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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빌립보서 4:12-19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16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17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18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말씀나눔]
저번 주에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통해 내 이웃이 성공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섬기는 것이 성경적인 것임을 살펴보았습니다. 예배 중에 주님을 사랑하듯이 이웃을 섬기겠다고 동의하고 또 그렇게 결단하고 각 가정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실천이 잘되었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은 매주 결단하고 예배당 문을 나서지만 매주 실패하고 되돌아옵니다.
사사기 시대에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과 징계에도동일한 죄를 반복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도대체 왜 저럴까?
싶지만 우리도 동일한 실패를 반복하다 보면, 그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실패 할 때마다 우리가 연약하기 때문이라고 핑계를 댑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나를 속이는 일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핑계로 합리화 할 것이 아니라 그 근본 문제를 살피기 원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다 보면 가끔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자신의 실수를 빨리 인정하고 다른 시도에 집중하는 것이 최선이다.”
스티브 잡스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1976년 21세의 나이에 차를 팔아 마련한 1300달러를 가지고 애플을 창업하였습니다. 그리고 4년 만에 포보스가 선정한 400대 거물 명단에 포함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스티브 잡스는 처절한 실패를 맛보게 됩니다. 자신이 세운 회사에서 축출당한 것입니다. 이후로도 스티브 잡스는 여러번 실패를 경험합니다. 그러다가 픽사를 인수하고 1995년 픽사에서 제작한 3D 만화 영화 토이스토리로 인해서 다시 억만장자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애플은 1995년 파산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전문 CEO를영입했지만 모두 실패하고 결국은 스티브잡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그는 회사에서 축출당한지 12년 만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고 복귀 1년 만에 10억 달러 적자 기업을 4억 달러 흑자 기업으로 전환시켰습니다. 2011년 지병으로 유명을 달리할 때까지 아이팟, 아이폰, 아이패드 등의 걸작들을 만들어 세상의 IT 생태계를 변화시킨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스티브잡스가 실패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인간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실수를 합니다. 덕분에 우리는 새로워지고 창조적이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죠! 실수를 빨리 알아내 고친 덕분에 애플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최고의 회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스티브 잡스는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실패를 꼽습니다.
우리들도 신앙생활에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실패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동일한 실수를 반복하는 패배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그 실수를 딛고 일어서 성공을 이루어 낼 것인가의 차이가 발생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실패하는 원인을 냉철하게 살피고 빠르게 고쳐서 우리의 실패가 곧 성공의 디딤돌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목표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정해 놓은 목표를 상실하였을 때 추진력을 잃어버리고 좌절하게 됩니다.
또는 교만에 빠져서 이제 다 이루었다 방심할 때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는 세계적인 수준입니다.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수년간 10위 이내의 성적을 유지하고 2012년 이후 종합 1위를 두 번, 개인 1위도 수차례 수상하였으며 2016년 만점자 6명 중에 3명이 한국선수였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학부만 올라가면 확연한 차이가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학생들의 목표가 좋은 대학 진학인 경우가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표를 잃어버린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여 학습 의욕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보다 능동적이고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할 시기에 손을 놓아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달려갈 길을 마치고 영광의 면류관을 받아 쓰기까지 방심하지 말고 목표를 향해 멈추지 말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
두 번째, 협력하지 않고 혼자 일하기 때문입니다.
능력의 선지자 엘리야도 갈멜산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나서 갑작스럽게 외로움을 타며 실의에 빠집니다.
그때 하나님께 탄원하는 말이“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열왕기상 18장과 19장에 ‘오직 나만 남았다’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됩니다.
엘리야의 탄원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은“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였습니다. 엘리야와 동역할 사람을 칠천 명이나 주셨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혼자 일해도 된다면 이렇게 많은 인원을 예비하셨겠습니까?
전도서 4:12절에 보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마태복음 18:20에 보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임재의 조건이 두세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이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믿음의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반드시 두 명 이상이 협력해야 합니다.
대적들에게 패하여 실패를 맛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두세 명의 협력은 필수요소입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이유
세 번째는 내 힘과 욕심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연약한 인간이라고 핑계를 대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주인이 되어서 모든 일을 진행하려 합니다.
예수님을 주(主)님 이라고 부르면서도 여전히 자기 자신이 주인입니다.
