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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순간순간이
아름다운 마무리이며
새로운 시작이어야 한다.
- 법정스님 -
한 정맥의 끝이자 또 다른 정맥의 시작점에 섰다.
이 길의 과정에는 어떤 고난이 숨겨져있으며
어떤 감동이라는 보물이 숨어있을까?
칠장산에서 태안 안흥진까지 284.7km.
또 열심히 걸어보자고
그래 걸어보자고.
◀ 산행도우미 ▶
▶ 칠장사에서 지난번 진행했던 3정맥 분기점까지 약 30분정도 올라간다. 네비정보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칠장로 399-18 031-673-0776
▶ 3정맥 분기점에서 왔던 길을 되돌려 칠현산, 칠장산 갈림길에서 칠현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 헬기장을 지나고, 노부부의 칠순비라고 쓰인 돌탑을 지난다.
▶ 칠현산 정상은 출발 약 한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정상석은 돌탑위에 있다.
▶ 헬기장, 임도를 지난다.
▶ 칠현산 정상을 지난지 30분 정도에 생거진천이라고 쓰여진 이정목이 서 있다. 이곳이 덕성산 갈림길이다. 덕성산은 좌측, 정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덕성산 다녀오실 분들은 갈림길로 돌아와야한다.
▶ 높낮이가 심하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 돌탑이 쌓여져 있는 곳이 무티고개이다.
▶ 별다른 특징없이 사장골정상이라고 붙여놓은 안내판이 있다.
▶ 무이산 갈림길에서는 정상으로 가는 길은 정맥길이 아니다. 다녀오실 분은 다녀오시되 다시 되돌아 나와야한다.
▶ 돌탑이 있는 곳이 만디고개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아래로 지나간다)이다.
▶ 만디고개를 지나면 푸른색 그물이 능선길을 막고 있다. 사유지인 관계로 출입금지를 하여놓아 어쩔 수 없이 우회를 한다. 급하게 내림 길이 이어지다가(내리막길을 내려서는 도중에 도로가 보인다) 좌측으로 휘어지면서, 아스팔트 도로인 옥정현에 도착을 한다.
▶ 옥정현에 도착을 하면 마스코트 인형이 있는 곳, 우측으로 시멘트 포장길이 있고, 그 길로 들어서면 곧 시그널이 이어진다. 부지런히 걸으면 3시간, 쉬엄쉬엄 걸으면 4시간정도소요.
네비정보 별빛고운언덕 충북 진천군 이월면 진안로 532 / 신계리 582-1번지. 별빛고운언덕은 옥정현 바로 밑에 위치한 펜션이다.
▶ 옥정현 10분정도 거리에 헬기장이 있고, 헬기장을 지나면 삼각점이 있는 409.9봉이다.
▶ 송전탑을 지나고, 돌로 둘러쌓여진 무덤을 비껴 깨끗이 정비된 헬기장에 도착을 하게 된다.
▶ 헬기장이 있는 곳이 470.8봉이다. 다녀본 정맥길 헬기장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것 같다.
▶ 여기서 정맥 길은 우측으로 직각으로 꺾이고, 오르내림이 이어진다,
▶ 골프장 홀이 보이는 가 싶더니 연안이씨 숭모원이 있는 곳에 도착을 한다.
▶ 숭모원에서 에머슨 골프클럽으로 들어가는 시멘트 도로를 잠시 따르다 급한 경사의 계단을 다시 오르면 정맥길은 이어진다.
▶ 5분정도 심한 오름질이 이어지다 만난 봉이 422.3봉, 이후 완만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 좌측으로 에머슨 CC를 끼고 걷다보면 (처음에는 홀이 보이다가 나중에는 좌우 양측으로 2차선 도로가 한참이나 따라온다.)갑자기 급한 절개지에 매달린 한쌍의 로프줄이 있다.
▶ 로프줄을 잡고 내려서면 313번 지방도로인 배티고개에 도착을 하게 된다.
네비정보 충북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437-1 / 백곡면 배티로 771
몇개의 고속도로(경부, 중부내륙, 청원상주, 경부, 중부고소도로)를 거쳐
칠장사에 도착을 한 시간이 오전 8시를 넘겨서였다.
굳이 칠장사 안 주차장에 버스를 주차하지 않아도 되는데
최기사님은 누각 바로 밑에 버스를 주차한다.
