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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사무엘하1장1~16절
제목 : 사울의 죽음
사무엘하는 사울의 죽음 이후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과정을 시작으로, 다윗의 통치 아래 발생한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다윗 왕국의 업적과 실패를 설명한 후, 다윗 왕국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찬양으로 끝나는 책입니다.
본서의 저자는 분명하지 않습니다.사무엘이 본서 전체의 저자가 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삼상25:1,삼상28:3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삼상25:1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다윗이 일어나 바란 광야로 내려가니라”
*삼상28: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그리고 사무엘하는 그가 죽은 후에 일어난 사건 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본서의 저자는 왕국분열 직후에 살았던 아마 유대의 한 선지자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이미 기록되었던 문헌을 기초로하여 기록하였음이 분명합니다.
사무엘의 탄생으로부터 사울을 거쳐 다윗의 만년까지인,
BC 11세기 전반부터 약 80년간의 역사 기록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이 이스라엘의 패배와 사울과 요나단의 전사 소식을 듣고 크게 슬퍼합니다.
그리고 사울을 죽였다고 자처하면서 소식을 전한 아말렉 병사를 처형합니다.
1. 사울과 요나단에 대한 부고(1~4절)
1)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때입니다(1절).
“[1] 사울이 죽은 후에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돌아와 다윗이 시글락에서 이틀을 머물더니”
사울의 죽은 후에. - 사무엘상.하를 연결해 주는 의미 있는 구절입니다.
더욱이 이 문구에 의해 내용면에서 폭군 사울 왕의 시대와 성군 다윗 왕의 시대가 명확히 구분되는 것을 보아 더욱 그러합니다.
따라서 사무엘상. 하가 히브리 성경에서는 한권(70인역에는 한 권으로 되어있음)으로 되었을지라도 이 문구를 기준으로 구분한 것은 매우 적절하며 또한 그 의미가 깊습니다.
다윗이 아말렉 사람을 쳐죽이고. - 삼상 30:16-20의 사건을 가리킵니다.
즉 앞서 다윗은 아기스와 함께 출전(出戰)하느라 잠시 시글락을 비워 둔 적이 있습니다.
그때 아말렉족이 시글락을 침입, 다윗의 백성을 약탈하였는데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다윗은 그 뒤를 추격, 아말렉족을 격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였던 것입니다.
시글락 - 브엘세바 북서쪽 19.2km지점에 위치한 성읍입니다.
원래 시므온 지파에게 배당 되었으나(수 19:5;대상 4:30) 사울 시대에는 블레셋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한편 가드의 아기스 왕은 다윗이 사울에게 뒤쫓기고 있을 때 시글락을 다윗에게 주어 외부의 적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꾀하기도 했었습니다(삼상 27:6;대상 12:1,20).
*삼상27:6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즉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가드로 도망 와 아기스 왕과 군사적 관계를 맺고 이 곳을 얻었던 것입니다.
덕분에 다윗은 지금까지 이곳을 그의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세력을 확장하며 은거할 수 있었습니다(삼상27:8,9;30:26-30).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와서 다윗에게 나와 땅에 엎드려 절합니다(2절)
“[2] 사흘째 되는 날에 한 사람이 사울의 진영에서 나왔는데 그의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그가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제 삼 일에. - 다윗이 아말렉 족을 추격하여 그들을 격파하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여 시글락으로 돌아온 지(삼상 30:16-20) 제 사흘째 되던 날을 가리킵니다.
사울의 진에서 나왔는데. - 사울과 그 휘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레셋군을 맞이하여 교전(交戰)하던 격전지(삼상 31:1-7)에서부터 도망쳐 나온 것을 가리킵니다.
그 옷은 찢어졌고 머리에는 흙이 있더라. - 이는 그 당시 근동 지방 사람들이 자기의 극한 슬픔을 표시하던 한 방법입니다.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블레셋과 싸우다가 죽었을 때도 한 병사가 그 옷을 찢고 자기이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렀습니다(삼상4:12)
*삼상4:12 “당일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나와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티끌을 덮어쓰고 실로에 이르니라”
-여호수아도 아이 성 전투에서 패하였을 때에도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 쓰고 슬퍼하였습니다(수7:6).
*수7: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특히 그중에서도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고통이나 번뇌에 사로잡혔을 때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던 한 표현법입니다.
한편 그밖에도 고대 근동 인들은 금식, 굵은 베옷을 입는것, 허리에 굵은 베를 띠는 것 따위에 의해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곤 하였습니다(창 37:34;삼상31:13;왕상21:27;시 35:13).
