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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ook.daum.net/detail/book.do?bookid=KOR9788970711119#tab_review
“이 책은 오늘날의 교회생활이 성경의 원칙을 위배하고 있는 특정한 부분들을 확실하게 보여 준다. 이 책을 읽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패러다임의 안전지대 밖으로 여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내린 결론에 당신이 동의하든 하지 않든 간에, 당신은 그가 제시한 근거 자료에는 아무런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폭발적인 결론을 끌어 내는 학문적 연구의 집대성이다.“ - 랄프 네이버
역사상 대대로 목숨을 걸고, 제도권 기독교의 안전한 울타리를 담대하게 박차고 나왔던 잊혀진 나의 형제들과 자매들에게, 당신들은 예수님께서 그분의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크리스천이 누구나 다 하나님의 집의 제사장이요, 사역자요, 일군이라는 신앙 고백을 보전하기 위하여, 핍박을 견디고, 명성을 빼앗기고, 가족을 잃고, 고문을 당하고, 당신들의 피를 뿌리며 충성을 다 했습니다. 이 책을 당신들에게 바칩니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모든 지체들이 기능을 발휘하여 움직이는 몸”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막 7:9)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막 7:8; 마 15:2-6; 막 7:9-13; 골 2:8)
“진리가 빠진 관습은 역사 깊은 오류이다.” - 터툴리안
“기독교는 이교주의를 파기하지 않고 그것은 도입했다.” - 윌 듀란트
“옛 종교들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기독교도 종교가 되었다.” - 알렉산더 슈메만
“다른 많은 종교들에서처럼 기독교에도, 실용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목적을 위해 장시간에 걸쳐 서서히 발전시켜 온 기관들에 신학적인 해석을 가하고, 그리고 나서 시간을 거꾸로 돌려 이 기관들의 초기와 유아기를 그 해석을 사용하여 읽고, 사실 아무도 그 기관들이 그런 의미를 지녔다고 상상하지 못하는 시대에 그 기관들을 갖다 붙이는 것이 세계 어디에서나 보편적인 추세이다.” - 리챠드 핸슨
"본래의 크리스천 신앙에 속해 있었다고 생각되는 많은 제도들과 제도의 요소들은 알고 보면 중세에 속한 것들이다.“ - 에드윈 햇치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합니다! 우리는 신약성경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갑니다! 우리는 성경대로 살고 성경대로 죽습니다!”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주일 아침 설교 시간에 팔리 목사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팔리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의 교인인 윈체스터 스푸드체커는 그 동안 그 말을 열두 번도 더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그것이 그에게 색다르게 다가왔다. 남색 양복으로 위아래 잘 차려 입고 아내 트루디와 교회당 끝 줄에 앉아서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윈체스터는, 팔리 목사가 “우리는 모든 것을 성경 말씀대로 합니다”라고 고함을 질렀을 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팔리 목사가 설교를 시작하기 한 시간 전에 윈체스터는 트루디와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윈체스터의 가족(윈체스터와 트루디, 그리고 펠리시아, 게트루드, 자노비아 이렇게 세 딸들)이 주일 아침에 교회에 갈 준비를 할 때마다 심심치 않게 있어 왔던 일이었다. 그는 예배당 천장을 바라보면서 바로 그 한바탕 치렀던 일의 필름을 돌리고 있었다.
“여봇! 애들은 왜 아직도 준비가 안됐어!? 맨날 늦는단 말이야! 어째서 한번도 애들을 제시간에 준비를 못 시키는 거얏!?”
윈체스터는 늘 이렇게 푸념을 쏟아냈다.
이에 트루디도 질세라 대꾸했다.
“당신이 조금만 도와 줬어도 이렇게 늦지는 않지! 이 집에 나를 도와 주는 사람 누구 있나!?”
늘 매한가지였다. 이렇게 가시 돋친 말을 서로 주고 받은 다음 윈체스터의 화살을 딸들에게로 향했다.
“자노비아 스푸드체커! 넌 부모를 우습게 아니? 제시간에 준비할 수 없어!? 펠리시아, 내가 몇 번을 말해야 9시 전에 그 게임을 그만두겠니!?”
이에 자노비아와 펠리시아는 울어버렸다(열 받아서 식식거리며 고함지르는 윈체스터 앞에서 종종 세 딸 중 하나나 둘이 울어야 이 지긋지긋한 주일 아침 행사가 끝나곤 했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나서 잘 차려 입은 스푸드체커 가족은 차를 타고 교회를 향해 무시무시한 속력으로 달렸다(윈체스터는 늦는 것이 너무 싫어서 속력을 내다가 작년에만 티켓을 석 장 받았는데, 물론 석 장 다 주일 아침에 받은 것이었다).
교회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 차 안에는 적막이 흐르고 있었다. 윈체스터는 속에서 울화가 치미는 것을 참고 있었고, 트루디는 골이 나서 부루퉁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세 딸은 각자 저마다 속으로 오늘도 감내해야 할 괴로움을 참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루하고 재미 빵점인 주일학교 시간이 후다닥 지나가야 할 텐데….”
품위 있게 차에서 내린 윈체스터와 트루디는 환한 미소를 머금고 둘이 팔짱을 낀 채 다른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껄걸 웃으면서, 물론 세 딸들도 고개를 위로 쳐들고 아빠 엄마를 따라가고 있었다.
윈체스터는 지금 예배 바로 전에 있었던 이 일들을 고통스럽게 상기하며 팔리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자책하며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자신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불신자처럼 행동하던 내가 지금은 왜 이렇게 단정하게 빼 입고 앉아서 좋은 크리스천인 양 행세하고 있을까?”
“오늘 아침에 우리 집말고도 우리처럼 한바탕 한 가엾은 교인들이 많이 있었겠지? 그런데 우리는 다 하나님께 잘 보이려고 이러고 있겠지.”
이런 질문들은 전에는 한 번도 그의 의식 속에 자리잡은 적이 없었다.
윈체스터는 역시 위아래로 쫙 빼 입고 맨 앞자리에 앉아 있던 목사 사모와 아이들을 살짝 엿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팔리 목사님도 오늘 아침 사모님과 애들에게 소리지르지는 않았을까!? 흐음….”
팔리 목사가 주먹으로 강대상을 때려가며 오른손으로 성경을 번쩍 들고 “우리 제일 성서 신약교회는 이 성경대로만 따라갑니다. 무엇을 하든지 성경대로! 이 하나님 말씀을 떠나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습니다. 단1밀리미터도 못 갑니다!” 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윈체스터는 계속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그 고함 소리와 함께 윈체스터의 뇌리에는 별안간 전에 한 번도 떠오른 적이 없었던 생각이 스쳤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천이 정장을 하고 교회에 가야 된다는 말을 성경에서 읽어 본 적이 없는데? 이게 정말 성경대로 한다는 건가?”
이 한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로 이어져 막혀 있던 봇물이 터지듯 다른 삐딱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수많은 교인들이 얼어붙은 듯 의자에 꼿꼿이 앉아 있는 광경이 윈체스터의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그의 머릿속은 다음의 질문들로 홍수를 이루고 있었다. 크리스천이 해서는 안 될 질문들….
