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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산(活山)이 되다!
활산선생님 역시 남들과 다르지 않게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으며 기쁨과 슬픔을 경험했고, 귀인을 만나기도 하고 악연을 만나기도 하였습니다. 좋음과 나쁨 상관없이 인연은 인간에게 곧 삶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모든 생물이 그러하듯 태어나서 가장 큰 인연은 어머니 입니다. 인간에게 어머니는 우주와 다름없습니다. 거대한 우주의 시공간 속에 ‘나’ 라는 존재를 가능하게 한 사람. 그것이 어머니 입니다. 어머니는 나를 있게 했고, 거스를 수 없는 내 운명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분입니다.
활산선생님 어머니는 종교인이 될 운명을 타고 났으나 선생님을 낳고 기르면서 그 운명을 피해 다니느라 큰 고초를 겪었습니다. 일반인들이나 특정 종교인들은 신을 받드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거나, 무조건적인 의심의 눈초리를 보냅니다. 선생님의 어머니 마음 역시 여느 부모와 달랐겠습니까! 흔히 무속인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는 매서운 눈매, 과장된 몸짓, 말투와 같은 외적인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선생님 어머니는 선한 눈매에 둥근 얼굴형의 포근한 인상을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평범하고 인자하기 그지없는 어머니가 어느 때 부터인가 다른 사람으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밤중에 자다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뛰쳐나가 땅을 파거나, 동네 뒷산에 있는 커다란 당산나무 밑에서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종종 이런 신내림에 관한 이야기들은 많이 접해 보았을 것입니다.
막상 눈앞에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면 여러분의 머릿속은 그 당신 활산선생님이 느꼈던 것 이상의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그런 신비한 행동을 정신질환으로 여길 수 있었겠으나, 선생님 어머니의 행보에는 직접 보지 않으면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이었습니다. 땅을 파면 돌부처님이 나오고, 방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그런 일종의 계시들은 외할머니 대(代)부터 대물림 된 글문도사 운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흔히 신내림이라고 말하는 것은 실제로 신이 존재해서 영이 몸에 깃든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방울이나 불상을 땅에서 발견하는 신기는 분명 운명은 타고나고 정해진 다는 것에는 확신을 가져도 좋습니다. 그것을 현대 과학적으로 표현 하자면 DNA의 법칙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 되었든 ‘나’ 라는 존재는 어느 날 갑자기 우주에서 뚝 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필연적 인연에 의해 수십 세기에 걸쳐 이어 내려온 운명공동체의 한 일원이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의 어머님은 만중생萬中生이 찾아왔을 때는 내 전생의 부모형제가 찾아온다고 하는 그 마음을 가지고 사람을 대하셨습니다. 그 정성의 삶으로 선생님을 잉태하신 어머님은 새벽2시 서울 불암산, 수락산에 산 기도를 올리러 가셨습니다. 산기도 첫째날 신령님께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는데 백발의 노인이 검은색호랑이를 타고 나타나셔서 1000년 묵은 산삼 한 뿌리를 주시면서 큰 선생님이 세상을 구하러 오시니 산삼을 지극정성으로 달여 드시게 하여라! 라고 축원하시고 가셨습니다. 그 다음 둘째날 칠흑 같은 어둠을 조심히 살피며 길을 가는데 저만치 어둠 속에서 가슴은 기러기, 후반부는 수사슴, 목은 뱀, 꼬리는 물고기, 이마는 새, 깃은 원앙새, 무늬는 용, 등은 거북, 얼굴은 제비, 부리는 수탉과 같이 생긴 봉황(鳳凰)이 7개의 황금 알을 어머니 품속에 놓고 가셨습니다. 셋째날에는 도포를 수려하게 입고 백옥관대. 청색관대, 붉은관대, 검은관대, 노란관대를한 12명의 글문도사가 오셔서 신령스러운 비기(秘記)가 적힌 책과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어머님게 드리며 지장보살님과 칠성님께서 선생님께 드립니다. 하고 정중히 예禮를 다하셨습니다. 선생님이 낳던 그날 어머니 꿈에 긴 지팡이를 짚고 백발이 성성한 한 도인이 삼족오를 타고 오셔서 삼재三才라고 새겨진 항아리를 주셨는데 그 항아리 속에는 옥쇄, 도장, 벽조목덩어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주시면서 훗날 삼재三才(천, 지, 인의 세 가지를 이르는 말)의 비결로 세상을 밝히는 큰 선생님이라고 말하며 사려지셨습니다. 