그러나 본절에 나오는 이 사람의 행위는 다음에 이어지는 그의 위증에 비추어볼 때(5-10절) 전적으로 거짓된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에게 나아와 땅에 엎드려 절하매. -
이는 곧 다윗을 자신의 주로 인정하는 경외와 복종의 자세입니다.
즉 이는 이제 죽은 사울에 이어 이스라엘의 차기 왕위에 오를 자가 곧 다윗임을 인정하는 행위에 다름 아닌 것입니다.
왜냐하면 땅에 두 활과 무릎이 닿을 정도로 부복하는 행위는 당시 백성들이 자신의 군주나 지도자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하던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14:4;19:18;창42:6;삼상24:8;왕상18:7;왕하2:15).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도 인간적으로 씁쓸한 감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얼마 전까지도 사울 휘하에서 충성을 다하던 자가 사울이 죽자(1절) 얼른 다윗에게로 도망쳐 와 이처럼 새로운 충성을 표하니,
그의 약삭빠름과 간특(奸慝)함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다윗이 그에게 묻습니다-어디서 왔느냐(3절).
“[3] 다윗이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 왔느냐 하니 대답하되 이스라엘 진영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하니라”
이스라엘 진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 이와 같은 보고를 올리고 있는 이 아말렉 사람은 아마도 이스라엘 군대에 고용된 용병(傭兵)이었을 것입니다(8,13절).
그러기에 그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에 패하고 사울마저 위기에 처하자(4-10절;삼상 31:1-6) 진영을 이탈, 잽싸게 도망쳐 나왔을 것입니다.
4) 다윗이 그에게 또 묻습니다.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4절).
“[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너는 내게 말하라 그가 대답하되 군사가 전쟁 중에 도망하기도 하였고 무리 가운데에 엎드러져 죽은 자도 많았고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하는지라”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 아말렉 사람의 보고에 대하여 다윗이 좀더 구체적인 전황(戰況)을 묻고 있는 장면입니다.
즉 다윗은 이스라엘군이 어떠한 지경에까지 이르렀기에 아말렉 용병이 다 도망쳐 나올 정도였는지 무척 궁금해 한 것입니다(Keil & Delitzsch).
한편 이 같은 다윗의 물음은 과거 아벡 전투의 결과에 대하여 엘리 제사장이 초조한 심정으로 묻던 질문과 꼭같습니다(삼상 4:16).
*삼상4:16 “그 사람이 엘리에게 말하되 나는 진중에서 나온 자라 내가 오늘 진중에서 도망하여 왔나이다 엘리가 이르되 내 아들아 일이 어떻게 되었느냐”
더군다나 이 두 경우 모두
1)이스라엘의 대전국(對戰國)이 블레셋이며
2)이스라엘군이 참패를 당한 점
3)그리고 그 결과 이스라엘에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이처럼 과거 아벡 전투결과, 엘리에서 사무엘로 통치권의 전황이 이루어졌듯(삼상 4, 7장) 이제 길보아 전투(삼상 31장) 결과, 사울에서 다윗에게로 통치권이 전환되게 된 사실(2:1-4)은 배후에서 역동적(dynamic)으로 인간의 역사를 주장하시며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새삼 느끼게 해 줍니다.
즉 비록 인간의 역사는 실패로 끝나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가운데서 당신의 뜻과 계획을 한 치의 차질도 없이 성취시켜 나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군사가…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도 죽었나이다. - 이미 삼상 31:1-7에서 자세히 언급된 상황입니다.
이 같은 이스라엘의 대패(大敗)는 하나님께서 범죄 한 사울에게 주셨던 예언(삼상 13:14;15:23,26,28;28:19)의 성취라는 의의를 지닙니다.
*삼상13:14 “지금은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라”
*삼상15:23,26,28 “[23]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니[26]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 왕을 버려 이스라엘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고[28]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삼상28: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기시리라 하는지라”
2. 사울의 죽음에 대한 상세 보고(5~10절)
1) 다윗이 청년에게 묻습니다-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다 어떻게 아느냐?
“[5] 다윗이 자기에게 알리는 청년에게 묻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은 줄을 네가 어떻게 아느냐”
사울과 요나단이 전사하였다는 사실을 믿고 싶지 않은 다윗의 심정이 역설적으로 드러나 있는 반문입니다.
즉 다윗은 아말렉 사람에게
"네가 직접 사울과 요나단의 죽음을 목격하기라도 했단 말이냐?
어찌 감히 네가 함부로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고 하느냐?"는
의미로 다그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다윗의 위대한 신앙 인격을 엿볼 수 있습니다.