“이렇게 딱딱한 의자에 앉아서 45분 동안이나 셀 수 없는 뒤통수들을 바라보는 것이 성경대로란 말인가? 일 주일에 한두 번 정도, 그것도 몇 시간만 사용하는 이 건물을 유지하는데 그 많은 돈을 들여야 하는 이유는 뭔가? 팔리 목사가 설교할 때 교인 반 정도가 졸고 있는 건 또 뭐란 말인가?
우리 애들이 주일학교를 싫어하는 이유는? 왜 우리는 매주 똑같고, 하품 나오고, 빤한 의식을 주일 아침마다 치러야 하는가? 나는 왜 눈물 날 정도로 지루하고 영적으로는 하나도 도움 되지 않는 데도 꼬박꼬박 예배당엘 오고 있을까? 어째서 나는 이 불편한 넥타이를 매주일마다 매는 고역을 치러야 할까? 고작 한다는 게 머리로 가는 피의 통로만 막고 혈액순환만 방해하고 있을 뿐인데!?”
윈체스터는 이런 질문들이 그의 머리 속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자 무척 괴로웠다. 그런 생각들을 하는 것 자체가 불결하고 불경스럽다고 느꼈다. 하지만 뭔가 저 깊은 속에서 그 동안의 교회생활에 대해 의심을 품게 하는 강한 충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이런 생각들은 실은 지난 수년 동안 그의 잠재의식 속에 자리잡고 있었다가 오늘 아침 표면에 떠오른 것뿐이었다.
흥미롭게도 그날 윈체스터가 가졌던 의문들은 실지로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의 의식 속에는 한 번도 들어온 적이 없던 것들이었다. 우리들의 뇌리에 그것들이 스며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윈체스터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오늘날 교회들에서 행해지는 대부분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는 것들이다. 목회자들이 강대상에서 외치는 “성경적”이라든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른다든가 하는 그들의 말 자체가 그 자신들을 부정하고 있다.
걱정되는 것은, 오늘날 현대 기독교에서 행해지는 것들 중에 1세기 교회와 짝이 맞는 것을 찾아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사례 1) 마냥 기쁘기만 한 아이에게 주의를 주는 엄마를 보라(가라앉은 목소리로). “웃으면 안돼. 여기는 지금 교회야!(??) 하나님의 집에선 스스로 행동을 조심해야 돼!” - 다른 종교(유대교와 이교주의)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초기 크리스천들은 기쁘고 유쾌한 태도가 그들의 특징이었다(행2:46; 8:8; 15:3; 벧전 1:8).
신약에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성소로 갖고 계신다. 초기 크리스천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집으로 이해했다. 사도행전 2장 46절도 단지 초기 크리스천들이 어떻게 했느냐에 관한 보고이다. 물론 초기 크리스천들은 집에서 모인 게 사실이다. 그러나 집을 개방해서 거기서 사람들을 모아 모임을 갖는다 해서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집의 주인을 “교회를 세우는 일꾼(church planter)"으로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1세기에 세워진 교회들은 피와 땀으로 세워졌다. 그 교회들을 세운 일꾼들은 토요일에 회당을 떠나자마자 주일에 가정교회들을 세운 것이 아니었다. 신약성경에서 교회를 세우는 데 관련되었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이미 존재하고 있던 교회에서 먼저 평범한 형제로 신앙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교회 안에서 많은 문제들을 겪고 모든 면에 노출이 되어, 마치 공중전화 번호부를 들여다 보듯 교인들이 그들을 환히 알게 되었을 때, 그들은 교회의 인정을 받고 교회로부터 보냄을 받았다. 이것이 신약성경 전체의 일관된 패턴이다.
실로 처음 3세기 동안의 크리스천 신앙은 크리스천 공동체가 모임을 갖기에 적합하도록 개조한 개인 집들에서, 가정에서, 밖의 뜰에서, 길가에서, 그리고 거실에서 태어나서 모였다.(경우에 따라서는, 크리스천들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미 존재하는 건물들을 임시로 사용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솔로몬의 행각(참고 - 어떤 사람들은 사도행전 2장 46절을 인용하면서 예루살렘 교회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모였다고 주장하지만, 고대 예루살렘 성전의 구조는 중심에 성전이 있고 성전 주위의 장소들인 성전 마당이나 솔로몬 행각이란 곳이 있는데 성전엔 제사장이나 레위 지파 외에는 들어갈 수 없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성전 주위의 장소에서 성경을 토론하였습니다. 그러했던 모습이 주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된 후에는 언제나 성도들의 집에서 모였다는 것을 모든 성경학자나 교회사가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도시에는 여러 명의 감독들이 있었습니다. 행18:7, 행20:17, 빌1:1 등등)과 두란노서원이 그 실례들이다(행 5:12; 19:9). 그러나 그들의 보통 모임들은 언제나 개인 가정집에서 행해졌다.)
우리는 초기 크리스천들이 건물 하나 없이 천하를 어지럽게 했던 사실을 너무도 쉽게 잊어 버린다. 그들은 교회 건물의 도움(혹은 방해) 없이도 300년 동안 급속도로 성장했다.
4세기에 콘스탄틴(Constantine, 285,337)은 크리스천들이 죽은 성도들을 기리며 식사를 나누던 묘지들 위에 첫 번째 교회 건물들을 지었다.
즉, 그는 죽은 성도들의 시신들 위에 건축했던 것이다. 왜 그렇게 했을까? 그것은 적어도 1세기 전부터 성도들의 무덤들이 “거룩한 장소”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것의 뿌리는 죽은 자가 신성한 장소를 만들어 낸다는 이교사상에 기초한 것이다. 참고로, 카타콤의 사용은 2세기 말부터 5세기 말까지 약 3세기 동안 지속되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로마의 크리스천들이 핍박을 피해 카타콤에 숨었다는 어떤 역사적 증거도 없다. 그들은 죽은 성도들과 가까이 있고 싶어서 그곳에서 모였을 뿐이다.
교회 건축양식의 발달은 바실리카 단계, 비잔틴 단계, 로마네스크 단계를 거쳤으며 후에 나타난 그리스 이교 철학자인 플라톤의 가르침에 크게 의지한 12세기의 고딕 건축양식의 주요 메시지는 “하나님은 초월적이시고 도달할 수 없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그의 장엄하심 앞에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메시지는 하나님은 언제나 만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분이라는 복음 메시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
임마누엘의 오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16세기 때 개혁자들은 앞에서 말한 건축의 전통을 물려받았다. 대부분의 개혁자들은 전직 사제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모르는 사이에 중세 카톨릭의 사고방식에 의해 길들여져 왔다. 그래서 개혁자들이 새로 얻게 된 교회 건물들을 일부 개조했다 할지라도, 그들은 건축양식의 역할변화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개혁자들이 교회 관습에 혁신적인 변화를 원했더라도 일반 대중은 준비가 되지 않았었다. 마틴 루터는 교회가 건물이니 기관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주제에 관해 천 년 이상 지속되어 온 혼동을 그가 뒤집어엎기엔 불가능했었을 것이다. 개혁자들이 가져온 주요한 건축양식의 변화는 그들의 신학을 반영한다.