그렇게 세상에 나오신 활산선생님은 한 살되기 돌전에 생활고로 생활전선에 나서야 했던 부모님의 사정으로 외가에서 자라가 됩니다. 외할머니께서는 경기도, 서울등지에서 이름 날리시던 무속 인이 였고 그 외가의 환경은 매일 불경과 정성 드리는 소리의 연속이 이었습니다. 어린아이 선생님은 동요대신 불경소리와 축원소리를 장난감대신 목탁과 징, 북으로 유아기를 보냈습니다. 할머니제자에서 자녀들이 판,검사가 나오고 의사, 장군이 나오면서 그 영험함이 소문나며 외할머니 손에서 5세까지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 토록 보고 싶은 어머니와 같이 살게 된 선생님은 하루는 꿈속에서 일어나 갑자기 저기 사람 죽어 사람 죽어~~하고 외치며 배꽃이 흐드러진 배농장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동네사람들이 배밭으로 길을 살피고 가보니 동네꼬마 여자아이가 배밭에 거름을 주기위해 파놓은 똥구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기적 같은 일을 보고 신비스럽게 보았지만 그 후로 선생님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선생님의 태몽과 현몽을 살피면서 어머니의 신 내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선생님 초등학교 2학년 무렵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데 집이 가까워 올수록 시끄러운 소리가 동네를 쩌렁 하게 울렸습니다. 북소리, 징소리가 너무 커서 심장이 울리고 귀는 찢어 질 것 같았습니다. 대문은 활짝 열려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문 밖 까지 서서 집안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에 알아준다는 동네 한복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더니, 맙소사! 다섯 분의 스님과 부산박도사(훗날 박재현선생님) 그 외 무속인 앞에서 어머니가 요란한 옷을 입고 고깔모자작두신령투구를 쓰고 신발도 벗고 있었습니다. 거기다 더 놀랐던 것은 시퍼런 칼날위에 어머니가 올라가려고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린 9살 아이는 너무 놀라고 눈앞이 컴컴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적으로 안 돼! 안 돼!를 외치며 어머니를 밀치고 차려져 있던 상으로 뛰어가 음식들을 바닥으로 던졌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머니가 신어머니라는 할머니 앞에서 엉엉 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나이가 9살이었습니다. 그 광경은 너무 끔찍하고, 무섭고, 차갑고, 힘들었습다. 그리고 너무 슬펐습다. 어머니가 그렇게 우는 것도 슬펐고, 어린 선생님 가슴에 엄마의 슬픔이 스며드는 것 같아 가슴이 시리다는 느낌을 처음 받 았습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선생님은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그렇게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바뀌니 집안 풍경도 자연스럽게 바뀌게 되었습니다. 활산선생님 부모님이 쓰시던 안방에 자개농이랑 어머니가 시집올 때부터 가지고 와 아꼈던 경대가 구석진 방으로 들어가고, 넓은 안방에 큰 불상이 들어오고, 보살상들과 탱화가 벽에 걸렸습니다. 한마디로 신당이 차려진 것입니다.
아래 내용은 활산 선생님 글을 옮깁니다.
삽시간에 모든 것이 바뀌어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상하게 나는 오히려 그 풍경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때의 그 감정이 뭘까, 오랫동안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순수한 것은 계산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언젠가는 나도 겪게 될 일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것이 생애 첫 번째 깨달음(아하)이었다. 내게 오는 운명을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번뇌를 줄이는 간단한 방법이다.
나 활산 역시 그 운명의 공동체 안에 포함된 사람이었으리라. 이후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한마디로 나의 어머니는 끝내주는 운명을 잘 받아들이면서 사람들이 말하는 끝내주는 삶을 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영적 감각과 지혜는 헤매는 중생들의 삶에 희망을 주기도 했고, 포기를 권유하기도 했으며, 해결사가 되 주기도 하였다. 어머니의 감정료는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너무 비쌌다. 그러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어머니의 용함(신통함)은 재물을 쌓게 하였다. 그것은 철저하게 어머니의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한쪽에서는 나 활산의 운명 또한 어머니가 겪었던 운명과 연결되어 있었다.
