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승계의 건강한 모델이 되다
은퇴하는 서현교회 김경원 목사
스포츠에서는 운동선수가 한 팀에서 오랫동안 의미 있는 성적을 내고 은퇴할 경우 ‘레전드’라는 수식어를 붙여 주고 구단이나 팬들이 그 선수를 존경한다. 만약 교회에도 이런 문화가 있다면, 김경원 목사는 분명 서현교회의 ‘레전드’ 우리나라 말로 전설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목회 여정을 걸어왔다. 32세 청년의 나이로 서현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38년. 그 긴 기간 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하며 일군 밭에는 알곡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여기에 성도들과 동역하며 남긴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덤이다. 목회에서는 은퇴하지만 하나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 위해 열심히 달릴 것이라는 김경원 목사를 만났다. _편집자 주
김경원 목사의 42년 목회 여정
진주 성남교회에서 3년 2개월 목회를 하고 있던 청년이 서울 서현교회 박경남 담임목사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게 된다. 1979년 11월 지금으로부터 만 38년 전의 이야기다. 서른두 살의 청년은 여섯 달 후 담임목회를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박경남 목사는 이미 그를 자신의 후임을 점찍어 놓은 상태였다. 이듬해 5월 서현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올해 12월 은퇴 예배를 앞두고 있는 김경원 목사의 목회 시작과 끝이다.
“은퇴를 앞두고 목회 여정을 돌이켜 볼 때, 딱 두 가지를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올 수 있었는가’를 요즘 많이 생각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바울의 고백 ‘나의 나 된 것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생명도, 믿음도, 나의 목사 됨도, 서현교회 목회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다른 하나는 ‘감사’입니다. 은혜를 깊이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절로 나오게 됩니다. 부족한 목사를 38년간 사역할 수 있도록 저를 받아준 교회에 아주 많이 감사합니다.”
서현교회에 부임할 당시 시무하시던 장로님들이 모두 자신의 아버지뻘이었는데도 어리고 미숙한 자신을 잘 도와주었던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는 김경원 목사. 처음 목회의 자리를 잊지 않고 목회 여정이 끝나는 시점의 첫 고백이라면 이는 초심을 잃지 않는 초지일관의 목회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한결 같은 목회 여정 가운데에는 담임 목회자로서 홀로 삼켜야 했던 눈물도 많았을 것이다. 특히 목회 초기 만났던 예배당 전소는 그를 한없이 낮은 자세로 목회하도록 하는 지표가 되었다.
서현교회에 부임한지 3년이 되었던 시절 예배당이 전소되었다.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잘못처럼 여겨져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무릎을 꿇었다. 담임목회자로서 책임감을 지고 목회에서 내려와야겠다고 다짐하기에 이르렀다. 서른다섯 자신이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자괴감에 빠져든 시기였다. 벼랑 끝까지 자신을 내몰아 밑바닥을 보았다. 그러나 그때 장로들은 물론 교회 성도들이 예배당 전소가 자기 탓이라며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다. 교회 전체가 회개의 물결로 뒤덮이며 상처를 감싸 안고 함께 회복하는 시간을 가졌다.
“화재 사건에는 방화, 실화, 누전 세 가지 원인이 있는데 경찰 수사 결과 원인 불명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원인이 밝혀져 누군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했다면 교회는 큰 상처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저는 하나님 앞에 더욱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목회 초반 교회의 부흥에 취해 있었던 저에 대한 하나님의 회초리였습니다. 저의 교만과 자만이 불로 인해 꺾였던 것이죠. ‘너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서현교회와 함께한 38년
예배당 전소 때문에 교회를 다시 건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예배당 때문에 재건축을 해야 했던 시점이기도 했다. 김경원 목사는 서현교회 부임 후 본당과 교육관, 비전센터까지 총 세 번의 건축을 진행했다. 교회 건축은 교회 성장의 상징보다는 지역사회와 다음세대를 위한 투자였다. 그러하기에 교회 건물은 교회와 이웃하는 서교동 주택들과 위화감 없이 어울린다. 특히 서현학사로 운영하는 두 동의 빌라는 서현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보여주는 특징적 건물이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예배’와 교회 내적으로 성도들의 ‘교제’, 교회 바깥으로는 ‘선교’ 그리고 다음세대를 키우는 ‘교육’,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입니다. 모든 교회의 5대 기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기능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 ‘서현학사’입니다. 우리 교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서현교회가 농어촌 교회를 섬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봤을 때, 농어촌 목회자들의 자녀 교육을 도와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사를 만 들어 단순히 주거 공간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니라 신앙과 생활을 지도하고 교육하면 농어촌 목회자들이 아이들을 편하게 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현학사는 농어촌 교회의 목회자 자녀나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학사로, 50여 명의 숙식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생활지도 교육과 신앙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서현교회 자체가 대학 타운이라 할 수 있는 지역에 위치하고 있는데다 농어촌 교회 목회자들의 가장 큰 고민인 자녀 교육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빚어진 것이다. 교회 앞 빌라 두 동을 매입하여 ‘서현학사’라 이름 짓고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저는 ‘교회가 왜 이 지역사회에 있는가?’라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외딴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교회는 내 교회로서만 아니라 한국교회라는 전체 공동체 속에서의 한 교회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통일성과 다양성을 함께 추구해야 합니다. 제 후임으로 오시는 목사님이 이를 바탕으로 다양성을 추구하고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일에 앞장서서 더 잘 사역하기를 원합니다.”