그들은 제단 테이블이 아닌 강단을 건물의 중앙에 두었다.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진리는 설교를 듣지 않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영적으로 자랄 수 없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개혁자들이 잔존하던 교회 건물들을 물려 받았을 때, 그들은 그 목적에 따라 그것들을 개조했다.
중세의 말기에 가서 강단은 교구 본당 교회들에 일반화되었다. 종교개혁과 함께 그것은 교회 건물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기구가 되었다. 강단은 의식 행위(미사)에서 성직자의 구두 교훈(설교)으로 중심이 대체되는 것을 상징했다. 회중석은 무대(강단)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구경하게끔 분리된 좌석으로서, 회중을 꼼짝 못하게 하고 그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리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교제와 상호 작용을 방해한다.
개신교회 건물의 건축양식은 설교하는 사람의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건물은 강단 우월주의에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회중의 기능을 억제한다. 이런 배열은 예배자가 다른 교인의 얼굴을 똑바로 보는 것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 대신 그것은 기능을 발휘해야 할 크리스천들을 “의자에 안성맞춤인 사람”으로 둔갑시켜, 앉아서 스폰지처럼 받기만 하는 예배 형태를 만들어 낸다!
다르게 표현하면 이런 건축양식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의 교제를 막고 오직 목사를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하게 한다! 교회 건물은 만민제사장주의를 부정하는 건축양식이다.
그것은 ekklesia(세상문화에 역행하는 공동체인 교회)의 본질에 모순된다. 교회 건물은 머리이신 그리스도 아래서 살아 숨쉬며 기능을 발휘하는 그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우리가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 있어 방해꾼 노릇을 한다. 교회 건물의 출현은 새로 변장을 하고 갑자기 나타난 유대사상과 이교사상 바로 그것이다.
건축양식에 나타난 함축된 계급적 구분은, 만일 그것이 제대로 설명이 된다면,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에 의해 거부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수세기 동안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 왔다. 왜 그런가?
눈을 멀게 하는 전통의 위력 때문이다. 우리는 건물을 소유하는데 있어 명예로운 지위를 안겨준 콘스탄틴의 자식들이 되었다. 우리는 바실리카(계급구조의 상징)를 우리에게 강제로 물려준 로마인들과 그리스인들에 의해 눈이 멀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플라톤식 건축양식을 떠맡긴 고트족에 의해 사로잡혔다. 우리는 우리에게 신성한 뾰족탑을 물려준 이집트인들과 바벨론 사람들에 의해 납치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에게 도리스식 기둥을 강요한 아테네 사람들에 의해 사기당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교회 건물이 아닌 가정집에서 모이기를 택한 사람들은 두 가지의 비대한 경비를 줄일 수 있는데, 그것은 목사 사례비와 교회 건물 경비이다. 참고로, 3세기의 씨프리안(200-258)은 성직자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관습에 관해 최초로 언급한 크리스천이었다. 그는 레위인들이 십일조에 의해 지원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오늘날에는 레위인 제사제도는 철폐되었고, 우리가 모두 다 제사장이 되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십일조를 요구한다면, 모든 크리스천들이 서로에게 십일조를 해야 한다! 씨프리안의 주장은 그 당시에 아주 보기 드문 주장이었다. 한참 후에 가서야 그것이 크리스천 다수에 의해 도입되었다. 성직자의 사례비에 관해서는, 사역자들이 처음 3세기 동안은 사례비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콘스탄틴이 등장해서 교회와 지방 금고와 국고에서 성직자에게 고정적인 봉급을 지급하는 제도를 제정했다. 따라서 신약성경에 기초하지 않은 해로운 관습인 성직자의 봉급이 탄생되었던 것이다.(제7단원 십일조와 성직자 사례비 p.209-p.210) 1세기의 장로들(목자들)은 결코 봉급을 받은 적이 없다. 그들은 자신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양떼들로부터 취하는 대신 오히려 그들에게 주면서 살았다.(참고 - 전임 사역자에 대한 회중의 책임을 주장하는 이들은 고전 9:4-10, 고전 9:13-14, 딤전 5:17-18, 갈 6:6, 히 13:17 등을 근거로 제시함.)
한 카톨릭 학자가 조심스럽게 인정한 것처럼, 콘스탄틴의 등장과 함께 “고대 로마문화의 각종 관습들이 크리스천 의식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 황제를 신으로 모시는 고대 로마의 제사 의식들까지도 그 모습 그대로 교회의 예배 속으로 파고들었다.” 개신교 진영에서 “훌륭한” 예배 인도자들은 다른 전통들이 공간을 사용해서 만들어 내는 분위기를 음악을 사용해서 연출해 낸다. 그들이 도출해 내는 분위기는 혼적인 감각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상생활과는 괴리현상을 일으킨다. 물론 그것이 실제가 아닌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개신교의 예배 순서는 머리 되시는 예수님의 목을 조르고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에 의해 예배가 인도된다. 거기에서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몸을 통해 마음대로 말씀하실 자유를 과연 갖고 계실까? 그 예배 의식 안에 하나님께서 형제나 자매에게 말씀을 주셔서 전체 회중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어디에 있는가? 예배 순서는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개신교의 예배 순서는 어디서 유래했는가? 그것은 그 기초를 카톨릭 미사에 두고 있다. 미사가 신약성경에서 유래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고대 유대교와 이교사상에서 발생한 것이다. 저명한 역사 학자 윌 듀란트에 의하면, 카톨릭 미사는 “부분적으로는 유대 성전 제사와 부분적으로 그리스의 신비의식인 정결의식, 대리제사, 동참의식 등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레고리 교황(540-604)이야말로 중세 미사를 완성한 장본인이라 할 수 있다. 그레고리는 이교의 마술적 개념들에 영향을 받은 지나치게 미신적인 사람이었다. 이교사상과 마술과 기독교의 혼합물인 중세사상을 구체화시켰다. 듀란트가 그레고리를 “최초의 완벽한 중세 사람”이라고 칭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세의 미사는 그 아버지인 그레고리의 사상을 반영한다. 그것은 이교와 유대교 의식이 합성되어 카톨릭 신학과 크리스천 용어를 뒤집어 쓰고 나온 것이다.
듀란트는 미사가 그리스 연극뿐 아니라 이교의 마술사상에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그리스 사상의 ‘죽음’이 교회의 신학과 의식에는 환생으로 둔갑했고, 수세기 동안 철학을 지배해 왔던 ‘그리스 말’은 기독교 문학과 의식의 전달 수단이 되었고, 그리스 신비주의는 미사의 신비로움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사실상 4세기부터 6세기 사이에 형성된 카톨릭 미사는 본질적으로 이교사상이다. 기독교인들이 이교도들로부터 다음과 같이 강탈해 온 것이다. 이교 제사장들의 제복, 정결 의식용 향과 성수의 사용, 예배 때 켜놓는 촛불, 로마 바실리카의 건축양식을 본 딴 교회 건물, 로마법을 기초로 한 “교회법”, 로마 감독의 칭호로 Pontifex Maximus(로마 대신과), 그리고 카톨릭 미사를 위한 이교의 제사 의식. 각종 개신교 교파들이 출현하면서 그들은 모두 자신들의 독특한 요소를 가미시켜 카톨릭 의식을 고쳐 사용했다.