내가 살던 곳은 한남동이었다. 한남동은 재벌가들의 사가가 많은 곳이기도 하다. 집 근처에는 승지원이 있었고, 故정주영 회장의 사가도 세집 건너쯤에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남동의 집들은 대부분 넓은 마당을 가진 주택이었다. 우리 집도 마당이 제법 넓은 편에 속했다. 마당의 한 가운데는 어머니가 땅을 파다 발견했던 불상이 있었다. 단풍나무, 감나무, 철쭉이 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 마당에 있어도 산의 기운을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나는 특히 약간 기묘하게 생긴 소나무 앞에 놓인 평평한 흰 바위를 좋아했다. 거기에 앉아 까치가 나뭇가지 위로 앉아 우는 것을 구경했고 날이 좋은 날은 그 바위에 누워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기도 했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의 속이 들여다보였다. 본격적으로 집안의 비책을 물려받고 공부하기 전까지는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누군가를 맞춘다, 라는 사람은 귀신이 들렸다거나, 신이 들렸다고들 하지만, 내게 그런 것은 없었다. 무엇이 내 안에 들어와 조정을 하거나 지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저절로 알아지는 것들이 있었다. 동네 어른을 보고 아저씨 아들이 장가가니까 맛있는 거 많이 먹겠네요, 라던가 지역국회의원에게 당선 됩니다 라고 말하여 대중들에게 박수를 받고 친구들에게 너 오늘 무릎 깨져서 한판 울겠구나, 와 같은 것들이었다. 무엇이 보여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보면 바로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었다. 처음엔 어린놈이 뭘 안다고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핀잔을 듣기도 하고, 친구들은 너 귀신 붙었냐고 놀리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내가 뱉은 말이 현실이 되고 나자, 나는 동네에서 어린도사로 이름이 났다.
중학교 2학년 때쯤이었다. 그때는 불암산 아래 상계동에 살았다. 그 시절 상계동엔 배나무 밭이 많았다. 배꽃 향기가 물씬 풍기던 골목을 지나가는 데 문득 황당한 생각이 떠올랐다. 신이 존재하는가. 이 근본적이고 황당무계한 질문이 시작 된 때를 나는 정확하게 기억을 한다. 머릿속에서 번뜩 떠올랐고, 나는 배나무 아래로 가서 앉았다.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면 나는 그것을 담아두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을 보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신이 존재하는가, 라는 그 질문이 그렇게 쉽게 끝나고 해결될 질문이었던가. 눈을 감고 배꽃향기를 맡았다. 어머니께 배운 활산음을 떠올리며 심호흡을 했다. 옴~~~~~~, 암~~~~~~, 움~~~~~~, 옴~~~, 암~~~움~~~. 그냥 생각이 어느 정도 이를 때까지 호흡을 반복했다. 한참동안 호흡과 주문을 읊조리며 답을 기다렸다. 그 답을 어느 누가 줄까. 옴~~~, 암~~~, 움~~~, 활산음의 울림이 정신을 맑게 했다. 온몸에 울리는 소리가 마치 거대하고 묵직한 종소리 같은 울림으로 다가왔다.
“아하, 신은 내 안에 있구나. 내가 바로 신이구나!”
신기지물(新機之物)과 율려(律呂)의 조화!
그 느낌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절대음감을 느끼는 이들과 비슷하다. 자연스럽게 음과 율을 느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어느 분야에든 절대적으로 선천적으로 되는 능력이 있다. 내게는 절대직관 같은 것이 있었다. 보면 상대방의 기를 느끼고, 음성을 듣고 표정을 보면 성향이 보였다. 행동과 몸가짐을 보면 성격이 보였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맘에 맞는 신을 찾아다닌다. 그것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인간의 습관이다. 삶이 불안하고, 죽음의 그림자는 늘 주변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거대함에 납작 엎드리고, 기이한 현상에 놀라고 우주의 거대한 법칙들이 마치 신의 놀음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인간은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걱정하는 영리한 동물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이 있다고 믿게 됐다.