서현교회 교육관의 경우 다음 세대들을 신앙으로 키워내는 교육의 전당이자 지역사회와 한국교회를 섬기는 일에도 사용되고 있다. 교회 홈페이지에는 교육관의 내부 시설에 대해 자세히 안내하며 이용 신청을 받고 있다. 수용가능인원에서 냉난방, 기자재까지 세세하게 기록되어 있으며, 때에 따라 본당도 대관이 가능하다.
사회의 변화 속 서현교회
김경원 목사가 부임할 당시만 하더라도 서현교회가 있는 서교동 일대는 주택가였다. 그러던 것이 강남 개발과 함께 서민 주택 단지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홍대 상권의 확장에 따라 다시금 변모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변화에 따라 교회 구성원에도 변화가 있었다. 교인의 80%가 지역 주민들이었던 예전에 비해 최근 그 비율이 감소하여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서현교회 또한 서울 도심의 교회로서 변모할 필요가 있었다. 대학타운에 교회가 위치하고 있다 보니 청년들이 많고, 비교적 먼 거리를 오가는 성도들을 위해 다양한 편의시설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아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 그 안에서 신앙교육을 자연스럽게 받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이 바로 서현학사와 비전센터이다.
“70~80년대 한국교회의 폭발적 부흥을 지금 이 시대에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교인 수가 줄고 있는데, 그 이유로 꼽히는 것이 출산율 저하에 따른 교회학교의 급감입니다. 한국교회의 미래라 할 수 있는 다음세대 교회 안에서 사라지고 있는 것이죠. 저는 사비를 털어 교회 성도들 가운데 출산한 가정에 100만원을 축하금으로 주었습니다. 이렇게 10년 동안 주다보니 재정이 바닥이 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첫째 10만원, 둘째 20만원, 셋째 30만원을 주고 있습니다.”
출산율 저하가 지금 이 정도의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지 않던 시점에 미래를 내다보며 내린 결단이었다. 서현교회에서는 매년 유아세례 40명을 주고 있다. 김경원 목사의 다음세대를 향한 마음은 따뜻하고 세세하게 목회 현장에 접목된다.
김경원 목사는 1년에 안식월로 두 달을 보내는데, 예전에는 이 기간 동안 공부도 하고 재충전 하는 시간을 가졌지만 최근 몇 년간은 매주 주일학교를 순방하는 것으로 채웠다. 교회의 어린이들과 접촉하는 지점을 늘리고, 더불어 교회학교 교사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김경원 목사와의 Q & A
Q. 서현교회에서 목회 사역뿐만 아니라 교계사역에도 심혈을 기울이셨습니다. 교계사역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A. 목사들이 자신의 교회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저도 서현교회 목회에만 치중하려 했지 교단이나 한국교회를 위해 일하겠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고 옥한흠 목사님과 함께하면서 여러 가지를 깨닫게 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옥 목사님만 하더라도 사랑의교회 내의 제자훈련에 오랫동안 전념하면서 교계 사역은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다 깨달으신 것이 ‘나 하나 바른 목사가 되고 우리 교회만 잘 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옥 목사님과 함께하면서 덩달아 저 자신도 시야가 넓어졌지요.
