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성경 말씀: 고전 16;10-,
성구: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고전 16;14,)
<서론>
본문 14절에 보면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사람의 일처럼 인간적인 행동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관점에서 생각하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믿음의 생각인 사랑을 행하라고 합니다. 어떤 것이 인간적인 생각이고 믿음의 생각인지를 생각하여 봅시다.
1. 디모데가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10-11,)
본문 10절에 보면 “디모데가 이르거든 너희는 조심하여 저로 두려움이 없이 너희 가운데 있게 하라. 이는 저도 나와 같이 주의 일을 힘쓰는 자임이니라.‘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동역자이긴 하지만 아직 배우는 중에 있는 사람입니다. 또 나이도 연소하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은 그를 무시하는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디모데도 아직 배우는 자리에 있지만 바울의 동역자이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형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또 바울이 보낸 자이기 때문에 바울을 대하는 것처럼 예우를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디모데를 존경할 수 없지만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일을 하는 바울의 동역자로서 조심스럽게 대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즉 아직 배우는 중이면 무시하기보다는 잘 배우게 하려고 조심하여 두려움이 없게 대하라는 말입니다. 또 인간적으로는 조금 부족하여도 하나님의 믿음으로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부족한 자라도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사랑으로 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한 사람에 대해서도 인간적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는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11절에 보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저를 멸시하지 말고 평안히 보내어 내게로 오게 하라, 나는 저가 형제들과 함께 오기를 기다리노라.” 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과 아볼로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에 바울의 심부를 을 올 때에는 그 심부름에 대해서는 분명히 잘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의 맡은 일을 하는데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다고 멸시하는 행동은 인간적인 행동입니다. 사람을 멸시하면 평안히 자기의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디모데가 자기의 맡은 일을 잘 감당하게 하려면 불안하게 만들지 말고 평안하게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평안하게 해 줄 때에 디모데가 자기의 맡은 일을 잘 할 수 있습니다. 즉 인간적인 관점은 높고 낮음을 중요시 여기지만 하나님의 믿음의 관점은 하나님이 맡긴 자기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관점에서 능력을 판단하지 않고 자기의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평안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관점의 생각이고 이것이 사랑입니다. 우리는 누구든지 자기의 맡은 하나님의 일을 평안하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사랑의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2. 아볼로를 기다리지 말라.(12,)
본문 12절 상반 절에 보면 “형제 아볼로에 대하여는 저더러 형제들과 함께 너희에게 가라고 많이 권하되.... ”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아볼로가 성경을 잘 가르치므로 아볼로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디모데가 오기보다는 아볼로가 오기를 바란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디모데가 온 것은 성경을 가르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라 형제들의 문안을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아볼로에게 고린도 교회에 가기를 권하여도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이 형제들을 문안하게 위하여 단순한 방문을 하는 것을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오지 않은 것입니다. 또 아볼로는 요한의 세례를 중심으로 성경을 가르치므로(행18;25,) 고린도 교인들은 좋아하지만 아볼로가 생각하기에는 고린도 교인들은 더 장성하기 위해서 아볼로의 성경 가르침보다 더 장성한 성경을 배워야 하므로 오지 않은 것입니다. 즉 고린도 교인들은 문안하는 일에도 자기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오기를 좋아했으며, 자기들이 더 장성한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아볼로를 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볼로는 고린도 교인들의 이런 인간적인 것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서 오지 않은 것입니다. 이렇게 인간적인 생각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일을 더 많이 하려고 하는 것이 믿음의 생각이고 사랑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을 하려고 하는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사랑의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12절 하반 절에 보면 “.... 지금은 갈 뜻이 일절 없으나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아볼로가 오기를 바라지만 지금은 고린도교인들이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의 인간적인 생각이 없어지고 성경을 가르치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이 생기면 아볼로도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볼로도 ‘기회가 있으면 가리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인간적인 것이 아닌 하나님의 일에서 아볼로도 고린도 교회에 올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일과 달라서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중 자연스럽게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생각보다 하나님의 일을 중요시 여기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3. 강건하여라.(13,)
본문 13절 상반 절에 보면 “깨여 믿음에 굳게 서서... ” 하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하는 고린도교인들에게 사랑의 행동을 하려면 깨여 있고, 믿음에 굳게 서야 한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깨여 있으라는 말은 현제에 만족하지 말고 발전하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깨여 있다는 것은 잠자는 것의 반대말인데 잠자는 것은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며, 깨기 위하여 충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깨여 있으라는 말은 현 상태를 유지하고 충전하지만 말고 발전하려고 움직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믿음에 굳게 서라는 말은 앉아 있지 말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기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현 상태를 유지하지 않고 행동으로 옮기는 생활을 하는 것이 깨여 있고 믿음에 굳게 서는 행동이며 이것이 인간적인 생각을 버리고 사랑하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현 상태를 유지하는 잠자는 생활을 버리고 깨여 믿음에 굳게 서는 사랑하는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본문 13절 하반 절에 보면 “....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하고 있습니다.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말은 당시에는 여성은 약자이기 때문에 소극적이였으며, 남자는 강자이였기 때문에 적극적이였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말은 적극적인 생활을 하라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기 때문에 강자로서 적극적인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처럼 여자나 남자나 모두 강해질 수 있는 때에는 남자를 지칭하지 않고 모두가 강자가 되기 위하여 적극적인 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적극적인 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서 모든 일에 강자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십니다. 또 강자가 될 때 강자로서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적극적인 생활을 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강하여져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행동을 하여야 합니다.
<결론>
행복은 실천에
고등학교 시절에 170명 중 169등을 한 미국 교포 2세 청년이 있었습니다. 대학은 문턱을 밟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회에서 귀감이 된 사회사업가에게만 수여하는 ‘알베르트 슈바이쳐 인간 존업상’을 받았습니다. 또 1996년에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대 상;을 탔습니다. 그래서 2년 뒤에는 워싱턴 포스트지가 2개 면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경이로운 22살의 젊은이‘라는 제목의 기사로서 그의 스토리를 소개했습니다.
재미 한국인 환경운동가 대니 서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책을 한 권 썼는데 제목이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입니다. 그는 하루 15분의 실천이 기적을 만든다고 주장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아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아는 것을 실천하는 데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앎을 삶으로 이여가지 않기 때문에 많은 이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합니다. 아는 만큼 실천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온전히 실천하려고 노력할 때 세상은 더 밝고 아름답고 따듯해 집니다. 행복은 작은 실천에서 자랍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모든 것이 부족하였어도 실천을 한 청년은 모든 사람의 귀감이 되었습니다. 실천은 사랑의 행동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처럼 인간적인 관점을 벗어나 사랑하는 실천을 행하여 디모데처럼 부족한 사람이 와도 하나님의 일을 실천하는 것을 받아 사랑하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아볼로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더 발전하려고 하며, 깨여 굳게 서서 남자답게 적극적으로 생활하는 것이 실전하는 사랑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