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산행일자:2020년2월20일(목)
2,산행지:무 이 산 (武 夷 山, 546m), 수 태 산 (秀 泰 山, 570m) (경남 고성군)
3. 산행코스 :
코스;문수식당/컨테이너/이정표/밀양박씨묘삼거리/정상 아래 이정표/문수암/전망바위/무이산정상/임도사거리(주차장)/이동전화기지국/삼거리이정표/수태산정상/삼거리이정표/너럭바위/전망바위/주차장/약사전/절골고개/돌구산(삼거리)/호반그린모텔/문수식당
무산저수지
문수식당에서 출발
문수암의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의상조사가 남해 보광산(지금의 금산(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상리면 무선리
어느 촌락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는 홀연히 사라져 잠을 깨니 꿈이었다
날이 밝아 과연 한 걸인이 나타났는데, 급히 밥상을 갖다주며 무이산의 주소를 물었더니
무이산에 간다 하기에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걸인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있고,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 개의 바위가 오대(五臺)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 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조사는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의상조사는 홀연히 깨달은 바, 꿈속의
노승이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 보살임을 깨달았고 의상조사는 무이산을
두루 살펴보고는 “이곳은 족히 사자를 길들일 만한 곳이며 이곳이야말로 산수 수도장이다”
라고 예찬하고 문수단을 모아서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 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렸이 나타나 보인다.
사자를 다스린다고 함은 우리들의 마음이 사자와 같이 길들여지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잠깐! 문수보살(文殊菩薩)에 대해서 반디불이 잠깐 알려드리도록 하지요.
범어로는 만주스리(Manjusri)이며 문수사리(文殊舍利), 만수시리, 만수실리 등으로 음역한다.
가장 많이 쓰이는 음역은 문수사리이며 줄여서 문수라고 한다. 문수는 묘(妙)하다는 뜻이고
사리는 으뜸(頭), 덕(德). 길상 (吉祥)의 뜻으로 묘길상(妙吉祥)이라 번역한다. 즉 지혜가
뛰어난 공덕을 지닌 보살을 의미한다.
석가모니불을 왼쪽에서 협시하는 보살로서, 오른쪽의 보현보살이 행원을 맡은 데 대하여
지혜를 맡고 있다.
머리에 오계(五 )을 맺고 있는 것은 비로자나불의 오지(五智)를 표현한 것이며,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은 지혜를 상징한다. 왼손으로 지혜의 그림이 담겨있는 청연화를 쥐고
있는 것이나 사자를 타고 있는 것도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면서 동시에 위엄과 용맹을
나타내기도 한다.
수태산과 무이산
경남 고성군 상리면과 고성군 하일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모산은 낙남정맥 상의 대곡산(544.9m)이다.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의 신어산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이 대곡산에서 남서쪽으로 가지를 쳐 빚어 올린 봉우리가 수태산과 무이산이다. 수태산과 무이산을 일군 산줄기는 사천시 각산에서 그 맥을 남해에 넘겨주고 있다. 수태산의 옛 지명은 문수산으로, 이 이름은 신라 신문왕 5년(688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문수암에서 유래하였다 한다. 문수암 북쪽에 무이산이 있고, <조선지지자료>에는 무이동 문수산으로 기록하고 있어 무이산을 문수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중국 복건성과 강서성 경계에 있는 무이산(武夷山·548m)은 주자(1130~1200년)가 성리학을 일으킨 곳이다. 그는 이곳에다 무이정사를 짓고 자연과 함께하며 학문에 심취했다.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 중국 5대 명산이라는 명성에서 보듯 천하절경과 수려한 풍광을 자랑해 천상의 무릉도원으로 꼽힌다. 고성 무이산이 중국 무이산에서 왔다. 조선후기 관찬지리지인 ‘여지도서’ 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데 고성현 부분에 무이산의 지리적 위치가 나와 있고 산 아래에는 ‘사수’와 ‘백록동’이 있음을 언급했다. 사수(泗水)는 현재의 사천천을 말하는데 중국 공자의 고향 곡부지역에 흐르는 강이다. 백록동(白鹿洞)은 당 시대 주자가 세운 사립학교 백록동서원이 있는 고장이다.
고성에 이런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공자와 주자사상 중국의 산수에 매료된 유학자들이 우리의 산수도 비견된다 하여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이런 지명들은 고성 외에도 경북 영양군 입암면, 전북 순창군 팔덕면 등 전국 산간계류에 수십개가 있는데 당시 중국지명 따라하기가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성 무이산은 이러한 유래 외에도 남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량도 망산, 달마산 등 바다와 직접 맞닿은 곳과는 달리 내륙으로 더 들어온 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묘미가 있다. 또 연계 산행하는 수태산과 돌구산, 문수암, 보현사 약사여래대불도 볼거리이다. 특히 문수암에는 한국 근대불교 조계종의 주춧돌을 놓은 진주 출신 청담스님의 사리탑이 모셔져 있다. 문수암자 뒤에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석벽 사이로 문수, 보현 두 보살상이 나타나 문수단으로 부르기도 한다. 고성의 명산으로 알려진 무이산은 불가(佛家)에서는 청량산(淸凉山)이라고도 하는데 고성읍 상리면 무선리에 위치하고 있다. 무이산은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런 이유로 무이산(武夷山)이라 한다. 수태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산보다는 문수암과 보현사 그리고 단장을 마친 약사여래 대불로 더 유명하다. 문수암자 뒤에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쌓여있고 석벽 사이로 문수, 보현 두 보살상이 나타나 있어 문수단이라 이름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