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좌진역사바로세우기—제2탄]
중국 공산당 보청현 당안-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증인 : 허준, 57세, 빈농, 농민 출신, 문화기간 2년, 조선족. 현재 보칭현(寶淸縣) 완진산향(萬金山鄕) 오성사(五星社) 사원(社員)이며 김명환(金明煥)과 동향관계(同鄕關係)임.(증인은 일반 대중임)
문: 김명환의 정황을 설명하라.
답: 김명환의 가정은 빈농이고, 김명환 본인은 학생 출신이며, 위만주국 강덕11년(1944년)에 시마쌘즈(徐馬架子)에 거주했다. 그 때 김명환은 겨우 10세였다. 가족이 4명이었는데 김명환 본인과 할머니와 삼촌과 그의 아버지였다.
문: 김명환은 광복 후 무슨 일을 했나?
답: 그 사람은 공부하는 것 외에는 다른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 1948년에 숙부(叔父)를 따라 쉬마쨔즈(徐馬架子)를 떠나 쐉야산(雙鴨山)으로 갔다. 그 후로는 그 사람의 정황을 모른다.
문: 김명환의 아버지가 위만에서 간첩으로 활동했던 사실을 아는가?
답: 예.
문: 정황을 말하라.
답: 김명환의 아버지는 김창렬과 김뢰진으로 이름이 두 개였다. 위만 후진현(富巾縣)에서 3~4년간 특무로 살았다.(시기는 강덕 원년(1934년)부터 3년 전후)
문: 이 사람이 특무로서 어떤 죄악이 있는가?
답: 이 사람은 위만주국 후진현(富巾縣)에서 특무로 있을 때 나의 항일련군 제7군의 조선족 간부 2명을 일본인에게 신고(告報)해 일본사람이 조선족 항일련군 2명을 잡아가 참살했다.
문: 이 두 명의 항일련군은 모두 어느 지방 사람인가? 성은 뭔가?
답: 우리 보청현 동방촌(東方村)의 허기호와 보청현에 있는 림씨인데 모두 조선족이다.
문: 김뢰진은 어떻게 두 사람이 항일련군이라는 것을 알았는가?
답: 그 사람은 원래 보청현(寶淸縣)에서 살다가 후진(富巾)으로 가서 간첩활동을 했기에 알고 있었다.
문: 그 사람은 후진(富巾)에서 간첩활동을 하는 것 외에 또 뭘 했나?
답: 아편장사를 했다. 강덕11년에 쉬마쨔즈(徐馬架子)로 이사 와서 농사만 지었다. 1947년 토지개혁 때에 항일련군 가족인 허기호(許基浩)의 동생 허기훈(許基訓)이 김창렬을 검거하여 만금산(萬金山)으로 끌고 가 조선족들이 김창렬을 때려 죽였다.
문: 당신은 어떻게 상술한 그런 상황을 알고 있는가?
답: 내가 후진(富巾)에 있을 때 김뢰진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가 광복투(光復鬥)했던 상황 때문에 나는 잘 알고 있다. (게다가 그가 광복투쟁(光復鬥) 시기였으므로 나는 잘 알고 있다.)
문: 김명환에게 또 다른 사회관계는 있는가?
답: 다른 것은 없다. 그냥 숙부 김창규가 위만주 기간에 그의 형 김뢰진의 집에서 아편장사를 도와준 것인데 그 외 다른 일은 해 본 적이 없다. 조국 광복 후에는 일하기 싫어하고 하루 종일 돈을 요구했다.
문: 허기훈은 지금 어디에 살고 있나?
답: 치치할(齊齊哈爾)에 살고 있는데 상세한 주소는 모른다.
문: 또 무엇을 알고 있나?
답: 다른 건 아는 게 없다.
이 기록은 본인이 정확하게 읽었으며 기록이 틀림없다.
증인 : 허 준
1958. 7. 29
이 사람은 우리 향의 5성으로서 정치가 매우 믿음직하므로 이 자료를 참고로 제공한다.
중국공산당 보청현 만금산남향총지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