Q. 목사님께서는 롤모델로 삼으시거나 존경하시는 분이 있으신지요?
A. 제 목회에 가장 영향을 미친 분은 대구서문교회 이성헌 목사님과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님입니다. 이성헌 목사님은 제가 목회자로서의 기본자세와 설교자로서의 자세에 대해 귀감이 되신 분입니다. 신학대학원생 시절 이 목사님으로부터 설교학을 배웠고, 서문교회에서 부교역자로 3년간 하며 목회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개교회 목회의 기반을 이 목사님으로부터 다지게 되었습니다. 옥 목사님으로부터는 한국교회를 위해 목회자가 함께 섬겨야 한다는 뜻을 배웠고, 그 영향 아래 지금까지 사역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Q. 은퇴하는 선배 목회자로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A.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고 있는가는 무척 중요합니다. 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왜 목회자로 부르셨는가 하는 소명에 대해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에서 비롯되는 소명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겠죠. 다음으로 목회자는 성결을 가져야 합니다. 목회자는 일반 성도보다 더 높은 수준의 윤리와 도덕을 갖추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능력 있는 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Q.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중에 하나가 설교가 아닐까 합니다. 목사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상황 속에서 성도들에게 필요한 영의 양식을 공급하는 것을 설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제대로 잘 하는 것이 목사의 첫 번째 사명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자신의 말을 전하라 하셨고, 베드로에게 네 양떼를 먹이라 하셨습니다. 말씀의 전달자이자 양떼를 먹이는 목자가 목사인 것입니다.”
Q. 후임 목회자 청빙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A. 교단 신문에 광고를 내고 ‘공개 추천’을 받았습니다. ‘공개 추천’은 목사 자신이 직접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교단 목사들이 서현교회에 적합한 목회자를 추천해 주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렇게 추천된 목사들을 대상으로 교회 내 청빙위원회에서 심사를 했습니다. 이 청빙위원회는 장로와 권사, 집사들로 일곱 명의 평신도로만 구성이 되었습니다. 추천된 목사들 가운데 압축된 여러 명을 제가 직접 면담하였습니다. 이때의 면담은 목사로서 목회에 대한 질문만 있었을 뿐이지 평가는 없었습니다. 평가는 오로지 청빙위원회의 몫이었죠. 이렇게 후임 목회자로 선정된 것이 이상화 목사입니다.
Q. 은퇴 후의 삶, 계획한 것들이 있으신가요.
A. 은퇴 후에는 군 선교를 할 생각입니다. 한국교회의 청년 선교는 두 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캠퍼스 선교였고, 다른 하나는 군 선교였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캠퍼스 선교는 상황이 많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반면 군 선교는 그 비중이 큽니다. 군대에서 세례 받는 청년들이 1년에 약 17만 명입니다. 한국군에 군목이 총 260명밖에 없습니다. 연대 규모의 부대에 군목이 한 명 배치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은 청년들이 자대에 배치된 후 신앙 관리가 안 되고 있습니다. 이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군대에는 1,004개의 교회가 있습니다. 이중 750개의 교회가 대대 규모의 부대에 있습니다. 이 교회에는 안타깝게도 목사가 없습니다. 이런 교회에 민간인 신분의 목회자가 들어갑니다. 이들 목회자는 어떤 명예도 보수도 없습니다. 그야말로 자비량 선교입니다. 군 선교를 위해 헌신하는 목회자들을 돕는 것, 이것이 군 선교의 완성이고 앞으로 제가 할 일입니다.
Q. 끝으로 한국교회에 하고 싶은 말씀 있으신가요.
A. 한국교회를 보면 원로와 후임의 관계가 잘못되어 문제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현교회의 이번 목회 승계가 정말 잘 이루어져 한국교회의 모범이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저는 은퇴합니다. 은퇴는 영어로 ‘리타이어(retire)’인데, 단어 그대로 바퀴 갈아 끼고 다시 달릴 겁니다. 목회에서는 은퇴하지만 군 선교 사역과 한국교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김경원 목사는 40년 넘게 설교를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어려운 것이 설교라고 말한다. 강단에 선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라는 김경원 목사.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한걸음 내딛는다. 군선교회 ‘미래군선교네트워크’에서의 사역이 기대된다.
첫댓글 김경워누목사는 나의 총신대 동기 동창으로 참으로 존경하는 훌륭한 목회자였다.