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월13일 설교 연구 교재
오순절 후 열여덟 번째 주일
성서정과 시 66:1-12; 렘 29:1, 4-7; 딤후 2:8-15; 눅 17:11-19
예배로 부름 Call to Worship
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그는 우리의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가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의 손이 돌보시는 양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오늘 그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악하게 하지 말지어다(시 95:6-7, 8b)
예배 기원 Invocation
존귀하신 하나님!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저희들을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게 하시고, 때마다 시마다 성령님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기뻐하며 예배할 때, 우리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발걸음을 주님께 맡기고 의지할 때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여 주시고, 정성을 다하여 찬양 드릴 때 영광 받으시옵소서. 사모하는 모든 성도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정오의 빛 같이 밝게 비추어 주시기를 원하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
이 주일의 찬송 Hymns
만 입이 내게 있으면 (23장)(통 23장) /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407장)(통 465장) /
내가 예수 믿고서 (421장)(통 210장) / 나의 영원하신 기업 (435장)(통 492장)
내 영혼이 은총 입어 (438장)(통 495장) / 나 맡은 본분은 (595장)(통 372장)
성시 교독 Responsive Readings | 시편 66:1-4, 7-12
인도자 1 온 땅이여 하나님께 즐거운 소리를 낼지어다
회 중 2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
인도자 3 하나님께 아뢰기를 주의 일이 어찌 그리 엄위하신지요 주의 큰 권능으로 말미암아 주의 원수가 주께 복종할 것이며
회 중 4 온 땅이 주께 경배하고 주를 노래하며 주의 이름을 노래하리이다 할지어다 (셀라)
인도자 7 그가 그의 능력으로 영원히 다스리시며 그의 눈으로 나라들을 살피시나니 거역하는 자들은 교만하지 말지어다 (셀라)
회 중 8 만민들아 우리 하나님을 송축하며 그의 찬양 소리를 들리게 할지어다
인도자 9 그는 우리 영혼을 살려 두시고 우리의 실족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는 주시로다
회 중 10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되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인도자 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회 중 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고백의 기도 Prayer of Confession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의 몸과 마음을 흠도 없고 점도 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회개합니다. 지난 한 주간 영적 잠에 취하여 기도생활을 멀리했습니다. 진리의 말씀과 주님의 음성에 귀를 막고 내 뜻대로 다녔습니다. 선한 일에 힘쓰지 못하고, 성전에 모이기를 싫어했습니다. 오히려 악한 동무들과 어울려 지내며 무지한 말과 거역하는 행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며, 맡겨주신 봉사의 직분과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예배의 자리로 나와서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고쳐야 할 흠이요, 지워야 할 점인 것을 깨닫습니다. 주여, 십자가 보혈로 저희들을 정결하게 씻어 주옵소서. 그리하여 점도 없이 흠도 없이 하나님만 섬기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고백의 기도를 드립니다. 아멘.
사함의 확신 Assurance of Forgiveness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7b)
오늘의 주제 : 믿음으로 고침을 받다
본문의 접근
본문의 재경청 눅 17:11-19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12 예수께서 어떤 마을(코메, κώμη, village)에 들어가시다가 나병 환자(레프로스, λεπρός, scaly leprous) 열 사람을 만나셨다. 그들은 멀찍이 멈추어 서서, 13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예수 선생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14 예수께서는 보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그런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 15 그런데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기의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되돌아와서, 16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 17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열 사람이 깨끗해지지 않았느냐? 그런데 아홉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18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되돌아온 사람은, 이 이방 사람 한 명 밖에 없느냐?” 19 그런 다음에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서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새번역>
본문 개관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예수님을 온 세상의 주님으로 소개한다. 이방인을 위해서도 오시고 사마리아인을 위해서 오셨다. 그리고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은 다른 종교와 갈등을 빚는 식으로 복음을 전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9장부터 시작된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은 오늘 본문에서 보다 구체화된다. 갈릴리에서 출발해서 사마리아로 향한다. 이름이 없는 마을에서 만난 한센병 환자는 예수님을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기다리고 있다. 기대하고 있다. 나름대로 거리를 두고 예수님을 부르는 것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최선을 다해서 하려는 마음이다. 그만큼 간절한 증거이다.
본문 분석
1.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를 문자 그대로 지나는 모습은 쉽게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출발지인 북쪽 갈릴리에서 최종 목적지인 남쪽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신 것은 분명하다.
2. 멀리 서서
민수기 5장에 따르면 한센병 환자들은 마을 밖에 거주해야 했다. 병이 없는 사람과 접촉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레위기 13장에 의하면 스스로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해야 했다.
3. 불쌍히 여기소서.
한센병 환자들은 다른 사람과의 접촉을 스스로 금해야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자신들이 부정하다고 외쳐야 했다. 그런데 예수님을 앞에 둔 이 사람들이 부정하다는 말 대신 불쌍히 여겨달라는 호소를 하고 있다.
4.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온 이 사람들을 예수님이 고쳐주셨다. 제사장들에게 몸을 보이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신 순간에는 아직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다. 가다가 치유를 받았다는 말은 확실히 자신들이 속한 공동체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본문의 신학
1. 믿음이 유무
한센병 환자들은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려고 나와서서 있다. 그들에게 기대감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기대감의 실체는 예수님이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이었다. 바로 앞에서 누가는 예수님이 설명하신 믿음의 성격, 즉 많고 적은가가 아니라 있는가 없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의 실례를 여기에서 보여준다. 우리의 믿음은 존재하기만 하면 된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일하신다.