나는 그 신을 찾아보기로 했다. 내 마음에서 들리는 그 음성은 과연 어떤 신인가. 친구들을 따라 예배당도 가보고 성당을 다니며 교리를 익히고 세례도 받았다. 세례명은 이삭이었다. 내 어머니는 무속인 이었지만 스스로 선택한 종교 활동에 대해서 아무런 말이 없으셨다. 집안에 대물림 되는 신기(神氣)가 내게도 있었지만 나는 그것이 ‘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궁금한 것은 내 안에서 거센 파도처럼 밀려오는 예감이나 직감들을 무엇으로 해석하고 증명하느냐에 관한 것이다. 어린 아이가 언어를 배우고 소통하고 배우면서 세상을 알아가듯이 나는 나만의 방법으로 찾아내보려 애를 썼다. 헌책방을 찾아다니며 종교 · 역사 · 철학 · 고전들을 두루 섭렵하고 익혔다. 나 자신이 어떤 확신 없이 그냥 믿고 따라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들은 영어, 수학 학원을 다니며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할 때 나는 인간 세계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하루는 어머니가 조용히 신당으로 나를 불렀다.
“요새 학교 공부는 안하고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돌아다니는 것이냐!”
평소 어머니는 여느 어머니와 다름없이 자식들에게는 엄한 편이었다. 연탄부지깽이를 들고 때리겠다고 달려와서 나는 2km가 넘게 도망을 간적도 있었다.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가 무서워서 대꾸한번 못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맞고 울면서 대들고, 조금 커서는 도망가면서 약을 올렸고 하고 싶은 말은 죽어도 내뱉고야 마는 성격이었다. 결국엔 어머니는 나를 때리지 않았다. 역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 역시 나는 당당하게 밝혔다. 최대한 논리적으로 어머니를 설득했다. 어머니는 생각과 달리 화를 내지도 말리지도 않았다. 하고 싶으면 하는 것이지만, 신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공부를 해야 하는데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다.
신이 들어오지 않았다니, 나는 이미 스스로 신을 받았다. 남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데. 이것을 어찌 평범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다만 그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시퍼런 칼날 위에 올라가서 춤을 추거나 신과 빙의되거나 하지 않을 뿐이었다. 내게 들어온 신은 철저하게 나의 내면과 대화할 뿐이었다. 어머니가 어떤 오해를 하건 중요하지 않았고 말리지만 않으면 다행이었다.
어머니는 비싼 굿을 하기도 했고, 부적을 써서 팔기도 했다. 대체 그런 퍼포먼스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부질없어 묻지 않았다. 어머니는 전통을 지키는 무속인 이었고 그 신통함은 논리로 설명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 분야의 천재에게 당신이 왜 천재가 됐냐고 질문해봐야 소용없는 것처럼 말이다. 어머니는 내게 낡은 책한 권을 건넸다. 책상에 앉아 옥편과 사주책을 놓고 한 글자 한 글자 뜻을 적고 단순하게 노트에 옮겨 적으며 생각 없이 한권을 다 써내려갔다. 글이란 참으로 신비한 것이었다. 굳이 어떤 생각 없이 그저 읽어보고, 뜻을 적어보기만 했는데, 그간 의심하고 궁금했던 어떤 큰 세계가 내 안에 가득 차는 것 같았다. 단순히 무엇을 맞추는데서 그치지 않고, 무엇이든 귀한 것을 알아보고 키우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치를 깨닫는 것은 동양철학의 기본이다. 이치는 서양의 시각으로 보면 인과관계, 어떤 법칙 같은 것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세계는 거대한 우주의 질서에 의해 움직인다. 무형의 움직임 기(氣)는 에너지이다. 그 흐름들이 물질과 만나면 기적이 일어난다. 그것을 어떤 이들은 신의 장난이라고도 믿는다. 나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부정하고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존재하든, 아니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발견하고 알아가는 것이다.
