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향 | 전라남도 장흥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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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 위경 (魏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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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중시조 | 위창주 (魏菖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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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집성촌 |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 봉두리 전라남도 강진군 강진읍 춘전리 전라남도 장흥군 관산면 방촌리 전라남도 완도군 청산면 국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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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 위씨(長興 魏氏)의 시조 위경(魏鏡)은 중국 관서(關西) 홍농(弘農) 사람으로 638년 신라 선덕여왕의 초청으로 당 태종이 파견한 팔학사의 일원으로 신라에 동래하였다. 위경(魏鏡)은 신라에서 문하습비후(門下拾非侯)ㆍ아찬(大阿湌)ㆍ상서시중(尙書侍中)을 역임하고 회주군(懷州君: 장흥의 옛 지명)에 봉해졌다.
라말여초 대각간시중(大角干侍中)을 지낸 위창주(魏菖珠)를 중시조로 삼아 세계를 이어왔다. 위창주의 예손 위계정(魏繼廷)은 고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좌보궐지제고(左補闕知制誥)를 거쳐 선종 때 어사중승(御史中丞)이 되었고, 숙종 초에 예부와 이부의 상서가 되어서도 결백하고 지조있는 관료생활을 계속하여 칭송을 받았다. 이어 판한림원사(判翰林院事)를 거쳐 1101년(숙종 6) 중서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中書侍郎同中書門下平章事)를 지냈으며, 1104년 문하시랑평장사 겸 태자소사(門下侍郎平章事兼太子少師), 이듬해 태자태부(太子太傅)가 되었다.
본관
장흥(長興)은 전라남도의 남쪽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원래는 백제의 오차현(烏次縣)인데 신라때 오아(烏兒)로 개칭되어 보성군에 속해 있다가 고려 초에 정안현(定安縣)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고려 현종 때에 장흥부(長興府)로 승격되었다. 그 이후 많은 변천을 거쳐 1895년에 장흥군이 되었다.
분파
위창주 15세손 위덕룡(魏悳龍)은 위자온(魏自溫)ㆍ위자량(魏自良)ㆍ위자공(魏自恭)ㆍ위자검(魏自儉) 네 아들을 두었는데, 이들로부터 위씨의 상계분파(上系分派)가 시작되었다. 위자온(魏自溫)은 능주파(綾州派)로, 위자량(魏自良)은 관산파(冠山派)ㆍ행원파(杏園派)ㆍ여천파(麗川派)로, 위자공(魏自恭)은 사월파(沙月派)ㆍ관북파(關北派) 또는 함흥파(咸興派)로 분파하게 되었다. 그리고 위자검(魏自儉)은 후손이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