2.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음
본문 바로 앞에서 강조하신 또 다른 한 가지는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었다. 종이라면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서도 쉴 것을 당연한 권리로 여기지 않고 다시 맡겨진 일을 한다고 하셨다. 병 고침을 받은 열 명 중 한 명은 돌아와서 감사를 드렸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큰 능력을 가지셨으니 병 고치시는 것 정도는 예수님의 입장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으면 감사의 마음도 생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3. 마지막 희망이 되신 예수님
한센병은 당시에는 어찌할 수가 없는 병이었다. 온갖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가족과도 떨어져서 환자들끼리 모여서 살았다. 다른 희망은 없다. 그때 예수님의 소식이 들렸다. 그들에게 는 예수님이 마지막 희망이었다. 긍휼히 여겨 달라는 말에는 자신들이 이제까지 겪었던 병으로 인한 수고와 좌절감, 앞으로 기대할 것 없는 희망 없음까지가 담겨 있는 말이었다.
4. 참 사람의 모습
치유를 받은 사마리아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돌아와서 예수님께도 감사하는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를 물으신다. 돌아온 이 사람의 행동이 귀한 것을 인정하시는 말씀이다. 당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편견 등으로 그들이 어떠한 행동을 하든지 차별을 받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찬양하는 사람, 감사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 돌보심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이 참다운 사람의 기준임을 제시하신다.
평행 본문
시편 66:1-12
찬양과 감사가 함께 등장하는 시이다. 12절까지는 찬양이 주를 이룬다. 하나님의 큰 권능을 찬양하고(7절까지), 이 하나님을 만민들이 함께 찬양한다(12절까지). 주님을 찬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원수를 복종시키셨으며 홍해를 가르셨다. 그리고 생명을 지켜주셨다. 하나님 없는 백성은 역사를 통해서도 감사를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놀라운 일을 체험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크신 권능은 높이 드러나서 찬양하지 않을 수가 없다.
디모데후서 2:8-15
교회를 섬기며 사역을 감당하는 것은 보통 각오로 되지 않는다. 훈련도 필요하다. 그래서 바울은 병사와 같이 훈련을 받고 사역을 감당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기억해야 한다(8절).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 들이 여러 가지 있지만 가장 근본이 되는 일은 죽은 사람 가운데 다시 살아난 사건이다. 그 일로 말미암아 구원의 역사가 가능해졌고 그 구원을 위해서 우리도 일해야 한다.
설교를 위한 적용
오늘에 적용
•주님이 희망이다. 원인을 모르면 고칠 수 없고, 원인을 알아도 못 고치기도 한다. 그래서 좌절한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도 주님은 마지막 희망이시다.
•믿음으로 행동하면 된다. 예수님이 제사장들에게 돌아가서 율법대로 행동하라고 했을 때는 아직 병이 고쳐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 상태로 돌아갔다. 믿은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당연히 여기지 말아야 한다. 고침을 받은 열 명 중 한 사람은 돌아와서 예수님께 감사했다. 고쳐진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면 감사의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능력이 많으시니 이런 치유 정도는 당연하다고 여겼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옳은 일에는 용기를 내야 한다. 열 명의 치유 받은 사람 중 한 명만 돌아온다는 것은 어찌 보면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혼자만 독단적인 행동을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옳은 일이기 때문에 용감하게 돌아와서 감사를 표했다.
•믿음의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한다. 병을 고쳐줄 수 있다고 믿는 대상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베데스다 못에 먼저 들어가는 것이 치유의 지름길이라고 믿었던 것이 그 예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믿음은 아무리 그 믿음을 갖는다고 해도 능력이 없다. 믿음의 방향이 맞아야 한다.
설교 개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되면 좋고 안 되도 할 수 없다는 마음일 수도 있고,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간절함일 수도 있다.
•한센병 환자들은 한 줄기 실과 같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이다. 바로 앞에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다면 놀라 운 일을 체험할 것이라는 말씀 그대로이다.
•없는 것이 아닌 있는 믿음,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떠할지 몰라도 이들은 그것이 전부였다. 그 믿음으로 예수님을 향해서 호소한다.
•그 믿음은 곧바로 행동으로 연결되었다. 제사장에게 돌아가라고 하신 말씀만 의지해서 돌아가는 행동을 취했다. 아직 이루어진 것은 없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실낱같은 기대는 끊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베풀어진 은혜는 돌아가는 길에 치유함을 받은 것이다. 단 한 사람, 돌아온 이방인, 이 사마리아 사람은 그들 중에서도 다시 예수님께 감사함을 받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좋은 신앙인의 표본이 되는 영광을 누렸다.
설교를 위한 예화
지난해 여름 태국 동굴에 갇혔던 소년들의 이야기가 뜨거운 관심의 대상이었다. 12명의 소년과 코치 1명이 긴 동굴에 갇혔다. 여러 사람들의 수고와 희생으로 구출이 시작되었다. 처음 4 명의 구조자가 나왔고 나머지 아이들도 4 명씩, 5 명씩 구조가 되었다. 결국 12명 모두가 구조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 아이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이름도 알 수 없다. 이 아이들은 감사도 모르는 아이들인가?
알려진 내용은 처음 구조된 아이들의 신상을 일부러 공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구조의 과정은 상세히 알리되 그 대상이 되는 아이들은 감췄다. 이유는 아직 구출되지 않은 아이들의 가족이 상심할까 염려해서였다. 나중에 전체 12 명이 구조된 이후 기자회견을 했다. 그리고 그 기자회견 이후 아이들은 일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추가의 인터뷰나 과도한 관심은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위해서 금지되었다.
이 태국의 아이들이 처음에 감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었으나 본문의 치유함을 받은 아홉 명은 어떤 이유에서 예수님에게 돌아오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