그것을 다 열거하기엔 너무 복잡하고 광범위하다. 그것을 철저하게 다루려면 많은 분량이 요구될 것이다. 6세기 때 그레고리 교황 때부터 카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미사를 통해서 새롭게 희생된다고 가르쳤다. 그레고리가 미사를 제정한 이후, 카톨릭 미사는 마치 바위에 새긴 듯 천년 동안 거의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정체 상태도 마틴 루터(1483-1546)가 등장하자 최초로 수정 과정을 거치게 되었다. 1523년에 루터는 카톨릭 미사의 개정에 들어갔고, 이 개정판이 개신교 예배의 기초가 된 것이다. 그 개정판의 핵심이 바로 루터가 유카리스트가 아닌 설교를 모임의 중심이 되게 한 것이다.
참고로 루터는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부대에 넣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다른 주요 종교개혁자들과 마찬가지로 루터도 1세기 교회의 방식들로 돌아가려는 시도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이들은 그냥 카톨릭교회의 신학을 개혁하는 것에 사로잡혀 있었다. 소위 말하는 “종교개혁”이 교회 관습에 별로 개혁을 가져다 주지 못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랄 일이 아니다. 이것 자체가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기초를 갖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목사를 제하면 현대 기독교는 무너져 버린다. 목사를 제하면 사실상 모든 개신교회들이 갈팡질팡하게 될 것이다. 목사를 제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개신교는 죽게 될 것이다. 목사는 현대 교회의 독보적인 초점이요, 대들보요, 중심부이다. 그는 개신교의 구체적인 표현이다. 그런데 여기에 커다란 모순이 있다.
신약성경 전체에 오늘날의 목사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단 한 개의 구절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초기 교회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었다. 목사가 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직책의 뿌리에 관해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엡 4:11). 이것은 “목사”라는 말이 사용된 신약성경의 유일한 구절이다.(각주 - 이 poimen이라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가 사도행전 20:28과 베드로전서 5:2-3에 사용되었다.) 이 말은 복수로 사용되었다. “목사들”(참고 - pastors, 킹 제임스 성경)이다. 이것은 아주 중요하다.
이 “목사들”이 누구였든지 간에, 그들은 교회 안에서 단수가 아닌 복수였다. 결과적으로 Sola Pastora(단독 목사)의 전통은 성경적인 인정을 받을 수 없다. “목사들”로 번역된 그리스 원어는 poimen이다. 그것은 목자들이라는 뜻이다(“목사”는 목자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목사”는 교회 안에서 특정한 역할을 표현하는 은유적인 표현이다. 그것은 직책이나 직위가 아니다.
1세기 목자는 현대 기독교가 부여한 전문적이고 직업적인 개념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장 11절은 목사의 직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교회의 여러 기능 중의 하나일 뿐이다. 목자들은 보통 하나님의 양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사람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직책이나 직위와 목자들을 혼동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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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오늘날의 목사가 초기 교회엔 없었다면 그는 어디에서 왔단 말인가?
우리는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런 본능이 그 추한 머리를 들어내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모세 시대에 처음 등장했다. 장로 70명에 속했던 엘닷과 메닷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해서 예언하기 시작했다. 열성파 젊은이(여호수아)가 급한 목소리로 모세에게 "금하소서"라고 말했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꾸짖으며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다 예언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을 지배하려는 성직자적인 사고방식을 강하게 반대했다. 또 모세가 호렙산에 올라갔을 때도 그것이 등장했다. 백성은 모세로 하여금 그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눈에 보이는 중재자가 되어 달라고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갖기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이런 타락한 본능이 사무엘 때도 또 등장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그분의 직접적인 통치 아래 살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대신에 인간 왕을 달라고 아우성을 쳐댔다. 현대 목사의 씨앗은 신약 시대에도 찾아볼 수 있다. 교회에서 "으뜸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교회의 일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했다.
덧붙여서 어떤 학자들은 요한계시록 2장 6절에서 예수님께서 책망하신 니골라당의 교리가 초기 성직자의 출현에 대한 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타락 이래로 사람을 영적 중재자로 세우려 하는 인간의 추구는 그를 리더십의 계급구조에 중독되게 만들었다.
모든 고대 문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계급적인 사회 구조를 갖고 있었다. 후회스럽게도 사도 시대 이후의 크리스천들은 우리가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이런 계급구조를 교회에 도입해서 적용시켰다. 양떼들 중에는 장로들이 있었다(목자들 또는 관리자들). 이 사람들은 모두 대등한 관계였다.
그들 사이에는 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 교회를 세우기 위해 순회하면서 다녔던 일꾼이 있었다. 그들을 "보내심을 받은 사람" 또는 사도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이 돌봤던 교회들에서 장기간 머무르며 살지는 않았다. 물론 교회들을 지배하지도 않았다.
신약성경에는 리더십이 피라미드 구조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수평적인 관계였고 성도들이 사도들을 본받는 그런 관계였다. 이것이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Ignatius of Antioch, 35-107)가 등장할 때까지는 그랬었다.
이그나시우스는 교회 안에서 단독 지도자를 지향하는 위험한 비탈길로 첫발을 내디딘, 교회 역사상 최초의 인물이었다. 우리는 그에게서 현대 목사와 교회 계급구조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이그나시우스는 장로들 중에서 한 명을 다른 사람들 위에 올려놓았다. 그렇게 높여진 장로를 “감독”이라고 불렀다. 장로들에 속했던 모든 책임이 감독에 의해 수행되기 시작했다. “… 여러분은 감독을 하나님 아버지처럼 여겨야 합니다.…”(각주 - 소아시아의 교회들에 보내진 이그나시우스의 편지에 등장하는 내용임.) 이그나시우스에게는, 장로들이 12사도의 자리에 해당한다면 감독은 하나님의 자리에 서 있었다. 주의 만찬을 거행하거나, 세례(침례)를 주거나, 권면을 하거나, 교인을 징계하거나, 결혼을 허락하거나, 그리고 설교하는 것이 다 오직 감독 한 사람에게 국한된 것이었다. 장로들이 주의 만찬 때 감독과 함께 앉아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인도한 사람은 감독이었다. 공중기도와 사역의 책임도 그의 몫이었다. 아주 한정된 경우에만 소위 “평신도들”이 감독 없이 주의 만찬을 거행했다. 이그나시우스에 의하면, 감독이 떡과 잔을 관장해야 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그것들을 나눠 주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이것이 “단일감독” 또는 “절대감독체제”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감독이 장로들과 구별되어 그들 위에 위치하는 조직의 형태이다. 한 때 활발했던 회중은 이제 귀머거리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성도들은 단지 감독이 하는 것을 구경하는 존재가 되었다. 요컨대 감독은 교회의 단독 목사가 되었다(공중예배 속에 있는 전문가). 그는 회중의 대변인이자 머리로 인정되었다. 그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그의 손으로 다스렸다. 이 모든 역할은 감독을 현대 목사의 선구자로 만들었다.