즉 그는 지금껏 자신을 박해하던 사울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고선 안도의 한숨을 쉬기는커녕 오히려 이스라엘의 지도자와 그 아들 요나단이 전사한데 대하여 충격과 당혹감을 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청년의 답변입니다(6~10절).
(1)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랐습니다(6절)
“[6] 그에게 알리는 청년이 이르되 내가 우연히 길보아 산에 올라가 보니 사울이 자기 창에 기대고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청년 - 이스라엘의 용병(mercenary)으로 전투에 참여한 점으로 보아 여기서는 20세 전후의 청년을 가리킵니다.
청년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상 마지막 장에 의하면 사울의 죽음을 목격한 자는
그의 '병기 든 자'로서 처음부터 사울과 함께 길보아 전투에 참여했던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입니다(삼상 31:1-6).*병기 든 자는 에돔 사람 도엑.
길보아산. - 이스르엘 골짜기(the valley of Jezreel)에 위치한 해발 497m의 석회암구릉입니다. 삼상 31:1 주석 참조.
사울이 자기 창을 의지하였고. - 이는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극도로 지친 사울이 땅에 꽂힌 자신의 창을 의지한 채 힘들게 겨우 서 있는 것을 의미하는 말로 봅니다(Lange).
이는 당시 역경 중에 처해 있던 사울의 비참한 지경을 여실히 증거해 줍니다.
병거와 기병은 그를 급히 따르는데. - 다시 한 번 아말렉 청년의 거짓말이 드러나고 있는 부분입니다.
왜냐하면 병거(chariots)는 평지에서나 사용 가능한 도구이지 산에서는 그 사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스라엘군이 블레셋군을 피해 길보아 산으로 도망친 이유도 저들이 병거를 타고서 추격해 오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삼상31:1).
그러자 그때 블레셋군은 병거나 기병대신 '활쏘는 자들'을 동원 이스라엘군을 추격했었습니다(삼상 31:3).
(2) 사울이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나는 아말렉 사람이라 대답하였습니다(7,8절).
“[7] 사울이 뒤로 돌아 나를 보고 부르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한즉[8] 내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하시기로 내가 그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한즉”
나는 아말렉 사람이니이다. - 사울의 죽음과 관련된 아말렉 청년의 보고(6-10절)가 완전히 날조된 거짓 보고임을 드러내 주는 결정적 단서입니다.
왜냐하면 할례받지 못한 자들에 의해 죽임당할 것을 두려워했던 사울(삼상 31:4)이 스스로의 신분을 '아말렉사람'이라고 밝힌 소년에게 자기를 죽여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9절)은 논리적 모순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3) 사울이 고통중에 있으니 죽이라고 하였다고 합니다(9절)
“[9] 또 내게 이르시되 내 목숨이 아직 내게 완전히 있으므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청하건대 너는 내 곁에 서서 나를 죽이라 하시기로”
내가 고통 중에 있나니. - 직역하면 '고통이 나를 붙잡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고통'에 해당하는 '솨바츠'는 간혹 경련, 어지러움증, 현기증 따위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전후 문맥을 보아 여기서는 뒤쫓아 오는 적들을 도저히 피할 수 없다고 느낀데서 온 '공포'나 '두려움'을 가리키는 듯합니다.
이처럼 심령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죽음의 공포나 인간적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일반적 현상입니다.
(4)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알고 그를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가져왔다고 합니다(10절)
“[10] 그가 엎드러진 후에는 살 수 없는 줄을 내가 알고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그의 머리에 있는 왕관과 팔에 있는 고리를 벗겨서 내 주께로 가져왔나이다 하니라”
그의 곁에 서서 죽이고. - 이처럼 아말렉 청년은 자신이 사울의 부탁을 받고서 사울을 죽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삼상 31: 3, 4에는 사울이 블레셋군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자 절망하여 자살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삼상31:3,4 “[3]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잡으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에게 중상을 입은지라[4]그가 무기를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그것으로 나를 찌르라 할례 받지 않은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 무기를 든 자가 심히 두려워하여 감히 행하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그러면 이같은차이점에 대하여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이것은 아말렉 청년이 다윗으로부터 상급을 받기 위해 사울이 자결한 사실을 숨긴 채 거짓 증거했기 때문에 생긴 차이점이라는 견해입니다.
“왕관” 그러나 블레셋과의 전투에 나선 사울이 이러한 왕관을 착용 했을리는 만무합니다.
아마 이는 사울의 투구에 둘러 쳐져 있던 좁다란 금띠로서 왕권을 상징하던 것인 듯합니다.