닭이냐, 달걀이냐, 삶이냐, 죽음이냐, 돈이냐, 명예냐 등등의 답도 없는 논쟁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굳이 고민하지 않아도 세상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질문과 답. 그것에 상응하는 학문과 지식들이 있었다. 나는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듯이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어머니가 내게 내민 책은 눈으로(반야의 눈) 보면 천(天)·지(地)·인(人)의 천은 "하늘·만물의 근본·조물주·진리·임금·아버지·지아비·남성"의 뜻이다. '일(一)'은 신(神)·기(氣)·태극(太極) 황극皇極 무극無極등의 의미를 가지고, 천일(天一)은 천계(天界)·태양계·태양의 성격과 기능을 가지고 있다. 지일(地一)은 지구의 성격과 기능을, 인일(人一)은 만물의 성격과 기능한다. 즉 천은 조화(調和), 지는 교화(敎化), 인은 치화(治化)의 기능을 주관한다고 말할 수 있다. 〈훈민정음〉의 중성 11자는 천(ㆍ), 지(ㅡ), 인(ㅣ)의 삼재(三才) 사상에 따라서 상형되었다는 내용과 오행을 풀이하고 오행이 죽고 살아 움직이는 과정을 설명한 책이었다. 할머니가 쓰시던 걸 어머니가 물려받아 공부하고 쓴 것이었다. 오래되어서 겉면이 얼룩지고 글은 흐렸다. 신神은 스스로 만들어서 스스로 갈무리한다. 그것을 주신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 신이 무엇인가 신과 인간의 영역은 다르다. 실상은 신과 우리는 하나이며 이것이 천인지(天人地) 三才삼재 사상의 핵심이다. 신 역시 우주의 한 영역이고 기운이기 때문이다. 기도를 하는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고 반성하는 반성문인 것이다. 알고자 하는 것을 되새기면서 동시에 사고를 하는 것이 기도다. 활인活人으로 살기로 했으니 영역과 역할을 정하고 그 길을 향해 가면 그만이다.
내 선택은 삼재(三才)의 눈으로 피가 빠짝빠짝 마르고 잠을 이룰 수 없는 중생들의 고민해결! 운명적인 기적을 만드는 일이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성경의 한 구절이 있다. 나의 뜻은 인간 운명 연구였다. 인간 운명을 연구하려면 대상은 인간이다. 얼마나 많은 이들을 만났는지 헤아리기조차 힘들다. 역학당을 만든 것도 그 이유다. 뜻이 있으니 스스로 길을 찾아오는 이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역학을 사극에 나오는 당골네 정도로 보면 오산이다. 역학을 전문분야로 만들지 못한 것은 무속인들의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그런 것이다. 철학관을 차리지 않고 전화 상담을 해주고 매여 있지 않아도 되니 더 많은 이들과 인연을 맺을 수 있었다.
역학당이 나에게는 절이고 중생구제의 보물창고다.
처음엔 그렇게 해서 어떻게 먹고 살겠는가, 했지만 말하지 않았는가. 굳이 남들처럼 하지 않아도 타고난 운을 잘 쓰고 살면 재물은 또 따라오기 마련이다. 사주풀이 자체가 긴 시간을 요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떤 운명을 타고 났는가를 알아야 한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을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진단을 내리고 처방이 나온다. 우리네의 운명도 그렇다. 진단 후 처방이지. 무슨 일이 생겼는지 맞추는 퀴즈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사주 없는 사람도 없다. 속내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어떤 성분인가 정도로 알 수 있기에 나는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길한 날이 있고 흉한 날이 있고, 상생이 있고 악운도 있다. 그런 것들을 조합해서 조언해주는 것이 활인이다. 의사가 필요한 것만큼 필요한 것이 활인이다. 역학이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은 미신이라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편견 때문이다. 한의학이 발달했던 조선시대에 현대의 외과의사가 칼을 들고 설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현대에 와서는 한의학과 양의학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학문과 연구로 증명하는 것이다. 현명한 인간은 필요한 것을 적재적소에 쓰면 되는 것이다. 내가 믿는 것만이 진리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어리석음이다.
