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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동품이나 민속품을 부담없이 사고 파는 경매에는 이런저런 쏠쏠한 재미가 숨어 있다. 흥정이 한창 진행 중인 한 경매장.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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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두깨·화병·가마요강·송나라 다완…
- 시간 지나갈수록 고가 물건들 나타나
- 5공화국 역사 담은 우표책 6만원 낙찰
공중파 방송에서 내보내는 'TV쇼, 진품명품'이라는 문화재 감정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으신지요.
보통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꽃병으로만 보이는 도자기가 억대의 가치를 갖고 있고, 아무리 살펴도 별다른 것이 느껴지지 않는 그림 한 점에 수천만 원의 가격이 매겨지는 것을 보면 그저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40·50대들이 어린 시절 집 한편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장롱 등에도 상당한 평가가 내려집니다. 이쯤되면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있던 이들은 "혹시 너네 집에는 돈 되는 물건들 좀 없냐"며 서로 간에 농담을 던지게 마련입니다. 또 괜찮은 물건을 든 채 한 번쯤은 저런 프로그램에 나가 소장품의 진위 여부와 값도 알아보고, 때로는 전문가처럼 저 물건은 요만큼의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평가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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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손때가 묻은 옛 물건에는 그들의 삶과 애환, 기쁨과 슬픔이 담겨 있어 가치가 높다. 경매에 참가한 한 시민이 나비문양의 장식품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 있다.
박수현 기자 parks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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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입니다. 눈을 조금만 돌려보면 누구나 '진품명품'의 출연자와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내가 가진 물건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알 수 있고, 남이 내 놓은 진귀한 것들을 서로 간 흥정을 통해 품 안에 안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는 공중파 방송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고가의 문화재는 보기 힘듭니다. 도자기라고 해봐야 연대가 그다지 오래된 것은 없습니다. 골동품은 조선 말기나 근대의 것이 대부분입니다. 하지만 할머니가 시집오던 가마 내에서 썼을 듯한 요강에 몇 만 원의 가격이 매겨지고, 서로 간의 경쟁심 때문에 모양이 반듯한 조선 말기의 책상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것을 보면 신기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추억의 물품들도 인기가 많습니다.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10~20년 전 신발주머니가 매물로 등장하고, 1970년대에 나온 초등학교 2학년 자연 교과서도 아주 귀중한 대접을 받습니다. 지금은 은퇴한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의 사인볼도 고가(?)에 거래가 이뤄집니다.
서론이 너무 길었습니다. 이제는 여기가 어딘지를 말해야 할 때 같습니다. 부산 도심과 인근의 곳곳에 숨어 있는 '골동품 경매장' '민속품 경매장'입니다. 경매라고 하면 보통은 부동산을 떠올립니다. 또 문외한이 섣불리 덤볐다가는 손해보기 십상이라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근데 골동품과 민속품 경매장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 흥미가 생깁니다. 그러다가 맘에 드는 물건이 있으면 손을 들어 가격을 부른 뒤 낙찰을 받으면 됩니다. 재수가 좋으면 몇 만 원으로 꽤 훌륭한 것을 거둬들이는 행운이 따르기도 합니다.
시간이 되시면 한 번 들러보십시요. 이런저런 신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노라면 한두 시간은 후딱 지나가게 됩니다. 소소한 재미가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1.김해공항 인근 한적한 곳에 자리한 한 골동품 경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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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에는 과장을 조금 보태 '없는 것이 없다'. 각종 골동품과 민속품들이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
온갖 물건들이 더 쌓아놓기가 힘들만큼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고가구를 비롯해 사면에 부처얼굴이 새겨진 청동조각품, 도자기, 수십 년은 됐을 듯한 낡은 전축, 액자에 든 그림, 병풍, 놋그릇, 작은 종, 나무 고양이, 삼발이 화로…. 말 그대로 '없는 것이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성싶다.
오후 2시가 되자 이런저런 것들을 구경하던 10여 명이 자리에 앉았다. 이어 경매사가 경매의 시작을 알렸다. 맨 처음 경매대에 올라온 것은 나무로 된 그릇받이. "수석을 받쳐도 좋고…, 1만 원부터 출발합니다"라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사람이 손을 들었다. 몇몇이 호기심을 보였지만 더 높은 금액은 곤란하다는 표정들. 그릇받이는 곧바로 1만 원에 낙찰됐다.