흙으로 빗은 사천왕이 있는 사천왕문은
아직 재단장을 덜 마쳤는지
전각 주위에 쳐 놓은 그물망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가지마다 움턴 싹은
봄기운을 밖으로 밀어내고
하늘은 맑아
불어오는 바람마저 시원하다.
주차장에서 좌측 산허리쪽으로 난 칠현산 직행 등산로를 따라가는 일행을 두고
혼자 칠장사 경내로 들어섰다. (몇분은 다시 칠장사로 돌아내렸다)
남부지방 벚꽃은 이미 지는데
여의도 벚꽃축제가 절정을 이루는 이번 주말에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오건만
칠장사 국사전 앞 늙은 벚꽃 나무는
이제서야 꽃망울을 맺고 있었다.
"감포님, 감포님 "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고요한 경내를 울렸다.
돌아보니 안가님이었다.
"당간지주 어디있어요?"
"당간지주는 일주문 앞 주차장 들어서기 전에 있어요. "
마무리 공사만 남겨둔 나한전 옆을 지나
산으로 향한 등산로로 들어섰다.
제비꽃, 개별꽃, 현호색, 양지꽃 등
여러 색의 봄꽃 들이 피어있는 오르막 길을 천천히 걸어올랐다.
칠현산 갈림길에서 칠현산쪽으로 방향을 잡아 금북정맥 첫걸음을 떼었다.
안성 칠현산은 미륵의 고장이다.
현재 문화재로 등록된 미륵만해도 18기이다.
미륵을 주불로 하는 법상종의 고향이기도하다.
마이트레야.
현세의 부처인 석가모니불 이후의 미래 부처인 미륵불.
힘든 현재의 삶에 희망을 던져다 주는 미래의 미륵불은
희망의 신앙이 된다.
그 희망이 궁예를 만들었고, 정여립을 만들었고, 전봉준을 만들었다.
반쯤 땅속에 묻혀 있는 ( 미래의 부처이므로 땅속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중이라고들 믿는다)
미륵의 땅.
안성 땅을 지난다.
칠현산 갈림길에서 칠현산까지는 약 30여분.
길은 대체적으로 완만하고 뚜렷하게 나있다.
공림정상이라는 글이 써져있다.
孔林인지, 公林인지, 空林인지 한글만으로는 의미를 추측할 수 없다.
생거진천이라는 글귀가 써 있는 이정목을 만난 것은 덕성산 갈림길이었다.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仁)에 얽힌 설화는 몇가지 버전으로 나뉘어진다.
제일 버전은 전설의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버전인데
옛날에 진천과 용인에 추천석이라는 동명이인(同名異人)이 살고 있었다.
진천의 추천석은 양순하고 농사만 짓고 사는 사람이었던 반면
용인의 추천석은 부자로 살면서 심술이 많아 동네 사람들을 못살게 굴었다고 한다.
염라대왕이 용인의 추천석을 괘씸하게 여겨 사자(使者)로 하여금 잡아오도록 하였으나
사자가 실수로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와 다시 돌려보내려 하였으나
이미 장사를 지낸 후인지라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들이고 그 시체에 진천 추천석의 영혼을 넣어 환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다시 환생하여 용인에서 살았다고 한다.
제이 버전은 디지털용인문화대전에 소개된 내용으로
용인군 이동면 묘봉리에 한 사람이 살았다.
부모도 친척도 없는 사람으로 남의 머슴살이를 하였으나 워낙에 정직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이 삼십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총각이 안타까워 그와 처지가 비슷한 여자와 혼례를 치러 주었다.
부부는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부인은 매일 남편을 위해 십 리나 떨어진 산골짜기로 점심을 갖다 주었다.
남편이 점심을 먹는 동안 아내는 고생하는 남편을 돕기 위해 화전을 일궜다.
그 사이 피곤한 남편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산 밑으로 돌이 굴러떨어졌다.
놀란 아내는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갔지만, 이미 남편은 돌에 치어 죽은 뒤였다.
아내는 대성통곡하며 “우리 남편을 살려 달라.”고 울었다.
이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수천 근이나 되는 돌을 치울 수가 없어 돌 밑에 남편을 묻었다.
죽은 남편은 저승에 갔다.
저승의 최참판이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자 아무개 몇살이라 했더니, “너는 아직 죽을 때가 안 됐다. 그러니 다시 내려가 살아라.” 하였다.
