
시므이 - 이 사람이 누군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학자들은 솔로몬의 열두 관장 중 하나로 임명받은 엘라의 아들 '시므이'(4:18)와 동일시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에발트와 같은 학자는 시므이를 다윗의 형인 '삼마'(삼상 16:9;삼하 21:12) 또는 '시므아'(삼하 13:3)로 보기도 하나 근거는 희박합니다.
레이 - 역시 미상의 인물입니다.
요세푸스는 '다윗의 친구'로 보기도 하고,
에발트는 '다윗의 형제'로 보기도 하나 타당성은 없습니다.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 - '용사들'('깁보림')은 두목, 수령의 뜻을 갖는다. 특별히 다윗의 37인의 용사들에게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은 주로 가드 족속, 그렛 족속, 블렛 족속 등으로 구성된 용병들로서 다윗의 직접적인 통솔 하에 있던 다윗의 오랜 전우들입니다(삼하 23:8-39;대상 11:10-12:18).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 요압과 아비아달이 구세력의 세력이라면, 사독과 나단 등은 후기 예루살렘에서 기반을 잡은 신흥 세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브나야를 비롯한 다윗의 용사들은 요압의 영향권 하에서 벗어난 다윗의 친위 세력이었습니다.
따라서 아도니야는 이들을 포섭하는 데 실패했고, 이들 역시 다윗의 뜻을 좇아 예루살렘에서 자라난 새 인물 솔로몬을 지지하는 것이 옳을 뿐 아니라 유리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아도니야의 반역 음모에 가담치 않았습니다.
3) 아도니야가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청합니다(9절).
“[9] 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하 된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바위 곁에서. - '에느로겔'(삼하17:17) 또는 '엔로겔'(수15:7)은 '정탐의 우물'이란 뜻으로, 예루살렘 남동쪽으로 그리 멀지 않은 기드론 골짜기에 있습니다.
이곳은 잔치를 벌이기에 적당하며 지금도 예루살렘 주민의 휴양지입니다.
양과 소와 살진 송아지를 잡고. - 이것은 단순히 잔치 음식이 아니고 제사에 쓰이는 희생 제물입니다(참고, 민 28-29장),
그런데 일찍이 사울이 왕이 될 때도 제사를 드렸고(삼상11:15),
압살롬도 제사를 가장하여 반역을 자행한 바 있었습니다(삼하 15:7,12).
마찬가지로 아도니야 역시 제사 잔치를 베풂으로써 반역 거사를 도모한 것입니다.
이처럼 반역 거사에 제사 형식을 도입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 세 가지입니다. (1) 제사 형식을 갖춤으로써 종교계 및 군부 실력자들의 회합 의도를 자연스럽게 은폐시킬 수 있으며
(2) 자신들의 거사 행위에 신적 근거 및 정통성을 부여하고
(3) 거사에 가담한자들 상호간에 정신적, 종교적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였습니다.
한편, 거사 장소로서 아도니야는 수도 예루살렘 남동쪽 기드론 골짜기에 있는 에느로겔 근방을 택했는데, 이로 미루어 아도니야는 자신의 거사에 상당히 많은 세력의 지지를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으며, 따라서 거사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군대 장관 요압의 동조와 대제사장 아비아달의 후원을 얻음으로써, 아도니야는 그러한 확신을 굳혔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도니야는 신정 국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하나님의 뜻'에는 유념치 않았습니다.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 - 다윗은 여러 왕비로부터 많은 자식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대상 3:1-9에 의하면 아들만 대략 19명 가량 되는데,
그중 아도니야는 넷째였고, 솔로몬은 열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암논과 둘째 길루압(혹은 다니엘)과 셋째 압살롬 모두 죽었습니다(6절 주석 참조).
따라서 당시로서는 아도니야가 최연장 자였으며, 솔로몬을 제외한 그의 동생은 모두 14명이었습니다(이외 많은 다윗의 첩의 아들들도 있었다).
이들 아도니야의 동생들도 아마 솔로몬 보다는 최연장자인 아도니야가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아도니야는 이들도 자신의 거사 잔치에 참여시켰습니다.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 - 다윗 왕의 근친이거나 또는 다윗 왕의 신복으로서 궁중에 출입하는 유다 지파의 지도자들을 가리킵니다.