씨프리안의 영향으로 구약의 제도에 문이 활짝 열려, 제사장, 성전, 제단, 그리고 희생제사가 부활되었다. 감독들은 “사제(제사장)”라고 불리기 시작했고, 이 관습이 3세기에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또 경우에 따라서 “목사”라고도 불렸다. 그 때는 어느 교회든지 다 감독이 있었던 때이다. 그리고 감독과 장로들을 합쳐서 “성직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더 기절초풍할 일은 감독이 죄를 사해 주는 “대제사장”으로 여겨졌다는 사실이다. 이 모든 추세는 모든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이라는 신약의 진리를 흐려 버렸다. 중세 전까지 장로들(이제 일반적으로 “사제=제사장”로 불리게 된)은 감독의 조력자였다. 그런데 중세에 변화가 일어났다.
장로들은 제사제도를 주관하게 되고, 감독들은 행정적인 책임을 맡게 되었다. 일반 교구의 사제들이 교회 안에서 감독보다 더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 사제가 성례를 집전하는 역할을 받았기 때문에, 장로(presbyteros)라는 말이 사제(priest)라는 말로 변했다. 결과적으로 라틴어인 “presbyter"가 영어로 번역되었을 때, ”장로“라는 뜻이 아니라 ”사제“라는 뜻이 되어 버렸다.
따라서 로만카톨릭 교회에서는 ”사제“라는 말이 지역의 장로를 일컫는 말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교사상을 도입한 교회 안의 걸출한 교사들도 큰 영향을 끼쳤다. 안디옥의 이그나시우스의 뒤를 바짝 따라서, 씨프리안은 교회의 조직이 로마제국을 모델로 해야 함을 강조했다.
그 결과 제국주의와 확고 부동한 계급구조가 크리스천 신앙에 침투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감독의 역할은 지역 교회의 우두머리에서 한 지역을 총괄하는 대표로 바뀌기 시작했다. 감독들은 로마 총독들이 그들의 관할 구역을 다스리듯 교회들을 다스리기 시작했다.
결국에 가서는 로마의 감독이 모든 권력을 독차지하고, 마침내 ”교황“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단일감독체제가 만민제사장주의를 삼켜 버렸다. 이그나시우스는 효과적으로 감독을 지역의 권력자로 만들었다. 씨프리안은 그의 교리(사도 직분이 계승되어 내려간다는)에 의해 감독을 모든 교회들의 대표자로 만들었다.
우리는 계층적인 지도 구조를 고대 이집트와 바벨론, 그리고 페르시아로 거슬러 올라가서 추적할 수 있다. 그것은 나중에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가서 꽃을 피웠다.
유대 나라가 크리스천 윤리를 주었듯이, 그리고 그리스가 신학을 주었듯이, 이제 로마는 조직을 주었다. 이 모든 것들은 여기 저기서 주워 모은 신앙과 섞어서 크리스천 혼합물을 만들어 냈다.
A.D. 313-325년에 기독교는 더 이상 로마정부의 핍박을 받지 않게 되었다. 콘스탄틴이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표현하는 ”성직자“라는 말을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었다. 로마의 클레멘트(Clement of Rome, A.D. 100년에 죽었음)는 크리스천 지도자와 그렇지 않은 지도자의 신분의 구분에 대해 글을 남긴 최초의 크리스천이었다. 그는 사역자들과 구별시키려고 ”평신도“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했다.
터툴리안은 크리스천들과 분리된 특별계급을 일컫는 ”성직자“라는 말을 사용한 최초의 저자였다. 사역을 하는 사람(성직자)와 사역을 받는 사람(평신도)의 개념도 신약성경엔 없다. 공중 앞에서 장로들이나 다른 사역자들을 인정할 때, 일반적으로 사도들이 손을 얹었다(일꾼들을 보냄을 받을 때도 교회나 장로들이 그들에게 손을 얹었다).
1세기에 손을 얹는 것은 직책에 앉히거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역할을 인정하거나 확인한다는 뜻이었다. 안수는 만민제사장주의를 짓밟는 교회의 계급을 만들어 내었다.
1세기의 목자들(장로들, 관리자들)은 오늘날의 안수 비슷한 것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들은 다른 양떼 위에 높여진 적이 없다. 그들은 양떼 중에서 섬기던 사람들이었다. 1세기의 장로들은 그 교회를 돌봐 주던 외부의 일꾼들에 의해 단지 공중 앞에서 인정되었을 뿐이다. 그런 확인 작업은 단순히 그들의 역할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능력이 부여된 것이 아니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설교하고 세례(침례)를 주거나 주의 만찬을 인도하는 것이 ”안수 받은 사람“에 국한된다는 말은 없다.
저명한 학자인 제임즈 던(James D.G. Dunn)은 아주 멋지게 표현했다. 성직자·평신도 전통은 대부분의 다른 이단사설보다 더 신약성경의 권위를 손상시켰다! 종교개혁의 슬로건은 만민제사장주의의 회복이었다. 그렇지만 이 회복은 부분적이었다. 개혁자들이 실패한 것은 공동체적 차원에서 신자가 제사장임을 회복하는 일이었다.
그들은 구속사적으로는 만민제사장주의를 회복시켰다(구원에 관계되는 것으로서는). 그러나 교회사적으로는 그것을 회복하는데 실패했다(교회에 관계되는 것으로서는). 이 진리를 회복시킨 사람들은 재제세례파 교인 혹은 재침례교인이라는 사람들이었다. 후회스러운 것은 이것의 회복이 왜 개신교와 카톨릭의 칼이 재세례파 사람들의 피로 물들었는가의 이유들 중의 하나였다.
비극적으로 루터와 다른 개혁자들은 교회에서 모든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게 하는 재세례파 교인들을 난폭하게 짓밟았다. 재세례파 교인들은 모든 크리스천은 모임에서 얼마든지 일어나 말할 자격이 있다고 믿었다. 그것은 성직자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루터는 이것을 너무나 반대한 나머지, 그것은 ”지옥 불“에서 나왔다고 했고, 그것을 믿는 죄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말했다(당신의 개신교 크리스천 유산을 보라). 용어는 바뀌었지만 독소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18세기에 가서 ”설교자“와 ”사역자“라는 말은 빛을 잃었고 ”목사“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게 되었다. 간단히 말해서 개신교 종교개혁은 로만카톨릭의 성직제도에 일격을 가했다. 그러나 그것은 치명적인 타격이 아니었다. 개혁자들은 여전히 단일감독체제를 고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단지 말만 무성한 이론상의 변화였다. 목사는 이제 감독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역 교회의 우두머리(수석 장로)로 인정받았다. 성직자·평신도의 오류가 돌에 새기듯 굳어졌기 때문에, 소위 ”평신도“로 하여금 사역이 목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드는 엄청난 정신적 압박감이 존재한다. ”그건 목사가 하는 일이야. 목사는 전문가이니까“라는 생각이 만연되어 있다.