뒤 이어 홍두깨와 화병, 옛 여인들이 시집갈 때 가마에서 사용했다는 가마요강 등이 소개됐다. 홍두깨와 요강은 유찰됐고 화병은 4만 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얼굴이 담긴 부조가 등장했을 때 경매사는 "우리가 밥을 먹고 사는데 큰 기여를 한 사람"이라며 참가자들의 구매욕구를 자극했다. 3만 원에서 출발했지만 수요자는 없었다. 이 부조품은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뒤편으로 물러섰다.
경매장에는 시간이 지나갈 수록 고가의 물건들이 나타났다. 송나라 때 것이라는 다완은 보기에도 아름다웠다. 시대가 오래된 만큼 경매가도 10만 원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진품 여부가 불확실했던 탓인지 끝내 낙찰자가 나오지 않았다. 이날 경매는 밤늦게까지 이어졌다.
#2. 부산 남구 문현2동 또 다른 경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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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매장에서 다듬이돌과 다듬이 방망이를 산 뒤 활짝 웃고 있는 부부 한 쌍. |
도자기나 장롱 등 옛 물건 대신 시대가 오래되지 않은 일상품이나 엔틱제품들이 그득했다. 이곳에서 만난 이들은 이런 것들을 '근대사 물품'이라 불렀다.
사람들이 한 명 두 명 모이는가 싶더니 오후 8시께 야간경매가 시작됐다. 예전의 이발소에서 볼 수 있었던 드라이어기가 경매대에 놓였다. 일본의 도시바 제품. 겉은 조금 낡았지만 작동은 제대로 됐다. 뒤 이어 나타난 것은 모 회사의 상표가 붙은 맥주. 10여년 전 첫 출시되던 당시의 제품으로 병을 따지 않아 내용물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20년은 족히 되었을 어린이 분유와 이유식도 개봉이 되지 않은 상태로 가격을 묻기 위해 나왔다. 경매를 위탁한 주인은 "먹으면 큰일 나지만 소장 가치는 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성행위를 노골적으로 그린 춘화도 등장했다. 모두들 박장대소를 했지만 남 보란 듯이 벽에 걸어놓기는 힘든 것이라 유찰의 쓴잔을 들었다. 초등학교 교육용으로 사용됐을 대형 주판은 6만 원에 흥정이 이뤄졌다. 5공화국의 역사를 우표로 담은 책자는 치열한 경쟁 끝에 역시 6만 원의 가격표를 받았다. 만화 영심이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주머니와 아톰 그림이 그려진 물놀이 튜브 또한 경매 참가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군화에다 스케이트 날을 단 스케이트화는 궁색했던 예전을 추억하게 해주는 소품이었다.
경매 단가가 크지 않은 터라 참가자들은 부담없이 '베팅'을 한다. 주위를 지나다가 우연히 들른 젊은 부부는 1960년대에 발간된 동화책 한 권을 1만 원에 낙찰받고는 아주 행복해 했다.
# 경매는 어떻게 이뤄지나
- 최고가·의뢰자 제시가 두 종류 진행
- 상인이 다수, 일반인의 참여·의뢰 환영
- 희망물건 흠 여부 시작 전 꼼꼼히 살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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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경매사가 모양이 미끈하게 빠진 토기를 대상으로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
부산지역의 골동품 및 민속품 경매장은 10여 군데에 이른다. 문화재급의 물건을 취급하는 곳도 있고, 몇십 년 전에 쓰던 생활용품을 다루는 곳도 적지 않다. 아직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에 경매 참가자들은 주로 관련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문호는 개방되어 있다.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경매장의 원칙이다. 어떤 사람이 들어오든 거부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더 반긴다. 군중이 많아야 흥정에 불이 붙고, 경매사의 목소리에 더욱 신바람이 난다.
경매장에 오는 이들 가운데는 희귀물품 수집가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 소장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전시관을 차리거나 자료를 대여하기도 한다. 이들의 주요 과녁은 오래된 잡지와 책자 등이다.