일찍이 이들은 압살롬의 반역에 가담한 적도 있었기 때문에, 아도니야는 이들은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거사 잔치에 초대한 것 같습니다.
따라서 이들 중에는 아도니야의 음모를 알지 못하고 아무 뜻 없이
초대에 응한 자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입니다(삼하 15:11, J. Hammond)
4)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습니다(10절).
“[10]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 - 아도니야는 의도적으로 솔로몬을 초청에서 제외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도니야가 솔로몬이 약속된 왕위 계승자임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
음을 뜻합니다.
즉 선지자 나단이 하나님의 명을 좇아, 다윗의 범죄에 대한 사죄의 징표로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아들 솔로몬에게 붙여준 이름 '여디디야'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삼하 12:24,25).
그러므로 이 이름이 암시하듯 다윗의 왕위 계승자로 일찍부터 솔로몬이 선택받은 자임이 널리 알려져 있었을 것입니다(삼하 7:12;대상 22:9).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가 연장자임을 내세워 왕위를 노린 행위는
하나님과 부왕 다윗의 뜻을 정면 거스린 모반(謀叛)행위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신정적(神政的) 왕정 국가인 이스라엘에 있어서 왕위의 정통성은 오직 하나님의 뜻에 있는 것입니다.
한편 아도니야가 솔로몬과 더불어 선지자 나단, 시위 대장 브나야, 대제사장 사독, 그리고 다윗의 (삼십)용사들을 초청해서 제외시킨 것은, 그가 다윗의 의중(意中)을 따르고 있는 솔로몬의 핵심 추종 세력을 익히 간파하고 있었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기억해야 할 창조주이십니다(1~4절,전12:1).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답던’ 소년 다윗이 늙고 힘없는 노인이 됩니다.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린 용사가 제 한 몸 가누지 못하고 이불을 덮어도 냉기를 떨쳐 내지 못합니다.
나라를 돌보던 왕이 돌볼 대상이 되고, 주인의 아내들과 부하의 아내마저 품에 두던(삼하12:8) 그가 아리따운 쳐녀와도 동침하지 못합니다.
인생의 한계는 우리를 창조주께 인도합니다.
어떤 이불도 인생의 겨울을 막지 못하고,
어떤 젊음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합니다.
맘껏 사랑하고 힘껏 주를 섬길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나 남아 있지 않음을 잊지 맙시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왕의 육체적 쇠약은 곧 왕권과 국력의 쇠약을 의미했습니다(2~4절).
다윗이 왕으로서 더 ‘기능’해 주기를 바라던 신하들은 아비삭이라는 ‘처방’을 내립니다.
그 소녀는 왕을 위한 몸종이자 나라를 위한 정치적 도구였습니다.
유용성으로 사람의 가치를 매기는 사회에서 다윗과 아비삭은 인격이 아니라 몸뚱이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사랑의 대상이지 사용의 대상이 아닙니다.
효율성으로 간 보거나 견주지 말고, 존재만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2) 다윗이 기력을 회복하지 못하자 아도니야가 왕좌를 차지하려고 나섭니다(5,6절).
힘없는 아버지를 무시하고 자신을 과시합시다.
아버지의 쇠약을 자신의 도약을 위한 기회로 삼습니다.
준수한 용모뿐만 아니라 반역의 계략까지 아도니야는 분명 ‘압살롬 다음’(6절)이었습니다.
“내가 왕이 되리라”는 장담 속에 압살롬의 비참한 최후마저 엿보입니다.
‘아담 다음’에 태어난 모든 이에게 교만은 패망의 선봉입니다.
자기를 높이려는 허망한 삶에서 속히 떠나십시오.
3)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신하들은 정치적 기로에 놓입니다(7~10절).
요압과 아비아달은 하나님의 뜻보다 아도니야의 반역에 편승합니다.
이득을 따지는 똑똑한 선택보다 말씀을 따르는 신실한 선택을 우선하고 있는지, 죄를 더하는 관계보다 의를 도모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