그리하여 명령을 받고 내려왔으나 시신이 큰 바윗돌에 치어 죽어 있으므로 접신할 수가 없었다.
용인사람은 할 수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북도에 있는 진천의 오백 석 부잣집 앞을 지나게 되었다.
마침 그 집 아들이 사십이 안 돼 후사를 잇지 못하고 죽자,
그 집 어머니가 혹시나 아들이 살아날까 하는 마음에 일주일이 되도록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었다.
접신을 못하고 있던 용인사람은 죽은 진천사람의 신체에 가서 접신하여 살아났다.
살아난 용인사람은 매일같이, “용인군 이동면 묘봉리에 내 처가 몇 살이고, 아무 아무 해에 장가를 들었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이를 이상히 여긴 어머니가 인마를 거느리고 묘봉리를 찾아갔더니, 그곳에 소복을 입은 여자가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부인에게 물을 한 바가지 떠달라고 하여 마신 후, 우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사실 저는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이 집에 시집왔는데 불과 일 년도 안 돼서 남편이 죽었습니다.
믿고 살 사람이 없어 이렇게 매일같이 웁니다.”
이 말을 들은 진천 어머니는, “그러면 당신은 내 며느리요. 당신 남편이 저승에 갔다가 우리 아들한테 접신을 했으니 우리 집으로 같이 갑시다.” 하고는 가마에 태워
진천으로 데리고 갔다. 진천에 도착해 보니, 남편의 얼굴은 다르지만 음성은 틀림없이 같았다.
이렇게 해서 용인사람은 진천사람이 되어 진천부인과 용인부인을 데리고 살게 되었다.
진천 본부인에게 두 아들을 낳고 용인부인에게서는 세 아들을 낳고 칠팔십 년을 살다가 죽었다.
아버지가 죽자 진천아들과 용인아들 사이에 아버지의 혼백을 서로 모시겠다고 분쟁이 일어났다.
결국 명관으로 이름난 진천군수한테 가서 송사를 하게 되었다.
“살아서는 어디서 살았느냐?”고 진천군수가 물어 보자 아들들은 한 목소리로 “진천서 살았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진천군수는, “그래? 그럼 생거진천했으니 사거용인해라.” 하였다.
살았을 때는 진천에서 살았으니 죽어서는 용인에 살라는 판결이었다.
그래서 혼백을 용인아들이 모시게 되었다. 이로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말이 나왔다.
제삼 버전은
옛날 한 여자가 용인으로 시집을 가서 아들 낳고 단란히 살다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진천으로 개가하여 아들을 낳고 평화롭게 살았다고 한다.
그 후 용인 아들이 성장하여 진천의 어머니를 모시고자 하였으나
진천의 아들이 극구 반대하여 결국 관가에 소장(訴狀)을 내었다.
관가에서 판결하기를 "너의 어머니가 살고 있는 동안에는 진천에서 살고, 죽은 후에는 용인에서 모시고 제사도 모시도록 하라"고 하여
살아서는 진천에서 살고, 죽은 후에는 용인으로 간다는 설화이다.
이외애도 진천은 평야가 넒고 토지가 비옥하여 산물이 풍성하고, 냉수해의 피해가 없었으므로 생거진천이란 말이 나왔고,
용인은 산세가 순후하여 사대부들이 묘가 많기에 사거용인이란 말이 생겼다고도 한다.
진천은 김유신이 태어난 곳이다.
김서현과 만명부인이 사랑의 도피 행각을 벌리고 도망 온 땅끝이 바로 이곳 진천이었다.
아마도 신라의 힘이 미칠 수 있는 곳에서 가장 먼곳이었으리라.
이곳에서 둘은 김유신을 낳는다.
도망의 땅에서 희망을 잉태한 곳이 진천이었다.
이정목이 서있는 좌측으로 250m 거리에 덕성산이 있다.
정맥길은 우측으로 진행되기에 덕성산 들렸다가는 다시 돌아나와야 한다.
덕성산 정상에서 기와, 토용 등이 많이 출토가 되었다고 한다.
동네 어른들은 부정을 탄다고 집에 들이지 못하게 하였다는데
삼국시대의 유물로 추정한다.
병무관은 병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연무대와 병기고가 있어던 곳이란다.