활산에게 있어 공부는 좀 더 많은 이들의 사주를 만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뜻하지 않게 많은 인연들을 접하게 되었다. 살다보면 운명이라는 단어를 심심치 않게 쓸데가 있다. ‘운명의 상대’, ‘운명의 시간’, 과 같은 말들이다. 그 ‘운명’ 이라는 말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실제로 그 상황과 상대가 나의 운명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인간이기에 내 인생에도 그 운명과도 같은 일들이 생겼다. 그것은 ‘인연’에 관한 것이 같은 사주로 태어나서 왜 같은 운명을 못 사느냐는 질문은 개떡 같은 질문이다. 같은 암에 걸렸는데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것인가와 같은 것이다.
무엇으로 어떻게 사느냐와 누구를 만나냐가 운명의 하이라이트를 만드는 것이다. 유능한 의사를 만나서 병을 고치기도 하고, 의료사고를 당해서 죽기도 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서 돈을 벌기도 하고 나쁜 인연을 만나서 사기를 당하기도 하는 것이 인생이다. 인생의 큰 포인트는 결국 인연이다. 나 역시 인연의 끈은 예측할 수 없는 곳에서 이어지기도 한다.
회장님을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말이었다. 시를 좋아하는 동인 모임에서 처음 대면을 했는데 나는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재물과 귀(貴)함이 깃든 관상이었다. 회장님은 솔직하고 담백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평생 사업을 그렇게 크게 하고 살았지만, 사주 한번 본적이 없었다는 회장님이 나를 만난 것도 인연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주보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더니 바로 상담 날짜를 잡아달라는 것이었다. 지인들과 함께 하는 좋은 자리에서 굳이 날짜를 따로 잡아 봐드릴 필요도 없기에 바로 봐드리겠다고 했더니, 뭐가 됐든 정식으로 해야지, 이런 식으로 하면 제대로 봐주겠나, 하시며 결국은 며칠 후 재회하게 되었다.
그날 모임에서 분위기 메이커를 담당했던 것이 회장님이었다. 언변이 뛰어나고 유머감각이 있어, 덕분에 그날 모임은 아주 즐거웠다. 회장님에게 좋지 않은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그는 유쾌했다. 사주를 받고 풀이를 해보니, 최근에 회장님한테 아주 안 좋은 일이 있었을 거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혹시 최근에 돈이 아주 많이 나갈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모임 보름 전, 회장님이 운영하는 식품공장에 불이 났었다고 한다. 대리점 주들은 보험 덕택에 오히려 돈을 벌었지만, 회장님 개인자산은 거의 없어 진 것이나 다름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회장님의 앞으로 운세를 풀이하는데, 무엇이 탁! 하고 왔다.
“회장님 재기 하실 겁니다!” 큰 불 난 것처럼 “회장님 불같이 재기 하실 겁니다!”
이후 회장님과 나는 둘도 없는 친구사이가 되어, 같이 산천을 돌아다니며 사업 구상을 하고, 나의 학문과 철학을 나누며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회장님은 배포가 크고, 자신에게 재담을 들려주면 그만한 대가를 꼭 지불해주는 통 큰 사내대장부였다. 독서량은 나조차도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다독가였고, 한 인간으로서 충분히 존경 받아 마땅한 인격을 지닌 사람이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늘에서 품부 받은 기를 잘 쓰고 가는 것이 격이라고 하셨습니다. 일신의 안정을 위해서 기를 쓰지 말고, 세상의 안녕을 위해서 그 기를 쓰세요!”
회장님이 마지막 순간에 내게 남긴 말이었다. 회장님은 그 말과 더불어 그간 덕분에 사업이 번성했다면서 내게 오피스텔 한 동을 남겼다. 자식도 아니고, 사업 파트너도 아닌 내게 그런 큰 재물을 남겨준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때 얻은 ‘아하’ 는 두 가지였다.
재물을 벌어서 쓰는 법, 그리고 일신의 안정보다 세상의 안녕을 위해 나 활산이 할 수 있는 일. 그것은 국운을 읽는 것과, 재물의 흐름을 알아내는 방법이었다. 지금부터 활산은 하늘에서 품부받은 나의 삼재기운三才氣運과 땅(귀인)에서 품부받은 격을 이 편지 글을 읽고 있는 중생衆生들에게 낱낱이 알려 줄 것이다.
2010년 1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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