우리는 아무런 성경적 근거도 없이 ”사역자“라는 말과 목사를 동일시해 버렸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엉뚱하게도 말씀을 전하는 것과 강단 설교를 동일시해 버렸다. 다시 말해 성경적인 아무런 근거도 없이.
비성경적인 성직자·평신도의 구분은 그리스도의 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해를 끼쳤다. 그것은 성도의 공동체를 1급과 2급 크리스천들로 갈기갈기 찢어 놓았다. 한 사람 중심의 사역은 신약성경과 완전히 동떨어진 것인데도,(참고 - 성경은 ‘각각의 모임마다‘ ”복수장로제가 성경의 진리다“라는 주장도 ”일인단독목회가 진리다“라는 주장도 뚜렷하고 명확하게 지지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며 교회모임의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사료되는바, 이에 대한 연구는 “은혜와 속죄" 홈페이지의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교회(LORD's Church, 마 16:18)의 모습"을 참조하기 바람.)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였고 그것이 우리의 기능을 마비시켰다.
목사의 직책은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 당신의 권리를 도적질해 갔다! 그것은 당신의 입을 막고 당신을 회중석에 꽁꽁 묶어 놓았다. 그것은 목사를 거대한 입으로 만들고 당신을 조그만 귀로 둔갑시킴으로써 몸의 진실을 왜곡시켜 버렸다.
현대 목회는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가 머리로 활동하심에 반대한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모든 결정권을 갖고 계신다.
목사는 자신을 교회의 인간 우두머리로 높여서 그의 직책으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대신 차지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아들 이외에는 아무도 머리로 세우지 않으셨는데, 목사는 ”정상의 고독“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성경에는 목사의 존재를 인정하는 한 가닥의 증거도 없고,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듯 감추어진 증거도 없다!
오히려 현대 목사는 이그나시우스와 씨프리안에 의해 널리 퍼진 단일감독체제에서 유래했다.
감독은 지역 장로로 서서히 탈바꿈해 갔다. 중세 시대 때의 장로는 카톨릭의 사제가 되었다. 종교개혁 때는 ”설교자“ 또는 ”사역자“로 바뀌었고, 결국 개신교 전체가 목을 매고 있는 ”목사“가 탄생했다. 이 모든 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개신교 목사는 약간만 개혁한 카톨릭의 사제일 뿐이다! 프런티어 부흥운동가인 조지 휫필드(George Whitefield, 1714-1770)는 근대 최초의 잃어버린 순회사역을 부활시킨 장본인이다.
※ “은혜와 속죄" 홈페이지(http://separati.cafe24.com)의 “성경에 나타난 주님의 교회(LORD's Church, 마 16:18)의 모습"을 참조하기 바람.
중세의 말기에 가서 강단은 교구 본당 교회들에 일반화되었다. 종교개혁과 함께 그것은 교회 건물 안에 있는 가장 중요한 기구가 되었다. 강단은 의식 행위(미사)에서 성직자의 구두 교훈(설교)으로 중심이 대체되는 것을 상징했다. 개혁자들은 제단 테이블이 아닌 강단을 건물의 중앙에 두었다. 종교개혁의 핵심적인 진리는 설교를 듣지 않고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영적으로 자랄 수 없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개혁자들이 잔존하던 교회 건물들을 물려받았을 때, 그들은 그 목적에 따라 그것들을 개조했다.
설교는 설교자를 교회 모임을 주름잡는 주인공으로 만든다. 그 결과 회중의 참여는 방해를 받고 아예 제외되어 버리기 일쑤다. 설교는 교회를 설교 장소로 바꾸어 놓는다. 회중을 공연 구경을 하는 벙어리 구경꾼으로 전락시켜 버린다.
설교자가 설교할 때 도중에 중단시키거나 질문을 하거나 할 수 있는 틈이 없다. 설교는 그리스도의 몸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도록 묶어 버리고 가두어 놓는다. 그리그 그것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주일마다 의자에 앉아 hand-waving(손을 흔드는)을 하는, 길들여진 제사장들만 길러 낸다. 형제들과 자매들이 모임에서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는데, 어떻게 상호간에 배울 수 있겠는가?
우리는 1세기에 행해졌던 지체 간의 상호 권면과 상호 사역의 회복이 필요하다. 일반 크리스천에게는 설교가 영적인 삶을 유지시켜 주는 으뜸가는 수단이다. 그것이 기도나 성경 읽기나 다른 성도들과의 교제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 하지만 깜짝 놀랄 사실은 설교가 성경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은 이교문화에서 빌려와서 키워진 다음 기독교 신앙에 도입된 것이다. 주님의 방식과 마찬가지로 사도행전에 기록된 사도들의 설교는 일방적인 독백(monological) 설교가 아니라 거의 대화체(dialogical) 형식을 띠고 있었다(즉 청중의 의견을 포함했고 그들에 의해 설교가 중단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말해 크리스천 소모품이라 할 수 있는 오늘날의 설교는 구약과 신약성경 둘 다와 거리가 먼 것이다.
크리스천 설교는 그리스 이교문화, 수사학에서 직수입된 것이다! 그리스 연설이 어떻게 크리스천 교회 속으로 파고 들게 되었을까? 3세기를 전후해서 그리스도의 몸에서 지체들의 역할이 시들어지게 되자 공백이 생겨났다. 이 때 즈음 자발적인 부담에 의해서 말씀을 전하고 다녔던 순회사역자들도 교회 역사의 장으로부터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 사람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성직자 계급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열린 모임들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교회 모임들은 더욱더 의식으로 바뀌게 되었다. 3세기 때는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무서운 속도로 퍼져나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동안 많은 이교 연설가들이 크리스천이 되었다.
그 결과 이교 철학 사상들이 아무도 모르게 크리스천 공동체 속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 당시 회심자들 중 일부는 공교롭게도 전직 이교 철학자들과 연설가들이었다. 후회스럽게도 그들 중 상당수가 초기 크리스천 교회의 신학자들이 되었다. 그들이 바로 “교부들”이라고 알려진 사람들이고, 그들이 기록한 글들의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다. 그들 중 터툴리안, 씨프리안, 아르노비우스, 락탄티우스, 어거스틴 등이 있다. 그것은 크리스천이 된 이교 출신 연설가들이 그들의 연설 방식을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와서 태어난 존재이다. 3세기에 와서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설교를 일반화시켰다.
그것은 무대(강단)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구경하게끔 분리된 좌석으로서, 회중을 꼼짝 못하게 하고 그들을 구경꾼으로 만들어 버리고 얼굴과 얼굴을 대하는 교제와 상호작용을 방해한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찬송을 부르는데 있어 전혀 결정권이 없다. 오히려 그들은 종종 성직자의 스태프(또는 비슷한 대접을 받는)에 의해 인도될 뿐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뿐만 아니라 찬송을 부르는데 있어서도 구경꾼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1세기 교회와는 아주 대조적인 것이다. 크리스천 성가대의 기원은 4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밀라노 칙령(313년)이 반포된 직후 크리스천에 대한 핍박은 끝이 났다.