무술마을은 김유신이 무술을 닦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별로 믿음이 가지를 않는다.
덕성산 이후의 길도 순하고 부드럽다.
맑은 햇살이 구름속으로 숨어 조금 쌀쌀하게 느껴지는 바람이었지만 걷기에는 그저 그만인 날씨였다.
沙帳골, 혹은 射場골로 불리우는 동네가 아래에 있다.
행정구역은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구암리 소속이다.
만디고개의 돌탑.
아래로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지나간다.
고속도로를 지나는 차들의 굉음이 멀리서도 들린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와 경기 안성시 금광면 옥정리 사이에 있는 옥정재는 302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곳이다.
옥정현은 근처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무티고개, 작은무치, 요순치 등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무이산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이산은 옛이름이 요순산이다.
요순산의 이름은 중국 삼황오제 중 요임금과 순임금의 이름에서 빌려온 것이다.
안성에서 구한 소금을 지고 옥정현을 넘어 진천의 쌀과 바꾸기위해서 넘나들던 고갯마루가 바로 이곳이다.
임꺽정이 안성 동네를 약탈하기 위해 넘나들던 고개가 이곳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지는 곳으로
해발 390m의 제법 높은 고개이다.
고갯마루에는 차량의 왕래는 비교적 한산하였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는 라이딩족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인형으로 만든 조형물 맞은편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 일행들을 발견하고서는
간단한 요기를 하였다.
다시 출발.
그리 심하지 않은 오르내림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점심후 한시간 정도나 걸었을까
너른 헬기장이 나타났다.
제법 많은 돈을 들여 정비를 하였을 것 같은 헬기장은 사면이 탁 틔어져있어
동서남북 어느쪽이나 잘 조망이 되는 곳이었다.
에머슨 c.c 못미쳐 능선길이었다.
가느다란 흰줄이 마을로 향하는 듯, 가느다란 길을 따라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학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인 것 같았다.(아래로 내려가면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 마을회관이 나온다)
사연으로 보아서는 팔순노모가 산으로 자주 나들이(?)를 하시는 모양인데,
종종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있는 모양이었다.
이를 걱정한 막내 따님이 길 잊어버리지 말고 잘 찾아오시라고
끈을 매어 놓고
행여나 잘 모르는 이들이 끈을 끊어버릴까 염려한 마음에 안내문을 내 건 모양이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하얀 노끈은
나이든 어머니를 향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파르르~ 파르르르~
학동마을 민돌이네 막내 따님.
어머니 건강하시고 산책길 잘 다니시도록 기원해드립니다.
진천에서 안성을 넘어가는 장고개는 산림청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임도 100선에 선정된 곳이다.
산악자전거, 산악마라톤 코스로 유명하다고 하네요.
진달래 화전 이야기를 하면서 진달래가 가득 핀 능선 길을 지나간다.
군데군데 색이 바랜 생강나무와 연한 빛으로 피어나는 이파리들의 싱그러움도 즐거운 봄산행의 눈요기 보너스이다.
골프클럽 홀이 좌측으로 계속해서 나오더니
숭모뭔이라는 가족 묘원이 나온다.
崇本敬始라는 글귀와 함께
기도하는 사무엘의 그림이 새겨져있다.
아래로 시멘트 길이 이어져있고
골프장 건물인 듯한 곳 못미쳐 우측으로 나무계단이 만들어져있는데 이곳으로 시그널은 연결된다.
골프장 홀이 잠시 따라오는 듯하다가 좌우 양측으로 도로가 나타난다.
좌측은 골프장 안쪽의 도로이고, 우측은 313번 지방도로이다.
몇개의 유순한 오르내림이 이어지다가
로프 줄이 매어진 가파른 지역을 내려서니 오늘의 들머리인 배티고개에 도착이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시산제 준비중이다.
준비해온 제물을 차려서
순서에 따라 제를 지낸다.
제를 지내고 남은 제물로 하산주 한잔.
오고가는 차량들을 따라 대구로 돌아왔다.
첫댓글 반가운 얼굴들이네요!! 산행을 못 간지 한참 된 것 같습니다 고3이 뭘까요? ㅎㅎ
같이 걸을 날을 고대합니다~
폭신폭신한 낙옆길.
쉼없이 불어오는 남풍.
만발한 진달래까지, 호사를누린 하루....
자상한 산행기 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