경매물건은 주로 상인들이 내놓는다. 그렇지만 보통 사람들도 자신이 소장한 골동품의 경매를 의뢰할 수 있다.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는 낙찰금액의 일정 부분을 수수료로 받는다.
골동품 및 민속품 경매는 두가지 종류로 진행된다. 하나는 아예 유찰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날 제시된 최고가에 물건을 넘기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의뢰자가 제시한 가격에 미치지 못할 경우 낙찰시키는 것이다. 낙찰과 유찰 비율은 대개 반반이다.
경매가 시작되기 전 경매사는 참가자들에게 미리보기를 해 줄 것을 당부한다. 거래가 끝난 뒤 물건에 흠이 있다는 등으로 시비가 일어날 수 있어서다. 또 경매가 완료된 것에 대해서는 환불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꼼꼼한 관찰은 필수적이다.
경매를 주최하는 측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있다. 문화재 지킴이라는 표현을 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시장조차 형성되지 않는다면 골동품이나 민속품 거래는 음성적으로 흐르게 되고 이 때문에 당연히 부정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서다.
부산경매장을 운영하는 이창용 대표는 "해당 시대의 상황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모두 골동품이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런 경매가 생활용품의 새로운 발견일 수도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아리랑민속경매장의 김봉근 대표 역시 "문화재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판매를 해서는 안 된다"며 "건전한 거래를 통해 문화재의 해외반출을 막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다"고 언급했다. 연당 경매장을 이끌고 있는 김종태 사장도 "지역민들이 타지역으로 가지 않고 가까이에서 우리나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경매장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경매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도난물품, 이른바 장물이 나오는 경우다. 경매 주최 측에서 아무리 신중을 기한다고 해도 물건의 출처를 일일이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가끔씩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따라서 아주 의심이 가면 주최 측은 경매 위탁을 거부하게 된다.
경매를 맡은 경매사들은 '즐거운 진행'을 강조한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여라"는 말도 있지만, 분위기가 딱딱해서는 신명이 나지 않아서다. 또 흐름을 이어가고 때로는 끊는 역할도 중요하다. 경매사 김석희 씨는 "경쟁이 과열돼 가격이 예정가 이상으로 올라가면 경매를 중단시킨다"며 "서로 재미있게 사고파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일이 그렇듯 경매장에서도 이변이 존재한다. 드물지만 아무도 가치를 알지 못했던 물건이 나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열쇠 뭉치 10개를 낙찰받은 한 참가자는 나중에 닦아 보니 그 가운데 손으로 두드려 만든 조선시대 열쇠 뭉치가 한 개 섞여 있는 행운을 누린 적이 있다고 술회했다.
# 가볼만한 골동품·민속품경매장
■부산경매장
부산 남구 문현2동에 있다. 야간 경매가 이뤄지는 것이 특징이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후 8시께 경매장 문을 연다. 시대상을 반영한 생활용품들이 주로 거래된다. (051)635-8326
■석심경매장
부산 강서구의 맥도생태공원 맞은편에 경매장이 있다. 매주 목요일 오후 1시에 경매를 시작한다. 연대가 오래된 고가의 물품부터 조선시대 때 사용하던 일반 용품들도 많다. 017-558-8756
■아리랑민속경매장
부산시 기장군 일광면 일광해수욕장 인근. 매주 화요일과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두차례 경매가 이뤄진다. 수백년이 된 도자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는 것이 장점이다. 민속용품들도 쓸만한 것이 꽤 된다. 017-577-0114
■연당경매장
수영구·연제구 선거관리위원회 건물 맞은편. 경매는 매주 금요일 오후 2시에 진행된다. 골동품과 생활용품도 취급을 하지만 고미술품이 다른 곳에 비해 많은 것이 특징이다. (051)757-4103
■범어고미술경매장
부산 기장군 일광면 일광해수욕장 내. 고미술품과 민속품, 골동품, 근현대사 물건이 풍부하다. 매주 월요일과 토요일 경매를 한다. 010-5287-6167
■간절곶 파라다이스 골동품 경매공원
울산시 울주군 간절곶 해변 인근. 매주 일요일 오전 경매 실시. 골동품을 비롯해 다양한 민속품이 경매대에 오른다. 010-9736-90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