콘스탄틴의 통치 아래서 유카리스트를 돕기 위한 들러리로 성가대가 생겨났다. 이것은 황제의 의식을 행진음악으로 시작하는 로마의 관습으로부터 따온 것이다. 성가대원들을 위한 특수학교들이 세워졌고, 그들은 성직자 다음의 지위로 대접받게 되었다. 성가대의 뿌리는 그리스 이교 신전들과 그리스 연극에서도 발견된다.
흥미로운 것은 중세 전에는 크리스천 교회에서 악기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2세기 동안 개혁교회들은 악기 사용 없이 시편을 읊었다. 성도들의 기능이라 함은 모임에서 그들이 스스로 노래를 선곡하고 인도도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에배하는 것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며, 사람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의 교회의 찬송을 인도하시도록 맡기는 것이다.
루터교 목사들은 길거리에서 그들의 긴 검은색 가운을 입고 다녔다. 그들은 또 나중에는 더 커진 둥근 칼라를 그들의 목에 두르고 다녔다. 이것이 매우 커져서 17세기에는 이 칼라가 “연자맷돌 칼라”라고 불렸다(이 칼라는 오늘날 아직도 루터교회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개혁자들이 여전히 성직자의 예복을 보존시켰다는 점이다. 개신교 목사들은 주의 만찬을 인도할 때 그것을 입었다. 이것은 오늘날 아직도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에서 행해지고 있다. 목사가 떡과 잔을 들어올릴 때 그의 성직자 가운을 입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때, 그는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는 것이다(개혁된 카톨릭 사제라는 것을). 1세기의 크리스천들은 교회 모임에 “치장하고” 참석하지 않았다. 그들은 가정집에서 단순하게 모였다.
어린아이의 초기 교육과 특히 신앙교육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었다. 현대신학은 크리스천 사상과 이교철학이 뒤섞인 작품이다. 신학대학원이나 성경대학에서 학위를 딴 사람들을 즉시 “자격자”로 인식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이다. 그런 학위를 따지 못한 사람들은 “부자격자”로 간주한다. 이런 기준에 의해 많은 주님의 택함을 받은 그릇들이 부자격자로 판정되었다. 그러나 신학대학원과 성경대학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아마 비성경적이고 불구 상태인, 인간이 고안해 낸 성직자 제도를 영구화시키는 일일 것이다.
당신은 옛적 길로 행하겠는가, 아니면 당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전통을 생각 없이 계속 고수하며 우리의 선조들의 판에 박힌 옛 관습에 빠져 있을 것인가? 성경의 기반이 없는 모든 전통들은 영원히 철폐되어야 한다. 우리는 바닥부터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이 성경적이라고 묵묵히 가정해 왔던 교회 관습들이 성경적인 근거가 전혀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관습들이 어디서 유래했는가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이교 전통에서 기원한 사람들의 작품인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당신은 그것들이 하나님의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의도를 방해하고 있음도 깨닫게 되었다. 또한 당신은 당신이 절망적으로 이 완고한 전통들에 의지해 왔음을, 아니 그것들의 덫에 걸려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에서, 냉정한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제발, 이런 전통들을 포기하지 않겠는가? 아니면, 그것들이 하나님의 방법과 동떨어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그것들을 따라갈 것인가?
당신의 교회 관습들에 관해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당신은 이 자리에서 그냥 무시해 버릴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의 충만함을 추구하기 위하여 인간의 전통과 깨끗이 결별하고, 당신이 발견한 절대적인 빛을 따라가는 데 충성을 다 하겠는가?
당신에게 비추인 그 빛을 받고 난 후, 당신은 당신이 갖고 있는 종교적 고안품들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계시 위에 올려놓고 계속 높일 것인가? 아니면, 당신 안에 비췬 이 빛에 주의를 기울이겠는가? 당신은 신약성경에 위배된 관습들을 끌어안은 제도권 교회를 박차고 나올 것인가, 아니면 당신의 유전(전통)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의 목에 계속해서 큰 연자맷돌을 지우고 있는 전통들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할 것인가?
당신은 바로의 성에서 계속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가나안 땅을 향해 가서 그 안으로 돌진할 것인가? 역사는 신앙 양심과 전통이 부딪혔을 때 하나님의 사람들의 대부분은 전통 쪽을 따라갔음을 보여 주고 있다. 바로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질문이 하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차례추천의 말 : 이 책은 300년 전에 나왔어야 했다
역자의 말 : 50년 전에라도 나왔어야 했다
감사의 말 : 나온 저깅 없는 책머리말 : 어처구니없는 듯한 제안
서론 : 우리는 과연 성경대로 해 왔는가1. 예배 순서: 콘크리트처럼 굳어진 주일 아침
2. 설교: 건드렸다간 큰일나는 개신교의 신성한 소
3. 교회 건물: 대를 물려온 집 콤플렉스
4. 목사: 지체들의 역할을 훔쳐가는 도적
5. 주일 아침 의상: 문제를 덮는 가리개
6. 음악 사역자들: 조연급 성직자들
7. 십일조와 성직자 사례비: 상처뿐인 지갑
8. 세례와 주의 만찬: 물 탄 주스같이 된 의식
9. 기독교 교육: 잔뜩 부어 오른 두개골
10. 다시 봐야 될 구세주: 혁명을 일으키시는 예수님
11. 신약성경에의 재접근: 성경은 그림맞추기가 아니다※ 참고 도서
(Jacksonville: Seedsowers, 1999) - 진 에드워즈 -
- “현대 교회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관습의 유래를 추적한 책”
※ 이 글을 읽고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고 실행하시기를 바랍니다.
※ 이 책의 모든 내용에 있어서 일부는 저와 의견이 다를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 (생명의 말씀사 홈페이지, http://www.lifebook.co.kr) 독자 평 ◎
① 신앙생활 잘하기 원하는 분들에게 강력 추천합니다| acts108님 |2003-5-26| ★★★★★
바쁜 와중에서도 쉽게 놓을 수 없었던 책이며, 제가 이미 다른 두사람에게 선물한 책이기도 합니다.
교회관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귀한 책입니다.
아마도 일반교회에서 전통에 찌들려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다소 충격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어느정도 아는 사람들은, 마치 그동안에 막혔던 것이 뚫린 듯 확연하게 성경적인 교회가 나타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기를 원하는 성도라면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입니다.
② 어처구니 없는 전통으로 인해 기형이 된 그리스도의 몸!| khj5256님 |2003-9-2| ★★★★★
책을 읽은 후, 저자의 표현대로 "사다리 꼭대기에 올라가서 엉뚱한 벽에 올라와 있음"을 알게 된 기분이다.