모든 일을 자신이 주관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문제들이 발생하고 결국은 실패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주님을 떠나 각기 제 길로 갑니다(사53:6).
그러나 주님을 떠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요15:5).
오늘 말씀에 보면,
사도바울은 실패하지 않는 비결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행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능력 주시는 자’는 누구입니까?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은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는 일들이 실패하지 않고 열매를 많이 맺기 위해서는 반드시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있어야 우리의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의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명확히 알려 주십니다.
요한복음 15:5-6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행함으로 내가 이루는 것은 사실은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이 이루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저 나는 가지일 뿐이며 열매가 나를 통해 맺힐 뿐이지 열매를 맺기 위한 모든 영양분은 나무줄기를 통해 공급받아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행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통해 주님이 일하시도록 한다는 의미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통해 주님이 일하시도록 하려면 반드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행한다는 것은 주님의 뜻에 따른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님이 주신 능력을 받아서 내 소견에 옳은 대로 내 맘대로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국민을 지키라고 무기를 들려주었더니 오히려 국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주님의 능력을 받았으니 당연히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뜻을 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일반계시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대부분은 특별계시 즉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게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야 합니다.
시편 1편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한다고표현합니다.
뒤집어서 생각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복은 물질적인 것을 의미하기보다는 하나님과의관계에서 찾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복의 통로가 되어 해야 할 일은 잃어버린 백성들이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면, 신약시대를 비롯한 지금 우리에게 복은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상 사명이자 동시에 우리가 이 땅에 흘려보내야 할 ‘복’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의 복의 통로로 그리고 부활의 증인으로서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능력들을 주셨습니다.
각 개인에게 주신 달란트와 함께 이러한 것들이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 첫 번째는 순종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전자 제품을 구매하면 사용설명서에 따라서 사용목적에 알맞게 이용하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이 땅에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목적에 합당하여야 할 것입니다. 내 생각과 다르고 주어진 여건에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신 사명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바로 순종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일하지 않으시는 일을 내가 고집을 피워 하려 하면 실패 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로 나는 원치 않지만 주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려하신다면 순종하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내가 자신 없는 일조차도주님은 하십니다.
주님이 못하실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주님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주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셔서 일하시면 우리는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이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은 바로 이런 원리에 의해 가능한 것입니다.
물론 이 일을 행함에 있어 고난과 고통으로 다가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은 기쁨으로 바울의 고난에 참여하였습니다(14절).
사도바울이 선교의 길을 떠날 때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 밀지 않았지만 빌립보 교회는 사도바울의 고난에 기꺼이 참여하며 순종함으로 생사고락을 같이함으로 사도바울이 능력을 받아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 두 번째는 하나 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과 동시에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속한 각각의 지체들입니다.
우리 몸의 손과 발, 그리고 신체 기관들이 하나가 되어 ‘나’라는 존재를 만들어 내듯이, 성도들은 주 안에서 한 지체이기 때문에같이 기뻐하기도 하지만 함께 슬퍼하기도 하고 고난도 함께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가족을 주셨습니다.
육신의 가족도 주셨지만 영적인 가족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대적들은 가족과의 관계를 방해하여 혼자라는 외로움에 빠지게 만듭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씩 떼어 놓아야 그들이 승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실패하지 않으려면 가족을 지켜야 합니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가족의 필요도 채워주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볼 때,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사도바울의 형편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어려움 중에 있지만 사도바울에게 헌금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보낸 선교 헌금은 사도바울의 든든한 힘이 되어 주었고 사도바울의 선교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16-17절).
유대인들에게는 가난한 자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들의 밥상머리 교육이 한 몫을 합니다. 각 가정의 식탁 위에는 기부금 함이 놓여 있습니다. 매 식사 때마다 아이들이 감사함으로 식사 기도를 하고 나눔 할 돈을 기부금 함에 넣습니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아이들이 직접 도울 사람을 선정하여 도움의 손길을 내밉니다. 그렇게 확대 가족의 범위를 확장시켜 나가며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인 유대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각 지체를 돌보는 손길에 풍족함을 주십니다(19절). 그러므로 형제를 섬기는 일은 곧 믿음의 공동체를 위한 일이자 나를 위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 된 성도들은 주님이 주신 능력으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 세 번째는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임마누엘의 약속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그 약속을 누리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지체들을 향한 약속들이 가득합니다.
