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강경 옥녀봉,
한국 첫 침례교회와 (구)강경성결교회당
2019.8.31
침례교단 사적지인 (구)강경침례교회
논산시 강경읍 북옥리 137번지에 위치한 강경침례교회는, 1897년 미국 선교사 폴링이 설립한
한국 최초의 기독교침례회 소속 교회이자 한강 이남에서 지어진 최초의 'ㄱ'자 교회당으로
'남여7세부동석' 등 나며유별사상이 아주 엄격했던 당시 사회상을 엿볼 수 있는 하나의 모델이다.
1906년 펜윅 선교사는 이곳에서 31개 교회를 모아 한국기독교침례회 최초의 총회를 열었으며,
당시 개설한 성경학교는 현재 대전에 소재한 침신대의 전신이 되었다. 3.1운동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 말살정책과 항일사상의 근거지를 없애려는 의도로 전국적으로 신사참배를 강요했는데
강경침례교회가 있는 이곳 옥녀봉 중앙에 신사를 건립하고 교회를 강탈할 목적으로 교회를 탄압,
32명의 교인들을 원산헌병대로 끌고가 투옥하고 증여형식으로 교회를 빼앗아 불을 지르고
교회터 4732평은 신사부지로 사용했는데 이 과정에서 천치규 목사는 결국 옥중에서
순교를 하였다. 현재 침례회 전국 총회에서 이곳의 터를 '침례교단사적지'로 지정하고
옛모습 그대로 교회당을 복원하여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송제정 바로 아래의 강경침례교회와 금강 모습
안순득 속장 순국 순교 추모비
강경성결교회 속장이자 해방 후 애국여성운동가였던 안순득 여사는 1908년 충북 괴산 에서 출생,
1925년 정신여고와 1927년 경성보육학교를 졸업한 뒤 어린이 보육사업에 전념하였고
8.15해방 후에는 애국여성운동 연구가로, 교회의 속장으로 심혈을 기울여 활동을 펼치던 중
6.25 민족수난 때 공산군에 붙잡혀 죽음 직전까지 민주대한의 딸로 긍지를 연창하며
애국가와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후 하나님께 저들의 죄를 용서해주실 것과 자신의 최후를 맡기는
기도를 드리던 중, 공산폭도들의 일곱발 총탄에 맞아 순국 순교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이를 기려 이곳에 추모비를 세웠다.
논산근대문화골목과 (구)강경성결교회당
구. 강경성결교회당(등록문화재 42호)
한옥교회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구)강경성결교회당
등록문화재 42호인 (구)강경성결교회는,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기와 한옥교회당으로,
한국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서 나타난 매우 독특한 구조를 보녀준다. 특히 목재의 치목수법과 조립기법은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시기 건축기술로 변화하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희소거치가 매우 높은 귀중한 자료이다.
평면은 정면 4칸규모로, 정면과 측면의 비율이 거의 1:1인 정방형의 평면으로, 남녀의 공간을 구분한 칸막이 교회이다.
남녀유별사상의 유교전통이 강했던 초기 한국 교회의 풍속에 따른 조처로, 건물 전면에 별도의 문을 두고
실내에는 칸막이를 쳐서 남녀 좌석을구분했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가구구조는 9량 구조로 내부의 고주를
기둥열에 맞춰 세우고 대들보와 퇴보를 걸어 사부가구도 평리할 뿐만 아니라 공간의 활용도 용이하게 하였다.
더욱이 강단쪽의 고주 하나를 생략함으로써 회중석에서 강단을 향하는 시선의 장애를 없애고
강단 앞부분에 충분한 공간을 만들어 당시의 사회적 여건과 기능에 충실한 계획수법으로 볼 수 있다.
목조건축에 있어 이러한 건축방식은 구조에 대한 기술적 축적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으로
당시의 기술수준을 알 수 있는 좋은 예가 되고 있다.
옥봉약천 근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