“팔에 있는 고리” - 사울이 팔에 차고 있던 고리는 고대근동의 군지휘관들이 흔히 지니고 있던 장신구 중의 하나입니다(민 31:50).
오늘날 발굴된 앗수르의 조각물들에도 보면 손목과 팔에 고리를 찬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Lavard, Wycliffe).
3. 아말렉 병사 처형(11~16절)
1)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합니다(11절).
“[11] 이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으매 함께 있는 모든 사람도 그리하고”
자기 옷을...찢으매 - 2절 주석 참조.
*이는 그 당시 근동 지방 사람들이 자기의 극한 슬픔을 표시하던 한 방법입니다(수 7:6;삼상 4:12).
특히 그중에서도 자신의 옷을 찢는 행위는 극도의 고통이나 번뇌에 사로잡혔을 때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던 한 표현법입니다.
2) 저녁 때 까지 슬퍼하여 울며 급식했습니다(12절)
“[12]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과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족속이 칼에 죽음으로 말미암아[저녁] 때까지 슬퍼하여 울며 금식하니라”
울며 금식하니라. - 금식 역시 극한 슬픔을 나타내던 한 방법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슬픔은 지극히 신앙적인 것이었다는 의의를 지닙니다.왜냐하면 다윗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슬퍼했기 때문입니다.
(1)그의 동포들이 살육당했기 때문입니다.
(2)그 중에는 그의 절친한 친구 요나단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3)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로서 여호와의 백성과 이스라엘 백성이 짐승 같은 이방인에게 짓밟혔기 때문입니다.
(4)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으로 기름부음 받은 왕 사울이 이방인의 손에 의해죽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과거 사울은 하나님의 성호(聖號)로 기름 부음 받은,
즉 하나님의 권위를 부여받은 신정 국가의 왕이었습니다(삼상 10:17-24).
따라서 그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배하고 죽은 것은 곧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의미합니다.
(1)하나님의 언약이 파기됨.
(2)사울과 그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권위가 떠남. 이러한 까닭에
다윗은 사울에 대한 그의 사사로운 감정을 초월하여 진정으로 사울의 죽음을 애도하였습니다.
즉 다윗은 사울 왕국이 인간이 아닌 하나님에 의해 버림받아 이방인들에게서 조차 능욕(凌辱)당한 사실을 못내 안타까와하며 슬퍼하였던 것입니다.
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어디 사람이냐 묻되 그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13절).
“[13] 다윗이 그 소식을 전한 청년에게 묻되 너는 어디 사람이냐 대답하되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하니”
나는 아말렉 사람 곧 외국인의 아들이니이다. - 이와 관련 매튜 헨리(Natthew Henry)는 한 유대인 전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곧 이 아말렉 청년이 사울의 마부였던 도엑(Doeg)의 아들이었 다는 전설입니다.
그에 따르면 사울은 자결하기 전에 자신의 면류관과 팔고리를 이 청년에게 건네주면서 다윗에게 바치라고 명하였다 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전설 일뿐 그 사실을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외국인. - 이스라엘에 정착하여 그 사회에 동화(同和)된 이방인을 의미합니다(출 22:21;23:9).
이들은 유대 후기에 완전한 시민들처럼 대우를 받았으며(겔47:22),
제 3의 십일조를 분배받는 특권을 누렸습니다(신 14:29).
또한 이들은 여호와 종교로 개종할 경우 이스라엘인과 다름없이 율법에 대한 책임이 있었으며, 동시에 율법의 보호를 받았습니다(출 12:48,49; 레 16:29; 17:8,15; 18:26; 19:34; 24:22; 25:6; 신 1:16; 10:18; 16:11).
뿐만 아니라, 이들은 법 소송에서 위대하신 영주, 곧 하나님께 직접 호소할 수 있었습니다(레 24:22).
그러나 이들은 이스라엘인과 같이 땅을 소유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것은 분명 외국인이 갖는 불이익이었습니다.
때문에 아말렉 청년은 이러한 불리한 입지 조건으로 인해 다윗에게 아첨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합니다(Rust).
4) 다윗이 그에게 네가 어찌하여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 그를 죽입니다(14,15절)
“[14]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 죽이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냐 하고[15] 다윗이 청년 중 한 사람을 불러 이르되 가까이 가서 그를 죽이라 하매 그가 치매 곧 죽으니라”
그를 죽이라. - 이처럼 다윗이 아말렉 청년을 죽인 이유는 단순히 그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사울을 죽였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대신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가 더 있었습니다.
1) 그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여호와의 기름 부음받은 자를 죽인 것은 여호와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으며(삼상 24:11;31:4),
또한 신정 국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움 받는 자의 왕권을 침해하는 행위였습니다.