그 약속을 붙들고 나아갈 때 흔들림 없이 나갈 수 있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9가지 열매 또한 그 중의 하나입니다.
주님이 내게 주시는 능력은 어디에 사용되어야 하나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은 우리가 다재다능한 사람이 되라는 말씀인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일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지 여러분이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행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꼭 거창하고 거대한 일이 아니라도 여러분이 주 안에 있다면, 여러분의 손짓, 발짓, 미소 하나에도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일하시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기뻐하실 것입니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의 몸 된 지체로서 사도 바울의 필요를 채우는 선교 헌금을 드리며 중보 함으로 함께 선교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의 헌신은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되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었습니다(18절).
마태복음 6:21절에 보면,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내 재물이 있는 곳에 내 마음도 함께 한다는 말씀으로 내가 가진 재물을 나눈다는 것은 마음을 나누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목장을 섬길 때는 돈이 필요합니다.
목원들을 위해 내가 가진 돈을 쓴다는 것은 곧 목원들에게 내 마음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헌금을 하는 것은 곧 하나님께 내 마음이 있다는 것이며, 내 주인이 물질 만능주의에 휩싸인 맘몬이 아니라 주님이심을 고백하는 행위라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목원들을 위해서 내 시간과, 재물, 그리고 노력과, 헌신을 아끼지않고 섬기는 것은 목원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희생하고 헌신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목원들을 섬기면서 마음을 졸이는 일이 없을 수 없습니다.
마음 졸이며 목원들에게 목자․목녀의 삶을 보여주고 보고 배우게 합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내가 목원들을 섬겼다 생각했는데, 오히려 목원들이 나를 붙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목원을 섬기는 사명 덕분에 딴 길로 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희생하고 많은 것을 포기한 것 같지만 오히려 더 귀한 것들을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군 생활 할 때, 힘든 고비들이 있었습니다.
내 자의가 아니라 건강 문제로 군 생활을 그만 두어야 할 때도 포기 하지 않고 그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부양하는 가족이 있고 내가 섬기는 지체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는 고난인 것 같았지만 돌아보면 그것이 축복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유명한 찬양 사역자들의 간증을 들어보신 적 있으십니까?
유명한 찬양 사역자치고 삶에 굴곡이 없는 경우는 없습니다.
저마다 하나님께 굴복하며 생긴 상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돌 감람나무 가지에 불과 했던 우리들이 좋은 감람나무이신 주님께 접붙여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입니다.(롬11:17~24)
즉, 성도로서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함께 아파하는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부부가 서로 만나서 살아가려면 서로에게 맞추어 가야 합니다.
가정마다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가풍이라고도 말하죠?
서로 다른 문화에서 30여 년을 살다가 만나서 결혼하면 거짓말 같이 서로 하나가 되듯이 통하게 됩니까?
서로의 마음에 상대방이 100% 만족을 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서로 습관이 다르고 입맛도 다르고 생활 방식도 다르며 가치관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차이가 있어서 사소한 일로 마음 상해서 다투기도 합니다.
의도치 않게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서로에게 맞추어 가는 과정이 없으면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이러한 상처들이 하나 둘, 아물어가다 보면 서로 닮아가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부부는 서로 닮아간다고 하죠? 성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신부된 성도들은 주님에게 내 모든 것을 맞추어 가고 주 안에 거함으로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20년 30년 신앙생활하다 보면, 어딘지 모르게 예수님 향기가 느껴지는 것이 정상입니다.
성도들 안에 주님이 계시고, 또 성도들은 주님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실패하더라도 그 실패를 딛고 성공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비결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비결은 우리에게 능력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불가능한 일은 없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하나 되는 과정이 우리 자신에게 고통으로 다가 올지라도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에 동참하는 것은 성도가 드릴 영적예배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을 주님이 일하시는 역사의 장이 되도록 주님께 내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주님의 능력이 표출되는 주님의 능력의 통로로 쓰임 받기를 원합니다.
오늘 이후로 주님과 하나 되는 고통을 기쁨으로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천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G),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F)
[은혜의 찬양]
기대(Bb), 주가 일하시네(Bb), 예수의 이름으로(G), 지금은 엘리야 때처럼(A), 온 세상 창조주(A), 시선(G), 내 모습 이대로(G)
Faith(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https://youtu.be/iGkgrJP1ET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