몹시 혼란스럽고 괴롭다. 그러나 한편 "엉뚱한 벽에 올라와 있음"을 알게 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랭크 바이올라는 제도적 교회를 떠난 후, 그리스도의 교회가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나 알고 싶어했다. 그는 매주 전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행하고 있는 비성경적인 관습들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국, 그의 방대한 연구 결과는 "교회가 없다"라는 책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그가 던진 질문을 던져본 적이 없었다. 예배순서, 설교, 교회건물, 목사, 주일아침의상 등이 언제, 어떻게 생겨났는가? 그것은 과연 성경적인가? 사실, 나에게 이 것들은 모두 신성한 것이었다. 누구도 문제를 제기해서는 안되는 영역이었다. 나는 이것들을 잘 지키고 유지하는 것은 성도로서 최상의 임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신성시했던 것들은 대부분 이교적인 그리스 로마 문화로부터 비롯된 것이며 신약성경에서 어떠한 근거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나와 나를 둘러싼 거대한 제도권 교회의 틀은 1세기 교회의 모습으로부터 돌아갈 수 없을만큼 변형되고 왜곡되어 있었다. 나의 신앙 양심은 지금의 제도권 교회가 신약성경에 위배되며, 전통으로 하여금 각 지체가 기능을 발휘하고 서로 상합하여 정세와 권세들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집합적으로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고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스도의 몸이 기형이 되었음에 속이 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프랭크 바이올라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는 도전한다. 계속 장로들의 유전을 택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할 것인가? 아니면, 제도권 교회를 박차고 나갈 것인가? 우리는 신앙의 양심에 따라 선택해야 할 것이다.
여기까지 글을 읽은 제도권 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프랭크 바이올라를 비난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서문만 읽어봐도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은 교회인 그리스도의 몸을 파괴하기 위함이 아니요, 오히려 세우고 존귀케 하기 위함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근거들로 인해 그의 주장에 반박할 여지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추천자 진 에드워즈의 말처럼 이 책은 300년 전에 나왔어야 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역사는 다른 행로를 택하였을 것이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교회에서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어지길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나는 프랭크 바이올라의 도전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제도권 교회밖을 떠나보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가 제시하는 도전을 다 이해하지 못함을 인정한다. 또한 마지막 부분에서 그가 주의를 준 것에 의해 섣불리 무엇인가 시도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사역의 장에서 그의 도전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야 하며, 나는 사역자로서 어떠한 모습으로 서야 하는지와 같은 많은 고민과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올라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벌써 그가 잠시 언급한 대안 중 하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모험할 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③ 그의 견해는 더 이상 과격하지 않다| himalayan님 |2004-5-14| ★★★★☆
프랭크 바이올라의 견해는 매우 과격하다. 그러나 나는 그가 성경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는 예배순서나 설교, 직분, 십일조, 성만찬 등 우리가 매우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 혹은 아니라고 생각은 하지만 왜 그것이 아닌지 말할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해서 역사적 사료들과 성경을 기초로 시원스럽게 말해준다.
그의 주장대로 이 책을 읽은 성직자라면 더이상 성직자이기를 포기해야할지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그의 주장에 대부분 공감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주장과 현실과의 사이에서 나의 역할을 찾고 싶다. 누군가는 그리로 가도록 인도해야하겠기에. 내가 성직자이기를 그만두는 때가 온다면 바로 그 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은 그의 주장이 더이상 과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면 하나님께서 그 피로 사신 교회를 지금 그렇게 만들어 가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가정교회나 셀교회의 모델도 그의 근접하고 있다. 성직자로서 나는 성직자가 되지 않기 위해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성직자로 만들때까지 성직자로서 남을 것이다.
<교회가 없다 - 현대 교회의 인간적 전통의 유래를 찾아서 (Pagan Christianity, “기독교가 이교사상으로 가득하다”)>(도서출판 대장간) - 프랭크 바이올라(Frank Viola) 지음 이영목 옮김 -에서 일부를 발췌 요약정리 하였음.
첫댓글 정말 좋은 책 ,,,크리스천 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라는 책 이라네요
전에 많이 출간되었다던데,,,요즘 구할수가 없네요
읽으면 너무 충격,,, 그자체 라는데요 지금 까지의 우리 크리스천의 생각을 확
깨 부수는 책이라네요 가지고 계신분 같이 공유좀 부탁드립니다
구할수 있으면 좋겠네요,,,
이 댓글을 보시는 분들 꼭 구해서 읽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감에 큰 방향과 나침판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
오늘 책을 받았습니다.
제목이 달라져서 못찾았군요.. 이 책을 이해할려면 기본적인 하나님의 경륜을 알아야 할듯 한데요...
신구약을 구분할줄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문제인것 같습니다.
좋은책 소개 시켜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예전 교회에서 느껴던 문제점을 그 유래를 역사적으로 잘 정리해 놓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관한 흩어져 있던 자료들을 한꺼번에 정리에 놓은 책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어느정도 말씀 지식에 신구약을 구분하는 시대적인 구분이 필요하군요
저는 아직 안받았습니다 어제 친정 갔다 오늘 왔는데,,왔다갔나 모르겠네요
읽으시고 소감 올려주세요
초반부를 보았는데 역시 거짓은 항상 변하지만 진리는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국 워치만니가 이야기 했던 내용들도 이분도 동일하게 이야기하더군요..
예전 종교개혁을 했던 이들이 카톨릭의 전통을 답습했듯이 지금도 기존교단에서 벗어나 성경대로 하자고
교회를 만든 사람들이 결국 교단들이 만들어 놓은 프래임에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답답했었습니다.
결국 말씀에 대한 의문과 토론없이 수동적인 자세로는 한계가 있더군요..
보라추억님도 다 읽어보시고 소감한번 올려주세요..
저도 다 읽고 나면 일부 정리할께요...
잘 알겠습니다 저도 지금 기 대에 차 있습니다
언능 읽어보겠습니다 초반 잠깐 보니 역시 좋은 책이면서 많이 빛을 보지는 못하였나 봅니다
제가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강력한 메세지가 담겨 있는것 같고요
암튼 열심히 읽겠습니다
이 내용을 만약에 현실교회 목회자가 읽은 다면 그 표정이 어떠할까?
꼭 한번 보고십습니다...
보스목사....
군림목사....
성도를 .....자신의 부하나 노예로 아는 목사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주님 그 피로 속죄함 받은 사역자인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졸업장 목회자인지? 거듭난 목회자인지?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복음을 전해야하는 주님에 명에 따라
직업이 아닌 사명감으로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정말 이 시대를 향해 변질된 종교의 모습이 무엇인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읽어보고,
자신의 신앙모습을 성찰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울러, 프랭크 바이올라 저서 중 유기적인 교회세우기, 알려지지 않은 신약성경 이야기 추천합니다.
교회란 무엇인지...본질적으로 생각하게 하며,
신약서신들이 어떠한 배경에서 기록되게 되었는지 사도행전의 흐름을 따라 열어가는 귀한 책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신약성경 이야기 한번 읽어 봐야 겠군요.
그리고 이 책과 더블어 워치만니의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을 추천드리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약간 염려스러운 것은 성경적 교리가 받쳐주지 못해 은사주의로 흐를수 있을 가능성이 좀 있더군요...
이런부분은 워치만니의 교회에 관한 내용이 정말 탁월한 것 같습니다.
저도 읽어본 책입니다. 추천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