2) 아말렉 청년은 이스라엘에 귀화(歸化)한 자로서 이스라엘의 법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13절 주석 참조.
즉, 그는 적어도 이스라엘 사회가 귀화한 외국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얼마나 전심전력하고 있었는지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에 보답하는 의미에서도 이스라엘의 법도와 규례를 지키며 또한 그 왕에게 충성을 다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사울을 살해하였으니 은혜를 악으로 갚은 셈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그를 처단한 것은 하나님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는 행위인 동시에, 여호와의 권위에 대적한 악을 제거한 공의로운 행위였다고 할 수있습니다.
즉 그는 이와 같이 공의로운 처단을 함으로써 은연중 신정 국가의 왕의 면모를 보여 주었던 것입니다.
5) 네 피가 네 머리에 돌아갈지어다(16절)
“[16] 다윗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갈지어다 네 입이 네게 대하여 증언하기를 내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죽였노라 함이니라 하였더라”
네 피가 네 머리에 돌아갈지어다. -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영혼이 깃든 처소로까지 묘사되어 있습니다(창 9:4;레 3:17;17:11,14). 그러나 여기에서 피는 최고의 형벌, 또는 죄에 대한 책임 등 처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머리는 개인의 인격과 육체, 생명 따위를 의미하는 대표 개념입니다.
따라서 이 말은 '피를 흘린 그 책임이 바로 네 자신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즉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것이니"(창 9:6)라는 원리에 따라 다윗은 사울을 살해한 피의 대가를 아말렉 청년에게서 찾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예언대로 블레셋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리의 삶을 주관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 십니다.
진실하지 못한 청년은 자기 입으로 지은 죄로 인하여 죽임을 당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의 전사 소식을 듣고 저녁때까지 애곡하였습니다.
이렇게 애통해 했던 이유는 다윗이 사울 왕을 진정으로 사랑했으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의 직책을 존경했고 또한 여호와의 법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다윗의 이러한 태도 속에서 원수마저도 사랑하라고 하시며 실천하신 주님을 보게 됩니다.
오늘 하루도 진실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사울과 다윗의 운명을 바꾸십니다.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사울은 죽음을 맞이하지만,
아말렉과 전투에서 승리한 다윗은 왕권 승계에 가까워집니다.
사울의 인생은 죽음 이후에도 참담했습니다.
자신의 부고가 누군가의 출세를 위해 왜곡되어도 죽은 자는 말이 없습니다.
우리 앞에 놓인 다양한 승리와 실패 속에서 주님은 내가 무엇을 깨닫길 원하실까요?
2) 아말렉 소년은 사울 진영에서 도망쳐나왔다고 하지만 전투상황을 제대로 기술하지 못합니다(6~10절).
그는 누추한 행색(2절)과 정교한 진술로 거짓을 그럴듯한 진술로 둔갑시킵니다.
심지어 다윗이 관심을 보이자 자신이 사울을 죽이고 그의 왕관을 전리품으로 가져왔다고 대담하게 주장합니다.
죽은 생명이든 산 생명이든, 생명과 관련된 진실은 그 어떤 경우에도 왜곡되어서는 안 됩니다.
타인의 비극마저도 자신의 희극을 만들기 위해 함부로 사용한다면 하나님도 그의 생명을 가볍게 다루실 것입니다.
생명을 경시하고 가공된 진실이 가득한 세상에서 내 입술은 무엇을 담고 있습니까?
3) 사울의 죽음을 듣고도 다윗은 기뻐할 수 없었습니다(11,12절).
왕권이 다윗의 인생 목표였다면 사울의 부고는 가장 기쁜 소식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에게 사울은 제거해야 할 정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우신 왕이었고, 요나단은 왕위 경쟁자가 아니라 생명처럼 사랑한 친구였으며, 이스라엘의 패배는 하나님 나라의 패배를 의미했기에 비통에 잠깁니다.
내가 무엇에 울고 웃는지를 보면 내가 무엇을 가장 열망하는지가 드러납니다.
4) 다윗은 사울 왕을 자기 손으로 죽였다고 자랑스레 보고한 아말렉 소년을 처형합니다(13~16절).
이것은 ‘기름부음 받은 왕’을 죽인 것에 대한 처벌이자, 사울의 죽음에 대한 자신의 무죄함의 표시입니다.
다윗에게 청년이 예상한 반응과 기대한 보상은 모두 비켜갔습니다.
도리어 그의 얄팍한 꾀는 털어놓자마자 죽음의 수가 되었습니다.
다윗처럼, 아무리 내게 유리해보여도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이라면 단호이 거절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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